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자본의 탄생> 저자
-前 현대제철 홍보팀장·기획실장(전무)
현대차그룹이 2년 연속 글로벌 완성차 3위에 올랐다. 자동차 산업은 철강·소재·기계·전자·AI·디자인 등이 어우러진 종합산업예술이다. 지난 2000년 세계 10위의 현대차그룹은 2010년 미국 포드를 제치고 처음으로 '톱5'에 진입했고, 2022년, 2023년 연이어 '빅3' 3위에 올랐다. 수익률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런데 현대차 임원들에게 잘나가는 이유를 물으면 설명이 장황하다. 한마디로 똑 부러지게 얘기를 못한다. 듣고 있던 필자는 “비싼 차가 잘 팔려서 그렇다.”라고 했다. 그렇지만 이는 결과이지 요인(要因)은 아니다.
현대차에는 현대차 임직원들도 모르는 잘 나가는 이유가 있다. 바로 1:10:100의 법칙이다. 자동차에 문제가 있어 소비자가 수리를 하는 데 100의 비용이 든다고 하면, 이를 자동차 제조 과정에서 미리 조정하면 10의 비용만 들고, 그 이전 자동차 설계 단계에서 문제점을 미리 보완한다면 1의 비용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1970~80년대에 현대자동차서비스는 큰 수익을 냈다. 국내 자동차의 품질이 지금과는 많이 달라 자동차를 수리하러 오는 이들이 줄지었기 때문이다. 1974~87년 이 회사 사장을 지내던 정몽구 현대자동차 명예회장은 당장은 돈을 잘 벌지만(100), 장기적으로는 완성차 품질 개선(10과 1) 없이는 미래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1999년 현대차그룹 회장이 되자마자 품질경영을 선언한 이유다. 대개 ‘3년 3만마일’ 무상보증이 일반적이던 미국 자동차업계에서 현대차가 ‘10년 10만마일 ’로 대폭 늘리고 나선 배경이기도 하다. 현대차가 오늘날 세계적인 위상을 얻을 수 있게 된 출발점이라고 본다.(이계안·우석훈 『진보를 꿈꾸는 CEO』 참조) 그런데 이 말의 맥락을 잘 이해해야 한다. 역으로 생각해야 한다. 현대차가 돈을 잘 버는 게 아니라 그 반대로 돈을 다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바로 ‘위기 의식’이다. 이러한 위기의식은 정 명예회장이 내로라하는 세계의 완성차 회사들보다도 한발 앞서 ‘안전’과 ‘품질보증’이라는 소비자들의 가치 지향을 먼저 발굴하고 이를 경영의 핵심 요소로 꼽도록 했다. 현대차그룹에는 이런 기업문화가 내재되어 있다.
삼성그룹에는 유명한 ‘메기론’이 있다. 고(故) 이병철 회장이 농사를 지으면서 실험을 했다. A 논에는 미꾸라지 1,000마리를 사육했고, B 논에는 미꾸라지 1,000마리와 메기 20마리를 넣고 사육했다. 가을에 수확을 하니 A 논에서는 미꾸라지가 2,000마리로 늘어났고, B 논에서는 메기 200마리와 탱탱한 미꾸라지 4,000마리가 되었다. 메기가 미꾸라지를 열심히 잡아먹었는데도 이러한 결과가 나왔다. 메기라는 천적이 오히려 미꾸라지의 생존력을 높여주었다.
생전의 이건희 회장은 자신의 경영철학을 진솔하게 쓴 책을 남겼는데 여기에 메기론의 연장이 나온다. 그는 이 책에서 장수기업의 요건으로 네 가지를 들었다.(『이건희 에세이』 283쪽)
“둘째는 변화에 대응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직의 군살을 빼야 한다. 셋째는 장기적·미래지향적으로 사업을 해야 한다. 단기적 안목으로 경영을 하면 변화하는 환경에 시달려 탈진하고 만다. 넷째는 자율과 창의가 발휘되는 기업문화가 필요하다.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속출하고 생(生) 정보의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한 조직만이 미래를 얻을 수 있다.
첫째는 위기의식이 높아야 한다. 진정한 위기의식은 비록 사업이 잘되고 업계 선두의 위치에 있을 때라도 항시 앞날을 걱정하는 자세다. 경영난에 빠져 부도를 걱정하는 것은 공포 의식에 지나지 않는다. 위기의식을 가지려면 세상 돌아가는 흐름을 파악하고 그 속에서 우리 기업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 어떤 능력을 갖고 있는지를 냉정하게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필자는 여기서 ‘위기의식을 가지려면 세상의 흐름과 자신의 위치와 능력을 냉정하게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라는 것에 방점을 두고 싶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경영자의 한 사람인 고(故) 김우중 회장도 경영인의 가장 중요한 요건으로 위기의식의 중요성을 들었다.(신장섭 『김우중과의 대화』 432쪽)
“세상에는 세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다. 첫째는 아무런 생각도 준비도 없이 사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기회가 와도 기회가 온 줄 모르고 지나친다. 절대 성공하지 못한다. 둘째는 기회가 온 줄 아는데 미처 준비가 되지 않아서 도전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이 사람도 실패한다. 기회라는 게 완벽한 상태에서 오는 게 아니라 항상 리스크가 내재되어 있다. 그런 리스크를 감당 할 수 있을 만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도전하지 못한다. 셋째는 언젠가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하고 철저히 준비하고 관리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기회가 오면 준비한 대로 할 것이고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해서 성공하면 재미가 붙는다. 그러면 다음 것을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하고 준비하게 된다.”
필자는 여기서 말하는 ‘기회’를 ‘위기’와 같은 의미로 해석한다. 위기의식을 가진 사람은 언젠가 위기가 올 거라고 생각을 하고 철저히 준비를 하게 된다. 일부 사람들은 김우중 회장을 실패한 경영자라고 하면서 김 회장의 기회(위기)론을 평가절하 하기도 한다. 각자의 판단이 있겠지만 나는 김우중 회장을 ‘실패한 경영자’가 아니라 ‘좌절된 경영자’라고 본다. (신장섭 『김우중과의 대화』 441쪽 대우해체 쟁점표 및 중앙일보 <손병두의 ‘IMF위기 파고를 넘어’ 지금도 의문인 대우 그룹 해체> 참조)
위기의식을 가져야 위기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 위기 대응 홍보의 첫 단추는 위기의식이다. 기업이든 정부 기관이든 나름대로 위기 대응 홍보를 중요시하고 대비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실제 조직 운영에서 위기를 잉태하면서도 위기의식이 없다. 왜 그런가? 보안의식과 위기의식을 혼동하고 있다. 어쩌면 이건희 회장의 말씀처럼 공포의식과 위기의식을 혼동하고 있는 것과 같다. 위기의식이 잠재적 위험에 대한 경각심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면, 보안의식은 안전하고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려는 마음을 나타낸다. 보안의식을 위기 대응과 관련해서 해석하자면 비정상적이고 공정하지 않은 것을 감추고 싶은 욕심이다.
현장 경험에 의하면 조직이 위기의식을 갖기 위해서는 먼저 조직이 사회의 가치 지향과 이해관계자의 활동에 눈과 귀를 열고 있어야 한다. 즉, 인지 감수성을 높여야 한다. 홍보 오디세이 9회에서 “홍보란 조직을 사회의 가치 지향에 맞게 조율해 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참여하고 조율해 가는 과정 속에서 위기가 인지되고 대응 방안이 모색된다. 왜 그런가? 기업이나 기관은 ‘합법’에 기준을 두지만 ‘진보적’ 시민단체는 ‘가치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합법과 가치 지향은 충돌할 수밖에 없는데 역사는 가치 지향의 손을 들어줬다. 지향하는 가치의 실현은 사회 진화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우리가 ‘진보적’ 시민단체의 활동을 중시해야 하는 이유다. 여기서 말하는 ‘진보적’ 시민단체는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포퓰리스트 집단이 아니라 공공선(公共善)을 추구하는 시민단체를 의미한다.
그러나 돈 많고 힘 있는 일부 기업이나 기관은 그 돈과 힘으로 인지 감수성을 스스로 무디게 만들고 있어서 안타깝다. 세상 돌아가는 흐름을 파악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조직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 어떤 폭탄을 갖고 있는지를 냉정하게 파악할 수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합법이 아니라 가치 지향의 거울을 봐야 한다. 그 거울은 ‘진보적’ 시민단체의 활동 방향이다. 정몽구·이건희·김우중 회장의 ‘위기의식론’ 뒤에는 끊임없이 사회의 변화를 포착하고 그에 따라 바뀌어 갈 가치를 발굴해야 한다는 일념이 있었다. 그러한 위기의식과 가치 발굴 속에서 위기 대응 홍보도 가능해진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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