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세진 기자】 서울역을 오가는 기차를 기다리는 그 곳엔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꽤 보였다. 가만히 앉아 시간을 죽이고 있는 사람들이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계단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미 더러워질 대로 더러워진 바지인 탓에 계단이 지저분하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가만히 앉아 사람들을 구경했다. 저 앞에 이어폰을 꽂은 채 휴대폰 게임을 하는 사람이 있다. 또 저 옆엔 기차가 도착하는 시각이 적힌 전광판을 바라보며 움직일 채비를 하는 사람도 있다. 저 멀리에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웃고 떠드는 사람들도 있었다. 누군가와 통화하며 바삐 움직이는 사람도 있었다. 참 다들 바쁘고 치열하게 살고 있었다.

나는 가만히 앉아있는 그 사람들이 비슷한 처지라 생각했다. 잠시나마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실상은 나와 전혀 비슷하지 않았다. 그들에겐 목적지가 있었다. 어디론가 가기 위해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다. 분명한 목적지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에겐 목적지가 없다. 나와 함께 앉아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사라진다. 그 자리를 또 다른 사람들이 하나둘 채우기 시작한다. 그 과정이 서너 번 반복되자 엉덩이와 허리가 쑤시기 시작했다. 편히 기대앉아있기에 계단의 폭은 너무 좁았다. 하지만 나에겐 뾰족한 수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냥 참을 수밖에 없었다.

시간을 보니 30분도 채 지나지 않았다. 꽤 많은 사람이 빠르게 오갔는데 정작 시간은 천천히 흘러갔다. 가만히 앉아 누군가가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게 이토록 힘든 일인지 나는 미처 몰랐다. 나는 문득 ’나도 저렇게 바쁘고 살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쁘게 사는 사람들의 시간은 부족할 만큼 빨리 흘러간다. 하지만 나의 시간은 넘쳐날 만큼 느리게 흘러간다. 똑같은 24시간을 누리지만 전혀 다른 24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런 생각도 잠시 또다시 엉덩이와 허리가 아프기 시작한다. 괜히 일어서서 스트레칭을 한다. 마치 탑승해야 할 기차가 도착 한 사람처럼 몸을 이리저리 풀어댔다. 그러곤 다시 멋쩍게 그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비둘기 한 마리가 나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아니 전국에서 비둘기와 가장 가깝게 지내는 사람이 누구라 생각하는가. 나는 그 답을 알고 있다. 서울역을 오갈 때 마다 그 모습을 봐왔기에 나는 그 누구보다 답을 잘 안다. 짐작했겠지만, 답은 바로 노숙인이다. 거리에 앉아 식사할 때도 노숙인은 비둘기를 피하지 않는다. 되려 먹던 음식을 잘게 잘라 나눠주기도 한다. 꿀맛 같은 낮잠을 잘 때도 비둘기는 노숙인 근처를 서성인다. 노숙인은 익숙하다는 듯 아랑곳 하지 않고 단잠에 빠져든다. 노숙인과 비둘기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그런 비둘기가 계단에 앉아 있는 나에게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나를 피하던 사람들과 달리 비둘기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나에게 다가왔다. 순간 묘한 기분이 들었다. 저 수많은 사람 사이에서 왜 자신의 근처를 배회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비둘기를 피하거나 멀리 쫓아내기에 자신을 찾아온 게 아니겠냐는 웃픈 짐작을 한다. 가만 보니 비둘기도 나와 처지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동병상련이랄까, 그런 감정이 울컥울컥 올라왔다. ’너도 여러모로 참 힘들겠다.’ 나는 비둘기에게 속마음을 전했다. 전해질 리는 없겠지만 말이다.

그간 봐왔던 노숙인들이 그랬듯 나도 비둘기를 굳이 쫓아내지 않았다. 심심했던 참에 오히려 잘됐다. 비둘기는 나를 바라보고 나는 비둘기를 바라본다. 문득, 텅 빈 주머니에 오전에 받았던 빵부스러기라도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저 비둘기도 나와 같이 수도 없이 거리를 거닐 것이다. 배가 고프니 괜스레 사람 주위를 서성이거나 이따금 바닥에 떨어진 찌꺼기들을 열심히 부리로 쪼아댈 것이다. 그러다 훠이훠이 가로지르는 사람의 손에 놀라 저 멀리 날아갈 것이다. 나에게 얻어먹을 것이 없음을 알아차렸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비둘기는 묵묵히 다른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멀어져가는 비둘기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서서히 작아지는 비둘기를 보며 쟤는 머물 집이 있을까라는 멍청한 생각을 잠시 했다.

코로나 음성 판정 확인서가 내 발목을 잡았다

비둘기와의 아쉬운 작별을 뒤로한 채 나는 다시 시간을 확인했다. 어느새 오후 4시가 다 됐다. 생각보다 꽤 시간이 흘렀다. 조금만 더 버티면 기다리고 기다리던 저녁을 먹을 수 있다는 희망이 벅차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부푼 희망을 안고 서울역 광장으로 향한다. 땀도 어느 정도 식었으니 남은 1시간가량 또 거리를 거닐 생각에서다. 여전히 뙤약볕이 내리쬐는 서울역 광장에서 고개를 돌리자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서울로가 보였다. 지방에서 올라온 나는 서울로가 궁금했다. 서울로를 유유자적 거닐다 저녁 식사를 위한 줄을 서면 시간이 얼추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그토록 궁금하던 서울로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서울로가 보였다. 오래 걷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나는 성큼성큼 서울로를 향해 걸어갔다. 서울로를 향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거대한 다리보다, 다리가 만들어 준 그늘에서 더위를 피하고 있는 자그마한 노숙인이 점점 더 또렷하게 보였다.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노숙인들이 계속해서 눈에 밟혔다. 그늘 속에는 불볕더위에 살갗이 빨갛게 타버린 노숙인들이 가득했다. 나의 팔을 내려다봤다. 나의 팔도 서서히 노숙인들과 같은 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살이 타는 것은 나에게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1시간만 버티면 저녁을 먹을 수 있기에 이 정도 쯤이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나는 노숙인을 못 본 척했다. 내가 그들을 도울 방법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서울로를 향해 걸을 뿐이다. 서울로 근처에 다가서자 원통 모양의 엘리베이터가 보였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 버튼을 살포시 누른다. 엘리베이터 문은 서서히 닫혔고, 나는 창밖을 내다봤다. 그러곤 다시금 시간을 확인한다.

시간은 어느덧 4시30분, 저녁 시간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저녁을 먹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다. 누군가 ’톡’ 하고 건드리면 ’펑’ 하고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나의 가슴속엔 시한폭탄이 설치된 것만 같았다. 5시 만을 기다리는 시한폭탄. 나의 머릿속엔 수만 가지 생각이 오갔다. ’물은 주려나?’, ’에어컨은 틀려있겠지?’, ’메뉴가 뭘까?’, ’혹시 두 그릇 먹어도 되려나?’, ’텃세만 없었으면 좋겠다.’ 등 어찌 보면 소박하디 소박한 가벼운 주제의 잡념들이 나의 희망에 보란 듯이 기름을 들이붓고 있었다. 나는 혹여나 밥이 다 떨어질까 후다닥 무료급식소를 향해 뜀박질을 시작했다. 가슴 한편엔 정확히 5시에 맞춰놓은 시한폭탄을 안은 채로 말이다.

저 멀리 무료급식소가 보였다. 줄도 얼마 없다. 기다리지 않아도 바로 식사를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다소 들뜬 목소리로 입구를 지키고 있는 직원에게 물었다. “저도 식사를 할 수 있나요?” 직원은 나를 위아래로 찬찬히 훑어보고는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코로나 음성 판정 확인서 있으세요?” 나는 순간 얼어붙었다. 코로나 음성 판정 확인서라니, 그건 노숙인이 건네준 보물지도에 쓰여있지 않았다. 필요하다 적혀있었더라면 분명 준비를 했을 것이다. 나는 열도 나지 않았다. 흐르는 땀은 단순히 더위 탓이다. 절대 열이 나지 않았다. 기침은 물론 콧물조차 흐르지 않았다. 나에겐 아픈 곳이 없었다. 5시만을 기다려온 나에게 사회는 냉정했다. 머리가 하얗게 변했다. 눈앞의 이 직원이 사무치도록 미워졌다.

나는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 방법이 최선이라 생각했다. “그건 따로 없는데….“ 우물쭈물 얼버무리자 직원은 “없으면 식사가 안 되세요”라며 단칼에 거절했다. 사실 직원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정부 지침이 그렇다니 그걸 지킬 뿐이다. 단순히 사람과 사람 간의 온정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이해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포기는 쉽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기대를 떨쳐버릴 수 없었다. 가슴속 시한폭탄은 서서히 꺼져갔다. 나는 지푸라기도 잡는 심정으로 되물었다. 장난감을 앞에 둔 아이처럼 계속해서 떼를 썼다. 나는 저녁 식사 한 끼 앞에서 철없는 갓난아이가 되어버렸다.

“그게 꼭 있어야 하나요?” 나는 간절하게 직원을 바라봤다. 직원은 서서히 귀찮은 내색을 보이며 “네”라는 짧은 대답을 전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나에게 사회는 지독할 만큼 냉정했다. 그 자그마한 종이가 없다는 이유로 나는 저녁 식사를 하지 못했다. 나는 스스로를 자책했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았던 시한폭탄이 꺼졌고, 나는 또다시 목적지를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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