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소장
▲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소장

가부장제, 남성중심주의사회의 남성특권에 대해서 이야기하거나 이성애중심주의사회에서 이성애자가 가지는 정상성의 특권과 권력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등 차별과 억압의 사회구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화를 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아주 간단히 말하면 당신을 조용하게 만들기 위한 반응입니다. 당신이 그 이야기를 하는 게 싫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다시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행동입니다. ‘화를 낸다’라고 표현했지만 훨씬 더 다양한 반응들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예쁜 애기는 그런 이야기하는 거 안 어울려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그런 이야기 재미없으니까 다른 이야기하자”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개인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여서 “나는 그런 문제와 상관없어. 그런 건 나쁜 사람들한테나 이야기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너도 꼴페미야?”라고 쏘아 붙이며 무표정한 표정으로 한심하다는 듯한 반응을 보일 수도 있습니다. 째려 볼 수도 있고 짜증을 내거나 역정을 낼 수도 있습니다. 더 나아가 페미니즘과 성소수자의 인권을 반대한다면서 단체행동을 하며 물건을 부수고 사람을 때리는 등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성차별에 대한 관심이 생기고 성평등에 대해서 알아가게 되면서 친구, 애인 또는 배우자와 성차별이나 성역할고정관념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나누게 됐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야기를 꺼내기만 해도 상대방이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서 매우 당황했다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너 예전에는 안 그랬잖아? 어디서 그런 얘기 듣고 물들었어?”라는 반응도 흔합니다. 상대방의 분노 혹은 논리정연한 것처럼 반박하는 반론을 듣고 ‘내가 틀렸나? 내가 너무 과하게 반응하는건가?’라고 스스로를 의심하게 되는 현상도 매우 흔합니다.

일터에서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갑자기 자기 자리가 없어지기도 합니다. 책상을 갑자기 복도로 옮기기도 하고 아예 아주 먼 지역으로 전근을 보내기도 합니다. 다른 직원들에 의해서 왕따 등 괴롭힘을 당하게 하거나 신변을 위협할 수도 있고 해고를 할 수도 있습니다.

구조적인 차별과 억압에 대한 이야기에 대해 불편함을 드러내고 폭력적인 모습까지 모이는 사람들은 차별과 억압의 구조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차별과 억압이 차별과 억압이 아니라 ‘질서’로, 원래 그런 것/그래야 하는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자신들이 믿는 세상, 유지시켜야 하는 세상에 대한 위협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가부장제, 남성중심주의, 이성애중심주의 그리고 자본주의 등의 구조에 대한 문제제기가 기분이 나쁜 사람들은 그 구조에 의해서 덕을 보고 있는(사회적 특권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자신이 그 구조에 의해서 덕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특권의 가장 큰 특징은 그저 특권그룹에 속한다는 이유만으로 특권을 가지게 된다는 것(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그냥 주어진다는 것)과 특권그룹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 이 사회의 ‘정상’이자 ‘기준’이 되게끔 만들기 때문에 특권그룹에 속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특권을 잘 느끼지 못합니다. 또한 한 가지(또는 여러 가지) 정체성에서 특권그룹에 속한다고 해서 반드시 삶이 윤택하거나 행복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자신에게 어떤 특권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시스젠더 이성애자 비장애인 남성이라도 하더라도 고용불안을 겪고 있는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일 수 있습니다.

구조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여러 형태의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만히 있어야 할까요? 계속 말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그래야 일상의 민주주의가 가능한 조건들을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혼자 말하고 행동하는 것도 좋겠지만 그렇게 하면서 함께 말하고 행동할 사람을 찾는 것이 좋습니다. 혼자 계속 말하고 행동하려면 힘들고 지쳐서 나가떨어지게 될 수도 있습니다. 서로 지지하고 의지할 수 있는 동료들과 팀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런 팀은 페미니즘 동아리, 독서모임, 인권단체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회원들의 모임, 노동조합 등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차별과 억압의 구조에 대해서 침묵하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침묵 ‘하는 것’ 입니다. 나의 침묵이 차별과 억압의 구조가 지속되게 합니다. 물론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위험을 감수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씩 해 나가야겠습니다. 팀을 만들어 함께 목소리내고 행동할 때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역할, 분량, 용기는 점점 더 커져 갈 것입니다.

덧붙여서, 목소리를 내기 힘든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마땅히 내야할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불이익을 감수할 용기를 요구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본주의사회는 자본 그리고 자본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는 사회적 자원(인사 불이익, 평판, 네트워크 등)을 통제함으로써 개인의 목소리와 삶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회에서 목소리를 낼 것, 목소리를 내기 위한 용기를 위해 함께할 사람들을 모을 것이라는 제안만으로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방법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개개인의 노력과 함께 가야 할 것은 사회구조입니다. 목소리를 냈을 때 불이익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용기내지 않아도 개인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회, 그리고 마땅히 내야할 목소리를 귀담아 듣고 변화를 시작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회여야 합니다.

불이익을 감수해야하는 용기를 요구하는 사회, 누군가가 불이익을 감수하며 목소리를 내는 것에 동참할 수 없어 죄책감을 가지고 곁에서 지켜봐야하는 현실은 차별, 억압, 폭력적인 현실을 감수하더라도 삶을 계속 살아내야 하는 개인들에게 ‘용기’를 사치스러운 일로 만듭니다. 이는 개인에게 가혹하고 사회적으로 처참한 일입니다. 우리 사회의 제도와 문화가 변화돼야 합니다. 누구나 차별과 억압의 구조에 침묵하지 않고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합니다. 회사에서 고용보장을, 학교에서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어 민주적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배움을 얻는 교육을, 가정과 연인과의 관계에서 폭력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문화를, 해고를 당하거나 이혼을 선택하더라도 삶을 지속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조건을 보장하는 사회를 만드는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합니다.

●김지학 소장은?
-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이사
-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운영위원
- 대한성학회 이사
- 사회복지법인 프리웰 사외이사
- 서울예술대학교 외래교수

관련기사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