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우 칼럼니스트<br>▸철학박사<br>▸​​상지대학교 조교수<br>
▲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조교수

연좌제(緣坐制)란 “범죄자와 일정한 친족 관계가 있는 자에게 연대적으로 그 범죄의 형사 책임을 지우는 제도”를 뜻한다. “삼족을 멸한다”라는 말로 대표되는 근대 이전의 연좌제는 반역죄를 지은 사람에게 가장 심하게 가해졌으며, 주로 3촌의 근친이나 처첩에게까지 가해졌다. 우리나라에서 연좌제는 1980년대 이후 사실상 없어졌다고는 하지만, 당시까지도 민주화 운동에 몸을 던졌거나, 억울하게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한 사람에게는 그 가족의 취업 제한 등이 가해졌다. 국가 차원이 아니더라도 사람들 사이에서 “빨갱이”, “간첩”이라는 손가락질을 받는 민간 차원(?)의 연좌제는 상당 기간 계속되었다.

여기서 지난 추석 연휴 때 있었던 교통사고 현장으로 가보자.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 날이었던 지난 2021년 9월 18일,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동 서울성모병원 사거리에서 벤츠 한 대가 옆 차로의 차량과 접촉사고를 일으켰다. 현장에 경찰이 출동했고, 벤츠 운전자에게 음주 측정을 요구했으나, 벤츠 운전자는 음주측정을 거부하고 경찰관을 머리로 들이받는 등 폭행을 가했다. 음주 측정 거부, 사건 조사 중인 경찰관 폭행에 따른 특수 공무집행방해의 죄목에 해당하는 행위였다. 벤츠 운전자는 래퍼 노엘(본명 장용준)이었다. 그는 이전에도 음주운전과 운전자 바꿔치기를 시도해서 증거인멸을 시도한 것이 유죄로 인정되어 집행유예를 선고받았고 면허도 취소된 상태였다. 이것은 노엘이 무면허운전을 했으며, 집행유예 상태에서 동일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의미다. 다른 사람이면 구속 수사, 나아가서 집행유예가 취소되고 수감되었을텐데, 이상하게도 노엘은 “주취로 인한 수사 불가”를 이유로 귀가조치되었다. 그리고 이 칼럼을 쓰는 현재까지도 조사나 구속 등에 관한 별다른 소식이 없다. 노엘은 국민의힘 소속으로 사상구를 지역구로 둔 장제원 의원의 아들이다.

지금까지 노엘이 했던 여러 가지 범죄와 sns에서의 막말 등으로 쌓였던 시민들의 분노가 폭발했고, 그 양상이 심상치 않다. 인터넷 힙합 동호회에서는 노엘의 퇴출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고,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는 장제원 의원의 국회의원직 박탈까지 요구하는 청원이 등장해서 사람들의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그리고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장제원 의원에게 “아잘키”, 즉 “아들 잘 키운 장제원”이라는 비아냥이 등장했다. 장제원 의원의 아들로부터 촉발된 국민들의 분노가 쌓여서 결국 장제원 의원의 정치 생명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 장제원 의원은 최근까지 국민의힘의 대통령 선거 예비후보인 윤석열 후보의 캠프에서 총괄실장으로 활동하다가, 아들의 범죄로 인해 지난 28일 그 직을 내려놓았다.

한국 현대사에서 자식 문제로 자신의 정치 생활에 발목이 잡힌 정치인들은 상당수 존재한다.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서 한평생 민주화운동에 헌신하다가 3당 합당으로 정치적 승부사라는 평가와 자신의 대통령 당선 욕심으로 한국 정치를 퇴행시켰다는 비판을 동시에 받는 김영삼 대통령은 임기 중 아들인 김현철씨가 각종 비리와 외압 혐의로 형사 구속되자 “아들의 허물은 곧 아비의 허물”이라며 평생 몇 번 하지 않았을 것 같은 사과를 했다. 김영삼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한평생 목숨을 걸고 민주화 운동에 몸을 던졌던 김대중 대통령도 정권 말 세 아들이 비리 사건에 연루되면서 대국민 사과를 했고, 국민의 정부는 “게이트 공화국”이라는 비아냥을 들었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서울 교육감으로 출마했던 고승덕은 높은 학력과 인지도로 인해 당선이 유력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고승덕의 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sns에 ‘고승덕 후보는 자신의 자녀의 교육에 참여하기는커녕 연락조차 하지 않았다. 서울시교육감 후보로서 자질이 없다.’는 글을 남긴 이후, 교육감 당선이 유리했던 선거 판세는 한순간에 뒤집어졌다. 고승덕은 당시 마지막 유세 현장에서 “못난 아버지를 둔 딸에게 정말 미안하다!”라고 외쳤으나, 불리해진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낙선했다. 그리고, 유세 현장의 외침은 인터넷 상에서 영원한 놀림감으로 박제되었다. 경기도지사였던 남경필은 아들의 군대에서의 구타와 성폭력, 마약 밀반입과 투약 혐의 등으로 인기가 급락하여,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낙선하고 정계에서 은퇴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7막7장』이라는 책의 주인공으로 수려한 외모와 높은 학력, 그리고 좋은 매너로 대선 주자로 급부상했던 홍정욱 전 의원은 딸의 마약 밀반입 및 사법부의 봐주기 논란으로 정치계에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

연좌제는 근대 이전과 이후를 나누는 잣대 중 하나다. 상당수의 현대 국가에서 가족의 잘못과 정치인의 정치 행보는 구분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유권자들이 『대학(大學)』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으로 지목되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정치인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 것도 한국 정치의 현실이다.

2022년 대통령 선거로 선거의 계절이 다시 돌아왔다. 후보들의 가정, 후보를 지원하는 정치인들의 가정까지 민간 차원의 검증이 시작되면서, 많은 정치인들의 가족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연좌제 반대와 수신제가치국평천하 중 무엇을 선택할지의 여부는 결국 유권자의 몫이다. 단, 무엇을 선택하든지 궁극적으로 최종 책임은 유권자의 삶으로 지게 된다는 것도 변치 않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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