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추억에 새로운 색을 입힌 ‘뉴트로’가 대세입니다. 소비자에게 오랜 기간 사랑받아 온 기업들은 촌스러움을 훈장처럼 장식한 한정판 레트로 제품들을 앞다퉈 내놓고 있습니다. 비단 물건 뿐 아니라 옛 세탁소나 공장 간판을 그대로 살린 카페 등 힙한 과거를 그려낸 공간 또한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오래된 기록이 담긴 물건과 공간들은 추억을 다시 마주한 중년에게는 반가움을, 새로운 세대에게는 신선한 재미를 선사합니다. 기자는 켜켜이 쌓인 시간을 들춰, 거창하지 않은 일상 속 ‘추억템’을 소개해보려 합니다. 

왼쪽부터 일제시대 때 한국인의 입맛을 장악했던 일본 아지노모토 조미료 광고, 1970년 미원 순금반지 경품 이벤트 ⓒ대상<br>
왼쪽부터 일제시대 때 한국인의 입맛을 장악했던 일본 아지노모토 조미료 광고, 1970년 미원 순금반지 경품 이벤트 ⓒ대상

【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미원 넣은 음식 먹는 거 아냐, 건강한 집밥을 먹어야지”

유년 시절 외식하자고 부모님을 조를 때 종종 들었던 말입니다. MSG와 화학조미료가 들어간 음식은 몸에 좋지 않은 유해물질이라는 말도 함께요. 

적어도 저의 어린 시절 기억에서 ‘미원’은 부끄러운 조미료였습니다. 매운탕과 콩나물국에는 미원을 넣어야 제맛이 난다고 속삭이던 옆집 아주머니조차도, 정작 미원 봉지를 남들이 보지 못하게 찬장 깊숙히 숨겨두셨던 기억이 납니다. 

대상그룹 조미료 ‘미원’은 화학조미료라는 꼬리표와 함께 제품에 포함된 MSG가 건강에 나쁘다는 소비자 인식 탓에 긴 암흑기를 겪어 왔습니다. 이는 최근 조회수 370만회를 기록하는 등 인기를 끌고 있는 미원 유튜브 광고에서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광고에는 조연을 주로 맡아 온 배우 김지석이 미원 패키지를 입고 연기하는 ‘의인화된’ 미원이 등장합니다. 

미원이 음식의 주연일 수는 없지만, 맛의 조연으로서 65년간 최선을 다해왔다는 점을 강조한 광고였습니다. 청춘드라마에서는 주인공들의 러브라인을 위해 조연은 뒤로 한발 빠져 주죠. 영상 또한 조연의 역할을 하는 미원이 끝내 찬장 속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미원 로고 

찬장에 버젓이 가지고도 몰래 야금야금 쓰는 조미료, 미원을 대놓고 쓰는 건 가정주부로서 양심이 없다는 옆집 아주머니의 말이 아직도 생각납니다. 그런데 30여 년이 흐른 지금, 미원 로고를 입은 라면은 당당히 편의점에 진열돼 있습니다. 미원은 유해물질이라더니, 이게 무슨 일일까요?

미원은 1956년 출시된 우리나라 최초의 조미료입니다. 미원을 만든 대상그룹 창업자 임대홍 회장은 국내시장을 장악한 일본 조미료 ‘아지노모토’ 제품의 대체 조미료를 개발하기 위해 1955년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1년 후 임 창업주는 부산에 대상그룹의 모태가 되는 동아화성공업주식회사를 세우고 미원을 최초로 생산했습니다. 순수 국내 자본과 독자 기술로 생산된 ‘맛의 원천’이라는 뜻을 지닌 미원은 한국 음식 맛의 평준화를 이뤘다는 평가를 받으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한 꼬집’ 만으로 음식의 감칠맛을 배가시키는 신통함이 있었거든요.

1963년 제일제당은 미원의 대항마 ‘미풍’을 내놓으면서 미원의 아성에 도전했지만 끝내 넘어서진 못했습니다. 오죽하면 삼성그룹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이 자서전에서 “세상에서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게 자식과 골프, 그리고 미원이다”라고 말했을까요. 

1960년대 미원 제품 ⓒ대상

하지만 미원의 65년 역사는 그리 순탄치 못했습니다. 1990년대 초 MSG 유해성 논란이 제기된 것인데요. 당시 럭키(현 LG생활건강)는 조미료 ‘맛그린’ 출시와 함께 ‘MSG 무첨가 마케팅’을 펼쳤습니다. 이로 인해 직격탄을 맞은 미원은 ‘MSG는 화학물질이며 건강에 좋지 않다’는 부정적 인식으로 인해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으며 기나긴 정체기를 겪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2012년 MSG 유해성 논란에 대한 여론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많은 언론 매체에서 MSG에 대한 검증에 나섰고, 결국 그 안전성이 입증됐습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또한 MSG의 안전성을 국민들에게 알리기 시작했고, 지난 2014년에는 식품첨가물 분류에서 ‘화학적 합성첨가물’이라는 내용이 삭제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MSG 계열의 조미료는 화학성분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미생물 발효로 만들어진다고 하네요. 1995년 미국 식품의약처(FDA)와 세계보건기구가 공동 연구조사에 나선 결과 평생 먹어도 안전한 식품첨가물이라고 판명됐다고 합니다. 

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미원라면, 미원, 미원맛소금맛팝콘, 미원 김지석 광고, 미원 김희철 광고 ⓒ대상

이후 대상은 본격적으로 미원을 ‘리브랜딩’ 하기 시작합니다. 물 들어온 김에 노 젓는다고, 2014년 제품 이름을 ‘발효미원’으로 바꾸고 리뉴얼된 제품 패키지에서 미원이 화학조미료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이밖에도 홍대에 ‘밥집 미원’ 팝업 스토어를 열고 슈퍼주니어 출신 아이돌 김희철을 모델로 내세우는 등 소비자와의 소통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MZ세대의 공감을 이끌어 내기 위해 ‘흥미원’이라는 부캐릭터를 활용하기도 하고 무신사와 협업해 미원 패션 굿즈도 출시합니다. 편의점에서 만나볼 수 있는 미원맛소금팝콘과 미원라면도 빼놓을 수 없죠.

대상의 이런 노력 덕분일까요. 슈퍼마켓에서 사라진 줄로 알았던 미원의 매출액은 여전히 연간 1000억원에 달하고, 소비자들이 소매점에서 직접 구입한 금액도 400억원이 넘는다고 합니다. 미원 전체 매출의 40% 이상을 소매 매출이 차지하고 있다는 점은, 미원이 여전히 가정집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수치라고 할 수 있죠.

최근 유튜브 광고에서, 미원은 맛있는 음식 어디에나 존재하면서도 결국 가루 한 점 찾아볼 수 없이 사라지는 슬픈 존재로 그려졌습니다. 65년 세월 언제나 우리 곁에 있었지만 숨겨진 존재로 살아 온 미원, 늦게나마 찬장 문을 열고 당당히 나온 만큼 감칠맛의 새로운 추억을 선사해 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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