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법 개정안 통과...법 사각지대 해소 방점
삼성·현대차 등 사각지대 기업 규제 대상 확대
규제 회피 위한 지배구조·경영방식 변화 불가피
재계 “기업 경쟁력 훼손...보완 입법 요청” 반발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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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최병춘 기자】 상법과 공정거래법 개정, 노동조합법 제정 등을 아우르는 이른바 공정경제3법이 지난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재계 미칠 영향에 관심 쏟아지고 있다. 대주주 의결권 제한,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 확대, 소액주주 다중 대표소송제 도입 등 대주주와 기업의 부정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규제가 주요 내용에 담기면서 재계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특히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전부개정안의 경우 기업형 벤처캐피탈(CVC) 보유 허용 등 지원책을 포함해 총수일가 사익편취(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 확대, 과징금 부과수준 향상 등 대기업 집단의 경제력 남용과 사익추구 행위 규제를 보다 강화 내용을 담고 있다.

무엇보다 대기업 총수일가를 정조준 일감몰아주기 규제 강화가 주요 내용에 포함되면서 그동안 규제 사각지대에 있던 기업과 총수들도 안심하기 어렵게 됐다. 특히 삼성과 현대차, SK 등 주요 대기업도 다수 제도 감시망 안에 들어오게 되면서 규제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는 모습이다.

강화된 일감몰아주기 규제

지금까지는 내부거래 등을 통한 기업의 사익편취 규제 대상은 총수일가 지분율 30% 이상인 상장사와 20% 이상 비상장사였다. 이들 대상 기업 중 내부거래금액이 200억원을 넘거나 거래비중이 12%이상인 기업은 법적 제재를 받는다.

이런 가운데 이번 법률 개정으로 규제 대상 범위가 확대됐다. 내년 말부터 상장 여부와 관계없이 총수일가 20% 이상 지분을 보유한 계열사와 이들 회사가 50%를 초과한 지분을 보유한 자회사까지 규제 대상에 포함된다. 

이 같은 변화는 총수일가 보유 지분이 규제 기준에 못 미치더라도 계열사 간 거래에 따른 이익이 궁극적으로는 대주주 또는 총수일가에게 돌아가 사실상 법 취지를 살리지 못한다는 판단에서 이뤄졌다. 특히 기준에 못 미치는 규제 사각지대에 놓인 회사의 내부거래 비중이 더 높아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법 개정에 큰 배경이 됐다.

실제로 지난달 공정위 발표에 따르면 사익편취 규제 사각지대 회사의 내부거래가 눈에 띄게 늘었다. 공정위는 기존 기준이었던 총수일가 지분율이 20%이상 30%미만 구간의 상장사나 그 자회사, 사익편취 규제 대상 회사의 자회사 등 규제 대상에서 벗어난 기업을 규제 사각지대로 분류해 왔다. 공정위 조사결과 사익편취 규제 대상 회사의 내부거래 비중은 11.9%, 금액은 8조8000억원인 반면, 규제 사각지대 회사의 내부거래 비중은 11.7%, 금액은 26조5000억원에 달했다. 회사 수 또한 176개 대 343개로 사각지대 회사가 크게 앞질렀다. 내부거래 금액 또한 8조8000억원 대 26조5000억원으로 사각지대 회사가 약 1.5배 많았다. 특히 총수일가 지분이 기존 기준에 살짝 못 미치는 29%대인 상장사, 이른바 사익편취 규제의 경계선에 있는 회사의 내부거래 비중은 23.1%에 달했다.

하지만 이번 법 개정으로 그동안 규제 사각지대에 있던 상당수 기업이 감시망에 들어오게 된다. 전체 규제 대상 기업은 현행 210개에서 598개로 388개가 증가한다. 그 중 총수가 있는 10대 주요 기업의 경우도 29개에서 104개로 늘어난다. 특히 대기업 총수 일가가 주로 지주회사 지분을 보유, 비상장회사를 중심으로 자회사 지분을 50% 넘게 확보한 경우가 많아 지주회사의 자회사들이 상당수 규제 대상으로 추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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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법률안에 대한 투표가 진행되고 있다. ⓒ뉴시스

벗겨진 사각지대, 기업·총수 발등에 불

이에 따라 법 사각지대에서 안심하고 있다 규제 대상에 포함된 기업들은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내년까지 내부거래를 줄이거나 총수일가 지분율을 낮춰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른 기업들은 지배구조와 경영방식의 대폭 변화가 불가피해 졌다.

삼성의 경우 그동안 총수일가가 31.63%를 보유하고 있는 삼성물산만이 규제 대상이었다. 하지만 내년부터 삼성웰스토리 등 11개가 공정위 감시망에 들어오게 된다.

특히 삼성물산이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식자재 유통 자회사 삼성웰스토리의 경우 내부거래가 40%에 육박하는 등 그룹 의존도가 높아 이를 줄이지 않으면 규제를 받게 된다.

이와 함께 총수와 특수관계인의 지분율이 20.82%인 삼성생명과 자회사 5곳도 규제 대상이 됐다. 삼성생명은 이미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삼성SDS와의 1561억원 규모의 용역 계약 등 계열사 간 부당 내부거래로 공정위에 통보키로 한 상황이다.

법 시행 전까지 총수일가가 보유한 지분을 팔아 지분율을 10%대로 낮추면 규제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이 또한 삼성생명이 삼성전자의 대주주인 만큼 총수의 그룹 지배력 확보 등을 고려하면 쉽지 않은 선택이다.

현대차그룹도 규제 대상 회사가 4개에서 8개로 늘었다. 물류회사인 현대글로비스와 자회사, 서림개발·현대머티리얼의 자회사까지 총 4개 회사가 추가된다.

현대글로비스는 정의선 회장 등 총수일가 지분율이 29.99%로 기존 규제 기준에 살짝 걸쳐있었다. 계열사에 대한 매출 의존도도 상당히 높다. 올해 상반기 내부거래 매출 비중만 70%에 육박해 현 상황을 유지한다면 법 시행 후에는 제재를 받을 수 있다.

문제는 단시간에 매출 창구 다각화를 이루기 쉽지 않은 만큼 내부거래 비중을 줄이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면 정의선 회장 등 지분 10% 가량을 줄여야 한다. 업계에서는 현대차가 지분 매각 대신 지배구조 개편작업으로 규제를 피해가는 방안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최근 추진 중이 보스턴 다이내믹스 인수와 맞물려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해소와 사익편취 규제 회피를 위한 지배구조 개편작업이 진행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SK그룹 역시 규제 대상 회사가 1곳에서 9곳으로 늘어나면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기존 규제 대상이었던 SK디스커버리에 자회사 2개와, SK(주)와 SK(주)의 자회사 5개가 추가됐다.

SK(주)의 경우 총수일가 지분율이 28.59%다. SK(주)는 SI(시스템통합) 사업의 사업도 병행하는 순수 지주회사가 아닌 만큼 일감몰아주기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이밖에 규제 대상이 없던 LG는 4개 기업이 추가된다. 한화는 1개에서 7개로, GS는 12개에서 30개, 현대중공업 2개에서 6개, 신세계 1개에서 18개, CJ는 5에서 9개로 늘어난다.

재계 10위 밖에 있는 기업도 규제 대상이 크게 늘었다. 효성그룹은 현행보다 22곳 늘어난 36개, 호반건설과 태영도 각각 21개와 20개 씩 규제 대상이 대폭 늘었다.

아모레퍼시픽의 경우 기존 규제 대상 기업 1곳에서 신규로 10곳이 추가돼 전체 15개 계열사 중 11개사가 규제 대상이 된다. 금호석유화학은 총수일가의 지분율이 22.59%로 내부거래 규제와 무관했지만, 이번 법률 개정으로 지분 50% 이상 보유한 금호티앤엘, 금호피앤비화학 등 5개 계열사가 규제 대상에 새로 포함된다.

지주사의 총수일가 지분율이 24.34% 였던 한라그룹도 전체 계열사 14개 중 지주사인 한라홀딩스를 비롯해 위코와 제이제이한라 등 3곳이 새롭게 추가된다. 이에 따라 내부거래 비중이 26.18%까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부거래 규제 대상이 확대된 것과 동시에 신규 지주사의 자회사·손자회사 의무 지분율도 상장사는 20→30%, 비상장사는 40→50%로 10%씩 상향된다. 개정된 법에는 신규로 설립하거나 전환한 지주사, 기존 지주사가 새롭게 편입하는 자회사와 손자회사에만 적용돼 기존 지주사에는 부담이 없다.

이는 지주사가 적은 자본금으로 지배력을 과도하게 확대하는 것을 막고, 지주사 체제 안에서 자회사·손자회사 지배의 책임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지주사 전환은 내부거래 규제 해소의 해법이기도 하다. 반면 보유 지분율이 높아지면서 지주사 전환을 위한 기업의 비용 부담이 커졌다.

이에 일감몰아주기 규제에 노출된 SK의 경우 지주사 전환도 고민이다. SK테레콤을 SK하이닉스를 계열사로 두는 중간 지주사로 전환할 계획인 SK그룹으로서는 비용 부담이 크게 증가할 수 밖에 없다.

이 외에도 대기업 소속 공익법인이 보유한 계열사 주식에 대한 의결권 행사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한편 신규 지정된 기업집단이 이전부터 보유하고 있던 순환출자 의결권을 제한했다.

또 법 위반 행위별로 과징금 상한을 2배 상향 조정하는 등 기업의 법 위반 처벌규정도 강화했다. 다만 재계 반발이 컸던 공정위의 전속고발제 폐지는 없던 일이 됐다. 여기에 벤처기업 투자와 M&A를 활성화할 수 있도록 일반지주회사의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보유를 제한적 범위(100% 자회사만 소유)에서 허용하게 하는 등 지원책도 개정안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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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뉴시스

규제 강화에 반발하는 재계, 단호한 정부

그동안 관련법 개정을 반대해왔던 재계는 총수 사익편취 규제 확대를 포함한 공정거래법 개정 등 공정경제 3법에 대한 보완 입법 추진까지 요구하는 등 크게 반발하고 있다. 재계는 특히 사익편취 규제 확대로 기업이 계열사 매각에 나설 때 경쟁력이 훼손되거나 경영권을 유지하기가 어려질 수 있어 기업 생존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한국상장회사협의회 등 4개 단체는 지난 11일 입장문을 내고 “내부거래규제 대상 범위에 규제기업이 50% 초과 지분을 보유한 다른 계열사까지 추가로 확대하는 것은 성장동력 발굴, 신산업 진출 및 전문화를 위한 기업의 분사와 기업 인수 등 기업의 산업 경쟁력 제고 전략에 결정적인 지장을 줄 것”이라며 “간접지분 규제만이라도 규제 대상에서 제외해달라”고 호소했다.

이들은 또 “정부와 국회가 재계의 최소한의 단기적 보완 요청사항을 외면하지 마시고, 우리 기업의 전략적이고 미래 선도적인 투자와 균형적・협력적 노사관계 형성으로 국제 경쟁력을 강화해 나가도록 시급히 보완 입법해 주실 것을 다시 한번 간곡히 요청한다”고 당부했다.

하지만 공정위 등 정부는 이번 법 개정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기 위한 제도적 기반”이라며 단호한 입장이다.

공정거래법 전부 개정안 등 공정경제 3법에 대한 재계 반발이 거세자 정부는 지난 16일 조성욱 공정위원장 주재로 관계부처 합동 브리핑을 열고 이같이 밝혔다.

이날 조 위원장은 이번 공정거래법 전부 개정안에 대해 “공정위가 갖고 있던 재벌 개혁 정책보다 더 진보한 내용”이라고 평가했다.

이와 함께 재계에서 제기된 총수일가 사익편취 규제 대상 확대에 대한 과도한 우려를 경계했다. 특히 재계의 지분 매각에 따른 기업 경쟁력 훼손 지적에 “일감 몰아주기 규제는 부당 내부거래를 규율하는 것으로 정상적인 내부거래는 막지 않는 만큼 총수일가가 지분을 매각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부당한 내부 거래만을 규율하는 것일 뿐 법에서 정한 정상적 내부거래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총수일가의 이익을 위해 기업 경쟁력을 훼손하는 행위를 규율하자는 게 법 개정의 취지”라며 “기업들이 일감 몰아주기를 스스로 시정하는 등 예방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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