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소장
▲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소장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는 인간중심적이고 자본중심적인 산업화가 지구를 황폐화해 온 과정과 그 결과가 어떻게 전염병과 기후위기 시대를 도래하게 만들었는지 직면해야만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류가 멸절하지 않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들이 정확한 정보를 접하고 함께 이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도록 적극적인 협조와 연대를 구해야 하는 급박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공동체적인 노력이 아닌 여러 소수자 정체성을 향한 차별과 혐오를 강화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소수자를 향한 차별과 혐오는 결코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습니다. 역사적으로 많은 집단학살은 소수자를 향한 막연한 두려움과 공포를 바탕으로 문제의 원인을 소수자에게 돌리면서 발생했습니다.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부당한 죽음이 반복돼서는 안 됩니다. ‘과학의 구원’을 마냥 기다리기 전에 공동체적인 노력을 다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모두 연결돼 있습니다. 우리는 차별과 혐오로 인한 죽음을 막기 위해 정확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취해 혐오를 멈추고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야합니다.

최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란타에서 아시아인들이 운영하는 스파에서 연쇄 총격사건이 일어나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의 가해자는 사건을 실행에 옮기기 전 ‘중국이 21세기 주도권을 잡기 위해 의도적으로 바이러스를 살포해 미국인 50만명을 죽였다’, ‘중국은 우리 시대 최고의 악이다’와 같은 글을 자신의 SNS에 올렸습니다. ‘아시안을 전부 살해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알려졌습니다. 이렇게 명백하게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와 적개심을 드러냈음에도 불구하고 검거 후 가해자는 범행 동기를 ‘섹스 중독에 빠져 있고 그런 유혹을 일으키는 스파를 없애기 위해 일을 저질렀다’라고 밝혔습니다. ‘성적인 자극을 불러일으키는 여성들 때문’이라는 식으로 오히려 피해자를 비난할 수 있는 미끼를 던진 것입니다. 경찰은 사건 직후 브리핑에서 ‘인종차별에 의한 범죄는 아니었으며 섹스 중독 증상이 있어서 그랬다’는 범죄자의 발언을 그대로 인용했고 “그에게 정말 좋지 않은 날이었다(It was a really bad day for him)”는 말까지 하며 철저히 범죄자의 입장에서 브리핑을 진행했습니다. 그 후 여전히 ‘증오범죄라는 증거는 아직 찾을 수 없음’, ‘범행 동기는 아직 알 수 없음’이라고 발표한 상황입니다. 이를 지켜보자니 강남역 여성살인 사건을 페미사이드(femicide)라고 명명하지 못하고 ‘묻지마 살인’이라고 표현한 언론들, 경찰과 정부 역시 ‘성별 분리가 돼있지 않은 화장실의 문제’라며 본질적인 문제를 외면, 회피하며 ‘정신 장애인에 의한 살인’으로 규정하고 특정 정신장애에 대한 편견을 강화시키는 쉬운 결론으로 마무리를 지으려던 그날의 일들이 떠오릅니다.

애틀란타 총격사건을 인종차별에 의한 사건인지, 미소지니(misogyny. 여성멸시/여성혐오)에 의한 사건인지 판단해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매우 정확히 인종차별과 성차별 둘 다 해당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증오범죄를 야기하는 혐오는 단순히 ‘싫어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백인남성 중심의 사회에 만연한 동양인 여성에 대한 ‘유순하고 순종적인, 아직 정복하지 못한, 미지의 성적 존재’ 등의 성적인 판타지(성적대상화, 비인간화) 역시 포함됩니다. 또한 저소득층의 아시아인 여성들이 많이 일하는 네일샵이나 스파와 같은 직종의 노동환경 문제와 사회경제적 계급의 문제로도 살펴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백인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아시아인이자 여성으로서 경험하게 되는 복합차별에 의해 발생하고 유지되는 문제로, 어느 하나의 원인이 아닌 여러 정체성에 의한 차별과 억압이 중첩된 결과가 매우 극단적인 폭력인 증오범죄로 드러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우리를 아시아인으로 정체화하며 피해자로만 위치시키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으로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는 ‘선주민’으로 우리들의 모습을 돌아봐야 합니다. 한국사회의 뿌리 깊은 인종차별은 이주민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잘 느껴지지 않지만 이주민들에게는 일상입니다. 최근에 보도된 큰 뉴스들만 보더라도 난방이 전혀 되지 않는 비닐하우스를 ‘이주노동자 기숙사’로 지어놓고 방치하고 있습니다.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라고 수년 간 목소리를 내고 있음에도 지난겨울 한파에 비닐하우스에서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만약 한국계 사람이 타국의 농장에서 이렇게 사망했다고 하면 한국 사회는 어떻게 반응할까요.

최근에는 서울시를 비롯한 많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이주노동자 전원에게 코로나19 검사를 강제하는 방식의 행정 명령을 발동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이주민을 바이러스 취급한 것과 다름없으며, 이주민을 향한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는 매우 부적절하고 위험한 조치입니다. 우리는 바이러스는 인종, 민족, 국적 등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이주노동자 집단감염에 이유가 있다면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3밀(밀집, 밀접, 밀폐)’ 환경이 문제입니다. 바이러스에 감염되기 쉬운 취약한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가장 우선시돼야 할 접근방법일 것입니다. 왜 우리는 백인중심의 사회에서 바이러스 취급을 당하며 폭력에 노출되는 것에는 분노하면서 왜 한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주민들에게는 똑같은 행동을 할까요.

여러 소수자 정체성에 기인한 복합차별로 발생하는 억압과 폭력은 한국 사회에서도 동일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여성 청소년, 장애여성, 노년여성, 이주여성, 청소년 성소수자 등 중첩되는 취약성에 의한 차별과 억압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하는 혐오와 폭력에 대해서 말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기 쉽습니다. 그리고 지금처럼 포괄적인 차별금지법이 없는 상황에서는 자신의 경험을 정체성별로 나눠 어떤 정체성에 의한 어떤 차별이고 폭력인지 증명해 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인종차별이나 성소수자 차별처럼 아예 관련법이 존재하지 않는 차별도 있습니다. 차별금지법이 필요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국가는 모든 종류의 차별을 금지한다는 선언을 한 후 개별법으로 세부사항들을 강화해 나가야 합니다.

애틀란타 총격사건은 지난해부터 미국이나 유럽 등 백인중심 사회에서 코로나19로 인한 공포와 두려움에 기반한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표현과 증오범죄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일어난 사건입니다. 아시아인 여성에 대한 증오범죄가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찰이 이 사건을 ‘증오범죄’라고 판단하지 못하는 것을 두고 분노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미국에 사는 아시아인들과 자신을 동일시했기 때문에 이런 공감과 분노가 가능한 것입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반추하고 반성해 이제는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성혐오, 성소수자혐오, 이주민혐오 등에 의한 증오범죄들에도 공감과 분노가 가능한 사회가 되기를 바라봅니다.

●김지학 소장은?
-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이사
-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운영위원
- 대한성학회 이사
- 사회복지법인 프리웰 사외이사
- 서울예술대학교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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