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소장
▲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소장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 진 영화 <히든 피겨스>를 보면 NASA(나사, 미국 항공우주국)에서 일하는 흑인 여성이 자신이 일하는 건물에는 유색인종이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없어 ‘유색인종 전용 화장실’이 있는 다른 건물로 뛰어다니는 장면이 등장한다. NASA에서도 수학적인 능력이 가장 뛰어난 인물로 묘사되는 주인공이 겪는 일이라는 점에서 차별이 무엇인지 더 절실하게 느껴지고 그 충격 또한 크다. 차별은 그 사람이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 그 조직에서 그 사람이 얼마나 필요한지조차 상관없게 만든다. 능력 그리고 경쟁이 모든 것이 해결해 줄 것처럼 여기게 만드는 신자유주의적인 사고가 팽배한 지금의 한국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크다.

당시(1960년대) 사람들에게 ‘흑인은 백인과 같은 화장실을 사용할 수 없다’는 황당한 생각이 통용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흑인은 백인과 같은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도 마시지 못했다. 흑인은 ‘더럽다’, ‘열등하다’, ‘위험하다’는 생각이 흑인과 백인을 분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기반이 됐을 것이다. 인종차별적인 생각에 기반한 분리정책을 만들 수 있는 ‘권력’이 백인에게 있었다는 것도 중요하다. 권력은 이처럼 ‘정상’과 ‘비정상’을 규정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그에 따라 부, 명예, 네트워크 등의 ‘사회적 자원에 대한 접근성’의 차이를 만들어 낸다.

화장실은 언제나 한 사회에서 ‘사회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나누는 규범으로 작동했으며 소수자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존재했다. 20년 전만 하더라도 한국 사회의 국회, 시도의회, 언론사들 등에 여성 화장실이 없었다. 여성이 존재하지 않는/존재할 수 없는/존재해서는 안 되는 공간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화장실은 한 사회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보여준다. 사회에서 기득권자들이 자신의 위치를 지키기 소수자를 배제하는 방식은 역사 속에서 너무나 오랫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반복돼 왔다. 우리는 이제 이 고리를 끊고 어느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모두가 포함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화장실은 가장 사적인 곳이지만 가장 정치적인 곳으로, 제도와 관습을 바탕으로 ‘정상’으로 규율되며 ‘비정상’을 배제한다. 화장실이 규율하는 몸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외출을 꺼리게 되고, 외출을 하지 못하게 되면 교육이나 노동 등 필수적인 사회활동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 현재의 성별이분법적이고 비장애인 성인 중심적인 화장실의 구조는 철저하게 오늘날 사회가 규정하는 ‘정상’의 규범에 따라 만들어져있다. 화장실 앞에서 한 번도 불편함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화장실이 규율하는 공간에 ‘정상’으로 포섭되는 사람임을 의미한다. 화장실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개인들은 그냥 용변을 참는 방식으로, 개인적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화장실을 제 때 사용하지 못하면 방광염과 여러 합병증에 시달리게 된다. 제2대(1950년)를 시작으로 제4·5·6·7대까지 국회의원을 지낸 여성 정치인 박순천 전 의원도 그랬고 2021년을 살고 있는 수많은 장애인들과 트랜스젠더들에게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모든 사람들이 화장실을 쉽고 안전하게 그리고 당연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모두를위한화장실’을 만들자는 논의는 화장실 이용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모두가 누릴 수 있도록 하자는 가장 최소한의 인권적 논의임에도 불구하고, 이 이슈가 등장할 때마다 모두를위한화장실이 ‘여성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처럼 취급을 당한다. 우리는 여전히 여성에게 매우 안전하지 못한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우려가 왜 존재하는지 충분히 공감하지만 이는 인과관계에 큰 오류가 있기 때문에 실재하는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모두를위한화장실을 만들지 않는다면 여성들에게 안전한 사회가 될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해 보면 ‘인과관계 오류’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여성들이 화장실에서 안전함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이 사회가 여성에게 안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 전체가 여성들에게 안전한데 화장실만 위험할 수는 없다. 현재 성별이분법적으로 구분된 화장실에서 여성들이 안전함을 느낄 수 없는 현실의 원인을 정확히 분석해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모두를위한화장실이 여성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가 여성을 대하는 방식이 여성을 취약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다. 공고한 남성카르텔과 ‘강간문화(rape culture)’로 인해 여성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성별이분법적이고 남성중심적인 사회구조에서 성별분리만으로 여성의 안전이 담보할 수 없다. 여성들의 자유로운 화장실 사용을 방해하는 성범죄에 대한 두려움은 다른 사회적 소수자들의 ‘오줌권’을 보장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소수자를 배제하는 방식이아니라 여성을 억압하는 진짜 문제인 구조와 문화를 바꿔내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여성을 억압하는 것은 성별이분법과 성역할고정관념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 내는 성차별과 성폭력으로 이어지는 구조에서 시작된다. 이 때문에 엄밀히 여성이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모두를위한화장실이 갖는 기본 가치 중 하나인 ‘성별이분법’에서 벗어나 여성 또는 남성으로 규율되도록 하는 것을 함께 거부해야 한다. 다시 말해 모두를위한화장실의 담론을 위협요인이 아니라 여성해방을 돕는 성별이분법과 성역할고정관념을 유지하는 사회규율을 변화시키는 도전적 계기로 삼아야 한다. 소수자 배제와 같은 논의방법은 여성운동에 있어서 어떠한 진보도 만들어 낼 수 없다. ‘화장실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라는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통찰에서처럼, 화장실은 결국 모두를 포함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인권의 역사가 돼야 한다.

●김지학 소장은?
-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이사
-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운영위원
- 대한성학회 이사
- 사회복지법인 프리웰 사외이사
- 서울예술대학교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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