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품단가 연동제 현실화 방안 검토
물가상승 압박에 서민 생활 흔들흔들
부동산 경기 영향 등 나비효과 예상
파생효과 따른 경제 정책 마련 필요

중소기업 납품단가 제값받기를 위한 기자회견. [사진제공=뉴시스]
중소기업 납품단가 제값받기를 위한 기자회견. [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홍상현 기자】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의 대기업 납품단가를 현실화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다만 법제화는 하지 않기로 했다. 이는 기업의 자율에 맡기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납품단가를 현실화하면 그로 인해 물가상승의 압박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50조원 추경 공약은 사실상 힘들 것으로 예측된다. 문제는 물가상승의 압박이 금리 인상으로도 이어지고, 그에 따라 부동산 경기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김기흥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대변인은 지난 19일 “대·중소기업 간 거래에서 납품단가를 조정할 수 있는 방안을 공정거래위원회·중소벤처기업부와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납품단가의 현실화를 고려한 발언이다. 납품단가 연동제를 법제화하지 않지만 기업의 자율에 맡기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납품단가 연동제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 사항이었지만 법제화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기업이 자율적으로 원자재 가격을 납품단가에 반영할 수 있는 모범계약서를 보급할 계획이다. 계약 시점의 원자재 시세를 기준으로 주기적으로 가격 변동을 반영하는 내용이 담기게 된다.

김 부대변인은 “공시대상기업집단 소속 원사업자의 납품단가 조정 현황을 공시하도록 해 2차 이하의 협력사까지 조정이 이뤄지도록 유도할 것”이라며 “납품단가가 반영되도록 계약을 체결한 기업에 대해 인센티브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겉으로는 기업의 자율에 맡기겠다는 것이지만 실상 거의 반강제적으로 납품단가를 현실화 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인수위는 공정거래협약 이행평가에서도 납품단가 조정 실적을 반영해 최우수·우수 평가를 받은 사업자에는 공정위의 직권조사를 면제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납품단가 연동제를 법제화하지 않지만 사실상 납품단가 현실화를 하는 이유는 중소기업들의 하소연 때문이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과 중소기업들은 앞서 지난 11일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중소기업 납품단가 제값 받기를 위한 기자회견’을 열고 납품단가 연동제를 촉구했다. 이는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원자재 가격이 하루가 멀다 하고 상승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원자재 가격 상승분이 반영되지 못하면서 중소기업들의 부담이 상당히 커졌다는 점이다. 중소기업중앙회 조사에 따르면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납품단가에 전혀 반영 받지 못한 중소기업이 응답 기업(304사)의 절반(49.2%)에 달했다. 김기문 회장은 “대·중소기업 간 양극화 문제 해결의 출발점은 납품단가 현실화”라며 “새 정부에서 반드시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과 대통령 직속 상생위원회 설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둔촌주공 재건축 현장. [사진제공=뉴시스]
둔촌주공 재건축 현장. [사진제공=뉴시스]

납품단가가 현실화된다면 그로 인해 완제품의 가격 상승이 불가피해 보인다. 가뜩이나 올해 초 라면 등 생필품 가격이 상승했는데 납품단가 현실화로 올해 안에 또 한 차례 가격 상승이 우려된다. 이로 인해 50조원 추가경정예산 공약이 실천되기는 힘들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는 소상공인 손실보상 50조원 추경이 경제적 충격을 불러올 수 있다고 밝혔다. 50조원의 추경이 시중에 풀리게 된다면 물가상승 압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는 지난 19일 인사청문회에서 물가상승이 1~2년 계속될 것이라면서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이미 문재인 정부의 추경 예산이 시중에 풀리면서 물가상승 압박으로 다가오고 있는 현시점에서 50조원 추경을 또 풀게 된다면 물가상승폭은 가팔라질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50조원 추경 축소론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납품단가 현실화가 이뤄진다면 물가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우리나라 경제성장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발언하는 원희룡 기획위원장. [사진제공=뉴시스]
발언하는 원희룡 기획위원장. [사진제공=뉴시스]

가장 우려되는 대목은 아파트 가격 상승이다. 윤석열 정부가 탄생하게 된 원인 중 하나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다. 그런데 건설하청업체들이 납품단가를 현실화하게 된다면 시공사들은 저마다 분양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다. 분양 가격을 올리게 되면 분양받는 사람들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기준금리가 인상될 가능성이 높아지면 분양받는 사람들은 이중고를 겪게 된다. 즉, 분양가격의 상승이라는 부담과 대출금리 인상이라는 부담까지 안게 된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의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부동산 정책을 세워야 하는 상황 속에서 수요 대신 공급에 방점을 찍고 있는데 그 공급마저도 원가 상승으로 인한 분양 가격 상승이 이뤄진다면 공급 정책의 실패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높아진 대출금리와 분양 가격으로 인해 수요자가 줄어들게 된다면 부동산 정책은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의 고민 역시 클 수밖에 없다. 추 후보자가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서 5월 10일 취임한다면 가장 먼저 직면하게 되는 것이 물가상승 압박이다. 이는 경기 침체 속 물가가 크게 치솟는 ‘스태그플레이션’에 직면하게 된다. 따라서 재정정책과 거시정책의 적절한 정책 조화를 이뤄내야 한다. 통화 정책을 통해 유동성을 회수하면서 거시정책으로 물가상승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 이를 위해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와 원팀이 돼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인수위원회가 이창용 후보자의 인선을 문재인 정부의 알박기라고 주장하는 이유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이 엇박자가 날 경우 그에 따라 경제정책이 삐끗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고민은 공공요금 인상 여부와 최저임금 인상이다. 아직까지 전기·가스요금 인상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미 전기·가스요금 인상의 불가피성은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다만 대선이 있었고, 6월 지방선거가 있기 때문에 강제적으로 인상을 억제하고 있지만 언제까지 억제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전기·가스요금 인상은 곧 대중교통 요금의 인상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물가상승의 연쇄 반응이 불가피하다. 또한 물가상승 압박은 최저임금 인상에도 반영될 수밖에 없다. 최저임금위원회가 현재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논의를 하고 있다. 사용자위원들은 계속해서 최저임금이 문재인 정부 들어 과도하게 상승했기 때문에 삭감을 하거나 올리더라도 최저로 올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물가상승이 가파르게 진행되면 노동자위원들의 목소리에 더욱 힘이 실릴 수밖에 없고, 최저임금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최저임금이 상승하면 소상공인들의 근심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납품단가 현실화가 가져올 파장이 엄청나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사진제공=뉴시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사진제공=뉴시스]

경제계에서는 경제전망을 어둡게 보고 있다. 국내 최대 민간 경제 연구기관인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 17일 발표한 ‘2022년 한국 경제 수정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물가상승률은 전년 대비 3.9%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이달 한국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이 전망한 3.1%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연구원은 상반기 상승률이 4.2%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는데, 1~3월까지 누적 상승률이 3.8%라는 점을 감안하면 4~6월 상승폭이 더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경제성장의 둔화로도 연결되는 대목이다. 경제성장이 둔화되면 그로 인해 일자리가 축소될 것으로 예측된다. 일자리가 감소되면 윤석열 정부에 대한 국민적 원망은 상당히 높아질 수밖에 없다. 윤석열 정부로서는 이중고의 압박을 받게 되는 셈이다. 이런 이유로 납품단가 현실화가 가져올 나비효과에 대한 걱정이 상당히 크다. 하지만 중소기업의 납품단가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중소기업의 줄도산이 우려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결국 윤석열 정부의 경제 전망은 어두울 수밖에 없다. 이 난제를 어떤 식으로 풀어내느냐가 가장 중요한 숙제가 됐다.

정치권에서는 인수위에서 이 같은 경제 상황을 최대한 파악해 그에 따른 적절한 경제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납품단가 연동제가 비록 법제화되지 않았다고 하지만 납품단가 현실화로 인한 여러 가지 파생 효과를 최대한 파악해서 그에 걸맞은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최대 위기가 올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도 있다. 앞으로 윤석열 정부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앞으로 헤쳐 나가야 할 과제가 산적한 만큼 이에 따른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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