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농민권리선언 제도화 방안 마련을 위한 국회토론회
‘가짜농민’ 양산하는 현 제도 대신 농민기본법 제정해야
각종 개발사업이 농민‧농촌에 미치는 영향 평가 필요해
인도네시아‧캐나다‧에콰도르‧스위스도 관련 논의 진행돼

투데이신문과 유엔농민권리선언포럼,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이 주관한 유엔농민권리선언 제도화 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가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렸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과 유엔농민권리선언포럼,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이 주관한 유엔농민권리선언 제도화 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가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렸다. ⓒ투데이신문

지구는 만성화되는 기후변화와 식량위기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지에 대한 사회분야별 논의는 무르익지 않고 있다. 여러 분야 중에서는 대표적으로 농업이 그러하다.

유엔은 지난 2018년 12월 17일 총회에서 농민권리선언을 채택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채택한 지 5년여가 지났지만 그 내용이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월 19일 이른바 ‘농민기본법’이라 불리는 농민·농업·농촌정책 기본법이 국민동의청원을 거쳐 국회에 회부됐으나 21대 국회 내 통과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대도시에서 살다 보면 농업에 대해서는 시장 장바구니 물가 걱정할 때나 각국과의 FTA(자유무역협정) 체결 시 우리나라가 양보하는 항목 정도로 이해할 뿐이다. 그러다 보니 대중들의 농민권리와 농민기본법에 대한 관심도 역시 낮은 모습이다.

이에 <투데이신문>은 농민권리선언에 담긴 오늘날 농촌의 현실을 밝히고 농민들 스스로는 자신의 권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현장취재와 설문조사 등을 통해 알아보고자 한다. 한번 훼손된 환경을 다시 되살리기 어렵듯 농업 역시 마찬가지다. 더는 외면할 수 없는 문제를 직시할 때가 됐다.

 【투데이신문 홍기원 기자】 기후위기 시대에 농민은 기본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보편적 권리를 지켜내기에 가장 취약한 계층으로 인식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21년 조사한 ‘기후위기와 인권에 관한 인식과 국내외 정책 동향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1500명 중 47.5%가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볼 대상으로 농어민을 꼽기도 했다.

오늘날 농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요인은 기후변화뿐 아니라 매우 복합적이다. 유엔에서 채택한 농민권리선언이 28개 조항으로 구성된 이유이기도 하다. 이에 〈투데이신문〉은 유엔농민권리선언포럼,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이하 녀름)과 함께 유엔농민권리선언 제도화 방안 마련을 위한 국회토론회를 주관했다. 

지난 1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선 본보의 의뢰로 녀름이 수행한 ‘기후위기와 식량위기 시대에 필요한 농민권리 실태조사’ 결과도 공개됐다. 녀름은 지난 9월 12일부터 10월 12일까지 만 18세 이상 농민 553명을 대상으로 대면조사를 실시했다. 응답률은 91.1%이며 오차범위는 95% 신뢰수준에 ±4.0%포인트다.

이날 토론회는 더불어민주당 소병훈‧어기구‧이원택 의원, 정의당 강은미 의원, 진보당 강성희 의원이 주최했으며 국민과 함께하는 농민의길 하원오 상임대표 등 농민단체 대표자들도 참석해 토론을 경청했다. 토론회 좌장은 유엔농민권리선언포럼 김정열 대표가 맡아 패널 간 토론을 진행했다.

이 자리에는 현장농민, 농민권리에 관한 전문가, 그리고 농식품부 관계자 등이 참석해 농민권리선언의 제도화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 토론회에 나온 이들의 견해를 통해 농민권리를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조망해봤다.

투데이신문과 유엔농민권리선언포럼,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이 주관한 유엔농민권리선언 제도화 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가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진행됐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과 유엔농민권리선언포럼,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이 주관한 유엔농민권리선언 제도화 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가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진행됐다. ⓒ투데이신문

농민권리선언 인지 못 한 농민도 상당수

녀름 이수미 부소장: 농민권리 실태조사를 통해 유엔농민권리선언의 인지 여부와 우리나라 농민들의 권리침해 현황을 파악했다. 실태조사는 농민‧농업‧농촌이 지속가능하려면 농업의 주체인 농민의 권리가 침해되지 않고 보호돼야 한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유엔농민권리선언이 채택된 지 약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정부차원의 홍보 및 교육활동 등의 움직임이나 선언을 제도화하려는 움직임은 없다. 선언이 있다는 점을 들어보지 못 한 농민도 상당수 존재(실태조사 응답자의 29.5%)해 선언 내용을 확산시킬 필요가 있다.

응답자 중 76.7%가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사회적‧제도적 개선을 통해 근본적인 문제해결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특히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생산비 폭등 문제와 농산물가격 불안정으로 농업소득이 하락하는 상황에서 농민들의 위기감이 더 커지고 있음이 드러났다. 

응답자의 73.4%는 농업에 대한 국가의 책무를 높은 수준으로 생각하고 있다. 국가의 책임을 강화하고 유엔농민권리선언의 목적과 목표 실현을 위해 법률제정 등의 입법활동이 중요한 활동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는 농민권리를 보장하고 모든 형태의 권리침해를 근절하기 위해 농민권리선언 제도화가 필요하다는 농민의 요구로 확인할 수 있다.

지금까지 시행된 농업정책은 농민보다 산업을 중시하며 끊임없이 경쟁과 규모화를 부추겼다. 또, 지난 30여년간 지속된 개방농정은 농민을 보호 및 육성하는 측면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기 어렵다. 더 이상 농민의 삶과 생존권이 위협받지 않도록 농민권리선언 제도화를 통해 권리를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

이번 실태조사에서 응답자의 96.9%가 농민기본권 보장을 위해 농민기본법 제정 등의 입법 문제가 중요하다고 응답했다. 농민단체의 적극적인 정책 입안활동은 농민권리선언 제도화 과정에 중요한 원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농민권리 보장, 식량주권 실현,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농민권리선언 제도화를 합의하고 추진하는 데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농정 관련법, 농민권리 관점에서 재평가 필요

유엔농민권리선언포럼 송원규 운영위원: 2018년 열린 유엔 총회에서 찬성 121개국, 반대 8개국, 기권 54개국으로 농민권리선언이 채택됐다. 이는 국제사회에서 농민을 중요한 인권 규범의 대상 혹은 권리를 갖고 있는 사람으로 인식하게 된 계기가 됐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다섯 차례의 인권이사회 결의에 네 차례 참여해 반대 1회, 기권 3회 그리고 최종 총회 표결에서도 기권하는 등 줄곧 소극적인 태도로 임했다. 이에 국내에서 관련 정부부처와 유관기관 그리고 주요 농민단체와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참여하는 공론화가 절실하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농민권리의 보장을 위한 정책화, 제도화의 방향 설정도 필요하다. 이와 같은 구체적인 노력이 우리나라의 시민사회와 국가가 합의하는 인권체제 확립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국제인권규범의 국내 적용과 관련해 한국 사법부는 전반적으로 국제인권조약의 적용에 소극적이고 생소해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법부의 소극적 태도는 국제기구의 권고 또는 결의의 국내법적 효력을 배제하고 있다. 국내 사법기구는 헌법에 따라 체결 및 공포된 국제인권조약의 국내 효력만을 인정하고 있다. 헌법 제6조 제1항에서 ‘헌법에 의하여 체결‧공포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국내 적용은 매우 소극적이다.

유엔농민권리선언은 다층적 위기 속에서 농민의 중요한 사회적 기여에 대해 재조명하고 있다. 농민은 기후위기 시대에 지속가능한 농업을 통해 기후변화 완화에 관련된 잠재력을 가진 집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 같은 맥락에서 농민권리선언의 제도화는 지속가능한 농업으로의 전환에 기여할뿐 아니라 기후위기, 식량위기, 지역위기라는 시대적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중요한 정책 수단이다.

제도화를 위해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농민권리 침해 또는 보장 실태를 파악하는 것이다. 앞서 발표한 농민권리 실태조사처럼 구체적인 현장에서의 설문조사 또는 직접 농민들을 만나는 대면조사 과정들을 통해 현황 파악이 필요하다.

최근 유엔 인권이사회는 유엔농민권리선언의 국제적 이행 실태와 모범 사례 등을 파악하기 위해 3년간 실무그룹을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이를 기반으로 각국에 구체적인 권고를 하는 과정으로 만들어 가겠다고 한다.

이 같은 과정은 여러 국제인권규범들이 거치고 있는 과정이다. 보통 4년마다 모니터링 보고서를 제출하고 이행이 제대로 안 되면 권고가 나오는 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특히 농민권리 침해가 심각한 영역 중 하나인 대규모 개발사업에 대해 농민권리영향평가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 농민의 삶의 터전을 빼앗고 농사 기반을 앗아가는 개발사업 계획은 전 단계에서 해당 사업이 가져올 영향을 평가하는 과정을 통해 걸러내는 것이다. 

농민권리와 관련해 가장 많은 연관성을 가진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이하 농업식품기본법) 전면 개정, 즉 농민기본법 제정을 포함해 관련 법안들을 농민권리선언의 관점에서 재평가하고 이 내용이 포함되도록 제‧개정하는 과정도 있어야 한다. 시혜적 관점에서 농민을 배려하는 것이 아니라 기후위기, 식량위기, 지역위기라고 하는 시대적 상황에 대응해 농민권리선언을 제도화해야 한다는 인식이 중요하다.

이 자리를 통해 농식품부에 앞으로 이런 논의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혀달라고 제안하고 싶다. 현장 농민 대표들, 농민단체, 그리고 인권전문가, 농업전문가, 가능하다면 국가인권위원회 등이 함께 참여해 농민권리선언에 대한 이행방안과 3년간 진행되는 국제적 모니터링 과정에 어떻게 참여할 것인지 같이 논의하고 합의하는 자리를 만들면 어떨까 제안한다. 

투데이신문과 유엔농민권리선언포럼,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이 주관한 유엔농민권리선언 제도화 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가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진행됐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과 유엔농민권리선언포럼,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이 주관한 유엔농민권리선언 제도화 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가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진행됐다. ⓒ투데이신문

농민기본법 통해 올바른 농정 방향 세워야

전국농민회총연맹 이근혁 정책위원장: 한 신문에서 쌀값이 올라 1000원인 공깃밥 가격을 2000원으로 올려야 된다는 기사가 나온 적이 있다. 지난해 쌀값을 90g 밥 한공기로 계산하면 원가가 220원 정도 됐다. 농민들이 요구하는 쌀값은 한공기당 320원 정도를 요구하고 있다. 농민들의 요구대로 한다해도 원가는 100원 오르는데 지금 밥 한공기 가격이 1000원 오르는 게 쌀값 인상이 원인이겠냐.

농협 관계자를 통해 알아보니 지난해말 연체율이 1.2%, 지난 6월에 2.4%였고 연말이 되면 4%까지 갈 거라고 예측하고 있다. 이를 농민 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것인가. 농민들은 20년 전에 연평균 농업소득 1000만원을 넘었는데 지난해 농업소득은 948만5000원이었다.

기후위기를 넘어 기후재난이다. 그래서 식량안보를 지켜야 한다고 얘기하지만 실제 농정정책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농업이 이런 위기를 맞은 것이다. 사료 포함 식량자급률 18.5%, 농업생신비는 26.8% 상승, 국가 전체 예산 중 농업예산 2.8%, 농가경영주 중 60대 이상 비율 73.3%. 오늘날 우리 농업이 맞은 현실이다.

이는 농업정책이 제 역할을 못하기 때문이며, 농업정책의 기본 관점을 담은 ‘기본법’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농업정책의 토대는 농업식품기본법으로 양곡관리법, 농지법, 농협법 등 여러 농업관련 법률의 상위법으로서 우리 농정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농업식품기본법 제6조를 보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정책을 세우고 시행할 때에는 시장경제원리를 바탕으로 한 효율성을 추구하되, 농업과 농촌의 공익기능을 최대한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시장경제원리나 효율성을 기준으로 농업을 바라본다면 사양산업에 불과하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현행 기본법은 농업의 가치를 충분히 담고 있지 못하다. 올바른 농정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농민‧농업‧농촌정책 기본법(이하 농민기본법)을 제정해야 하는 이유다.

농업의 주체는 농민이다. 그러나 현재의 법과 제도는 농업인이나 농업경영체가 농민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실제로 농사를 짓지만 농지가 없는 임차농이나 부족한 농업소득을 농외소득으로 지탱하며 농가살림을 맡는 여성농민은 농업경영체 등록을 못하기도 한다. 반면 도시에 살면서 부동산 투기 목적으로 농지를 보유한 사람은 농업경영체로 등록한다. 

실제 농사를 짓는데도 인정 못 받는 억울한 ‘진짜농민’과 문서로만 존재하는 ‘가짜농민’을 양산하는 현실을 바꾸려면 현실에 맞지 않는 농업인과 농업경영체 대신 농민을 정책대상으로 하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 농민을 기본법에서부터 농업의 주체로 인정해야 한다.

농민기본법 제정은 지난한 과정이 될 것이다. 국회의원 몇 명으로는 제정될 수 없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농민기본법을 제정하려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농민생존권을 중심의제로 대중을 만나 농업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강화하는데 합의하고 농민진영의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이 힘으로 농민기본법 제정의 필요성을 전 국민에게 설득해내야 한다.

종자에 대한 농민의 권리 인정돼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문영미 식량주권위원장: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이하 전여농)은 여러 농생태 실천활동을 하고 있다. 2008년 환경운동연합, 여성민우회생협과 ‘만원의행복’ 토종씨앗지키기운동을 시작해 토종씨앗 채종포 시범포를 운영하고 있다. 2009년에는 전여농 내에 식량주권위원회를 설치하고 2011년에는 생태농업보급단을 운영했다. 2012년에는 이런 활동을 통해 세계식량주권상을 수상하게 됐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식량과 농업에 관한 식물유전자원 국제협약’은 농부권의 내용을 상기해 보고자 한다. 이 협약은 첫째, 농민들이 세계 식량농업생산의 토대를 구성하는 식물유전자원의 보전 및 개발에 막대한 기여를 해왔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둘째, 식량 및 농업을 위한 식물 유전자원과 관련된다는 점에서 농민의 권리를 실현할 책임이 국가에 있다는 데 합의한다. 셋째, 국제규약의 어떤 조항도 국내법령에 따라 적절한 경우 농가비축종자와 증식물질을 비축, 사용, 교환, 판매할 수 있는 농민의 권리를 제한하는 것으로 해석되지 않는다. 

즉, 농민의 권리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종자를 저장하고, 사용하고, 교환하고, 파는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 또한 농업생물다양성과 관련된 전통지식, 이익공유, 정책결정과정에 농민의 참여가 보장돼야 한다.

유엔농민권리선언 제19조는 농민들의 종자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농민은 식물유전자원 관련해 전통지식 보호, 이익공유 참여, 의사결정과정 참여, 농가에서 보존한 종자 또는 번식 물질을 보관‧활용‧교환 및 판매할 권리가 있다. 국가는 농민의 종자권을 존중, 보호, 실천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전여농은 토종씨앗지키기 활동을 통해 종자에 대한 권리를 농민의 손으로 되찾으려 하고 있다. 토종씨앗 실태조사, 토종씨앗 채종포, 1회원 1토종 지키기 등 종자주권을 다시 여성농민의 손으로 되찾기 위해 실천을 지속하고 있다.

식량주권운동을 통해 여성농민의 중요한 역할을 인식하게 됐고 여성농민으로 존재했지만, 드러나지 않았던 여성농민을 세상에 내세웠다. 우리의 활동을 통해 식량을 상품화하고 기후위기와 식량위기를 발생시키는 글로벌 식량체계를 변화시키고자 한다. 

투데이신문과 유엔농민권리선언포럼,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이 주관한 유엔농민권리선언 제도화 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가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진행됐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과 유엔농민권리선언포럼,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이 주관한 유엔농민권리선언 제도화 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가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진행됐다. ⓒ투데이신문

개발사업 추진 시, 농촌주민 의견 존중하는 절차 없어

공익법률센터 농본 하승수 대표: 농촌 현장을 보면 난개발과 환경오염이 심한 상황이다. 농촌지역마다 폐기물처리시설, 불법폐기물, 산업단지, 공장, 발전소와 송전탑, 석산 난개발 등의 문제가 없는 지역이 없다. 최근 경북 고령군을 갔는데 면단위 대책위원회로 7개 대책위가 모였는데 더 있다고 하더라.

많은 개발사업이나 환경오염시설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농민들은 사업 초기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 정보공개청구를 할 수 있지만 행정청에서는 사업자가 제출한 서류가 ‘경영상 비밀’이라며 비공개하는 경우가 많다. 정보접근권이 보장되지 않으면 의견을 내는 것도 어렵다. 

사업추진 사실과 내용을 알고 농민들이 의견을 내는 경우에도 그 의견이 지방자치단체, 중앙부처에 의해 무시되는 경우가 많다. 단순한 ‘민원’으로 취급되는 것이다.

환경영향평가를 하는 경우에는 주민 30명 이상이 요구하면 공청회를 해야 한다. 그러나 공청회에서 나온 의견이 반영돼야 한다는 조항은 없다. 그러니 공청회가 ‘요식절차’로 끝나게 된다. 이는 결국 주민의 의견을 공식적이고 공개적으로 수렴하고 그 의견을 존중하는 절차가 없기에 발생하는 문제다.

만약 중앙부처나 지자체가 주민의 의견을 무시하고 사업에 대한 인허가 절차를 강행하면 사법절차에 호소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주민들은 사법절차에 대한 정보 부족, 변호사 선임비용 등의 문제로 사법절차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개발사업이 추진될 때 농민과 농촌주민의 인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평가도 필요하다. 환경영향평가가 있지만 개발사업이 농지에 미치는 영향, 농사에 미치는 영향, 농민과 농촌주민의 인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제대로 평가가 안 되고 있다. 

지금이라도 농촌주민이 겪는 문제에 대해 실효성 있는 법적 구제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주민들이 입고 있는 환경피해에 대한 실태조사와 법률구제도 필요하다.

규제 해소로 소규모 농민가공 활성화해야

경기지속가능농정연구소 이효희 소장: 유엔농민권리선언 제11조에 있는 생산‧판매‧유통에 관한 정보에 대한 권리에서 강조하는 농민의 권리가 법적 규제로 침해받고 있다. 위해요소 중점관리(HACCP, 이하 해썹) 의무화가 확대됐는데 자기 생산물을 중심으로 안전성 등을 확보할 수 있는 소규모 가공까지 적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해썹은 발효나 햇볕 건조 등의 전통식품 제조방식을 허용하지 않아 전통가공 방식을 포기하게 만들고 안전성을 명분으로 농민의 가공 진입 자체를 막고 있다. 

해썹 인증을 준비하기 위해 컨설팅 비용, 이를 유지하기 위한 서류작성, 행정업무, 청소인력 등을 확보하려면 농가나 소규모영농조합법인이 감당하기 힘든 비용이 든다. 농민이 자가생산물로 소규모 가공을 통해 농가소득을 올리려 해도 해썹 준비 비용을 감당하려면 가공 규모를 키워야 하고 다른 농민이 생산한 원물을 구매하는 상황도 발생한다. 해썹은 기업적 대량생산을 위해 설계됐고 소규모 가공처럼 신뢰에 기반한 지역 먹거리 체계에는 적합하지 않다.

식품위생법 규제로 인해 로컬푸드 직매장에서 소농, 고령농, 여성농의 가공식품이 자유롭게 판매되기 어려운 문제도 있다. 로컬푸드 직매장과 직거래장터에서 농민이 직접 농사지은 원물을 가공한 참기름, 들기름, 고춧가루, 미숫가루, 잼, 즙, 청, 김치, 차 등의 판매는 현행법 체제에서 허용되지 않고 있다.

농산물 공동가공센터가 전국에 확대됐으나 가공참여 생산자가 늘면서 물량이나 매출액이 작은 소규모 농민일수록 점차 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식품 제조‧가공 허가를 받지 않은 센터는 교육 역할에만 한정돼 가공식품을 취급할 수 없어 실효성이 없는 문제도 있다.

농민가공을 활성화하려면 제도적으로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식품위생법의 영업신고 예외 대상에 ‘단순가공’을 추가하는 시행규칙 개정과 즉석판매제조‧가공의 영업장 외의 장소 판매 허용 범위에 ‘농산물 직거래사업장’을 추가하는 시행령 개정이 있다.

또 하나는 농산물직거래법 개정을 통해 로컬푸드 영역의 소규모 농민가공의 근거를 마련하고 농민이 자기 생산물을 주원료로 가공하는 소규모 농민가공을 별도로 다루는 새로운 법률 제정을 추진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생물다양성 보존과 친환경을 추구할 권리와도 관련 있다. 또, 적절한 생활 수준을 보장받고 생계를 유지할 권리와도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투데이신문과 유엔농민권리선언포럼,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이 주관한 유엔농민권리선언 제도화 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가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진행됐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과 유엔농민권리선언포럼,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이 주관한 유엔농민권리선언 제도화 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가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진행됐다. ⓒ투데이신문

농민권리선언 제도화, 당위성 납득 힘들어

농림축산식품부 정아름 농촌정책과장: 정부나 농민단체나 대한민국의 농업과 농촌을 발전시키자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그런데 목표를 달성하는 방안에서 서로 생각이 다른 것이다. 

총론에서 봤을 때 유엔농민권리선언을 왜 제도화해야 하는지 당위에 대해 납득하기 힘들다. 정부가 이를 얼마나 따라야 하는지 구속력에 대한 인식에서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유엔에서 농민권리선언을 채택했다고 해서 우리가 제도화해야 된다고 접근하기는 어렵다. 

실체적으로 봤을 때 유엔농민권리선언이 지향하는 가치들과 똑같은 가치를 두고 이미 많은 제도가 만들어져 있다. 부족하다면 부족할 수 있지만 현행법에 제도화하기 위해 노력했던 장치들을 담고 있는데 전면적으로 개정하자는 것은 필요성이나 당위성을 납득하기 힘들다. 

농촌 난개발은 농촌주민 건강에도 문제가 되고 농촌소멸 원인으로도 작용한다. 이에 대한 대책을 오랫동안 준비해 농촌공간 재구조화 및 재생지원에 관한 법률(농촌공간계획법)이 제정됐다. 이 법은 내년 3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아직 미흡하지만 농어촌 영향평가도 제도화됐다. 정책이 제도화되고 정착이 돼서 효력을 갖기에는 국민적 공감대 등이 필요하다.

부족한 점이 있으면 계속 보완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계속 축적해 온 제도화 기반 위에서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것이 더 현실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나 싶다. 

유엔 인권위, 농민권리선언 이행 모니터링 시작해

유엔농민권리선언포럼 김정열 대표: 정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서로의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번 토론회와 같은 자리를 계속 만들었으면 좋겠다. 부담 없이 비공식적으로 만나도 좋다.

10월 11일 54차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중요한 결의안이 채택됐다. 농민권리선언 이행 과정을 모니터링하는 특별 절차가 만들어졌다. 국제 농민운동조직인 비아캄페시나에서 농민권리선언 채택 이후의 후속 절차를 요구했는데 마침내 받아들여졌다. 내년 3월 55차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5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워킹그룹이 만들어질 것 같다. 이처럼 국제사회에서는 유엔농민권리선언이 농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데 유용한 수단이며 기후위기 시대에 농민의 권리 보호는 전 세계적으로 중요한 문제라 보고 있다.

농민권리선언과 관련해 가장 활발한 활동이 이뤄지는 곳은 인도네시아다. 인도네시아 농민조직인 SPI는 토지 수탈 문제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 그래서 농민권리선언 제17조에 명시된 토지권을 어떻게 활용할지 검토하고 있다.

캐나다에서는 지난 2020년 이주노동자들의 건강권이 위협받는 상황이 있었다. 당시 한 고등법원에서는 캐나다 국제인권변호사협회가 농민권리선언을 직접 인용하면서 재판을 진행한 적이 있다. 농민권리선언 제23조를 인용하면서 건강권은 기본적으로 보호받아야 함에도 캐나다 정부가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변론한 바 있다.

에콰도르 입법부는 정부에 유엔농민권리선언을 비준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이 선언을 비준해서 에콰도르 농민, 특히 원주민 농민들의 권리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활동들이 진행되고 있다.

스위스의 농민조직은 제네바 학계 및 인권NGO들과 함께 농민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연합 조직을 출범했다. 이 조직은 유엔농민권리선언이 실제적으로 농민권리를 보호할 수 있도록 생기를 불어넣겠다는 창립목표를 갖고 있다.

한국도 농민권리와 관련된 활동이 없는 지역은 아니다. 유엔농민권리선언포럼이 2019년 창립해 활동하고 있으며 인권관련 전문가 그룹 등 다양한 분들과 함께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이번 토론회를 위해 ‘농민권리’ 의제에 관심을 갖고 애썼다. 이렇게 농민의 권리보장을 위해 한발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아 기쁘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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