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국민통합과 포용 절실하다”..한명숙 전 총리 복권
이재명 대선후보와 사전 논의 없어...주변 참모들도 몰랐던 듯
지지층 반발...안민석 최강욱, “잘못된 결정”, “역사가 그렇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으로 입원하고 있다. ©뉴시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으로 입원하고 있다. ©뉴시스

【투데이신문 윤철순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24일 지지층 반발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단행했다. 문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해인 2022년 신년 특별사면에서 박 전 대통령 사면과 함께 불법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2027년까지 피선거권이 박탈된 한명숙 전 국무총리를 복권했다.

법무부는 이날 오전 9시30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오는 31일자로 박 전 대통령과 한명숙 전 총리를 포함한 3094명에 대한 2022년 신년 특별사면·복권 등을 단행한다고 밝혔다.

취임 후 처음 단행된 지난 2018년 신년 특별사면(6444명)과 2019년 3·1절 100주년 특별사면(4378명), 2020년 신년 특별사면(5174명)과 비교하면 그 대상은 다소 줄었다. 2021년 신년 특별사면 대상자(3024명)과 비슷한 수준이다.

특별사면·복권 대상에는 ▲일반 형사범 2650명 ▲중소기업·소상공인 38명 ▲특별배려 수형자 21명 ▲선거사범 315명 ▲사회적 갈등 사건 관련자 65명 ▲노동계 및 시민운동가 2명 ▲낙태사범 1명 등 총 3092명이 포함됐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이날 오전 특별사면·감형·복권 대상자를 심의·의결하기 위해 소집한 임시국무회의에서 “코로나19로 어려운 서민들의 민생안정과 국민 대화합을 이루는 데 그 취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당초 문 대통령은 정치인 사면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견지해왔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의 건강상태와 임기 말 국민통합을 고려해 한 전 총리와 함께 사면을 결단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이번 특별사면·복권 결정에 대해 “우리 앞에 닥친 숱한 난제들을 생각하면 무엇보다 국민 통합과 겸허한 포용이 절실하다”며 “박 전 대통령의 경우 5년 가까이 복역한 탓에 건강 상태가 많이 나빠진 점도 고려했다”고 말했다고 박경미 대변인이 브리핑에서 전했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 5월10일 취임 4주년 특별기자회견에서 “전직 대통령 두 분이 고령이고 건강도 좋지 않다고 하니까 더더욱 안타까운 마음이다. 그런 점도 생각한다”며 추후 사면 접근 방향성을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이번 대상에서 배제됐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7년 3월31일 국정농단 사건으로 구속 수감된 뒤, 전직 대통령 중 가장 긴 4년 9개월 동안 수감 생활을 해오고 있다. 그동안 외부 병원과 구치소를 오가며 어깨와 허리디스크 치료를 받아왔다. 최근엔 건강 상태가 급격히 악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전 총리는 9억여 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2015년 8월 대법원에서 징역 2년과 추징금 8억8300만 원을 확정 받은 후 복역, 만기 출소했다. 10년 간 피선거권이 박탈됐다 이번에 특별 복권됐다.

박 전 대통령은 이날 정부의 특별사면 대상에 포함된 것과 관련해 “어려움이 많았음에도 사면을 결정해준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 당국에 심심한 사의(謝意)를 표한다”고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은 사면발표가 난 뒤 유영하 변호사를 통해 이 같은 입장을 전했다.

박 전 대통령은 “많은 심려를 끼쳐드려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린다”면서도 “변함없는 지지와 성원을 보내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했다. 이어 “신병치료에 전념해 빠른 시일 내 국민여러분께 직접 감사인사를 드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의 사면결단에 따라 향후 대선 정국은 어떤 식으로든 파장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국민통합을 전제로 신중히 판단하겠다는 입장 번복은 물론, ‘5대 중대 부패범죄’는 양형을 강화하고 대통령 사면권의 제한을 추진하겠다는 대선 공약 파기라는 비판도 예상된다.

당장 국민의힘에서는 한 전 총리 복권에 대한 비난 여론을 피하기 위해 박 전 대통령의 사면을 끼워 넣은 것이라는 취지의 공세를 폈다.

임태희 국민의힘 중앙선대위 종합상황본부장은 이날 CBS 김현정 뉴스쇼에 출연해 “박근혜 전 대통령 특사는 당연한 거라고 본다”면서도 “한 전 총리를 사면(복권)하기는 해야겠는데, 어떤 모양새로 할지 비난 여론을 피해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라고 주장했다.

지지층 반발도 이어졌다. 5선 중진으로 지난 2016년 박 대통령 탄핵 정국 당시 비선실세인 최순실 딸 정유라씨를 둘러싼 각종 특혜 의혹을 폭로한 바 있는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역사적으로 잘못된 결정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선대위 총괄특보단장인 안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사면은 문재인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며, 임기 중에 박근혜 사면을 해결하고자 하는 문 대통령의 심정도 짐작이 된다”면서도 “국정농단을 밝힌 사람으로서 박근혜 사면은 찬성하고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공직기강비서관을 지낸 최강욱 열린민주당 의원도 “(문 대통령이) 많은 고민의 시간이 있었겠지만, 아쉬운 결단”이라며 “정치란 게 참 그렇다”는 글을 자신의 SNS에 적었다.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는 “정치적 고려에 따른 사면”이라며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를 규탄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는 “박 전 대통령을 탄핵하고 법의 심판대에 세운 것은 바로 우리 촛불시민들”이라면서 “대통령 개인의 동정심으로 역사를 뒤틀 수는 없는 일이다. 적어도 촛불로 당선된 대통령이 사면권을 행사해서는 결코 안 될 사안”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지금이라도 국정농단 피해자인 국민들께 박 전 대통령의 진심어린 사죄가 필요하다. 현실의 법정은 닫혀도, 역사의 법정은 계속됨을 기억하시기 바란다”면서도 “문재인 대통령의 국민통합에 대한 고뇌를 이해하고, 어려운 결정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후보는 이날 문 대통령이 박 전 대통령의 사면을 결정한 데 대해 이같이 밝혔다고 조승래 선거대책위원회 수석대변인이 전했다.

조 수석대변인은 “사면 발표 전 청와대와 당, 선대위와의 사전 상의는 없었다. 송영길 대표와 이철희 청와대 수석이 상의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는 오보”라고 바로잡았다.

문 대통령은 “이번 사면이 생각의 차이나 찬반을 넘어 통합과 화합, 새 시대 개막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면서 “사면에 반대하는 분들의 넓은 이해와 해량을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한편, 우리공화당은 박 전 대통령 사면에 대해 환영 입장을 밝혔다. 조원진 대표는 “늦었지만 ‘사필귀정’”이라면서 “박 전 대통령의 빠른 건강회복을 바란다”는 입장을 자신의 SNS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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