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기 60%’ 이재용, 가석방 대상자 명단 포함설
분위기 바뀐 靑, 코로나19 기업 역할론 변수되나
시민단체 “삼성 경쟁력과 무관...가석방 부적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뉴시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뉴시스

【투데이신문 최병춘 기자】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한 뇌물공여 혐의로 복역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광복절 가석방 여부가 화두로 떠올랐다. 이 부회장이 이달 말 가석방 요건을 충족하면서부터 구속 당시부터 재계를 중심으로 제기됐던 사면 기대감도 살아나는 분위다. 하지만 삼성물산 불법합병 등 다른 형사재판도 받고 있는 이 부회장의 이른 출소가 사법질서 근간을 훼손하는 조치라는 반발도 여전히 거세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전국 교정시설에서 최근 광복절 가석방 대상자 명단을 법무부에 보고했다. 이 중 서울구치소가 보고한 명단에 이 부회장이 포함됐다는 이야기가 나돌면서 이 부회장의 가석방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형법상 형기의 3분1 이상을 채우면 가석방 대상이 된다. 법무부는 그동안 실무적으로 형기의 80% 이상을 채운 수형자에게 가석방을 허가해오다 이달부터 심사 기준을 복역률 60%로 낮췄다.

가석방은 교정시설에서 대상자 명단을 법무부에 올리면 가석방심사위원회가 표결로 가석방 여부를 결정, 이후 법무부 장관의 허가를 거쳐 가석방이 이뤄진다.

가석방 요건 채운 이재용, 기류 변화 감지되는 靑

앞서 이 부회장은 올해 1월 18일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에서 뇌물공여 등 혐의와 관련해 징역 2년 6개월 선고를 받고 재수감 됐다. 앞서 항소심 과정에서 풀려나오기까지 약 1년간 구속된 바 있어 이 기간을 포함해 8월이 되면 형기의 60%를 채우게 된다.

이 부회장이 요건을 갖추게 됨에 따라 다음 달 ‘광복절’ 가석방 가능성이 점쳐지게 된 것이다.

이 부회장의 가석방 여부에 대해 정부는 원론적인 태도로 대응하고 있다. 청와대는 지난 21일 서면 브리핑을 통해 “법무부에서 기준과 절차에 따라 진행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 또한 “법무부 장관은 가석방 정책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권한과 지휘가 있는 것이다”면서 “특정인의 가석방 여부는 절차와 시스템이 따라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언급하기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가석방 넘어 사면까지?...재계, 총수 역할론 강조

하지만 정부가 적극적으로 부인하지 않으면서 가석방 가능성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최근 청와대와 여당의 이 부회장의 사면 내지 가석방에 대한 기류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 같은 관측에 힘을 더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일 갖은 4대 그룹 총수와의 회동에서 이 부회장 사면 건의에 대해 “고충을 이해한다. 국민들도 공감하는 분이 많다”며 “기업의 대담한 역할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가 기존 ‘국민의 공감대’를 이유로 이 부회장의 사면권 행사에 보류적 입장을 보였던 것에 비해 전향적으로 분위기가 바뀐 것이다.

정부 여당도 대선이 다가오면서 코로나19 위기 극복과 관련해 기업 역할이 강조되고 있는 데다 재계에서 미·중 무역갈등에 따른 글로벌 반도체 경쟁력 제고를 명분으로 내세운 재계의 요구를 마냥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다만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한 반발도 부담이다. 이에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특별사면 대신 법무부 장관에게 결정권이 있는 가석방이 정치적 부담이 덜 수 있다는 점에서 ‘가석방’론이 더 힘을 받고 있다.

이 부회장의 가석방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재계에서는 사면에 대한 기대감도 놓지 않고 있다.

그동안 재계는 반도체 시장의 글로벌 경쟁에서 총수 역할론을 강조하며 이 부회장의 가석방보다는 사면을 꾸준히 요구해왔다. 가석방의 경우 잔여 형기가 남아 취업 제한 등 경영 활동에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는 대신 사면은 형이 즉시 면제돼 곧바로 경영 복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지난달 14일 경총 회장단 회의에서 “청와대와 국무총리에게 이 부회장의 사면을 건의했다”며 “글로벌 반도체 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시기에 이 부회장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하루빨리 만들어 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의 사면이나 가석방 모두 법질서 근간을 훼손하는 부적절한 결정이라는 비판 또한 거세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인권·시민사회 단체들이 지난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이재용 사면·가석방 반대 전국동시다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뉴시스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인권·시민사회 단체들이 지난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이재용 사면·가석방 반대 전국동시다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뉴시스

시민사회, 반발 확산...불법승계 등 남은 재판도 변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은 지난 21일 성명을 내고 “이 부회장의 가석방 심사대상 포함은 매우 부적절하다”며 법무부가 심사대상에서 즉각 배제할 것을 촉구했다.

경실련은 “이 부회장의 범죄행위는 중대한 경제범죄이자 대한민국 헌정사상 최초의 대통령 탄핵을 가져온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이자 나아가 재벌의 경영 세습과 사익편취를 위한 개인범죄”라며 이같이 주장했다.

특히 기업 경쟁력을 이유로 이 부회장의 사면이나 가석방이 결정되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도 이어졌다.

경실련은 “(이 부회장의)사면과 가석방을 주장하는 측은 마치 이 부회장 범죄가 삼성 경영 활동 과정에서 발생한 것처럼 호도하는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며 “결국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재벌총수에게 또다시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명목으로 가석방을 허용한다면 대한민국 사법정의와 법치주의는 무너지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참여연대 또한 지난 18일 발표한 사면 및 가석방 반대 의견서에서 “상법상 주식회사의 경영 결정은 이사회를 비롯한 전문경영인이 내리는 것으로, 제왕적 총수가 독단적으로 내리는 것이 아니다”라며 “이는 이 부회장이 감옥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의 실적이 지속적으로 우수한 결과를 나타낸 것에서 알 수 있다. 이재용 부회장의 사면 및 가석방에 대해 일말의 고려조차 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이 부회장이 현재 또 다른 중대범죄로 재판을 받고 있는 점도 가석방 반대 이유로 제기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삼성그룹 불법 승계 의혹 사건과 프로포폴 불법 투약 사건으로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앞서 전성인 홍익대 교수와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 등 학계·시민단체 지식인 781명은 지난 18일 발표한 선언문을 통해 “국정농단의 위중한 죄를 저지르고 아직 다른 사건에 대해 사법적 판단이 종결되지 않은 이 전 부회장에 대한 특별사면과 가석방은 이 나라 법치주의의 근간과 공정의 시대가치를 무너뜨리는 처사로 대단히 부적절하다”며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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