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우 칼럼니스트<br>▸철학박사<br>​​​​​​​▸​​상지대학교 조교수
▲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조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대통령 선거가 다가올수록 사람들의 관심이 모두 대통령 선거에 쏠리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정당별로 대통령 선거의 최종 후보를 뽑는 경선을 진행 중이고, 이 과정에서 많은 논란이 이어지고 있으며, 후보가 되지 못하는 사람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의 경선은 종료됐고, 나머지 정당은 경선이 진행 중이다.

각 정당의 경선이 진행되면서 한 가지 징크스가 다시 한 번 부각되고 있다. 그것은 “총리는 대통령이 되지 못한다”는 징크스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정세균 전 총리가 중도에 예비 후보에서 사퇴했고, 이낙연 전 총리는 최종 경선에서 고배를 마셨다. 국민의힘에서도 황교안 전 총리가 출마를 선언하고 예비후보로 등록했으나, 컷오프 탈락의 고배를 마셨고, 경선 과정의 부정을 주장하고 있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총리직을 수행한 사람은 수도 없이 많고, 이들 가운데 대권에 도전한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대통령직에 오른 사람은 최규하 전 대통령 단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최규하 전 대통령 역시 10·26으로 인해 갑작스레 박정희가 사망하면서 대통령권한대행을 거쳐 대통령이 되었는데, 당시 헌법상 간접 선거였기 때문에 국민의 직접적인 선택을 받은 대통령이라고 평가하기 쉽지 않은 부분이 있다. 게다가 대통령 취임 후 박정희의 남은 임기 동안만 대통령직이 보장됐고, 그나마도 12·12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신군부의 압박으로 임기를 다 채우지 못했다.

그 외에 대권에 도전한 전직 총리는 김종필을 비롯해 1987년 이후 이회창, 이홍구, 이수성, 이한동, 고건, 이해찬, 정운찬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가운데 김종필은 5·16 군사쿠데타의 주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집권기에는 2인자를 싫어했던 박정희의 정치색으로 인해 “자의반 타의반”이라는 명언을 남기고 외유를 떠난 적도 있을 정도로 권력의 정점에 쉽게 접근하지 못했다. 이후 전두환 신군부 때는 부패한 구 정치세력으로 낙인찍혀서 정치 활동을 하지 못했고, 87년 민주항쟁 이후 신민주공화당 창당으로 정계에 복귀할 수 있었다. 이후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고, 김대중 전대통령과의 “DJP연합”으로 다시 총리에 올랐으나, 끝내 대통령직에 오르진 못했다. 흥미로운 것은 “3당합당”, “DJP연합” 등 김종필 전 총리가 다른 정치 세력과 연대할 때 늘 “내각제”를 조건으로 걸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약속은 늘 휴지 조각이 됐고, 김종필 전 총리는 다시 야당 지도자로 돌아갔다.

대권에 가장 가까이 접근했던 전직 총리는 이회창 전 총리일 것이다. 이회창 전 총리는 김영삼 대통령 집권기 감사원장, 총리를 거치면서 “대쪽” 이미지를 쌓았고, 이로 인해 국민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특히, 총리 시절 김영삼 전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면서 자신만의 이미지를 부각시켰고, 이러한 대립각은 이회창 전 총리가 여당인 신한국당에 입당한 이후에도 계속 됐다. 그러나, 전직 대통령과의 대립각은 자신을 도와줄 우군의 상당수를 잃는 결과를 낳았고, 대쪽 이미지는 군부 독재의 후예이자 부패 세력으로 낙인찍혔던 민정계와의 연대로 퇴색됐다. 게다가 당시 여당의 차떼기 스캔들,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으로 결정적 타격을 입었고, 대통령 선거에서 낙선했다.

전직 총리가 대통령에 당선되지 못한 스캔들은 진보개혁 세력에서도 나타났다. 김종필과 비슷한 “실세 총리”로 꼽혔던 이해찬 전 총리는 참여정부의 산파 역할을 담당했고, 세종시의 설계에 참여했었다. 특히, 국회 대정부질의에서 자신의 정치색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등 기존의 총리와 다른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해찬 총리 역시 골프 파문 등 구설수에 올랐고, 참여정부 당시 여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에 참여했으나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대통령 빼고 다 해본” 고건 전 총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때 대통령 직무 대행을 담당했고, 이로 인해 여권의 유력 대선 주자로 급부상했으며, 대중적 지지를 업고 2006년 대권에 도전장을 냈다. 하지만, 결국 2개월 만인 2007년 1월 스스로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정계에서 은퇴했다.

전직 총리가 대통령까지 올라가지 못한 원인은 무엇일까? 우선, 대통령이 총리를 임명할 때 대통령은 자신의 강한 정치색을 순화할 수 있는 인물을 총리로 지명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총리로 임명된 사람은 자신의 정치색이 강하지 않은 정치인이나 공무원 출신인 경우가 많다. 이러한 사람들은 야생에 가까운 정치판에서 살아남기 쉽지 않다. 또한, 총리라는 자리는 “대독 총리”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정치적 실권이 많지 않으면서도, 국정의 중요 직책이기 때문에 조금만 실수해도 구설수에 오르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위험 부담은 크지만, 잘해도 티가 나지 않는 자리라서 정치인의 입장에서는 대중에게 인기를 얻기 쉽지 않은 자리라는 의미다.

현행 “5년 단임 대통령 중심제”가 유지되는 한 국무총리직은 정치인들에게 “계륵(鷄肋)”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정치인의 정치적 야망 때문에 개헌을 할 수도 없고, 개헌 자체가 쉽지 않다. 그러나, 좋은 정치인이 개인의 야망을 채우지 않고, 헌법 제86조 2항대로 대통령을 잘 보좌하며, 행정에 관하여 행정 각 부서를 통할할 수 있길 바란다. 그럴 수 있다면, 정치인 개인의 야망도 이루어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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