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제공 = 해군 제공>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공군 성추행 사망 사건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해군에서도 여성 간부가 성추행 피해 신고 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모 해군 부대 소속 여군 A(32) 중사가 지난 12일 오후 부대 숙소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해군에 따르면 피해자인 A 중사는 5월 27일 민간 식당에서 식사하는 과정에서 동일 부대 상관 B 상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당시 피해자는 이 사실을 주임상사에게만 보고하면서 일체 외부로 알려지지 않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후 8월 7일 A 중사가 부대 지휘관과 면담을 요청하고 피해 사실을 알렸고, 9일 본인 의사에 따라 정식으로 상부에 보고됐다. 가해자와의 분리조치 또한 정식으로 상부에 보고된 후에야 이뤄졌다.

유족이 알린 피해 사실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이 유족을 대신해 전한 내용에 따르면 성추행 발생 이후 사무실에서는 중사에 대한 따돌림과 괴롭힘이 지속됐는데, 따돌림과 괴롭힘의 주체는 가해자였다.

또 A 중사에게 성추행 사건을 사과하겠다며 다음 날 밥을 먹자고 불러낸 가해자는 되레 ‘술을 따르라’며 강압적인 지시를 내리고 이를 A 중사가 거부하자 ‘3년 동안 재수가 없을 것’이라며 악담을 했다.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은 유족을 대신해 “중사의 아버지가 ‘해군으로서 11년간 국가에 충성한 대가가 고작 성추행과 은폐였냐’며 분통을 터뜨렸다”고 전했다.

부대 내 성추행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5월에도 회식 후 귀가하는 차량에서 선임 중사로부터 강제추행을 당한 공군 소속 모 여중사가 숨진 사건이 있었다. 당시 부대에서 성추행 사실을 알고도 즉각적인 조사에 나서지 않고 되레 조직적으로 회유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이 된 바 있다.

공군 사건이 있고 몇 달 지나지 않아 해군에서도 비슷한 피해가 발생하자 군을 향한 비난 여론이 거센 상황이다.

또 본인 의사에 따라 정식적인 상부 보고가 늦어졌다고는 하나, 그 사이 두달여간 피해자 보호가 사실상 제대로 이뤄졌는가에 대한 책임은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13일 해군 성폭력 피해 여중사 사망 사건 관련 기자회견 중인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 ⓒ공동취재사진/뉴시스
13일 해군 성폭력 피해 여중사 사망 사건 관련 기자회견 중인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 ⓒ공동취재사진/뉴시스

“의혹 없도록 소상히 밝힐 것”

국방조사본부와 해군중앙수사대는 이번 사망사건을 철저히 수사하고 관련 법에 근거해 엄중 처벌하겠다는 입장이다.

서욱 국방장관은 “해군 모 부대 여중사 사망 사건이라는 발생해서는 안 될 일이 벌어져 유족과 국민 여러분에 송구스럽다”고 밝혔다.

서 장관은 “사건 발생 후에 피해자 본인이 원해서 신고가 되지는 않았으나 과거 유사한 추가 성추행 사실은 없는지, 언론에 공개된 것처럼 8월 7일 이전까지 피해 호소가 있었는지, 있었다면 조치는 어떻게 했는지, 지휘부 보고는 어땠는지, 추가적인 은폐 축소 사실이 있었는지 등에 대해 모두 수사 중이다”라고 말했다.

끝으로 “사안의 엄중함을 따져 국방부 조사본부와 해군 중앙수사단, 특별 수사팀을 구성해 한 치 의혹이 남지 않도록 수사해 유족과 국민께 소상히 밝히겠다”고 전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방부에 철저하고 엄정한 수사를 당부했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오늘 오전 (대통령께서) 해군 성폭력 피해 여중사 사망 사건을 보고받고 공군에 이어 해군에서도 유사한 사고가 거듭된 것에 대해 격노했다”며 “한 치의 의혹이 남지 않도록 국방부는 철저하고 엄정하게 수사할 것을 지시했다”고 말했다.

ⓒ군인권센터
ⓒ군인권센터

“군 입장 해명하기에 급급”

한편 군인권센터 측은 국방부 입장이 군수뇌부 보위를 위한 조치 중심의 해명뿐이라고 비판했다.

군인권센터는 “국방부가 사건을 바라보는 태도는 전혀 피해자 중심이 아니다. 피해자를 위한 여러 가지 절차를 밟았다고 하지만 군이 취한 조치 중심으로 해명하는데 급급했다”며 “절차상 하자가 없었다고 항변하는 모양새였다”고 지적했다.

이어 “극도의 스트레스를 호소하던 피해자는 신고 후 불과 3일 만에 사망했다. 피해자의 스트레스 상태는 어떠했는지, 최초 보고로부터 정식으로 형사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밝히기 전까지의 3개월 동안 피해자는 어떤 상황에 놓여있었는지 등의 내용은 국방부 발표에서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부연했다.

더불어 “유족 측에서 피해자가 최초 보고를 받은 주임상사가 신고를 않도록 피해자를 회유하고, 보고 이후에도 가해자에게 업무상 배제되거나 따돌림을 당했다는 유족의 진술이 나오고 있다”며 “사건의 방점은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해서’ 신고하지 않았다는 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무슨 일을 겪었기 때문에 생각이 바뀌어 신고하고 연이어 사망에 이르게 되었는가가 핵심이다”라고 강조했다.

센터 측은 조직에서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으나 피해자가 사망해서 당황스럽다는 우리 군의 고질적인 조직 중심적 사고방식이 그대로 드러났다고 꼬집었다.

군인권센터는 “피해자를 지원하는 과정은 단지 매뉴얼에 적힌 조치만으로 이뤄져서는 안 된다”며 “피해자가 사건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던 건 자칫 섣부른 절차 진행으로 인해 섬에 갇힌 피해자가 가해자와 더불어 가해자 주변인, 부대원들 사이에서 고립되는 상황을 우려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단지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피해자의 상사인 가해자에게 구두 경고로 문제제기 사실을 알리고 후속 조치를 마련해 주지 않은 점이 안겼을 심적 부담은 매우 컸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국방부에 피해자 중심주의에 입각한 빠른 성폭력 사건 지원 체계 개선을 촉구했다.

군인권센터는 “국방부가 공군 성추행 피해자 사망 사건이 발생한 뒤로 뚜렷한 방책을 내놓지 못한 채 다시금 성폭력 피해자가 숨지는 사건이 벌어졌다. 일선에서 근무하는 여군들은 다시 한번 깊은 무력감, 조직이 더 이상 우리를 보호하지 못한다는 절망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며 “도대체 얼마나 세상을 떠나야 ‘할 만큼의 조치를 다 했으니 소임은 다했다’ 식의 문제 인식을 벗어날 것인가. 피해자 중심주심의 성폭력 사건 지원 체계 개선이 즉각적으로 이행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