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몸 하나 뉠 둥지 조차 없는 사람

‘나라에서 인정하지 않는 사람’, 그는 자신을 그렇게 칭했다.

다소 앳돼 보이는 김현정(가명·32)씨는 거리생활을 이어 온지 어언 10년째다. 가족에 대한 기억은 그리 좋지 않다. 이유도 모른 채 놀이터에 수차례 버려진 탓일까. 그에겐 가족의 품이 전혀 따뜻하지 않았다. 오히려 뼈가 시릴 만큼 차가웠다.

어두운 유년기를 거쳐 20살 성인이 되던 해, 그는 둥지에서 떨어졌다. 그에게 있어 20살의 기억은 잊으래야 잊을 수 없다. 아직 사회로 나갈 준비가 되지 않았지만 그는 둥지 아래로 끝없이 추락했다. 하나뿐인 가족들은 그를 매정하게 둥지 밖으로 내쳤고, 그는 그렇게 거리의 삶을 살게 됐다. 갈매기도 제집이 있다는 속담과 같이 하찮은 까마귀나 까치들도 다 제집이 있는 법인데, 그에겐 제 몸 하나 뉠 둥지 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나는 이제 뭘 해야 하는 걸까’

그는 살아남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모텔 객실청소, 편의점 알바, 전단지 알바 등 면접을 볼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돌아다녔다. 아쉽게도 그를 선택한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살기 위해 옷과 생필품을 훔친 것이 화근이다. ‘좀도둑’, 사회가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좀도둑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전과자라는 주홍글씨는 그가 사회에 조심스레 발을 딛는 것 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금전적으로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거리의 삶이 주는 무게가 그의 신체 곳곳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결국 스물 넷, 젊은 나이에 당뇨를 달고 살게 됐다. 치료가 필요했다. 돈이 필요했던 그는 당시 유행하던 ‘지라시 대출’에 손을 댔다. 지라시 대출은 명함에 적혀있는 전화로만 대출을 할 수 있는 불법사채(미등록 대부업)다.

급한 불을 끄고자 빌린 대출은 더 큰 화를 불러왔다.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는 사채 빚은 삶에 대한 의지를 꺾어버리기에 충분했다. 서서히 늘어나는 숫자는 그의 삶을 움켜쥔 채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더욱 더 깊고 어두운 곳으로 숨어들어갔다. 그는 그렇게 사회와 단절된 채 은둔생활을 이어갔다.

쓰레기통에 처박힌 랍스터와 고기 그리고 나

그는 거리 곳곳에 있는 쓰레기통을 뒤적거리며 하루를 버틸 음식을 찾았다. 배고픔은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버려지는 음식의 질은 지역마다 천차만별이다. 주로 비싼 음식이 버려지는 곳은 강남역 인근이다. 운이 좋은 날에는 이름 모를 누군가가 먹다 버린 랍스터 조각과 고기를 발견할 수 있다.

비싼 음식을 찾았다는 기쁨도 잠시, 당뇨가 그의 발목을 잡는다. 버려진 쓰레기를 먹으면 먹을수록, 혹은 굶으면 굶을수록 손끝과 발끝이 이상하리 만큼 저리다. 밥다운 밥이 먹고싶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밥과 건더기가 푸짐하게 올라간 국이면 됐다. 임금님 수라상 같은 식사는 바라지도 않았다. 이를 위해선 결국 ‘돈’이 필요했다.

‘꼬지’(노숙인이 구걸을 칭하는 은어)하기 좋은 장소는 이미 다른 노숙인이 터를 잡고 있었다. 괜히 그 근처를 어슬렁 거리다 욕과 발길질을 보기 좋게 얻어먹었다. 텃세다. 노숙인들의 텃세는 생각보다 드셌다. 구걸하기 안성맞춤인 장소는 그들이 가진 몇 없는 벌이 수단이자 노른자 땅이다. 이를 뺏기지 않으려 더욱 거세게 반발한 것이다.

”계속해서 쓰레기를 먹고 살 순 없잖아요?”

그는 노숙인의 텃세를 피해 젊은 이들이 많은 번화가 ‘건대입구’로 향했다. 처음에는 꽤 벌이가 괜찮았다. 젊은 이들이 주는 동전, 직장인이 주는 지폐는 진눈깨비 쌓이듯 조금씩 쌓여갔다. 운이 좋은 날이면 하루에 몇 만원이라는 돈이 수중에 쥐어졌다. 10년도 더 된 휴대폰 요금을 내고 가끔 밥을 사먹을 수 있는 정도. 그러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는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젊은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구걸을 시작했다. 늘 그랬듯 술에 취해 담배를 피고 있는 청년들에게 다가갔다. 구걸을 위해 말을 걸자 둔탁한 소리와 함께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그러곤 바닥에 내동댕이 쳐졌다. 술에 취한 젊은 사람이 그를 무차별적으로 폭행하기 시작했다. 손 쓸 틈도 없이 그는 그렇게 맞고만 있었다.

지옥 같은 시간이 지나고 그를 폭행했던 젊은 청년은 유유히 사라졌다. 멀어져가는 젊은 청년을 보며 그는 다급히 경찰에 신고했다. 그러나 신고를 해도 별 소득은 없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범인이 잡혔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자 알 수 없는 자괴감이 들었다. 자신이 노숙인이라 일이 이렇게 된 것이라는 슬픈 생각에 잠겼다.

동전과 바꾼 성(性)...“동전이 없으면 그날 또 굶어야 하잖아요”

그는 숱한 폭행에도 건대 입구를 벗어날 수 없었다. 돈이 뭐기에. 그는 무작정 구걸하는 것 보다 다른 것을 선택했다. 자신의 성과 동전을 맞바꾸는 성매매를 선택한 것이다. 남들이 자신에게 돌팔매질을 한 대도 어쩔 수 없었다. 이미 버림받는 것에 익숙해진 그다. 결국, 그는 스스로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육체와 영혼이 망가지면 망가질수록 동전은 쌓여만 갔다. 그는 자그마한 그 동전들로 하루하루 버텨냈다. 하루는 젊은, 또 하루는 나이가 많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과 동전 하나를 두고 한 침대에 남겨졌다. 그 시간이 6개월이나 지속됐다. 그렇게 아무런 감정 없는 인형과도 같은 시간이 끝남과 동시에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화대(花代)로 동전을 요구했다.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결과는 평소와 달랐다. 그는 또 이름 모를 젊은이에게 무자비하게 폭행당했다.

“화대로 요구한 동전? 주기 싫으면 못주겠다 하고 끝내면 되는데 왜 나를 막 때리는지 모르겠어요.”

거리에 남겨진 순간, 불안감은 동반자가 된다

그는 결국 건대 입구를 떠났다. 도저히 견딜 자신이 없었다. 두 어깨를 짓누르는 가방과 양손 가득 들린 짐 보다 그를 더욱 힘들게 만드는 것은 주위의 시선이었다. 그는 모두가 자신을 째려보는 것 같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리고 언제 자신에게 해를 끼칠지 몰라 항상 불안에 떨었다.

건대 입구에서 벗어나 서울역으로 향한 그는 또다시 텃세에 시달려야만 했다. 고된 몸을 잠시 뉘이기 위해 서울역 지하에서 쪽잠을 청하던 중 누군가 발로 툭툭 걷어찬다. 여기서 자지 말라는 것이다. 자기네들 무리에 끼워주기 싫다는 이유로 그는 거리에서의 쪽잠마저 눈치를 봐야했다. 그는 그러려니 자리를 옮긴다. 괜히 엮어봤자 피차 피곤한 일만 생길터이니 자리를 피하는 것이다.

우연히 속한 노숙인 무리는 지옥과도 같았다. 서울역 노숙자와 그 노숙자와 어울려 다니는 양아치들은 무리 속에 들어온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노숙인 무리에 들어가서라도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었던 그는 2주간 모텔에 끌려 다녔다. 핸드폰도 먹통이었다. 대신 신고해줄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하루하루 먹고 사는게 바쁘니까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 그가 덤덤하게 말하는 듯 보였지만 이미 속은 까맣게 타있었다.

그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용기 내 노숙인 자활시설을 찾아갔으나 쉽사리 적응하지 못했다. 오랜 거리생활에 익숙해진 탓이다. 또, 자활시설 내의 노숙인들의 텃세는 그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젊은 여자라는 이유로, 또 내성적이라는 이유로 무리에서 항상 배척돼오던 그다. 시설 관계자들에게 이를 거듭 호소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앓아오던 우울증, 피해망상 등 정신적인 문제는 더욱 심해져갔다. 시설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그를 욕하는 것만 같았다. 사람들이 무서웠다. 결국, 그는 노숙인 자활 시설에서 도망쳤다.

이런 생활이 반복되자 그는 더욱 더 아래로, 누구의 눈길도 닿지 않는 곳으로 향했다. 가급적 사람이 없는 곳을 선호한다는 그는 건물 상가에 위치한 장애인 화장실에서 지낸다. 건물청소부가 청소하는 아침시간을 제외하고 대다수의 시간을 그곳에서 보낸다. 거리에 남겨진 그는 오늘도 그렇게 지낸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H세대 기획 시리즈 중 ‘갈매기도 집이 있다’편은 총 4개의 사례로 구성됐으며, 이후 다양한 전문가들과 심층적으로 해결방안을 강구하는 연재로 이어질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