【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이전 칼럼에서 조선을 구하기 위해 의병을 일으킨 곽재우가 조정과 대립하는 모순된 모습을 소개했다. 이 과정에서 곽재우는 의병장으로서의 전공(戰功)과 그의 강직한 성격을 인정 받아서 조정의 부름을 받고 관직을 제수 받았다. 조정에 가서도 곽재우는 자신의 소신을 주장했고, 이로 인해 관직을 던지고 고향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또한 소신을 주장해서 귀양을 가거나, 조정의 부름을 거부하기도 했다. 그리고 말년에는 조정의 중신들로부터 탄핵을 받기도 한다. 그런데 이 탄핵 과정에서 놀라운 이야기가 등장한다.곽재우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전란의 와중에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의병을 일으킨 곽재우는 김수의 목을 베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을 비롯하여 이후에도 수차례 조정의 신료, 심지어 왕과 굵직굵직한 대립을 일으켰다. 물론 곽재우는 그가 세운 전공을 인정받아서 관직을 제수 받기도 했다. 처음으로 관직에 제수받은 시기는 거병 후 전과를 낸 직후인 것으로 보인다. 과거 급제가 취소된 후 의병 거병으로 입신양명한 것이다. 그런데 『선조실록』에 갑자기 이런 기록이 등장한다.이덕형이 선조에게 아뢰기를,"국가의 위급함이 이와 같은데 믿을 만한 장수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전란이 끝난 뒤 의병장들은 대체로 공훈에 합당한 포상이나 예우를 받지 못했다. 선무(宣武)공신에 책봉되지 못했고, 이런저런 관직을 거치기도 했지만 끝내는 은둔하면서 “익힌 곡식을 끊고 솔잎만 먹다가(벽곡찬송(辟穀餐松)”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보여주듯이, 곽재우도 그런 사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죽고 죽이는 처절한 살육이 난무한 전장보다 현실의 정치적 여건은 의병장에게 좀 더 엄혹했는지도 모른다.1)위의 글에서 드러나듯이 임진왜란 당시 조선을 구하고자 의병(義兵)을 일으켰던 의병장들은 대부분 당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어린 시절 필자는 MBC에서 오랜 시간 동안 방영됐던 대하드라마 시리즈인 “조선왕조실록”을 매우 즐겨봤다. “조선왕조실록” 시리즈에서는 여러 시리즈에 걸쳐서 ‘설중매’, ‘한중록’, ‘뿌리깊은 나무’ 등의 제목으로 조선시대의 주요 사건들을 다뤘는데, 그 가운데 ‘임진왜란’은 판옥선과 거북선 미니어처를 특별 제작하는 등 엄청난 스케일 때문에 필자의 기억에 남았다. ‘임진왜란’에서 가장 많이 다뤄진 것은 아무래도 충무공 이순신의 활약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못지않게 임진왜란 3대 대첩, 왜군 내부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전광훈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하 한기총) 회장의 설화(舌禍)가 논란을 낳고 있다. 청와대로 쳐들어가야 한다거나, 문재인 대통령은 하야해야 한다는 등 그 내용도 상당히 문제가 있다. 또한 이러한 자신의 생각에 전체 목사의 90%가 지지하고 있다는 확인할 수 없는 근거도 들이대고 있다. 아울러 청와대로 쳐들어갈 때 60세가 넘은 여성 교인들이 앞장서라고 얘기하는 등 성차별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이 하야할 때까지 하자며 제안했던 릴레이 단식의 단식기도회 현장에서 (약으로 보이는)음료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얼마 전에 한 정치인에게 안동의 유림이 했던 발언이 논란이 되고 있다. 오마이뉴스 보도에 따르면 지난 5월 13일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안동을 방문해 경북북부지역 유림단체와 간담회를 가졌는데, 이 자리에서 유림의 대표가 황교안 대표를 치켜세운 것이다. 김종길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장은 “보수가 궤멸해가는 이 어려운 처지를 건져줄 우리의 희망의 등불이요, 국난극복을 해결해줄 구세주”라고 황 대표를 치켜세웠고, 박원갑 경북향교재단 이사장도 “100년마다, 1세기마다 사람이 하나 난다고 그러는데 건국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구본신참(舊本新參). 옛 것은 바탕으로 삼고, 새로운 것은 참고한다는 뜻이다. 보통 동도서기(東道西器)라는 말은 많이 사용되지만, 구본신참이라는 말은 동도서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사용되는 것 같다. 이 두 가지 말은 모두 서양의 과학기술을 군사력 강화와 경제 발전을 위한 수단으로 받아들이자는 주장이었다. 그런데 이 두 말은 미묘한 차이점이 있다. 이번 칼럼에서는 두 말의 차이점에 대하여 살펴보겠다.구본신참과 동도서기는 모두 시대적 맥락 속에서 나온 말이다. 19세기 후반 조선은 일본의 무력 압박에
유교 탈레반 국가요즈음 팟캐스트에서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이 있다. 그 전후 맥락을 살펴보면, 우리나라에서 성적인 이야기를 자유롭게 하지 못하고, 체면을 중요하게 여기는 모습을 비판하면서 그 결론으로 이렇게 말한다. 또한 오랫동안 노자와 장자를 연구한 모 교수도 사석에서 ‘유교는 그 등장부터 지배층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생긴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필자는 이러한 주장들에 일부 공감한다. 특히 유교가 처음 생기기 시작했을 때 그 논리가 기득권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은 상당부분 공감하며 향후 연구를 통해 논증이 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필자가 어린 시절 역사와 관련된 책을 읽을 때 문득 궁금해진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역대 왕조를 이야기하면서, “대한제국기”라는 말은 왜 쓰지 않을까?’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인터넷에서 서비스되는 백과사전에서도 대한제국은 다음과 같이 설명되고 있다.1897년 10월 12일부터 1910년 8월 29일까지의 조선의 국명.(『두산백과사전』)1897년 10월 12일부터 1910년 8월 29일까지 존속하였던 조선왕조의 국가.(『민족문화대백과사전』)백과사전의 내용에서 필자가 주목한 표현은 “조선의 국명”이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지난 회차에서 필자는 “예의에 관한 가르침”이라는 예교의 사전적 정의를 언급한 적이 있다. 이번 회차에서는 “예교”라는 말에서 “예”와 “교”의 의미를 나누어 살펴보겠다. “예교”라는 말은 사전적 정의로만 설명할 수 없다. 특히 “예교”에서 “교”라는 말의 의미를 고려하면, 실제로 “예교”라는 말의 더 정확한 정의는 ‘예로서 교화한다’라는 것이다.앞에서 언급한 대로 “예교”는 ‘예의를 가르친다’라는 말보다는 “교화하다”라는 말로 풀이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특히 예교가 지배층의 통치 이념이나 가정,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근대 이전 한국의 종교를 묘사하는 말은 다양하다. 대표적인 것이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는 불교국가였다.’, ‘조선은 숭유억불(崇儒抑佛)의 사회였다’라는 표현이 그 사례이다. 그리고 조선의 경우 ‘성리학이 사상적 배경이었다’는 표현이 많이 쓰였다. 그런데 학계에서는 조선의 종교 상황을 묘사하는 표현으로 “예교국가”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예교의 사전적 정의는 “예의에 관한 가르침”이다. 사전적 정의만을 비춰봤을 때 예의에 대한 가르침은 매우 다양하다. 아직까지도 아이들에게 ‘어른을 보면 인사해야지?’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종교라는 말은 원래 우리가 쓰던 말일까? 이 궁금증을 파헤치기 위해서 필자는 우선 “조선왕조실록”을 찾아봤다. “종교”라는 단어로 “조선왕조실록”을 검색하면, 총 252개의 결과가 나온다. 그런데 이 결과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태조실록』 4권 태조 2년(1393) 9월 17일 기미 2번째 기사를 살펴보면, “종교”라는 단어는 “조선왕조실록”을 전산화 하는 과정에서 주석을 추가할 때 이단(異端)을 설명하기 위해서 등장한다. 그 다음으로 “종교”라는 단어는 『태조실록』 8권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근대(近代)”에 대한 학계의 관심은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던 시기를 기준으로 시기 구분을 하는 것이 학계, 특히 역사학계의 특징, 아니 사명으로까지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각종 시험에서 시대 구분과 관련된 문제들도 많이 출제되는 것이 현실이다.이렇게 학계에서 근대에 관하여 중요하게 받아들이지만, 막상 사전을 찾아보면 그 항목이 많지 않다. 예를 들어서 네이버 백과사전을 검색하면 몇몇 항목이 등장하지만,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향토문화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근대 이전에는 낙태란 생각하기조차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인구는 당시 주축 산업이었던 농업의 주요 자원이었고, 세금의 중요 기준이었으며, 군사력의 지표였기 때문이다. 또한 신생아의 사망률이 매우 높았기 때문에 아이를 낙태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었다. 그렇다면 근대 이후 이러한 상황은 어떻게 변화했을까?근대 이후와 근대 이전을 구분하는 중요한 지표 중 하나는 바로 종교에 기반한 사고가 그 영향력을 잃었다는 것이다. 인간의 몸과 생명에 관련된 종교 기반 사고의 주요한 내용은 “인간은 신을 닮은 모습으로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미투(me too) 운동을 계기로 페미니즘(feminism)이 사회적 공론의 장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안전하게 살 권리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있었던 규범이나 관습 가운데 불평등하다고 판단되는 것들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있다. 반면 여기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대응은 다양하다. 기존의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에서 기인해서 논리 없이 이들의 말을 무시하고 억압하는 사람도 있고, 일정 부분 이들의 주장에 동의하지만, 이들의 표현 방식이나 과도하다고 판단되는 주장들에 대해서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죽음”이라는 단어를 알게 된 이후 필자는 종종 ‘나는 죽은 이후에 어떻게 될까?’라는 것을 생각한다. 특히 잠에 들기 전에 드는 온갖 상념 중 하나가 바로 이 내용이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내가 죽으면 어떻게 될까? 죽으면 죽기 전에 느꼈던 고통을 느낄 수 있을까? 죽으면 영혼이 몸에서 벗어나게 될까? 텔레비전에서 보던 것처럼 영혼이 몸에서 빠져나가면서 내 죽은 몸을 보게 될까? 그 영혼은 정말 저승에서 재판을 받고 천국이나 극락, 아니면 지옥으로 갈까? 환생이나 윤회가 정말 있을까? 정말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지난 회차 칼럼에서 필자는 역사에서 “신체의 유지”를 강조하는 모습들을 살펴봤다. 특히 불교를 성리학으로 대체하는 과정, 단발령(斷髮令)에 대한 저항에서 “신체의 유지”가 강력한 이데올로기로 작동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단발령에서 근대적 사고방식이 ‘몸이 부모로부터 왔다’는 사고방식보다 우위에 서는 모습, 당시의 젠더 의식, 국가가 개인의 신체를 통제하는 모습 등이 나타났다. 특히 단발령에서 엿볼 수 있는 세 모습은 미셀 푸코(Michel Foucault)가 감옥, 병원 등에 대해 연구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종교와 사상들은 몸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몸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종교나 사상도 있고, 그 반대로 있으며, 몸에 대한 이야기를 최대한 하지 않는 종교도 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조금 더 자세히 바라보면 종교나 사상이 몸에 대한 좀 더 다양한 시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신체의 유지 vs. 신체의 변형”으로 구분해 보는 것이다.몸의 유지를 강조하는 종교·사상의 대표적인 사례로 유교를 들 수 있다.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라는 말이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인간의 몸을 어떻게 보는지의 문제는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몸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우주관이 들어있다. 한의학에서는 우리의 몸에 온 우주가 들어있다고 이야기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몸에 대한 시각과 그 변천사를 살펴본다면, 사람들이 어떠한 우주관 속에서 살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몸에 대한 시각의 변천사 속에서 사상사의 전환도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칼럼에서는 서구의 역사에서 몸을 어떻게 바라봤는지 집중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적어도 고대 유럽 사회에서 몸은 마음과 대비되는 존재였으며, 그 구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이번 주 칼럼이 나올 때쯤에는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났을 것이다. 매년 겪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이지만, 그 때마다 필자는 청소년 시절을 상기하곤 한다. 최근에 필자는 “몸과 마음, 그리고 이것으로 인해 등장하는 다양한 이야기들”에 관심을 가지고 집필 작업을 진행 중이다. 그래서 그럴까? 이번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즈음해서 필자는 갑자기 필자가 청소년 시절부터 지금까지 일종의 “좌우명”으로 가지고 있는 구절들이 떠오르게 되었다.특히 필자는 고교 시절에 꽤 많은 노력을 해야 된다고 강제 받았고, 그만큼 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