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소장
▲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소장

우리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개인으로 시작해서 개인으로 끝난다고 믿게 만들려 하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이 사회를 ‘그저 개인들의 모여있는 것’ 그 이상이 아닌 것처럼 여기게 만들어서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이 개개인의 생각, 감정, 선택에 의해서 일어난다고 보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 의해서 사회를 바라보면 사람들의 사고방식, 의도, 욕망, 필요 등을 읽을 수 있으면 그 사회가 흘러가는 방향도 읽을 수 있다고 여기게 됩니다. 그러나 이는 사람들의 사고방식, 의도, 욕망, 필요 등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구조와 문화가 있다는 것을 보지 못하게 하는 왜곡된 관점입니다.

모든 것이 개인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관점으로 차별을 설명하고자 한다면, 차별을 당하는 사람에게 차별받아 마땅한 원인이 있다는 설명과 차별을 하는 사람들이 차별주의자이기 때문이라는 것 이외에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습니다. 성차별이 있는 이유도 개인들이 성차별주의자이기 때문, 인종차별이 있는 이유도 개인들이 인종차별주의자이기 때문, 장애차별이 있는 이유도 개인들이 장애차별주의자이기 때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개인들이 각자 차별을 할 신념, 감정, 욕구, 필요, 동기를 가지고 차별을 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차별 그리고 차별에 의해서 일어나는 폭력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힘든 사회가 되는 것은 차별과 폭력을 만들고 유지하는 구조와 문화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차별적이고 폭력적인 언행을 하는 개인에 대한 이야기에 집중되기 때문에 ‘혹시 내가 비난을 받게 되는 것이 아닐까’라는 두려움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남성들은 성차별에 대해서, 비성소수자들은 성소수자차별에 대해서, 비장애인들은 장애인차별에 대해서, 선주민들은 이주민과 난민에 대한 차별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꺼려지고 힘들어질 수밖에 없게 됩니다.

성차별을 예를 들어 설명해 보자면, 모든 것이 개인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관점에 의해서 성차별을 바라보는 사회에서는 특권그룹에 속해 있는 남성들은 차별의 문제가 ‘자신이 포함된 사회문제’라고 여기기보다는 ‘그런 차별과 폭력은 일부 나쁜 사람들이 저지르는 범죄인데 왜 나한테 그러냐’라고 주장하며 사회문제와 자신을 분리하고자 하게 됩니다. 자신과 관계가 없는 문제이다 보니 억압그룹에 속해 있는 사회적 소수자들의 이슈로만 여기게 되고, 그저 ‘여성들만의 여성만을 위한 여성들의 권리주장’이라고 여기게 되어 무신경하게 됩니다. 여성들이 경험하는 차별과 폭력을 줄이기 위해 존재하는 제도나 기구를 여성들을 위한 특혜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남성가족부는 없는데 여성가족부만 있는 것이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특혜라고 주장한다거나 여성전용 휴게실 등 여성전용공간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여성에게는 특혜이고 남성에게는 역차별이라는 주장을 합니다. 이렇게 무신경하고 무지할 수 있는 것도 그럴 수 있는, 그래도 되는 권력에서 비롯됩니다.

자신을 사회문제의 일부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이 해결책의 일부가 돼야 한다고 여길 가능성이 별로 없습니다.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함께 변화를 만들자’고 초대하기 힘듭니다. 함께 변화를 만들어 갈 사람으로 초대하기 위해 자신이 사회문제의 일부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과정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모든 것이 개인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관점은 사회적 특권(social privilege)과 억압(social oppression)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사회적 특권과 억압이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정체성만을 이유로 그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들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개인적인 것일 뿐이라는 사고는 사회적 정체성에 의해 주어지는 권력이나 사회적 정체성에 의해 빼앗기고 제한되는 권한에 대해 전혀 고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개인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관점에 의해서만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 억압, 폭력을 설명하게 되면 차별, 억압, 폭력의 근본적인 원인이 되는 사회적 정체성에 의해 발생하는 권력(power)의 격차를 고려하지 못함으로써 마치 두 그룹이 “갈등”을 하고 있는 것처럼 묘사하게 됩니다. 성차별을 예로 들자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경험하는 차별, 억압, 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과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반발을 ‘남녀갈등, 성별갈등, 젠더갈등’으로 묘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분석을 ‘여성과 남성은 뇌구조가 달라서’ 혹은 ‘생물학적(유전적)으로 원래 다르다’는 ‘과학적으로 보이는 차별적인 주장’을 내놓음으로써 차별적인 사회구조가 지속되게 합니다. 여성과 남성을 서로 다른 별에서 왔기 때문에(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며 ‘여성의 언어, 남성의 언어’를 익혀야 한다는 식의 주장도 많습니다.

모든 차별의 원인을 개인에게서 찾으려는 주장은 매우 인기 있는 주장입니다. 특히 사회, 경제, 정치의 영역에서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매우 선호합니다. 취업이든 빈곤이든 그게 무엇이 됐든 ‘네가 열심히 공부해서 남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고 성공하면 되는데, 네가 성실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면 모든 것이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을 얼마나 착취하든 노동자들은 노동구조의 문제보다는 자기 자신에게서 문제의 원인을 찾게 됩니다. 정치인들이 그런 자본주의/노동구조에 개입하지 않고 자본가의 편에 서서 완전히 한통속이 되어있어도 정치인들에게 제대로 역할을 하도록 촉구하거나 법을 만드는 정치인들을 선출하는 선거제도 자체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생각 자체를 하기 힘들어집니다. 구조적인 관점을 가지지 못하도록 우리들의 사고를 마비시키는 개인주의적인 관점을 부수기 위해서는 먼저 개인주의적인 관점이 “틀렸다”는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사회란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것이지만 단순히 개개인들이 모여있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사회가 만들어지면 체계가 만들어집니다. 사회체계(social system)는 법(제도)과 문화 등에 의해서 한 사회 속에서 사람들이 행동하게 되는 방식과 사람들이 서로 관계하게 되는 방식 등이 포함되는 개념입니다. 성차별을 예로 들면, 성차별이라는 것은 한 명의 남성의 인격이나 성품, 여성을 향한 감정이나 의도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 사회가 여성을 대하는 방식이 그 사회에서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여성을 대하는 태도와 삶의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다음 칼럼에서는 사회체계가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만들어 가는 과정과 그 사고와 행동의 결과가 또다시 사회체계를 어떻게 유지하는지 알아보고 우리가 그러한 과정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김지학 소장은?
-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이사
-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운영위원
- 대한성학회 이사
- 사회복지법인 프리웰 사외이사
- 서울예술대학교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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