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커뮤니케이션북스 편집본부장 최정엽 전무
전문성·독창성·소통성… 시장성은 알아서 따라오는 것
남보다 월등히 많은 타이틀, 전략은 ‘다품종 시장 지배’
편집자 한 명이 월 3종까지 제작, 월평균 30종 이상 펴내
유명 고전 굴레의 벗어나 다양한 고전 제공하자는 철학
변화·혁신을 실현하는 곳이 컴북스, 미래 전망 밝을 것

커뮤니케이션북스 최정엽 전무가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커뮤니케이션북스 최정엽 전무가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권신영 기자】 “이 세상에 읽을 수 없는 책이 없도록 부단히 지식을 생산하고 있다. 그러면 어떻게 되나? 우리에게는 남보다 월등히 많은 타이틀이 쌓이게 되고 그 타이틀은 시장을 주도하게 된다. 이것이 우리의 전략인 다품종 시장 지배다.”

서울 성북구에는 특별한 건물이 있다. 동화 속 성을 연상시키는 외관, 벽 한 켠을 가득 채운 형형색색의 책들, 지하부터 옥상까지 이어지는 나선형 계단, 층계참마다 새로운 용도로 등장하는 다양한 공간, 높다랗게 쌓인 책과 종이 속에 녹아들어 한 폭의 장면이 된 사람들… “없는 것이 없다”는 출판계 만능 공작소, 33년째 지식 다양성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커뮤니케이션북스(이하 컴북스)’다.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전문 서적을 출판하는 ‘컴북스’는 △고전을 전문적으로 번역 출판하는 ‘지식을만드는지식(이하 지만지)’ △전 세계 희곡과 연극 이론서를 전문적으로 출판하는 ‘지만지 드라마’ △한국의 고전문학과 근현대문학 작품을 전문적으로 출판하는 ‘지만지 한국문학’ △평생학습 전문 서적을 출판하는 ‘학이시습’ △앞의 세 브랜드에서 출간하지 않는 인문 분야 단행본을 출판하는 ‘지식공작소’ △사회 분야 단행본을 출간하는 ‘박영률 출판사’까지 총 7개의 출판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

커뮤니케이션북스 사옥 지하 1층 ’북커리‘의 모습이다. ⓒ투데이신문
커뮤니케이션북스 사옥 지하 1층 ’북커리‘의 모습이다. ⓒ투데이신문

■ 신선한 책, 더 많은 출판, 꾸밈없는 전략

컴북스는 주문 제작에 특화해 2007년부터 POD(Printing on Demand, 수요에 따라 인쇄하는 것) 방식을 채택, 특별한 5% 정도의 책을 제외하고 재고를 만들지 않고 날마다 직접 책을 찍어내 주문자에게 신선한 상태로 전달한다. 때문에 컴북스 내부에는 자체적으로 책을 구워내는 지하 공간인 ‘부커리(책+베이커리의 줄임말)’가 있다. 부커리에서 내보내는 책은 일간 수백 부에서, 많을 땐 천 부가 넘는다.

오븐에서 꺼낸 빵 냄새 대신 인쇄기에서 뽑아낸 따끈따끈한 종이 내음, 갓 찍어낸 쌉싸름한 잉크 향이 건물을 가득 채우는 공간에 있다 보면 책이 왜 마음의 양식이라 불리는지 자연히 이해하게 된다. ‘책 먹는 여우’가 현실에 존재한다면 컴북스를 최고의 신선도를 갖춘 맛집으로 손꼽지 않을까.

그런 컴북스에서도 남들이 다 가졌음에도 단 한 가지 갖지 못한 것이 있는데, 바로 물욕이다. 다품종 소량생산을 사업전략으로 삼은 컴북스는 ‘전문성’, ‘독창성’, ‘소통성’이라는 3대 기준을 기반으로 제작물을 선정한다. 시장성이 빠져 있는 모습이다.

이에 대해 컴북스에서 22년째 재직, 현재 편집본부를 총괄하고 있는 최정엽 전무는 “어떤 책이 얼마만큼 팔리고 얼마만큼 이익을 가져다줄 것인지에 대한 판단을 아예 하지 않는다. 혹 편집자들이 출간 판단 과정에서 어쩌다 시장성을 따지면 사장님이 다시 한번 우리 기준을 상기시켜 주신다”고 말한다. 

또한, 그는 성공 기약 없는 베스트셀러 대신 오래 살아남는 책을 추구하며 이러한 가치 지향 출판, 전문성 지향 출판이 책을 꼭 필요로 하는 독자들을 만족시킨다고 덧붙였다. 주문이 들어오면 개수대로 제작하는 POD 방식을 이용하기 때문에, 일정 시간이 지나 초기 출판 비용을 회수하고 나면 그 책은 이후부터 고스란히 이익으로 돌아오는 구조인 것이다.

최 전무는 과거 인터뷰에서 ‘돈 벌 생각이 없는 이상한 출판사’라는 칭호가 붙은 것에 대해 “정말로 돈 벌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지 않아도 수익은 안정적이라는 말이었다“며 “돈을 많이 번다면 더 많은 책을 만들 수 있으니 좋은 일 아닌가”라며 웃음을 내비쳤다.

커뮤니케이션북스 최정엽 전무가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커뮤니케이션북스 최정엽 전무가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 책을 빵처럼 찍어내는 공정이 가능한 이유

컴북스는 ‘커뮤니케이션북스’ 3100종, ‘지식을만드는지식’ 2490종, ‘학이시습’ 260종, 외 모든 브랜드를 통틀어 6200종의 책을 가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모든 책은 큰글자책, 전자책을 함께 출간하므로 이를 다 합하고 오디오북까지 합친 현재는 1만7000여 종의 막대한 출판 종수를 보유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컴북스는 월평균 30종 이상의 신간을 내놓는 괄목할 만한 출간 속도를 보여준다. 분량이 많고 어려운 고전 등의 텍스트를 제하고, 스테디한 전략을 세우고 있는 이론총서는 한 편집자가 월 3종까지 제작할 수 있다. 책 한 권을 완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가히 놀라울 작업 속도다.

최 전무는 신속 출간을 통한 시장 지배를 위해 프로세스를 개선해 온 결과 모든 책 제작 과정을 포맷화하고 매뉴얼화해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경지에 이르렀다면서, “분량이 120쪽 내외이고 빠른 시장지배 전략을 세우고 있는 ‘인공지능총서’의 경우 원고만 준비돼 있다면 한 편집자가 월간 10종 이상 출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저자가 제공된 포맷에 맞게 집필하기 때문에 편집자는 사전 검토에 시간을 쓰지 않아도 되고, 단행본을 제외하고는 브랜드별로 디자인을 통일해 표지나 본문 디자인에 걸리는 시간을 대폭 줄이는 효율 중심적 전략을 택한 것이다. 이목을 끄는 표지 디자인과 화려한 책 구성에 열성을 기울이는 출판업계 동향에 역행하는, 그야말로 현 시장의 흐름에 역행하는 획기적 전략이라 할 수 있겠다.

1,344페이지로 이루어진 염상섭의 <삼대> [자료제공= 지식을만드는지식]
1,344페이지로 이루어진 염상섭의 <삼대> [자료제공= 지식을만드는지식]

■ 모든 것이 다 있는데 유일무이하다, 세상을 바꾼 지식

컴북스에서는 책이 존재하는 다른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숨겨진 희귀한 책들을 국가를 막론하고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컴북스의 지만지는 퀘벡, 케냐, 헝가리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현지 문학을 거침없이 번역해 국내 유일본으로 소장했다. 

많은 인문학자가 죽어 가는 인문학을 살린다는 지만지의 취지에 공감했다. 국내에 널리 알려져 반복적으로 출판된 유명 고전의 굴레를 벗어나 참신하고 다양한 고전을 독자들에게 제공한다는 출판 철학에 뜻을 같이해 번역에 동참했다.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있는 것이 “세상의 모든 고전”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고전이라면 모두 출간하겠다는 포부이다. 컴북스가 ‘독창성’을 중요한 출판 기준으로 삼는다는 증거다.

최 전무는 오로지 드문 이야기, 다른 책이 아니면 출판하지 않는다는 컴북스의 신념을 강조했다. ‘드문 이야기’란 ‘레어 타이틀(Raretitle)’이라고 부르며, 이에 대해 “희귀하고 유니크하고 독자가 소수인 책이다. 독자가 간절히 읽고 싶은 내용이 있는데, 다른 출판사에서는 시장성이 없다는 이유로 출판하지 않는다면 독자는 우리나라에서 이 책을 만날 수 없을까? 아니다. 우리가 출판하면 된다”라며 사명감을 드러냈다.

똑같은 내용이나 비슷한 이야기가 기존에 존재한다면 독창성은 어떻게 살리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지만지의 <삼대>를 예로 소개했다. 이미 한국 문학 필독서로 잘 알려 염상섭의 <삼대>를 장장 1344페이지로 재탄생시킨 지만지의 <삼대>는 복본들과 차별점을 두기 위해 전문적이고 상세한 해설과 지은이 소개, 주석, 문화번역, 원전의 시공간을 이해할 수 있는 곁텍스트, 시각적으로 풍부한 정보를 제공하는 삽화 등을 첨가했다. 그러면서 시중의 책들과는 다른 책을 독자에게 제공하고자 의도했다고 전했다.

커뮤니케이션북스 최정엽 전무가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커뮤니케이션북스 최정엽 전무가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 독서율 최악의 사회 속 모색한 출판계 생존법

최 전무는 컴북스의 편집 총괄 담당자로서 독서하지 않는 현 사회상에 대해 “현재 책은 다른 미디어와 경쟁하고 있다. 예전에 책이 담당하던 정보 전달과 문화 향유는 이제 영화, 유튜브, 넷플릭스, 여타 OTT들과 같은 새로운 매체가 담당하고 있다. 책은 이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생각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덧붙여 광범위한 지식 확장과 활용이 급변하는 사회에서 컴북스를 살아남게 만드는 돌파구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는 “우리는 전통적인 출판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 변화하며 다른 돌파구를 모색해 왔다. 책에서 오디오북으로, 또 서점으로 그 영역을 넓히고 있다. 또, 컴북스는 정부에서 추진하는 인공지능 학습용 데이터 구축 사업에 콘텐츠를 제공한 적도 있다. 이런 사업은 방대한 한국어 콘텐츠를 요구하기 때문에, 우리의 다품종 전략이 이럴 때 빛을 발한 것으로 생각한다. 앞으로 이런 사례는 더욱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책은 죽는 것이 아니다. 사회가 급변하면 그만큼 새로운 기회가 분명 많아지는 것이다. 우리는 시장이 새로운 전문지식을 필요로 하면 발 빠르게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컴북스에서 일하는 개인의 생애사가 그렇고, 인공지능총서가 그렇고, 지만지드라마가 그렇다. 이러한 변화와 혁신을 실현하는 곳이 커뮤니케이션북스이다. 그래서 우리의 미래는 밝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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