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조2000억원 공사비 계약 놓고 조합-시공사 줄다리기
조합 정기총회‧시공사 공사중단 예고…다음달이 분수령
미분양 따른 부담 불어나는데 분양가 책정도 난관 봉착

지난 22일 서울시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단지에서 공사가 진행 중이다. ⓒ투데이신문
지난 22일 서울시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단지에서 공사가 진행 중이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홍기원 기자】 서울시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정비사업을 놓고 재건축조합과 시공사 사이의 갈등이 법적 분쟁으로 이어진 가운데, 다음달 중요한 분기점을 맞을 전망이다. 재건축조합은 다음달 정기총회를 열 계획이며 시공사는 같은 시기 공사 중단을 예고한 상태다. 조합원들은 재건축사업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둔촌주공 재건축사업을 둘러싸고 최근 고발과 소송이 잇따라 제기됐다. 둔촌주공재건축조합은 지난 22일 서울동부지법에 재건축 공사비 증액 변경 계약 무효 소송을 냈다.

또, 서민민생대책위원회는 지난 18일 둔촌주공 재건축사업과 관련해 현대차그룹 정의선 회장과 현대건설 윤영준 대표이사를 경찰청에 고발했다. 민생대책위는 정 회장과 윤 대표에게 배임, 강요죄, 협박죄 등의 혐의가 있다며 경찰에 엄정한 조사를 촉구했다.  공사비 증액 계약의 이행을 요구하는 것은 조합원들에 대한 강요이며 공사중단 통보는 협박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이어 전임 조합장이 공사비 증액 계약에 날인한 것을 사주한 것은 배임이라고 주장했다.

핵심쟁점은 지난 2020년 6월 조합과 시공사인 현대건설 사업단(현대건설, HDC현대산업개발, 대우건설, 롯데건설)이 체결한 공사비 증액 계약의 적합성 여부다. 현 조합 집행부는 사업단이 전 조합장과 맺은 해당 계약에 대해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며 무효라고 보고 있다.

문제가 된 계약은 2019년 12월 7일 조합 총회에서 의결된 도급계약 변경에서 비롯됐다. 설계가 달라지고 사업규모가 커지면서 2016년에 맺은 계약 내용을 변경하게 된 것이다. 쟁점은 공사비가 2조6000억원에서 3조2000억원으로 늘어난 대목이다. 시공사는 2019년 12월 총회에서 도급계약 변경이 의결됐기에 다음해 6월 맺은 계약이 적합하다고 주장하나 현 조합 집행부는 절차가 잘못됐다고 판단하고 있다.

지난 22일 둔촌주공 재건축조합 사무실 앞에 신축할 아파트 단지 모형이 전시돼 있다. ⓒ투데이신문
지난 22일 둔촌주공 재건축조합 사무실 앞에 신축할 아파트 단지 모형이 전시돼 있다. ⓒ투데이신문

“시공사, 준공 연기에 합리적 설명 안 해” 

조합은 다음달 16일 정기총회를 열고 2019년 12월 7일 의결한 도급계약 변경 취소와 아울러 조합 사업비 차입, 이주비 이자비용 등의 안건에 대해 의결할 예정이다. 지난 22일 둔촌주공 재건축단지 인근의 조합 사무실에서 만난 한 관계자는 “서로 주장이 다르니 정리하는 차원에서 소송을 제기했다”면서도 “시공사와의 대화를 닫은 것은 아니다. 조합과 시공사가 합의해서 다시 공사비 규모를 검증해 액수가 나오면 받아들일 수 있다”고 협상의 여지를 열어뒀다. 

이번 총회에서 다뤄질 조합 사업비 및 조합원 이주비 융자 역시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아직 아파트 분양이 이뤄진 상황이 아니기에 조합은 7000억원의 융자를 통해 그동안의 제반 사업비를 충당해 왔다. 또, 상당수의 조합원들은 이주비를 명목으로 수억원대의 융자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합 관계자는 “사업비는 시공사가 대여 형태로 지원하기로 했던 것이다. 이주비 융자는 오는 7월말 만기가 다가오고 있지만 채권확보에 문제가 있는 융자가 아니기에 원만하게 풀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결국 분양이 진행돼야 하는데 분양을 하려면 조합과 시공사가 사전에 해야할 작업이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조합은 시공사에 자재 변경과 준공연기에 대한 협의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조합원들이 원하는 고급 자재를 쓰자는 것인데 시공사는 조합 총회까지 거쳐야 된다고 한다. 이번 정기총회에는 시간상 안건이 올라오지 않아 차기 대의원대회에서 다뤄질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이어 “시공사가 내년 8월로 예정된 준공 예정일을 9개월 연장할 것을 요청했는데 합리적인 설명이 없다. 9개월이나 준공이 연기될 납득할만한 이유를 제출하지 않는다면 인정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지난 22일 돈촌주공 재건축 모델하우스 내부에 옵션에 대한 설명이 게재돼 있다. ⓒ투데이신문
지난 22일 돈촌주공 재건축 모델하우스 내부에 옵션에 대한 설명이 게재돼 있다. ⓒ투데이신문

“계약 무효되면 공사 진행할 근거 사라져”

시공사인 현대건설 사업단은 다음달 15일 공사중단을 예고한 뒤 이달 19일부터 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설명회를 진행하고 있다. 22일 설명회가 열리는 재건축 단지 내 모델하우스를 찾자 조합원들이 군데군데 모여 의견을 나누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몇몇 조합원들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다들 어두운 표정으로 난색을 보였다.

모델하우스 내부에는 사업단이 만든 공기연장 요청 및 공사 중단에 대한 이유가 적힌 판넬이 전시돼 있었다. 평형별 견본 내부를 보니 일부 옵션은 “조합원 동호 추첨 지연에 따른 조합 요청으로 옵션 선택이 불가하다”는 안내가 붙어있기도 했다. 

사업단 관계자는 “서울시와 강동구에서도 수차례 중재를 시도했지만 별 진전이 없다”면서 “조합에서는 2020년 6월 계약을 무효로 하고 서울시 표준계약서로 다시 진행하자는 입장이다. 그런데 해당 계약을 무효로 하면 2016년에 체결한 계약만 남아 현재 1만2032가구의 사업규모와 상가 건립 등은 근거가 사라진다”고 말했다. 이어 “조합이 계약을 이행하지 않는다면 공사를 할 근거를 부정하는 것이다. 더 공사를 하는 것이 무의미해진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현실적으로도 공사를 더 지속하기 어렵다는 진단도 나왔다. 둔촌주공 재건축의 현재 공정률은 50%대로 골조공사를 진행하는 단계다. 내년 8월 준공예정을 맞추려면 내부 마감재 공사를 해야 하는데 조합이 금액은 책정하지 않은 채 마감재 변경만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업단 관계자는 “조합원들 사이에서도 고급화하자는 의견과 기존 자재가 낫다는 의견이 다를 것이다. 결국 (마감재를 변경하려면)총회 의결을 받아야 한다”라며 “시공사로서는 마감재를 변경하면 공사비 증액 요인이 되니 반대할 이유가 없다. 다만, 총회 등 적법한 절차를 거치고 공기에 영향을 주지 않는 마감재를 선택하길 바라는 것이다”라고 전했다. 또한, 조합원 분양이 이뤄지지 않아 조합원세대에 대한 옵션이 확정되지 않은 것도 문제라는 설명이다.

조합와 사업단 간의 계약내용을 보면 시공사는 공사기간 내 공사를 완공하지 못하면 1일당 공사비 총액의 1000분의 1을 조합에 지체상금으로 납부해야 한다. 단, 지체상금의 총액은 공사비 총액의 100분의 5를 초과할 수 없다. 이에 대해 사업단 관계자는 “조합의 귀책사유 또는 계약 불이행 및 시공사의 귀책사유가 아닌 민원 발생 등으로 공사가 중단 또는 지연되면 지체상금에 해당되지 않는다”면서 “공사 중단의 이유를 시공사에 귀책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해명했다. 오히려 “공사기간 연장에 대한 추가 공사비, 그리고 공사비에 대한 금융비용 등을 다시 협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조합은 분양 수익금으로 사업비를 상환해야 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자만 불어나고 있다. 내년 8월 입주하려는 조합원들은 대부분 전세나 월세로 거주하고 있을테니 이주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또, 6200여명의 전체 조합원 중 4000여명이 이주비 대출을 받았는데 만기가 다가오고 있다. 만기를 연장해도 금리가 올라갈테니 그 역시 부담”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조합원 대부분이 이런 사정을 모르고 있다. 그래서 조합원들이 제대로 판단할 수 있도록 설명회를 준비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사업단에 따르면 19일부터 24일 현재까지 800여명의 조합원과 가족들이 설명회가 열리는 모델하우스를 찾은 것으로 집계됐다. 사업단은 더 많은 조합원들에게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당분간 설명회를 계속 진행할 예정이다.

지난 22일 둔촌주공 재건축단지에 위치한 모델하우스에서 조합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의견을 나누고 있다. ⓒ투데이신문
지난 22일 둔촌주공 재건축단지에 위치한 모델하우스에서 조합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의견을 나누고 있다. ⓒ투데이신문

한편, 둔촌주공 재건축사업은 조합과 시공사 간 변경된 계약에 대한 충돌도 문제지만 분양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관계자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면서 조합원들이 원하는 수준의 분양가 책정이 미지수인 상태다. 전임 조합장이 물러난 배경에도 분양가 책정을 둘러싼 갈등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분양가상한제에서 분양가는 택지비, 건축비, 그리고 각각의 가산비 등에 따라 산정된다. 둔촌주공 재건축단지는 지난해 11월 택지비 감정평가에서 ㎡당 2020만원의 택지비가 책정된 바 있다. 그러나 강동구청으로부터 이 결과에 대한 적정섬 검토를 맡은 한국부동산원은 조합에 추가 자료 보완을 요청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사실상 부동산원에서 택지비가 과다계상됐다고 보고 반려한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 “부동산원은 지난달 15일까지 보완 자료를 접수하라고 했다. 그런데 조합이 기간이 넘어간 지금도 자료를 제출 못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조합으로서는 분양이 계속 미뤄지면서 그에 따른 부담도 따라서 늘어나고 있지만 조합원들이 만족할만한 수준의 분양가 책정이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분양을 추진하기도 어려운 진퇴양난에 빠졌다는 평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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