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소장

지난 한 달 동안 세 명의 트랜스젠더 활동가가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국가와 사회가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죽음이었습니다. 하지만 국가는 국가가 할 일을 하기는커녕 ‘군인으로서 국가를 계속 지키겠다’는 트랜스젠더 하사관을 강제로 전역시키고 사회로부터 지속적인 차별과 혐오라는 폭력에 노출되도록 방기함으로써 국가가 직접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시민사회는 어떠했나요? 우리는 ‘페미니스트’라는 이름을 쓰며 트랜스젠더를 향한 혐오를 확산시키는 집단을 용인한 것을 반성하고 다시 생각해봐야만 합니다.

‘고환을 떼면 여자가 될 줄 알았던 남자가 죽었다. 세 명이 아니라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죽어도 그냥 남자다. 여자가 아니다’라는 말(사실은 훨씬 더 혐오스러운 글이지만 그대로 옮길 수가 없습니다)을 남긴 자칭 ‘래디컬 페미니스트’ 국지혜씨의 글을 마주하며 이런 류의 언행을 일삼는 사람들에게 ‘페미니스트’의 이름을 계속 사용할 수 있도록 용인한 우리 사회에 대해 화가 납니다. 이들을 페미니즘의 다양한 갈래 중 한 형태로 용인해야 한다는 주장이 퍼지는 사이 이들의 소수자 혐오가 확산하는 힘은 더욱 강해졌습니다. 기회만 있으면 소수자에 대한 혐오표현을 더 하지 못해 안달이 난 이토록 해로운 사람이 몇 년 새 수많은 젊은 페미니스트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스피커 역할을 하게 된 것이 통탄스럽습니다. 어떤 이는 ‘페미니즘 내의 다른 의견들도 존중하지 못하는 것이 다양성이냐’고 묻습니다. 누군가를 혐오하려는 자세를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다양성 존중이 아닙니다. 우리는 혐오를 멈춰야 합니다. 이들이 만드는 ‘쉬운 혐오’의 확산을 저지해야 합니다.

2016년 강남역 여성살인사건을 기점으로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아무 이유없이 그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보여준 이 사건을 통해 자신이 일상에서 경험하고 있었던 불편함과 부당한 일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경험하는 차별이자 폭력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수많은 여성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강남역 여성살인사건 이후 한국사회는 예전 그 어느 때보다 더 넓고 깊은 성평등과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생겼습니다. ‘미러링’이라는 유쾌한 패러디의 방식으로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들이 겪고 있는 비하, 차별, 폭력적인 표현들을 남성들에게 돌려주는 온라인 운동도 이때 생겼습니다. 여성들이 남성들로부터 경험해온 언어를 남성들에게 그대로 돌려주는 미러링이 유쾌하면서도 유의미한 역할을 하던 시기에, 동시에 절대 미러링이라고 할 수 없는 혐오표현도 증가하게 되는 사건이 생깁니다. 남성들로부터 경험해온 언어를 남성들에게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성소수자, 이주민, 난민, 장애인, 노동자, 빈곤층 등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그대로 전가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생겼던 것입니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억압그룹에 속한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해서 자동으로 성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억압그룹에 속하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억압그룹에 속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긴 했지만 자신이 비성소수자, 비장애인, 내국인 등이라는 이유만으로 가지는 사회적 특권에 대해서는 인지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문제는 자신의 특권을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를 넘어 자신이 가진 피해자성에만 몰입해 다른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차별, 폭력, 혐오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큰 호응을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특히 이런 폭력에 대해 폭력이라고 말하지 않고 ‘n개의 페미니즘이 있다’거나 ‘성소수자 관련된 이슈는 함께 하지 않지만 여성이슈에는 연대할 수밖에 없다’거나 ‘페미니즘의 외연을 확대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다’와 같은 말을 하며 국씨와 같은 이들의 폭력을 용인, 인정하고 이들에게 계속 힘을 실어준 몇몇 단체들과 학자들(교수 등)에 대해 분노할 수밖에 없습니다.

권력의 교차성을 이해·존중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도 있을 수 있고 더 적극적으로 ‘여성운동’을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있을 수 있습니다. 당연합니다. 여성운동을 한다고 해서, 혹은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정체화한다고 해서 완벽한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권력의 교차성을 이해, 존중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을 수 있습니다. 어디에나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여성인권운동을 하는 사람들 중에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노동운동 그리고 장애 차별, 인종 차별, 나이 차별, 성소수자 차별 등에 저항하는 인권운동을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권력의 교차성에 대해서 이해가 부족한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다른 점은 그 어떤 운동에서도 자칭 “터프(TERFs: trans-exclusionary radical feminists)”라고 부르는 사람들처럼 자신들이 하는 운동의 이름을 전면에 드러내 놓고 특정 정체성의 사람들을 배제하는 운동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노동 인권운동을 예로 들어 볼까요? 지난 수십 년 동안 노동운동이 진행돼 온 시간 동안 여성들이 운동 내에서 주류가 되지 못하고 소외되거나 우선순위에서 밀려 왔고 지금도 여전히 완벽하지 않아 여성이 포함되는 노동운동을 하기 위해 내부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노동인권 운동을 하면서 성평등까지 신경 쓰는 것이 귀찮고 힘들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성을 배제하는 노동운동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대놓고 떳떳하게 하거나 심지어 여성을 배제하는 것(더 나아가서 여성에 대한 차별, 폭력, 혐오를 조장하는 것)을 운동의 목표로 삼아서 활동하는 집단은 없습니다.

다른 모든 운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여성에 대한 차별적인 인식이 만연한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인종차별이나 장애차별에 대해 저항하며 이주민, 난민, 장애인의 인권에 대해서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는 활동을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여성에 대한 차별적인 인식을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성을 배제하는 운동을 하자”고 주장하는 이주민, 난민, 장애인 인권활동가는 없습니다. 이는 외부와 내부에서 들려오는 비판과 자정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자신들이 하는 활동을 ‘모두를 포함하는 운동’으로 만들고자 하는 끊임없는 자성의 노력을 하는 활동가들이 각 운동의 내부에 포진해 있기 때문입니다.

국씨와 같은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메시지를 걱정하면, ‘쓸모없는 이야기를 하는 이들이니 신경쓰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두라’고 하며 ‘관심을 주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라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이제 그냥 SNS에 몇몇이 모여서 차별적인 인식을 쏟아내는 정도가 아닙니다. 차별과 혐오는 직관적입니다. 사람들이 기존에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과 편견을 자극해 두려움과 공포를 일으킵니다. 차별과 혐오는 이해할 필요도 없고 노력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귀에 와서 박히고 쉽게 퍼집니다. 국씨는 지역 여성단체에 취업해서 지역에 기반을 두고 뿌리내려온 단체의 여러 자원들을 활용해 활발히 활동을 하고 있으며, 출판사를 만들어서 자신들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해외 작가의 서적을 번역하여 출간하며 레퍼런스(참고문헌)를 만들고 있습니다. 또한 국씨의 메시지와 비슷한 메시지를 자주 만들어 내는 정당이 창당되기도 했습니다.

모든 소수자들의 인권, 안위, 평등을 위해 활동하시는 전국의 여성단체들과 여성학자들께 그리고 모든 페미니스트 분들께 요청합니다. 이제는 입장을 더 명확히 해 주십시오. 이젠 국씨와 같은 이들을 ‘래디컬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트랜스포비아’, ‘호모포비아’, ‘제노포비아’라고 정확히 명명할 때입니다. 차별과 폭력을 페미니즘이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페미니즘 내의 노선이나 진영이 아닙니다. 이들이 트랜스젠더, 게이, 이주민, 난민 등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해 하고 있는 저급한 언행이 페미니즘과 아무런 상관없는 차별과 혐오라는 것을 명확히 말하며 논의를 진전시켜 나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이들을 감싸는 것은 절대 ‘페미니즘의 외연을 확대’ 하는 게 아닙니다. 소수자와 약자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실천하는 사람이 되게 하는 페미니즘을 후퇴시키는 일입니다. 요청 드립니다. 모두가 포함되는 환영/환대의 사회, 모든 존재의 존엄이 존중되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이 페미니즘이라는 것을 우리는 조금 더 적극적이고 분명히 말해야만 합니다.

●김지학 소장은?
-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이사
-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운영위원
- 대한성학회 이사
- 사회복지법인 프리웰 사외이사
- 서울예술대학교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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