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우 칼럼니스트▸철학박사▸​​상지대학교 조교수
▲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조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지난 11월 1일 안철수 전 의원이 대통령 출마를 선언했다. 2012년 중도하차, 2017년 출마 후 득표율 3위를 기록하며 낙선한 이후 세 번째 출마다.

간선제로 치러졌던 대통령선거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대선마다 진보-보수로 분류되는 거대 양당의 대결 국면이 펼쳐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고 거대 양당의 후보만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대통령 후보로 출마해 거대 양당의 독식을 비판하며 진보-보수와 같은 정치적 성향을 표방하지 않는 후보가 나와서 유권자의 주목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후보들을 통틀어서 보통 “제3지대”라고 부른다.

한국현대사에서 제3지대 후보의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었다. 정주영은 통일한국당을 창당하고 1992년 제14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해 16.3%의 득표율로 3위를 기록했다.(1위 김영삼, 2위 김대중 후보) 당시 유권자들 가운데 3김 정치에 신물을 느꼈던 사람들이 정주영에게 표를 던진 결과였다. 특히, 대통령선거 이전에 있었던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31명의 당선자를 배출하며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는 등 돌풍을 일으켰다. 최불암, 강부자, 이주일 등 유명 연예인 영입, 지금으로서도 파격적인 국가보안법 폐지, 반값 아파트 등의 공약도 통일국민당 원내진출의 원인이 됐다. 그러나 이후 현대그룹 세무조사, 정주영 본인에 대한 수사 등으로 정주영은 정계에서 은퇴하고 통일국민당은 김종필의 자유민주연합에 흡수됐다.

1992년 제14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한 또다른 제3지대 후보로 박찬종 전 의원도 꼽힌다. 경남중, 경기고, 서울대 법대 출신에 고시 3관왕 등 한국 유권자가 좋아하는 “엘리트” 이미지를 갖추었던 박찬종은 유신독재 시절 검사로 일하다가 공화당에 입당했다. 그러나 10.26 사건 이후 공화당의 개혁을 주장하며 정풍운동을 일으켰다가 제명됐고, 이후 정치적으로 전향한다. 민추협 인권위원장,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던 대학생의 변호 등의 활동을 했고, 김대중과 김영삼이 분열됐을 때 양김의 후보 단일화를 요구하며 삭발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후 3당 야합으로 민주자유당이 탄생하자 꼬마민주당에 합류했다가 탈당했고, 자신이 당을 만들어서 제14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했다. 득표율은 6.4%. 이것은 신당 창당으로 조직력이 없는 상태에서 얻었던 득표율이었기에 박찬종 개인의 인지도만으로 거둔 성과였다. 이후 우유 광고에 출연하는 등 탄탄대로를 걸었고, 지자체 선거 전 서울시장 후보 중 지지율 1위를 기록했으나 낙선했다. 그러던 중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신한국당에 입당해 다시 한번 정치적으로 전향했고,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다가 이회창 후보가 낙선, 자신도 전국구 후보에서 낙선했으며, 이후 잇따른 선거에서 낙선하거나 경선도 통과하지 못했다. 그 결과 박찬종 전 의원에게는 ‘박찬종이 들어가면 당이 깨진다’는 말이 나돌았고, 실제로 박찬종의 창당과 탈당, 입당의 사례가 매우 많다. 최근까지 논란이 된 사건의 변호를 맡고,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독도의 주권이 일본에 넘어간다”고 주장하는 등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행위를 많이 했다.

이후 대표적인 제3지대 후보로 꼽히는 인물은 문국현 전 의원이다. 문국현은 유한킴벌리 대표이사, KT 사외이사로 재직하던 중 2007년 8월 제17대 대통령선거 출마를 선언했고, 창조한국당을 창당해 대선 후보로 추대됐으나, 득표율 5.8%를 기록하고 낙선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정치적 대립에 지쳐 있거나, 이명박과 정동영 중 누구도 뽑고 싶지 않아했던 유권자의 지지를 얻었다. 특히, 과거 이력과 공약이 결합되면서 청렴하고 깨끗한 이미지를 보여주면서, 후보의 공약만 보고 투표를 하는 “블라인딩 보트(Blinding Vote)” 이벤트에서 1위를 기록했다. 이후, 국회의원에 출마해서 당선됐으나, 증여세 탈루 의혹으로 이미지가 실추됐고, 결국 공천헌금 문제로 실형을 선고받으면서 국회의원직을 상실, 피선거권도 박탈됐다.

이외에도 정몽준, 이인제, 고건 등 다양한 인물이 제3지대 후보로 꼽힌다. 그러나 모두 주목만 받았고 실제로 당선된 사례는 없었다. 정치 고관여층이 갈수록 줄어들고 중도층이 많아지는 상황에서도 제3지대 후보가 당선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앞에서 언급한대로 중도층은 정치 고관여층이 아니기 때문에 실제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중도층의 지지를 기반으로 정치에 뛰어드는 제3지대 정치인에게는 치명적이다. 또한, 제3지대 후보들은 정치 신인인 경우가 많다. 이들이 막상 정치에 뛰어들면, 오랫동안 정치판에 몸담았던 노련한 정치인들에게 이용만 당하다가 잊혀지는 경우가 많다. 아울러, 진보-보수 혹은 거대 양당에 대한 비판에 머물고, 시대정신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거나, 실용적인 공약을 제시하지 못하는 후보가 많았고, 설혹 그러한 것을 제시하더라도 언론이 조명해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제3지대가 무의미하진 않다. 제3지대 후보의 꾸준한 등장은 그만큼 기성 정치인과 정당에게 염증을 느끼는 정치인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늘 크기의 구멍이 나중에 거대한 둑을 무너뜨리듯 언젠가 제3지대 후보가 대통령이 되고, 제3지대 정당이 원내 제1당이 될 날이 올 수도 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제3지대 후보가 자신에 대한 지지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냉정함, 자신의 뛰어남 때문이 아닌 시민의 주목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자각하는 겸손한 자세가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정치에 신물을 느끼는 중도층과 시민을 먼저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손익 계산에 치중해 정치적 입장을 자주 변경하면 반드시 잊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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