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정수석실 부활...‘방어선 구축’

“끝내 ‘탄핵 행 고속열차’ 탑승”

‘화려한 외출’...153일 만에 재개

“그따위 당론”...이탈표 얼마나?

‘2기 검찰정권’ 꿈...韓 ‘몸 풀기’

다이나믹 코리아(Dynamic Korea).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대표 영문 브랜드다. 열정과 에너지가 넘치는 한국(한국인)의 시대상을 압축 표현하고 있는 이 네이밍(naming)엔 우리 민족의 역동성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굳이 항쟁의 역사까지 끄집어 낼 필요도 없다. 우리는 축구 하나만으로도 전국을 붉게 물들이는 종족이다. 하물며 정치임에랴. 정치권의 핫이슈를 짚어본다.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목을 축이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뉴시스]<br>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목을 축이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뉴시스]

지난 4·10 총선은 사실상 윤석열 정권의 명운이 걸린 선거였다. 총선 한 달 전만해도 정치권에선 여당의 승리를 점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결과는 집권당의 참패로 끝났다. 정치는 생물이다. 정권심판 바람을 등에 업은 야권은 192석을 쓸어 담으며 거부권은 물론, 개헌저지선까지 무력화시킬 태세다. 22대 국회 문이 열리기도 전에 용산을 포위하며 연일 윤석열 대통령을 코너로 몰고 있다.

야권은 당장 윤 대통령에게 ‘채 상병 특검법’ 수용을 요구하며 강공 드라이브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끝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했다. 윤 대통령은 5월 21일 한덕수 총리가 국무회의를 통해 의결한 채 상병 특검법을 국회로 돌려보냈다. 이에 조국 혁신당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 시절 파국으로 치닫던 2016년보다 국정 파행이 심각하다”며 “대통령실과 여당은 대통령 부부의 호위대로 전락했다”고 맹폭했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은 이미 예정된 수순이었다. 윤 대통령은 5월 9일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채 상병 특검은 물론, 야권이 벼르고 있는 ‘김건희 여사 특검’까지 거부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회견에 앞서서는 ‘정적’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영수회담을 전격 제안하며 ‘유화 제스처’를 보내기도 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4월 29일의 영수회담은 요식행위에 불과했다는 평가다. 윤 대통령은 이후 자신이 약속한 민정수석실 폐지 공약까지 파기하며 정권 사수를 위한 ‘방어선 구축’에 나섰다. 사실상 ‘공성전’에 돌입한 것이다.

탄핵 열차

정치권에선 채 상병 특검이 정권을 흔들 수 있을 것이라 보고 있다. 조국 대표는 5월 10일 한 유튜브 방송에서 윤 대통령이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 외압 의혹에 연루된 정황이 발견되면 탄핵 사유가 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조 대표는 “언론 보도에 따르면,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이 박정훈 대령에게 ‘윤석열 대통령이 격노했다’고 말하지 않았나. (윤 대통령이) 그냥 왜 화를 냈겠나. 격노를 하고 난 뒤에 뭐라고 말을 했을 것”이라며 이렇게 주장했다. 그는 “그 말의 내용이 수사에 대한 불법적 개입과 지시였음이 확인되면 그건 바로 탄핵 사유”라고 부연했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21일엔 “채 상병 순직사건은 윤 대통령 본인과 관련 있는 일인 만큼, 이런 상황에서 거부권을 행사하는 건 위헌적”이라고도 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당선자 역시 이보다 앞서 채 상병 사건과 관련해 재판을 받고 있는 박정훈 해병대령이 무죄를 받으면 ‘정권을 내놔야한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김 여사 의혹 수사를 맡았던 검찰 고위 인사를 비판하며 윤 대통령 탄핵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5월 14일 “그렇게도 2016년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랐건만 ‘T’ 익스프레스를 탄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날 페이스북에 “검찰 인사를 보니 마지막 몸부림 같다”며 이렇게 썼다. 이 대표가 언급한 ‘2016년 전철’은 박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의혹으로 인한 탄핵 정국에서 특검이 도입됐던 상황을 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T 익스프레스’는 ‘탄핵행 고속열차’를 뜻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채 상병 특검 거부권 저지 청년 긴급행동 회원들이 5월 21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윤석열 정부를 규탄하는 손피켓을 들고 서 있는 모습 [사진제공=뉴시스]<br>
채 상병 특검 거부권 저지 청년 긴급행동 회원들이 5월 21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윤석열 정부를 규탄하는 손피켓을 들고 서 있는 모습 [사진제공=뉴시스]

야권은 한 발 더 나가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자체가 위헌이라고 주장한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대통령의 권한도 한도가 있는 것”이라며 “가족의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자신의 부정과 비리를 감추기 위해 헌법이 준 권한을 남용하면 이게 바로 위헌이고 위법이고 부정”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국민은 물과 같아서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언제든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며 “국민의 분노, 역사의 심판 앞에 윤석열 정권은 파도 앞 돛단배 같은 신세라는 점을 반드시 기억하라”고 경고했다. 조국 대표도 “윤 대통령에게 경고한다. 이승만의 말로를 기억하라”며 엄포를 놨다. 혁신당 황운하 원내대표는 “대통령 자신과 배우자의 수사를 막기 위해 거부권을 행사하는 건 헌법적 한계를 넘어선 위헌적 권한행사로 탄핵 사유에 해당됨이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김용민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도 “만약, 대통령의 직접 관여가 확인되면 그 수사를 막기 위해 대통령의 헌법상 권한인 거부권을 함부로 쓴 게 된다”며 “자신의 범죄를 덮기 위한 권한 행사가 인정되면 그 자체가 위헌적 권한 행사가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야권은 연일 탄핵을 언급하며 채 상병 특검을 윤석열 정권 붕괴의 ‘트리거’로 삼으려 한다. 채 상병 특검법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현재 국회로 넘어온 상황이다. 5월 28일 본회의 재의결에 오를 예정이지만 현재로선 부결 가능성 전망이 우세하다. 그러나 야권은 부결 시 22대 국회서 재발의하겠다는 입장이다. 이 경우, 총선에서 108석을 얻은 국민의힘에서 8표만 이탈해도 거부권은 무효가 된다. 윤 대통령과 야권의 사활을 건 대회전이 시작됐다.

방어선 구축

윤 대통령은 5월 21일 채 상병 특검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국민 여론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채 상병 특검과 김 여사 관련 특검에 대한 거부권 행사 의지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5월 9일 ‘윤석열 정부 2년 국민보고 및 기자회견’에서 야당이 단독 처리한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수사 담당 관계자들이나 향후 재판을 담당할 관계자 모두 저나 국민과 똑같이, 채 상병 가족과 똑같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진상규명할 것이라 믿고 있다”면서 “일단 (공수처 수사를) 믿고 더 지켜보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었다. 그러면서 “모든 절차가 마무리되면 수사 당국에서 국민께 상세히 수사 경과와 결과를 잘 설명할 것”이라며 “그걸 보고 만약 국민들께서 ‘이건 봐주기 의혹이 있다’, ‘납득 안 된다’고 하시면, 그때는 제가 특검하자고 먼저 주장하겠다”고 밝혔다.

야권이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부인 김건희 여사 관련 특검에 대해서도 윤 대통령은 “특검의 본질이나 제도·취지와 맞지 않다는 면에서 정치공세, 정치행위”라며 거듭 거부권 행사 의지를 내비쳤다. 다만, 김 여사와 관련한 여러 의혹에 대해 “제 아내의 현명하지 못한 처신으로 국민들께 걱정을 끼쳐드렸다”며 사과했을 뿐이다. 윤 대통령은 검찰이 김 여사 의혹 관련 사안에 대한 수사를 시작한데 대해서도 “검찰 수사에 대해 어떤 입장을 언급하는 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오해가 일어날 수 있다”며 “공정하고 엄정하게 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특검이라고 하는 건 정해진 검경(검찰·경찰)·공수처, 이런 기관에서 수사 봐주기나 부실의혹이 있을 때 하는 것”이라며 김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에 대해 “지난 정부에서 2년 반 정도 사실상 저를 타깃으로 치열하게 수사했다. 그런 수사가 봐주기 수사를 했다는 것인지, 부실하게 했다는 것인지에 관해 묻지 않을 수 없다”면서 “그 자체가 모순이라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이후 자신이 약속한 ‘민정수석실 폐지’ 공약을 스스로 파기하며 김 전 차관을 민정수석에 임명, 김 여사 관련 수사 지휘라인을 싹 바꿨다. 윤 대통령은 김 수석 임명 엿새 만인 5월 13일 이창수 전주지검장을 서울중앙지검장에 보임하는 등 검찰 고위직 인사를 전격적으로 단행했다. 서울중앙지검장은 김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등의 수사를 지휘하는 자리다. 윤 대통령은 직전 서울중앙지검장이었던 송경호 검사장을 부산고검장으로 승진 이동시켰다. 외견상으론 좌천이 아닌 것으로 비춰졌지만, 송 전 지검장은 앞서 올 초 김 여사 소환 여부를 두고 용산과 갈등을 빚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선 이번 인사를 두고 검찰이 윤 대통령의 통제권을 벗어난 것이라 분석하고 있다. 특히 이원석 검찰총장까지 ‘패싱’한 인사조치로 비춰지면서 이 같은 해석에 설득력이 실리고 있다. 이 총장은 검찰 인사 다음날인 5월 14일 출근길에서 ‘전날의 검찰 인사가 총장과 충분한 협의를 거친 것이냐’는 기자들 질문에 ‘7초’간 침묵한 뒤 “더 말씀드리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인사로 김 여사에 대한 수사가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지적에 “인사는 인사고, 수사는 수사”라는 말을 남겼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이 총장이 불편한 심기를 우회적으로 드러낸 것이란 해석을 내놨다.

이번 인사를 두고 법조계에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반응이다. 서초동에선 총선 등으로 인해 미뤄진 고위 간부 인사가 ‘올 하반기쯤 있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윤 대통령의 이 같은 조치에 대해 정치권은 특검 공세를 대비한 ‘사법리스크 방어용’이라고 규정한다.

“이게 나라냐”

야권은 일제히 윤 대통령의 민정수석실 부활을 ‘김 여사 수사 방탄의 서막’이라고 규정하며 강력 반발했다. 민주당은 “(민정수석실은) 대통령의 검찰 장악력 약화와 가족을 둘러싼 사법 리스크 대응을 위한 조직”이라며 “검찰 출신 민정수석을 앞세워 검찰 장악력을 지키고, 가족의 사법 리스크에 대응하려는 윤석열 대통령의 뻔한 저의에 더 이상 속을 국민은 없다”고 규탄했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이창수 전주지검장은 성남FC 후원금 의혹 사건을 진두지휘했던, 검찰 정권 최일선에서 야당 탄압 선봉에 섰던 대표적인 친윤 라인”이라며 “검찰을 더 세게 틀어쥐고 ‘김건희 방탄’에 나서겠다는 신호탄이다. 인사든 국정이든 대통령의 행보가 여전히 노골적이다. 총선 민심을 무시하고 본인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겠다는 일방통행, 마이웨이 선언과 무엇이 다르냐”고 직격했다.

조국 대표는 윤 대통령이 김 수석을 임명한 5월 7일 “윤 대통령이 레임덕에 빠진 자신을 지킬 조직을 검찰 밖에 없다고 판단했다”며 “김 수석은 법무부 검찰과장과 검찰국장을 역임한 ‘인사통’이라는 점이 간과되고 있다. 예정되는 검찰총장, 서울중앙지검장 등 요직 인사에 깊숙이 관여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보다 앞서서는 “김주현 전 법무차관은 박근혜 대통령 뒤에서 검찰 권력을 주무르던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사단 중 한 명”이라고 비판하며 “위기에 빠진 윤석열 정권과 김건희씨를 보위하기 위해 은밀히 수사기관을 조종하고 여러 법률적 방식으로 야당을 탄압할 것”이라고 짚었다.

진보 언론매체들 역시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한겨레신문은 사설을 통해 윤 대통령의 민정수석실 부활 의도를 ‘권력기관 통제용’이라고 규정하며 “윤 대통령 부부가 맞닥뜨린 사법 리스크 방어가 주목적이 아닌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경향신문도 “김 여사의 수사·특검 등 정권 차원의 사법리스크와 레임덕 방지에 온 신경을 쓰는 대통령의 속내가 엿보인다”며 “총선 민심과 계속 엇나가고 있는 윤 대통령의 행보가 갈수록 우려스럽다”고 썼다. 보수지에서도 비판이 제기됐다. 동아일보 김순덕 칼럼니스트는 “남편 잘 만나 수사도, 처벌도 안 받는 나라라니 과거 대통령 탄핵 때 외치던 ‘이게 나라냐’ 소리가 절로 나올 판”이라고 직격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민주주의를 붕괴시키는 방법 중 하나가 선택적 법 집행인데, 이래서야 검찰이 암만 법과 원칙대로 수사한대도 공정하다고 인식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의견 충돌

특검 정국을 앞두고 단행된 윤 대통령의 검찰 고위직 인사 비판 목소리는 여권에서도 나왔다. 김용태 국민의힘 비대위원은 인사 이틀 후인 5월 15일 “검찰 인사 교체는 대통령 기자회견 후 이뤄진 것이라 국민들이 ‘속았다’는 느낌을 받기 충분해 보여 위험했다”며 “국민의 ‘역린’이 무섭다는 것을 인지하고 눈치 좀 봤으면 좋겠다”고 비판했다. 김 비대위원의 발언은 여권 지도부에서 나온 첫 공개 비판이라 주목을 끌었다. 그는 “저희가 (김건희 여사) 특검에 명분을 줄 이유가 없다”며 “공정한 법 집행, 수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수사로 보여드려야 할 것이고 소환조사에 대한 수사기관의 판단이 선다면 대통령실도 적극 협조해야 된다”고 지적했다.

반면, 부장검사 출신으로 이날 수석대변인에 내정된 곽규택 당선자는 “총선이 끝나면서 미뤄왔던 정기 검사장급 인사를 한 것”이라며 “김 여사 수사에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곽 당선자는 “인사에 영향 없이 수사를 진행하는 것이 검찰의 시스템”이라며 “(김 여사) 소환조사만이 정답이라고 보지 않는다. 서면조사도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처럼 여당 지도부 내에서 상반된 의견이 나오는 건 ‘연쇄 특검 정국’을 앞둔 상황에서 여론의 역풍을 우려하는 내부 목소리가 그만큼 크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여당에선 비윤·비주류를 중심으로 비판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이상민 의원은 “왜 굳이 정략적 의도로 공격당할 빌미를 제공하냐”며 “김 여사 수사 여부에 이목이 쏠린 상황에서 검찰 인사로 논란을 더 증폭시킨 건 지혜롭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유승민 전 의원 역시 페이스북에 “대통령이라 해서, 대통령 부인이라 해서, 법 앞의 평등 원칙이 비껴간다면 그건 국가권력의 사유화”라며 “검찰총장 윤석열과 대통령 윤석열, 이 둘이 같은 사람 맞느냐”고 썼다. 이러다보니 5월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가뜩이나 높아진 여론에 밀려 채 상병 특검법 찬성 이탈표가 나올 가능성이 계속 커지고 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훈 마넷 캄보디아 총리 부인 뺏 짠모니 여사와 5월 1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들어서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뉴시스]&nbsp;<br>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훈 마넷 캄보디아 총리 부인 뺏 짠모니 여사와 5월 1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들어서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뉴시스] 

‘화려한 외출’

윤 대통령의 민정수석실 부활을 통한 검찰 인사로 김 여사 관련 수사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공개석상에서 모습을 감췄던 김 여사가 활동을 재개했다. 김 여사는 검찰 인사 사흘 후인 5월 16일 윤 대통령과 함께 캄보디아 정상 부부 방한 일정에 참석했다. 김 여사가 공개 일정에 모습을 드러낸 건 지난해 12월 15일 윤 대통령의 네덜란드 순방 동행 귀국 이후 153일 만이다. 대통령실은 이날 공지를 통해 김 여사가 한·캄보디아 정상회담 이후 열리는 공식 오찬에 참석한다고 밝혔다. 당초 일정엔 김 여사 참석 여부가 명시되지 않았지만, 대통령실은 이날 오전 10시경 수정 공지를 통해 김 여사 참석을 공식화했다. 전날 저녁 출입 기자에 알린 일정 공지엔 김 여사의 참석 여부가 명시되지 않았었다. 김 여사는 이후 윤 대통령과 5월 19일 불교 행사에 동행했고, 21일엔 혼자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아동 그림전 관람 행사에 참석하며 단독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를 두고 김순덕 칼럼니스트는 ‘검사 위에 여사, 나라 부끄럽다’는 제하의 칼럼을 통해 “내 남편 검찰공화국 대통령이 다 정리했다는 팽팽한 자신감이었다”며 날선 비판을 가했다.

김 여사는 명품 가방 수수 의혹 등이 불거지자 지난 4·10 총선 사전투표도 비공개로 했고, 지난달 열린 한-루마니아 정상회담 때도 비공개로 일정을 소화했었다. 대통령실은 김 여사의 활동 재개 시점을 놓고 고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5월 5일 어린이날 행사와 15일 부처님 오신 날 봉축식 등을 통해 김 여사의 행보 재개 계획을 고려하기도 했지만, 막판에 철회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여사가 공개적으로 외부활동을 재개하자 야당은 “기가 막힌 타이밍”이라며 검찰 인사와 무관치 않을 것이란 주장을 폈다. 황정아 민주당 대변인은 5월 17일 현안 브리핑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의 입으로 불리는 ‘찐윤’ 서울중앙지검장이 첫 출근하는 날, 김건희 여사가 153일 만에 공개 활동을 재개했다. 이런 기가 막힌 타이밍이 우연의 일치라고 믿을 국민은 없을 것”이라며 혀를 찼다. 황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비리 배우자를 지키기 위해 본분을 저버린 대통령에 대한 국민 분노가 임계치까지 끓어오르고 있음을 명심하라”며 “민주당은 반드시 특검을 통해 김 여사 의혹을 낱낱이 규명하겠다”고 경고했다. 공교롭게도 이날 이창수 신임 서울중앙지검장은 청사로 첫 출근을 하며 김 여사 수사와 관련해 “인사와 관계없이 해야 할 일은 법과 원칙에 따라 제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부인’과 장모님

그러나 김 여사의 활동 재개에 여당은 “영부인이 밥하고 빨래하는 역할만 해야 하느냐”며 적극적인 방어에 나섰다. 조정훈 의원은 “대통령이 갖고 있는 상징적 이미지, 특히 국제 외교에서의 역할을 신중하게 하시는 게 맞는다”며 이렇게 말했다. 김근식 서울 송파병 당협위원장도 “대통령 배우자가 언제까지 숨어 있을 수는 없다”며 “해외 순방도 가야 되고 국내 행사도 있는데, 일정 정도 정치적 마무리가 됐으면 좀 당당하게 나설 필요가 있다”고 옹호했다.

반면, ‘근신이 더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민주당 출신인 이상민 의원은 “국가원수로서의 외국 손님 방문 등에서 최소한 필수적으로 해야 되는 부분이 있지 않겠냐”면서도 “여러 가지 석연치 않은 부분들이 말끔히 해소되거나 털어내지 않은 상태에서 김 여사의 공개 행보는 대통령보다 더 주목받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대통령 리더십에도 문제점으로 작용될 것”이라며 “(김 여사가) 좀 더 근신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야권이 ‘김건희 특검법’을 벼르고 있는 상황에서 김 여사가 활동을 재개하면 공세의 빌미를 줄 수 있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김 여사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 내 고위급 인사가 이뤄진 뒤 김 여사가 공개 활동을 시작한 점을 언급하며 “딱딱 톱니바퀴 맞물려가듯 돌아가는 걸 보면 김 여사가 ‘검찰이 수사하지 않겠다’는 약속이라도 받은 것 아닌지 의심이 저절로 들지 않겠나. 참 공교롭다”고 꼬집었다. 한편, 김 여사의 공개 활동 이틀 전엔 윤 대통령의 장모이자 김 여사 모친인 최은순(77)씨가 만기 출소 두 달을 남겨두고 가석방으로 풀려나기도 했다. 최씨는 350억 원에 달하는 통장 잔고증명서 위조 혐의로 징역 1년을 확정 받아 복역 중이었다. 이기인 개혁신당 최고위원은 최씨의 가석방을 두고 ‘어버이날 선물’이라고 조롱하며 “(윤석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수 있을까 (의문)”이라고 직격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5월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민정수석에 김주현(오른쪽) 전 법무부 차관을 임명 발표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뉴시스]<br>
윤석열 대통령이 5월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민정수석에 김주현(오른쪽) 전 법무부 차관을 임명 발표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뉴시스]

 

폭풍 전야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채 상병 특검법안은 5월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재표결에 부쳐진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5월 22일 국회에서 열린 퇴임 기자회견에서 “여야 합의가 안 되더라도 28일에는 본회의를 열어 (채 상병 특검법을) 재표결해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국민의힘은 “독단적 운영”이라며 김 의장에 날을 세웠다. 그러나 재표결을 예상해온 국민의힘은 일찌감치 표 단속에 돌입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그동안 재표결과 관련해 당내 이탈표 단속에 나서겠다는 뜻을 숨기지 않아왔다. 신임 원내대표로 선출된 추경호 의원은 5월 17일 원내대책회의 후 “의원들 전체가 당론을 지키는 것에 현재 큰 틀의 입장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부분 의원들은 우리 당 기본 입장에 함께 하고 있다”며 재표결 찬성 뜻을 공개적으로 밝힌 당내 의원들을 일일이 만나 설득하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채 상병 특검법 반대 당론은 거센 당내 반발에 부딪혔다. 찬성 의사를 밝힌 김웅 의원은 5월 22일 “그따위 당론은 따를 수 없다”고 반발하며 “이탈표가 10명은 나올 것”이라 전망했다.

현재 국민의힘에선 이탈표가 많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낙선·낙천자 숫자를 감안할 경우, 안심해선 안 된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최근 국민의힘 원내행정국은 28일까지 잡힌 국회의원 해외출장 일정을 알려달라고 각 의원실에 공지했다. 본회의 재표결 출석률을 높이기 위해서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은 재적의원 과반 출석, 출석의원 3분의2 이상이 찬성해야 가결된다. 현재 구속 수감 중인 무소속 윤관석 의원을 제외한 재적의원은 295명이다. 이들이 전원 출석할 경우 197명이 찬성해야 하는데, 민주당(155석)을 비롯한 야권 의석을 모두 더해도 가결 요건에 못 미치는 180석이다. 다만 무기명으로 이뤄지는 재표결에서 국민의힘 의원 17명이 찬성표를 던질 경우 특검법은 통과된다. 여권에서 25명이 불출석하면 의결정족수가 180명으로 줄어 범야권 단독으로 표결이 가능하기 때문에 출석률이 중요하다. 여당은 17표까지 나오지는 않을 것이라 전망하지만, 낙선·낙천하거나 불출마한 의원 50여 명의 출석률과 표심을 장담할 수 없다는 목소리도 크다. 안철수·김웅·유의동 의원의 경우 공개적으로 찬성 입장을 밝힌 상태다. 김웅 의원은 국민의힘 의원들이 전원 퇴장한 5월 2일 국회 상정 때도 홀로 남아 찬성표를 던졌었다. 이에 국민의힘은 최대한 많은 의원이 재표결에 참석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번에 반대표 숫자가 안정적으로 나와야 차기 국회에서 야당이 특검법을 재추진해도 막아낼 동력이 생긴다고 보기 때문이다.

낙하산 회유

22대 국회서 국민의힘 의석수는 108석에 불과해 8표만 이탈하면 야권이 원하는 대로 법안을 처리할 수 있다. 홍석준 의원은 “28일 특검 재의결 때는 아마 부결될 것”이라면서도 “22대가 큰일인데, 108석밖에 되지 않으니 그야말로 살얼음판”이라고 우려했다. 일각에선 윤 대통령이 5개월 넘게 중단된 90여 곳의 공공기관장 자리로 총선 낙선·낙천자들을 챙기며 이탈표를 단속할 것이란 분석도 내놓고 있다. 동아일보는 5월 14일자 사설에서 “공공기관장 인사 재개로 이른바 ‘낙하산 인사’의 큰 장(場)이 서면서 공석이 된 주요 기관장 자리엔 벌써 총선에서 낙천 또는 낙선한 국민의힘 의원들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며 “채 상병 특검법 재의결이 이뤄질 경우, 이탈표가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도 필요한 ‘내 식구 챙기기’”라고 비판했다. 윤 대통령은 5월 20일 저녁엔 한남동 관저에서 22대 국회 PK(부산·울산·경남) 지역 국민의힘 초선 당선자 14명과 만찬을 가졌다. 앞서 지난 4월 24일엔 낙선 의원 50여명과 오찬 간담회를 열었고, 이후 5월 13일엔 지도부 만찬, 16일엔 수도권 및 대구·경북(TK) 초선 당선자들과 만났다. 이를 두고도 역시 윤 대통령이 채 상병 특검법 거부권 행사 이후 야권의 22대 국회 재발의 추진을 염두에 둔 이탈표 단속에 나선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192석을 확보한 범야권은 채 상병 특검 재발의는 물론 김 여사 특검법, 한동훈 특검법 등을 연달아 추진할 태세다.

협상

야권은 ‘개헌론’으로도 윤 대통령을 조이고 있다. 조국 대표는 윤 대통령의 임기단축을 전제로 한 ‘제7공화국 개헌’을 제안하며 그가 공언한 ‘3년은 너무 길다’는 구호 실현을 위해 압박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다. 조 대표는 5월 17일 “대통령이 명예롭게 자신의 임기 단축에 동의하고 우리가 말하는 개헌에 동의한다면 지금까지의 국정운영 실패, 무능·무책임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헌법을 바꿨다는 점에서 기여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 대표는 “현재의 대통령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바꿔야 한다”며 “대선과 지방선거시기를 맞춰 전국 단위 선거 횟수를 줄이면 그만큼 국력 낭비를 막을 수 있다. 개헌에 부칙 조항을 둬 현직 대통령 재임 기간을 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22대 국회에 개헌특별위원회를 설치하자고 제안했다. 개헌을 고리로 한 조 대표의 제안은 탄핵의 경우와 탄핵 실패 시 여론 등으로부터의 역풍을 고려한 압박용 카드라는 분석도 나온다. 조 대표는 사흘 후인 5월 20일엔 국민의힘이 내년 재보궐 선거에서도 크게 패하면 여당에서도 윤 대통령의 임기 단축을 위한 개헌을 하자는 요구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보수언론과 개혁신당도 임기단축을 언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여권이 이 제안에 동의할 가능성은 낮다. 개헌을 위해선 현재 192석인 야권이 여권으로부터 8석을 지원받아야 하는데, 국민의힘이 대통령 압박을 위한 개헌에 동의 할리 없기 때문이다. 설령 200석을 채운다 해도 국민투표에서50%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지도 확실치 않다. 또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겠다는 부분에 대해 국민들이 얼마나 납득할 수 있을지도 불분명하다. 이재명 대표는 조 대표 제안에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하지만, 실제 개헌 논의가 시작되면 이 문제는 정치권의 블랙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야권에선 이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헌법 질서 유지를 위해 필요한 경우’로 제한하는 안과 거부권 행사 후 재의결 정족수를 현행 ‘재석 의원의 3분의 2’에서 완화하는 안, 대통령 임기 단축과 4년 중임제 등의 개헌안이 나와 있는 상태다. 때문에 22대 국회서 개헌 논의가 시작되면 야권은 192석을 바탕으로 대통령의 권한·임기 축소를 이슈화할 수 있다. 조 대표는 5월 21일 ‘라인야후 사태’와 ‘새만금 잼버리 사태·부산엑스포 유치 실패’ 및 ‘언론장악’, ‘채 해병 특검법’과 ‘김건희 종합 특검법’ 및 ‘한동훈 특검법’ 등 3국조·3특검을 제안하기도 했다.

마이 웨이

집권 여당의 총선 참패 후 급전직하로 떨어진 국정지지율에도 윤 대통령은 ‘마이웨이’를 고수했다. 야권은 “윤 대통령이 총선 참패를 겪고도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고 비판하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 4월 29일 열린 영수회담 직후 “우이독경 마이웨이 윤석열 대통령”이라고 지적하며 “시간만 허비했다”고 허탈해했다. 회담에 배석했던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영수회담을 계기로 윤 대통령의 민생 회복 의지와 국정 기조 전환 의지를 확인하길 기대했지만, 대통령은 어떠한 의지도 보이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윤 대통령은 영수회담 10일 후 가진 취임 2주년 기자회견(5월 9일)에서도 국정 기조를 전환하지 않을 것이란 점을 분명히 했다. 회견 내용을 정리해보면, 국민과의 소통을 늘리겠다는 것 외엔 달라질 게 없어 보인다. 이날 회견에서 나온 첫 질문은 ‘총선 패배 원인을 뭐라고 생각하고, 무엇을 변화시키려고 하느냐’였다. 이에 윤 대통령은 “그동안 국정운영을 해온 것에 대해 국민들의 평가는 ‘좀 많이 부족했다’, 이런 것이 담긴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결국 민생에 있어 아무리 노력했더라도 국민들께서 체감하는 변화가 많이 부족했다, 정부의 정책들을 국민들에게 설명해드리고 소통하는 것이 많이 부족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국정기조를 전환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엔 “더욱 소통하는 정부, 민생에 관해 국민 목소리를 더욱 경청하는 정부로 바뀌어야 한다는 기조 변화는 맞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국민과의 소통’만 지속적으로 강조한 것이다.

앞서 총선 6일 후(4월 16일)에 열린 국무회의에서도 “올바른 국정의 방향을 잡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국민들께서 체감하실 만큼의 변화를 만들어 내는데 모자랐다고 생각한다”며 총선 참패 원인을 소통 부족 문제로 돌렸다. 국민은 총선을 통해 윤석열 정부의 실정을 준엄하게 심판했지만 예상되는 남은 임기 3년의 변화는 기자회견이나 야당과의 소통 기회가 늘어나는 정도에 그칠 전망이다.

조선일보는 총선 다음날 사설에서 “집권당이 최악의 참패를 당했다”며 “윤 대통령의 남은 임기 3년은 ‘식물 정부’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총선 참패 원인을 윤 대통령의 ‘오만과 불통 리더십’으로 규정하며 일방통행식 국정운영 스타일을 강하게 비판했다. 미진한 인적 쇄신도 같은 맥락에서 비판받았다. 총선 참패 후 국정 쇄신을 약속했던 윤 대통령은 지난 총선에서 낙선한 정진석 국회부의장과 홍철호 전 의원을 낙선 2주도 안 돼 각각 대통령비서실장과 정무수석에 앉혔다. 그러나 ‘친윤’계 논란을 부른 정 부의장의 비서실장 임명은 기대했던 인적 쇄신 효과와 달리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보다 앞서 윤 대통령은 총선 전 비례대표에 도전했다가 당선권 밖으로 순번이 밀려나면서 후보에서 사퇴한 자신의 오랜 측근 주기환 전 검찰수사관을 민생특보로 임명하기도 했다. 또 경기 용인갑에 출마했다 떨어진 이원모 전 인사비서관을 공직기강비서관으로 다시 불러들이는 등 다수의 낙선, 낙천한 측근들을 한 달도 안 돼 대통령실로 복귀시켰다. 전례가 드문 윤 대통령의 이런 조치에 정치권에선 특검과 탄핵을 밀어붙이는 거대 야당과의 대치 전선을 강화하려는 포석이란 말까지 돌았다. 이에 대해 여당의 한 중진은 “지금 윤 대통령이 기대야 하는 건 믿고 맡길 수 있는 참모가 아니라, 국정 쇄신에 호응하는 국민 여론 뿐”이라고 지적했다.

자중지란

4·10 총선에 참패한 국민의힘은 두 달여가 다 돼가는 지금까지도 후폭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양새다. 황우여 비대위가 들어서긴 했지만, 여전히 당 안팎에선 쇄신 목소리가 분출하고 있다. 당이 자중지란에 빠지면서 원로들이 나서 진화에 나서고 있지만, 이마저도 의견이 갈리는 모양새다. 당 상임고문단은 ‘총선백서’와 관련해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책임론 부각은 경계했지만, 한 전 위원장의 전당대회 등판론엔 상반된 입장을 보였다. 특히, 현재의 ‘당심 100%’인 당대표 선출 규정을 당심 50%, 민심 50%로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게 나왔다.

국민의힘 상임고문단은 5월 20일 오찬을 겸한 회의에서 총선백서에 한 전 위원장의 책임론을 기술하는 문제로 대립했다. 유준상 상임고문은 “특정인에게 책임을 묻는 식이 아닌, 미래를 준비하는 징비록이 돼야한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밝혔다. 백서 발간 시기와 관련해서도 전당대회 이후로 늦춰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흥수 상임고문은 “총선 백서 발행을 전당대회를 넘긴 뒤에 하는 게 좋지 않겠냐는 의견이 여러 사람 사이에 있었다”고 전했다. 백서에 담긴 내용에 따라 특정 후보들에게 유불리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우려한 발언이다. 다만, 한 전 위원장의 전당대회 등판 여부를 놓고는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한 상임위원은 “한 전 위원장이 스스로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으면서 또 다시 전당대회 출마를 준비하는 것과 같은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며 “국민여론이 부추긴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자숙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이야기 했다”고 말했다. 반면 유준상 상임고문은 “그건 그분(한 전 위원장)이 결정할 일”이라며 “총선의 책임 문제는 상임고문을 포함한 모든 당원들의 책무지 대통령이나 한 전 위원장에게 책임지라고 할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총선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 한 전 위원장이 최근 정책 현안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밝혀 전당대회 출마 결심을 굳힌 게 아니냐는 해석을 낳았다. 한 전 위원장은 정부의 해외 직구(직접구매) 규제 대책(KC 인증 의무화) 발표에 대해 “개인의 해외직구 시 KC 인증을 의무화할 경우 적용 범위와 방식이 모호하고 지나치게 넓어져 과도한 규제가 될 것”이라며 재검토를 촉구했다. 한 전 위원장은 5월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소비자의 선택권을 지나치게 제한하므로 재고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며 비대위원장 자리에서 물러 난지 한 달 만에 현안 관련 입장을 냈다. 공개 활동이나 공식 입장 표명 없이 공공장소에서 시민들의 눈에 띄는 방식으로 잠행을 이어오던 한 전 위원장이 마침내 정책 현안에 대한 공식 입장을 내자 전당대회 출마 결심을 굳힌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한 전 위원장은 5월 1일 강남구 도곡동 자택 인근에서 편안한 차림으로 통화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힌데 이어 11일엔 양재도서관에서 책 읽는 모습이 포착돼 지지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전당대회 출마 전 여론 동향 파악을 위한 ‘목격담 정치’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자 한 전 위원장을 지속 비판해온 홍준표 대구시장이 다시 나섰다. 홍 시장은 5월 21일 페이스북에 “그나마 마지막 한 가닥 기대를 걸었는데 우리를 지옥으로 몰고 간 애 앞에서 모두 굽실거리며 떠받드는 거 보고 더더욱 배알도 없는 당이라고 느꼈다”고 썼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홍 시장이 언급한 ‘애’가 지난 총선 이후 여러 차례 비판한 한 전 위원장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홍 시장은 “지난 대선 경선 때 민심에서 이기고 당심에서 졌을 때부터 정나미가 떨어지기 시작했다”며 이같이 적었다. 그러면서 “더 기가 막힌 건 총선을 말아 먹은 애한테 또 기웃거리는 당내 일부 세력들을 보고 이 당은 가망이 없다고 봤다”며 “당이 자생력이 있어야 일어 설 힘이 생기는데, 소위 중진이라는 사람들이 너도 나도 애 눈치나 보는 당이 되어서야 이 당이 살아나겠냐”고 반문했다. 홍 시장은 또 “검찰 정치로 2년 동안 혼란이 있었는데 또 검찰에 기대어 연명하기 바라냐”라며 “부끄러움을 알라”라고 직격했다. 그러면서 “초짜 당 대표가 되면 이 당은 가망이 없어 나도 거취를 결정할지 모른다”며 탈당을 시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하루 뒤 “내가 지난 30여 년간 이 당을 지키고 살려온 사람인데 (일각에서 제기하는) 탈당 운운은 가당치 않다”고 일축했다. 홍 시장은 그동안 총선 패배의 책임을 물어 한 전 위원장을 ‘총선 말아먹은 애’, ‘배신자’, ‘폐세자’, ‘문재인의 사냥개’라고 지칭하며 날선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2기 검찰정권’ 가능성

검사 출신인 윤 대통령의 대권 쟁취 과정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했다. 한때 ‘권력의 시녀’로 불렸던 검찰 조직의 수장이 ‘대권행 직행열차’를 탈 수 있다는 상상은 소설 속 얘기였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소설을 현실로 만들었다. 그것도 검찰총장직에서 물러 난지 1년도 채 안 돼 이룬 결과였다. 진보 정부 검찰총장 출신이 보수 정당 간판으로 대권에 도전해 권좌에 오른 유일무이한 존재가 된 것이다. 그랬던 윤 대통령이 이후 집권 내내 각종 사건·사고와 ‘실정(失政)’, ‘가족 리스크’ 등으로 지지 동력을 잃어가면서, 정권 중간심판 성격이 강했던 4·10 총선 참패와 함께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 및 부인 김건희 여사 관련 ‘사법리스크’ 등으로 수세에 몰리는 상황이다. 지난 총선에서 개헌저지선과 거부권을 위협할 정도의 의석(192석)을 확보한 야권은 윤 대통령과의 ‘특검 대회전'을 탄핵의 지렛대로 삼겠다는 복안이다.

이런 상황에서 총선 참패 책임을 지고 물러난 한 전 위원장이 일련의 행보에 비추어 당권 도전을 위한 몸 풀기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그러나 윤 대통령과의 ‘갈등’ 문제가 여전히 잠복해 있는 상태에서 ‘2기 검찰정권’을 노리는 한 전 위원장이 무사히 당권을 거머쥘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정치권에선 전당대회까지 남아 있는 한두 달 동안 변수가 너무 많아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을 내놓는다. 먼저, 지금의 ‘당심 100%’ 룰을 개정할 수 있을지에 대한 문제다. 민심을 반영한다면 그 비중을 몇 %로 할 것인지도 난관이다. 또 연쇄 특검 정국에서 ‘한동훈 당대표가 윤 대통령에게 얼마나 유리할지’에 대한 ‘고민’ 역시 변수다. 그럼에도 한 전 위원장이 당권을 쥐면, 지금의 정국 상황과 윤석열 정권의 지지율 등을 감안할 경우 ‘대망’을 위해선 차별화를 시도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주장이 나온다. 이 경우, ‘한동훈 당대표’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윤 대통령에 대한 ‘탈당’ 요구가 될 수도 있다. 특히 채 상병 특검이나 김 여사 관련 특검도 수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또 ‘윤 대통령과 운명을 함께하겠다’고 선언하면 대권은 고사하고 ‘동반 추락’할 가능성도 있다는 주장까지, 다양한 해석이 난무하고 있다. 한 전 위원장이 우여곡절을 거치며 험난한 여정을 뚫는다 해도 최종 대권주자가 되는 것과 국민이 ‘2기 검찰정권’을 받아들일 것이냐 하는 문제는 또 별개다. 5월 28일 국회 본회의 재의결 투표에서 국민의힘 이탈표가 얼마나 나올까. 전 국민의 시선이 국회로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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