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정인지 기자】 다문화가정에서 태어난 자녀가 주민등록증까지 받고도 행정청의 실수로 ‘무국적자’ 위기에 놓인 지 5년 만에 한국 국적을 인정받을 수 있게 됐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다문화가정 자녀 2명이 법무부를 상대로 ‘국적 비(非)보유 판정을 취소해 달라’며 제기한 소송을 원고 승소 취지로 파기하고 서울고등법원으로 환송했다.
1998년생인 A씨와 2000년생 B씨 남매는 한국 국적 아버지와 중국 국적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지난 2001년 출생 신고를 하고, 관할 행정청은 이들에게 주민등록번호를 부여했다. A씨와 B씨가 각각 17세가 된 해에는 주민등록증 또한 발급됐다.
문제는 이들이 출생했을 당시 부모가 법적 혼인 상태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국적법과 대법원 판례에 따라 다문화가정에서 태어난 자녀가 출생 신고로 한국 국적을 얻으려면 법적인 혼인 신고를 마친 상태여야 하기 때문이다.
부모는 지난 1997년 혼인 신고를 시도했으나 제주의 한 읍사무소에서 모친의 ‘호구부’ 원본을 분실했으며, 중국 대사관이 호구부 재발급을 거부하면서 제때 혼인신고를 하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부부는 사실혼을 이어오며 지난 2008년 12월에서야 혼인신고를 할 수 있었다. 이때 혼인신고를 수리한 관할 행정청이 자녀의 출생신고를 언급하며 외국인 모친과의 ‘혼외자 출생신고’에 해당한다며 가족관계등록부를 폐쇄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2019년 법무부가 이들 남매를 국적비보유자로 판단했다. 이에 남매는 판정에 불복해 취소 소송을 제기해 왔다. 남매는 1심 승소, 2심 패소를 거쳐 이날 대법원에서 하급심 재심리 판정을 받았다.
대법원은 부모가 국적 취득 절차를 제대로 밟지 않은 과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남매에게는 그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짚었다.
이어 “미성년자일 때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하고 있다는 신뢰를 부여하다가 성인이 되자 그에 반하는 처분이 이뤄진 결과 갓 성인이 된 원고들은 더는 국적법에 따라 간편하게 국적을 취득할 기회를 상실했다”면서 “평생 이어온 생활의 기초가 흔들리는 중대한 불이익을 입었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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