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소장

우리는 자신이 하는 말과 행동에 대해 무수한 선택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거의 모든 상황에서 거의 아무런 제한이 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도서관에서 큰 소리로 노래를 할 수도 있고 냄새가 많이 나는 음식을 먹을 수도 있고 건물 전체가 쩌렁쩌렁 울리게 농구공을 튀길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행동을 하면 우리는 어떤 저항을 받게 될까요? 지난주에 소개했던 ‘가장 저항이 적은 길(paths of least resistance)’이라는 개념에서 ‘저항’이란 우리가 자신의 위치에 맞게 자신이 놓인 상황에 맞게 따라야 할 행동 규범을 따르지 않는 순간 일어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도서관에서 ‘도서관에서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한다면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빠르게 그 행동을 저지하려고 하는지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째려 볼 것이고 직접 다가와 그 행동을 당장 멈추라고 소리치거나 도서관 관리인 혹은 경찰에 신고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일들을 경험하고 싶지 않다면 조용히 도서관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적은 저항을 받는 길’이고, 가장 안전하고 바람직한 선택지로 보일 것입니다.

우리는 거의 대부분의 상황에서 ‘가장 저항이 적은 길’을 선택하게 될 확률이 매우 높은데,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선택지가 단 하나 밖에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여자중학교나 여자고등학교에 다니는데 치마교복 밖에 선택지가 없다고 해보겠습니다. 바지교복이 선택지에 없는데 치마교복과 같은 패턴의 바지교복을 특별 주문해서 입고 등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바지교복이 선택지에 있더라도 전교생 중에 바지교복을 입는 학생이 거의 없는 상황이라면 내가 그 선택을 하기 쉽지 않습니다. 남자중학교나 남자고등학교 등의 남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별정체성을 이유로 혹은 그저 더워서 치마를 입고 싶을 수도 있는데 치마교복이 선택지에 없다면 내가 나 혼자만을 위해 바지교복과 같은 색상이나 무늬의 치마교복을 만들어서 입고 다닐 수 있을까요? 그런 ‘선택’을 했을 때 학교에서 어떤 ‘저항’을 받게 될까요?

직장 생활을 하는 여성이 화장을 하지 않고 출근을 했다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을까요? ‘무슨 일 있냐?’, ‘아파 보인다’ 등의 걱정부터 ‘다른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자기관리 안 하냐’와 같은 꾸지람이나 ‘안 본 눈 삽니다’와 같은 조롱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안했지만, 사실 아무 것도 안 한게 아닙니다. 사회가 우리에게 강요하고 있는 ‘규범’을 어긴 것입니다. ‘여성은 화장을 하고 다녀야 한다’는 ‘가장 저항을 적게 받는 길’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하며 사회규범을 어긴 것입니다. 이렇게 그 길이라는 것은 어디에나 존재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어기지 않는 한 느낄 수는 없지만, 그 길은 어디에나 존재합니다.

그런데 ‘가장 저항을 적게 받는 길’이라는 것도 그 길에서 벗어났을 때 받게 되는 ‘저항’도 각 사람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정체성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도서관 예시로 다시 돌아가 보자면, 도서관 관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큰 소리로 말하는 것과 동네 할아버지나 아저씨로 보이는 사람이 큰 소리로 말하는 것과 젊은 여성으로 보이는 사람이 큰 소리로 말하는 것과 어린아이가 큰 소리로 말하는 것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태도가 다 다를 수 있습니다. 길거리를 걸으며 담배를 피거나 침을 뱉는 행동을 하는 사람의 옆을 지나가야 할 때 우리는 기분이 좋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의 나이와 성별에 따라서 그 사람이 경험하는 ‘저항’의 정도는 매우 다를 수 있습니다. 나이가 많은 남성은 그저 불쾌한 눈초리 정도를 경험하게 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면, 나이가 어린 여성은 폭언이나 심지어 폭행을 경험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래서 젊은 여성이 담배를 피며 거리를 걷는 모습을 우리는 거의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듯 누군가는 다른 사람들과 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더 많은 저항을 받을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는 다른 사람들보다 사회적으로 훨씬 더 큰 악영향을 미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항을 적게 받을 수도 있습니다.

지난 칼럼에서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을 비롯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모든 영역에서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 고학력, 고학벌, 고소득, 비장애인, 비성소수자, 선주민, 50-60대 남성인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은 장애인이나 성소수자, 이주민, 여성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모른다는 생각에 불편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회적 소수자들을 일부러 의도적으로 배제하거나 차별하려고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자신과 비슷한 사람에게 더 편한 감정이 느껴진다는 것만으로 특정한 사람들을 더 선호할 수 있습니다. 고위직에 있는 몇몇 사람 혹은 인사권자들뿐만 아니라 그 집단에서 장애인이거나 성소수자거나 이주민이거나 여성인 사람들과 일하는 것을 불편하게 여기는 문화가 만들어져 있다면 그것이 사회적 소수자들을 채용해서 함께 일하는데 ‘저항’이 되는 것입니다.

대졸자이면서 비장애인, 비성소수자, 선주민 남성인 사람들은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과 그 조직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이 가장 익숙하고 편하게 생각하는 인적사항에 딱 맞기 때문에, 그리고 그 조직에 가장 잘 적응할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즉 자신이 사회적 정체성만으로 ‘가장 적은 저항을 받는 길’이기 때문에 유리한 상황에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저 자신이 열심히 했기 때문에 자신이 열심히 한 결과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도 의도적으로 누군가를 배제하기 위해서 고의적으로 차별을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가장 편한 선택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그런 선택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무의식적으로 ‘가장 저항이 적은 길’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의식적으로 조직 내에서 형성될 ‘불편감’ 혹은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나 혐오표현 등 마주하기 싫은 골치 아픈 일들을 미리 차단하고자 ‘가장 저항이 적은 길’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각각의 사람들이 그 길을 걸을 때 구조 속의 특권과 억압은 지속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의식하든 못하든 느끼든 못 느끼든,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말이죠.

우리가 우리의 사고방식 그리고 무의식까지 깊이 있게 사유하고 내가 속한 조직의 문화와 구조까지 철저히 점검하며 나아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익숙한 길을 따라 살게 되는 우리들의 모습과 익숙한 길에 새로운 길을 내는 방법에 대해서 다음 시간에도 이어서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칼럼에서 이어 갑니다.

●김지학 소장은?
-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이사
-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운영위원
- 대한성학회 이사
- 사회복지법인 프리웰 사외이사
- 서울예술대학교 외래교수

관련기사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