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소장

연예계와 스포츠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학교폭력 사건 공론화로 인해 학교폭력에 대한 관심이 다시 커지며 해결방안에 대해서 고민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촉법소년 연령 하향 및 가해자 처벌 강화에서 해결책을 찾으려는 분위기가 강합니다. 지난해 1월에는 교육부가 촉법소년 나이를 14세에서 13세로 한 살 낮추겠다고 발표를 하기도 했습니다. 처벌강화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으며 교육부가 제시할 해결방안은 더더욱 아닙니다. 근본적인 문제의 원인을 알지 못하고 근본적인 변화의 방법을 찾으려는 의지도 없으니 단지 처벌강화를 통해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현상만을 제거하려는 시도가 최선인 것처럼 여겨지게 됩니다.

학교폭력을 생각하면 많은 사람은 ‘문제가 많은 가해자의 문제’ 혹은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문제’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학교폭력은 학교폭력이 일어날 수 있는 문화와 제도 위에서, 수많은 방관에 의해 발생합니다. 학교폭력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며, 반드시 근본적인 변화를 이야기해야만 하는 이슈입니다.

학교는 안전한 공간이 아닙니다. 한국 사회가 해소하지 못하고 있는 불평등한 권력 관계(자본과 노동자, 남성과 여성, 비장애인과 장애인, 선주민과 이주민, 비성소수자와 성소수자, 성인(비청소년)과 어린이·청소년 등)의 문제는 일상의 민주주의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학교에서 집약적으로 강화돼 나타납니다. 입시만 남고 교육이 사라진 공교육은 학업성취도에 따라 불평등한 관계를 만드는 ‘권력자’와 권력관계를 승인합니다. 학업성취도 뿐만 아니라 경제력이나 물리력 그리고 외모, 이주배경, 장애여부, 성별, 성별정체성, 성적지향 등에 의해 ‘능력이 있다’ 혹은 ‘정상이다’라고 평가되며 그에 따라 권력이 부여됩니다.

피해자는 피해사실 조차 증언하기 어렵습니다. 피해 사실을 알려도 학교로부터 제대로 된 보호를 받고 학교 구성원들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기가 어려운 현실 때문입니다. 오히려 보복을 두려워해야 하는 상황은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폭력에 대해서 알리기보다는 참고 견디게 만듭니다. 폭력이 사라지기를 기대할 수 없고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 피해자가 학교를 떠나게 됩니다. 그런데 피해자가 학교를 떠났다고 해도 피해가 끝나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가해자들은 SNS 등으로 너무나 쉽게 피해자가 전학을 간 학교에서 폭력이 이어지도록 만들 수 있습니다. 애초에 폭력의 형태 자체가 물리적인 형태(구타 등)가 아니라 디지털 성범죄나 온라인 성착취 등 온라인에 기반한 폭력인 경우도 많습니다. ‘어디를 가도 이 상황이 끝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주양육자나 교사 등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고 상황이 더 나아질 것 같지 않을 때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기도 합니다.

폭력이 가능하도록 문화가 형성되는 것은 불평등한 권력을 승인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권력은 구성원들의 동의를 통해 만들어지고 유지되는데, 만약 구성원들이 동의를 철회한다면 그 권력은 결코 유효할 수 없습니다. 불평등하고 부당한 권력 관계가 존재한다면 이를 해체하는 연습을 학교에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이 차별이고 폭력인지 알 수 있는 관점을 가지고 ‘그런 말 하는 거 좋은 거 아니야’, ‘하나도 안 웃겨. 그런 이야기하지 말자’, ‘지금 이 상황은 무언가 잘못된 거 같아’, ‘다같이 다시 생각해 보자’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함께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공간이 돼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학교폭력의 해소와 일상의 비민주적이고 폭력적인 문화를 해결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이해관계에 따라(자본의 치밀한 전략에 의해) 불평등한 권력 그리고 폭력적이고 차별적인 상황을 승인할 때가 많습니다. 학교폭력이 발생하는 상황에도 가해자와 피해자 외에 방관자가 있습니다. 주변의 수많은 학생들과 교사 등 많은 사람들이 방관자에 속합니다. 방관자는 방관을 선택함으로써 자신의 단기적 안전을 확보하지만 가해자의 권력을 승인함으로써 권력과 폭력에 의해 움직이는 문화를 만들고 유지하는 효과를 만듭니다. 방관은 결국 자신에게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 선택이 됩니다. 우리에게는 일상에서부터 부당한 권력을 무너뜨리고 민주적 공동체를 만드는 노력과 교육이 필요합니다. 민주시민 교육은 다양성 관점을 갖고 평등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원이 되도록 만드는 과정입니다. 시민불복종교육(부당한 권력에 저항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으로 불평등한 사회구조와 부당한 권력에 도전하고 차별, 억압, 폭력의 구조를 해체하는 경험을 학교에서 가져야 합니다. 이는 학교폭력과 더불어 우리 사회에 점철돼 있는 계급문화와 연결돼 있기 때문에 더욱 중요합니다.

오로지 입시만을 위한 시험과 경쟁만 존재하는 학교, 무슨 수를 쓰더라도 자본주의적인 성공에 가까워지는 것이 최고의 가치라는 메시지를 가정, 학교, 미디어 등 모든 곳에 가득 차있는 사회입니다. 남을 짓밟아야 하는 것은 비정한 일이거나 부도덕한 일이 아니라 성공을 향한 공정한 경쟁을 하는 것이라는 교훈이 가득한 세상입니다. 무엇이 폭력인지 인권침해인지 알지 못하게 하는 공교육에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학교폭력은 사건 발생 후의 처벌을 강화하는 게 아니라 사건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서 해결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학교는 문제의 발생지가 아니라 각종 사회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돼야만 합니다. 이를 위해 공교육의 목표 자체가 바뀌어야 합니다. 학교는 모든 구성원이 각각 한 명의 독립된 인격을 가진 주체로 존중받으며 다른 사람들과 협력하고 연대하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공동체를 경험하는 곳이 돼야 합니다. 시험 성적, 경제력, 성별, 성별정체성, 성적지향, 장애, 외모, 나이 등 그 어떤 것도 상관없이 한 명의 인간으로 존중되며 서로 협력하는 공동체를 만드는 연습을 할 수 있는 학교로 변화해야만 합니다.

●김지학 소장은?
-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이사
-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운영위원
- 대한성학회 이사
- 사회복지법인 프리웰 사외이사
- 서울예술대학교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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