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우 칼럼니스트▸철학박사▸​​상지대학교 조교수
▲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조교수

2021년이 저물고 있다. 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는 표현을 매년 써서 지겨울 법도 한데, 이 말만큼 잘 맞는 표현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의 삶이 그렇다. 난관을 이겨내고, 작은 일에 기쁨을 느끼며, 일상을 재조명하는 것이 생존이라는 의미다. 역사가 되어가고 있는 2021년을 정리하며, 2021년의 키워드를 소개하겠다.

2020년도 그랬지만, 2021년도 코로나19로 점철됐다. 2020년 초에도 팬데믹 종료 직전까지 갔다가 한 종교에서의 집단 감염으로 확산되더니, 2021년에도 단계적 일상회복으로의 변화를 시도하다가 확진자 증가로 좌절됐다. 그리고 결국, 우리는 주변에서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 치료 방법 없는 바이러스와의 끝이 언제인지 모를 싸움으로 1년을 보냈다. 사람들은 2회 이상 백신을 접종받아야 일상을 누릴 수 있고, 이러한 정책에 대해 반발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많이 조명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국민의 권리와 의무, 자유와 책임’이라는 헌법 전문에 명시된 명제를 놓고 사람들 사이의 의견이 갈리고 있다. 팬데믹 상황에서 건강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지 말아야 한다는 명제의 당연함과 교육권, 자유권(특히, 종교의 자유)와의 대립이 이어지고 있다. 이 상황에서 ‘민주주의’라는 명제를 다시 생각하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다. 한 때 ‘새로운 파쇼’, ‘팬데믹 상황에서 등장한 전체주의’라는 비난을 딛고 ‘K-방역’이라는 이름을 수여받으며 코로나 방역 모범국으로 추앙받던 한국의 방역은 큰 위기에 봉착한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이미 방역 체계가 붕괴되었고, 확진자 감추기에 급급했던 이웃 나라에 비하면 몇 차례 삐끗한 것을 빼면 한국의 방역은 비교적 우수한 상황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많은 의료인과 소상공인의 큰 희생이 있었다는 점이 큰 문제다. 이것은 단순히 팬데믹 상황에서 갑작스레 닥친 위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세금을 거두는 국가가 응당 해야 하는 복지는 어디까지인지, 신자유주의가 불러온 소위 ‘능력 위주의 사회’에서 ‘능력’은 도대체 무엇인지, ‘돈’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지 등 오랜 시간 누적돼 온 것이 팬데믹을 기점으로 터진 것은 아닐까?

‘능력’ 얘기가 나온 김에 추가할 올해의 키워드는 ‘공정’이다. 조국 전 장관 딸의 의학전문대학원 입학을 위해 표창장이 위조됐다는 의혹에서 비롯된 공정이라는 말은 대선 정국을 타고 다시 생각해 볼 말이 됐다. 그리고, ‘공정’을 시대정신으로 보고, 정권 교체를 통해 공정한 사회를 만들겠다며 전직 검찰총장이 야당의 대통령 후보로 등장했다. 그러나, 그 ‘공정’이라는 키워드가 부메랑으로 야당 대선후보에게 돌아가고, 예전에 수구 정당 대변인이 만들었던 내로남불, 즉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이 재소환됐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공정”이라는 단어 역시 조국 전 장관 딸이 받았다는 표창장 문제나 대선 정국 때문에 갑자기 등장한 말이 아니다. 학력과 학벌을 중요하게 여기는 한국 사회,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없는 환경, 소위 “돈이 되고”, “취업이 잘 되는” 전공만 각광 받고 인문사회과학, 순수자연과학, 순수예술은 찬밥 신세가 돼 버렸으며, 대학은 이제 상아탑이 아닌 ‘취업사관학교’가 되어버린 한국 교육의 누적된 문제가 폭발한 결과다.

이러한 현실은 결국 앞에서 언급한 ‘돈’의 문제와 연결되고, ‘돈’은 다시 ‘부동산’이라는 키워드와 연결된다. 여당 대선 후보가 성남시장 재직 시절 발생했다는 소위 ‘대장동 의혹’, 국민들의 주거 문제 중 일정 부분을 책임지는 공공기관인 LH 직원의 부동산 투기는 사람들에게 혼란과 아픔을 줬다. 그리고 대선 정국과 맞물려서 거대 양당의 대선 후보들은 앞 다퉈 부동산 문제 해결을 위한 공약을 제시하고 있다. 문제는 앞에서 언급한 대장동 의혹은 아직 다 풀리지 않았고, LH 직원의 부동산 투기는 용두사미(龍頭蛇尾)가 되었다는 점이다.

이 문제 역시 대선 정국이나 특정 사건으로 인해 일어난 사건이 아니다. 이제 과거가 되어버린 개발도상국 시절 4인 가족이 살 수 있는 내 집 마련의 꿈은 한국의 선진국 도약, 4인 가족의 해체와 1인 가구의 증가, 가파르게 상승하는 부동산 가격 등 변화한 환경에서 ‘명분’이 됐다. 그 명분 안에 돈을 향한 사람들의 끝없는 욕망이 도사리고 있다. 그리고, 그 욕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의 말은 묻히거나 세상 물정 모르는 말로 취급당하는 일이 일쑤가 되었다.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유지할 수 있는 3요소가 의식주’라는 말은 이제 교과서에서도 찾기 힘들다. 이에 따라 주택과 관련해 ‘국가가 보장해야 하는 복지의 최소한’이 어디까지인지 여부가 다시 논의되고 있다.

영화 <인터스텔라>에 등장해서 유명해진 대사가 있다. “우린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문화사를 연구하는 입장에서, 필자가 미래에 대한 섣부른 단언은 금기라서 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저 대사는 작은 위로가 된다. 2021년에 등장했던 키워드를 단순히 팬데믹, 대선, 각종 사건 때문에 갑자기 등장한 것으로 생각한다면 답을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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