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조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대선을 150여일 남겨놓은 상황에서 다시 대선 후보와 종교 사이의 관계가 화제다. 문제의 발단은 국민의힘 윤석열 예비 후보의 손바닥에 적인 “왕(王)”자였다. 국민의힘 내부 후보 방송 토론회에서 윤석열 후보의 손바닥에 “왕”자가 적힌 것이 캡쳐되면서, 그 글자가 무속인의 비방( 方)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이후 “천공스승”, “은밀한 부위의 침 시술” 등 무속과의 관계를 의심할만한 의혹이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에 윤석열 후보는 일요일에 여의도 순복음교회 예배에 참석하고, 자신의 부인이 바이블의 「구약」을 다 외우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무속 의혹에 대한 대응으로 보인다.

이 사건 이후 필자가 인연을 맺은 무당과 역술인에게 취재한 결과, 무당이나 역술인에 의한 비방일 가능성이 크고, 윤석열 후보의 부인과 장모가 오래전부터 윤석열 후보가 더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도록 무당과 관계를 맺은 것 같다는 주장도 들었다. 이 과정에서, 어떤 무당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 세력이 집권하기 위해서 곳곳을 다니면서 기도하는 무당들이 있다고 주장했다.

필자가 종교학과 종교사를 연구하다 보니, 무당이나 역술가로부터 정치인들이 무속인들에게 문의, 혹은 의존했다는 증언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각종 선거 전에 유명한 무당의 신당(神堂)이나 역술인의 점집에 정치인의 가족이나 선거 캠프에 속해있는 사람들이 많이 방문해서 당선 여부나 당선되기 위한 방책을 묻는 것은 아는 사람은 아는 사실이다.

역사적으로 정치인이 특정 선거에서 종교적인 힘을 빌었다는 소문이 돌았던 대표적인 사례는 노태우의 일화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대통령 직선제로 헌법이 개정된 후, 노태우는 당시 민주정의당의 대통령 후보로 추대됐고, 이후 선거에서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런데, 노태우가 대통령직에서 퇴임한 뒤인 1995년 11월 2일, 기독법률센터 변호사와 목사 7명이 “1983년 이전 발행된 10원짜리 주화의 다보탑에는 불상이 조각돼있지 않으나, 1983년 이후 발행된 것은 불상이 새겨져 있다”고 주장하면서, 정교분리 원칙에 위배되기 때문에 불상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이 발생했다. 심지어 이들은 당국에서 이 불상을 제거하지 않으면, 헌법소원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당시 10원짜리 주화 도안의 변경을 지시한 사람이 노태우라는 소문이 돌았다. 소문의 내용은 노태우의 어머니가 역술인을 찾아가서 어떻게 하면 아들이 대통령이 될 수 있는지 물었고, 그 역술인은 ‘전 국민이 불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충고했는데, 이에 대한 고육지책으로 10원짜리 동전에 불상을 새겼다는 것이었다.

이런 소문이 돌만도 했다. 노태우가 전두환과 함께 12.12 쿠데타의 주역이었고, 전두환이 대통령직에 오른 후 장관직을 두루 거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문의 진상은 한국은행의 해명으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한국은행은 다보탑 내부에 조각된 물체는 불상이 아니라, 돌사자상이라고 설명했고, 실제 다보탑 한쪽 면 계단에는 돌사자상이 있었다. 참고로, 원래 다보탑의 4면에 모두 돌사자상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3기는 도난당했고, 1기만 남았다.

이 사건은 당대 실권자를 향한 각 종교의 구애 경쟁으로 인해 발생한 해프닝이었다. 당시, 개신교는 신군부의 집권 이후 국가조찬기도회를 비롯한 다양한 행사를 벌여서 신군부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잇따른 대형 집회를 통해 신군부의 나팔수 역할을 담당했다. 그리고, 신군부로부터 상당한 특혜를 입었다. 물론, 일부 목사들과 개신교계 언론, 개신교 신앙을 가진 학자들이 독재에 항거하고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지만, 상당수의 대형 교회는 신군부에 가깝거나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 조계종은 신군부 집권 이후 정권과 거리를 두고 심지어 저항하는 모습까지 보였으나, 그 결과, 신군부에 비협조적이었던 송월주 당시 조계종 총무원장을 비롯한 많은 승려들이 보안사에 끌려가서 고문을 당하고, 군인과 경찰이 조계사를 침탈한 사건인 10.27 법난을 겪었다. 이후 조계종은 정권에게 고분고분했고, 특히 불자라는 평가를 받은 노태우가 대통령 후보가 되자, 조계종이 앞장서서 불자 대통령 만들기 활동을 벌였다.

정치인들은 모든 종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또한, 정치인이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이 된 후 특정 종교에 편향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경우, 그 정치인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다. 그러나,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정치인 당사자나 주변 사람이 종교의 힘에 의존하는 일도 많다. 그러나, 정치인에게는 공식적인 영역에서 보이는 종교와의 관계와 다른 비공식적인 무엇인가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이 있다. 최선을 다해 인간으로서 할 일을 하고, 하늘의 명을 기다린다는 뜻이다. 정치인이 국민을 위해 어떻게 정치할지 연구하고 입장을 밝힌 후 각종 종교의 힘에 기댄다면 웃고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치적 역량이 부족한 상태에서 종교의 힘에 기댄 모습이 드러난다면, 그 정치인은 국민으로부터 자신의 포부를 펼칠 기회를 얻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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