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소장
▲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소장

토론은 자기 자신과 공동체의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들을 발견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의 생각과 근거도 들을 수 있는 자세를 갖고 있다면 말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의 토론은 신자유주의에 점철된 ‘경쟁에 의한 승부로 인한 승패는 개인의 몫’이라는 관점과 함께 무조건 이기는 것을 목표로 하는 ‘말싸움’과 비슷한 뜻 정도로 사용되곤 합니다. 그러니 ‘하버드 대학에서는 토론에서 절대 지지 않는 법을 가르친다’고 말하는 이가 나와서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말할 때 상대방의 생각에 대해 ‘망상’이라고 한다거나 사회적 소수자들이 경험하는 사회구조적인 차별과 억압에 대해서 전혀 공감·이해하지 못한 채, 같은 날 같은 시험지로 같은 시험을 칠 수 있도록 하는 것만으로 공정함을 보장하는 것처럼 주장을 해도 그 부적절성을 판단해 내기 힘들어하는 사회가 됐습니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 식의 토론은 사회구조와 자신을 전혀 성찰하지 않았음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특권(Social Privilege)을 바탕으로 억압그룹에 속해 있는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피해자인척 한다’, ‘망상이다’와 같은 공격적인 발언은 ‘합리’와 ‘공정’의 이름으로 사회적 억압을 지속하게 합니다. 자기성찰과 사회구조에 대한 관점이 필요 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사회에서는 세상에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토론이 불가능해 집니다. 자신의 생각을 맹신하며 자신이 가진 사회적 특권에 의해 만들어진 사고방식에 대해 성찰할 여지를 두지 않은 채, 상대의 주장을 망상으로 취급해버리는 방식은 절대 건강하거나 건설적인 토론이 아닙니다. 사회적 소수자들이 경험하는 차별과 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비이성적인 주장인 것처럼 말하며 오로지 자신만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것처럼 말할 수 있는 것은 특권그룹에 속해 있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사회적 특권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만날 토론해봐야 공동체의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리 만무합니다. 다수결 민주주의 체제에서 ‘합리’와 ‘공정’의 탈을 쓴 차별의 정치인이 ‘정상’의 범주에 있는 다수의 사람을 대변한다며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사회적 특권과 권력에 의한 문제(차별, 억압, 폭력, 혐오)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그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보통은 억압그룹에 속한 사람도 특권그룹에 속한 사람도 이야기를 하지 못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위험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억압그룹에 속해 있는 사람들은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말하더라도 오히려 본인에게 해가 될 수 있는 사회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적 특권과 권력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길 꺼려합니다.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부당한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면 지금보다 더 큰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특권그룹에 속해 있는 사람들도 사회적 특권과 권력에 대한 이야기를 꺼립니다. 자신이 공격을 당한다고 느끼거나 자신의 사회경제적 입지를 위협할 수 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남성중심의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이 경험하는 성차별과 성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경청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남성들보다 ‘왜 나를 잠재적 가해자 취급하느냐’며 기분 나빠하는 남성들이 여전히 더 많은 현실과 시스헤테로(생물학적 성별을 자신의 성별로 여기는 이성애자) 중심의 사회에서 성소수자가 경험하는 차별과 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경청하고 자신의 할 수 있는 찾는 비성소수자들 보다 비이성적이고 비과학적인 혐오에 기반한 가짜뉴스를 더 걱정하는 비성소수자들이 더 많은 현실도 자신이 가진 정체성(남성, 비성소수자)에 의해서 아무 이유 없이 누리고 있는 사회적 특권이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반영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사회적 특권과 권력에 대해 이야기 할 때 불편함과 두려움이 생기고 방어기제가 올라오는 이유는 우리가 서로를 향한 비난과 정죄를 거두고 상대방에게 취약한 감정이 들게 만들거나 두려움을 갖게 만들지 않으면서 사회적 특권과 권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방법을 알지 못하고 그렇게 해 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위험한 느낌이 들지 않고 안전함을 기반으로 사회적 특권과 권력에 대해서 이야기 할 수 있는 기회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가며 그럴 수 있는 공간을 점점 더 넓혀가지 않는다면 사회적 특권과 권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올라오는 부정적인 감정과 회피하고 싶은 마음은 계속 될 것입니다.

특권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그토록 위험해 보이도록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권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이 위험하게 느껴지는 감정 자체가 잘못된 감정이거나 불편해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불편해 하거나 기분나빠하거나 심지어 화를 낼 수 있는 가능성은 늘 존재하고 그 가능성을 완전히 없앨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위험성은 생각보다 크지 않습니다. 사람은 본성적으로 낯선 것을 싫어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사람은 낯설고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본성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혹시 모를 비난과 정죄의 가능성을 줄이고 안전한 공간에서 상호 신뢰를 기반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다면 사회적 특권과 권력에 대한 이야기도 훨씬 더 건설적인 대화 문화 속에서 나눌 수 있습니다.

한국다양성연구소에서 진행하는 다양성훈련을 할 때는 모두가 함께 ‘공동체 약속’이라는 약속문을 만들고 시작합니다. 그 약속문에는 ‘우리는 서로에게 배운다’, ‘사람이 아니라 이슈에 대해서 이야기한다’와 같은 내용들이 포함됩니다.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시간이 아니라 활동가 대화를 통해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는 시간이라는 점에 동의하고 대화 도중 누군가가 차별적인 말을 하더라도 그 사람을 ‘차별주의자’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한 말에 담겨있는 의미에 집중하고 그 말과 의미에 대해서 대화를 하기로 약속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약속을 통해 모인 사람들이 안전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서는 자신이 어떤 말을 하더라도 비난과 정죄를 받지 않고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는 상호신뢰 관계를 형성할 수 있게 됩니다. 초중고 모든 교실에서 그리고 대학의 모든 수업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합니다. 오로지 시험, 입시 또는 학점, 취업을 위한 공부를 하는 교실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이 서로 다른 생각을 나누고 오가는 대화 속에서 서로 배우며 성장할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교실이 돼야 합니다.

지금의 한국 사회에는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습니다. 안전한 공간에서 서로 얼굴을 마주하며 눈을 바라보며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나눌 수 있는 경험을 해 본 적이 없다보니 사회적 특권과 권력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차별, 억압, 폭력, 혐오에 대해서 어떻게 대화를 나눠야 할지 알지 못합니다. 서로의 얼굴과 이름도 알지 못하는 익명의 온라인 공간에서 서로를 욕하고 비하하고 상처주는 말들이 난무합니다. 특히 이런 말들이 사회적 소수자들을 향할 때 ‘공동체 규칙’처럼 작동할 수 있는 ‘차별금지법’ 조차 존재하지 않는 사회에서 ‘혐오표현도 표현의 자유’라는 식의 주장과 함께 전시되는 폭력을 멈출 수 없는 상황입니다. 안전한 공간에서 건설적인 방법과 태도로 의견, 생각, 감정을 주고받는 연습을 해 본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가 된다면 지금 온오프라인에서 일어나는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과 폭력의 문제는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말을 하든지 상대방이 할 말이 없게 만들면 자신이 ‘토론’에서 이겼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사회가 됐는데, 이는 한때 학교 수업에서 유행했던 ‘토론 수업’과 몇 년 전 유행했던 ‘토론 배틀’과 같은 티비 프로그램 등에서 의견이 분분한 이슈들을 토론을 통해 승패를 가릴 수 있다고 여기게 만든 측면이 있습니다. 심지어 ‘찬성’과 ‘반대’가 가능하지 않은 주제와 승패가 아닌 더 많은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 들어야 하는 이슈들에 대해서도 토론배틀로 승자를 가리는 모습을 자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인권, 다양성, 평등, 평화와 같은 주제는 단순히 찬반이나 승패로 압축될 수 없습니다. 승패를 가르기 위한 토론에서는 배움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상호배움과 평등한 문화를 만들기 위한 공동체의 성장을 목표로 하는 대화를 하는 사회가 돼야 합니다.

●김지학 소장은?
-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이사
-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운영위원
- 대한성학회 이사
- 사회복지법인 프리웰 사외이사
- 서울예술대학교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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