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우 칼럼니스트<br>▸철학박사<br>▸상지대학교 조교수<br>
▲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조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필자는 유튜브나 라디오를 틀어놓고 그 소리를 백색소음 삼아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장르는 클래식부터 국악, 헤비메탈에 이르는 장르의 음악, 그리고 시사·교양 콘텐츠들이다. 그 중 시사 콘텐츠를 들을 때 가끔 신경을 매우 거슬리는 말이 나올 때가 있다. 바로 극우와 수구, 파시스트의 입장을 취하는 것으로 보이는 시사평론가가 스스로나 자기 진영을 지칭하여 ‘보수우파’, 혹은 ‘자유우파’라고 명명하는 것이다.

정치 진영과 관련해서 필자에게 거슬리는 장면은 지난주에도 등장했다. 지난 24일부터 26일까지 국회에서는 이진숙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가 있었다. 3일에 걸친 청문회에서 이진숙 후보자는 다양한 문제점을 드러냈다. 특히 법인카드로 제과점에서 산 빵의 양과 금액이 너무 많아서 ‘기추자월드’라는 유튜버에게 ‘빵숙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필자에게 가장 충격적이었던 장면은 이진숙 후보자의 역사 인식이었다. 광주 시민을 비하한 SNS의 글에 ‘좋아요’ 버튼을 누른 것과 그것을 비판하는 국회의원의 질의에 대해 “손가락 운동을 더 열심히 하겠다”라고 답변한 것,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성격을 묻는 질의에는 “민주화 운동으로 기록돼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이에 “기록되어 있느냐? 아니면 운동이냐?”라는 취지의 질문에 그제서야 “운동입니다”라고 답변한 것에서 이진숙 후보자의 역사인식이 드러났다. 또한 일본의 위안부 모집의 강제성 여부를 묻는 것에 “논쟁적 사안이라 답변하지 않겠다”라는 답변도 이진숙 후보자의 역사 인식을 보여줬다. 그리고 이진숙 후보자는 자신을 ‘극우’라고 지적하는 것에 대하여 발끈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대한민국에서 박정희·이승만을 존경한다고 이야기하면 극우로 돼버리고, 김대중·노무현을 존경한다고 하면 세련된 지식인 것처럼 그렇게 취급받는다”라는 발언도 했다.

이진숙 후보자의 발언을 하나하나 짚어보자. 5·18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질문에 즉각적으로 “민주화운동”이라고 답하지 않은 것은 이진숙 후보자의 5·18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인식을 여실히 드러내는 모습이었다. 만약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거나 질문이 잘 들리지 않았다면, 즉각적으로 그 상황을 설명하면 됐을 일이었다. 그러한 상황 설명이 일절 없었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은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헌법 전문 수록을 공약했을 정도로 민주화운동이라는 사실에 이의가 없는 사건이다. 그런데 끊임없이 남파간첩설을 유포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평범한 시민들은 다름 아닌 이들을 일컬어 ‘극우’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진숙 후보자의 역사 인식은 이러한 극우적 태도와 다르지 않다. 특히 ‘손가락 운동’ 운운하면서 비아냥거리는 모습은 일간베스트(일베)를 필두로 한 극우 인터넷 커뮤니티 회원들이 보이는 지역비하와 비아냥 등의 행태와 다름없다. 이진숙 후보자의 행태도 극우 파시스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모습과 큰 차이가 없다는 의미다.

위안부 문제는 논쟁적 사안이 아니다. 일제강점기 일제의 위안부 징집이 강제적이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자발적 지원’의 근거로 제시하는 ‘조선인의 자발적 모집’이라는 주장을 조금만 살펴보면 위안부를 모집했던 조선인들이 반민족 세력이었거나 위안부의 활동이 성과 관련된 일이라는 것을 숨기고 모집했음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정당한 대가’라는 주장 역시도 인권을 유린한 참혹한 폭력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급여조차 주지 않았다는 증언으로 반박될 수 있다. 굳이 비유하자면 일제의 위안부 행태는 1980년대-90년대 초에 난무했던 여성 인신매매, 즉 유인이나 납치 후 말이 되지 않는 이런저런 명목의 과도한 빚이 있다고 뒤집어씌우거나 협박, 성폭행 후 감금하고 성매매를 강요하는 성범죄와 비슷했다. 여기에 어떤 논쟁적 사안이 있는가? 위안부 문제는 성폭력의 일종이고, 성폭력은 피해자 우선주의가 적용된다. 그런데 이진숙 후보의 ‘논쟁’은 한국 대 일본, 혹은 다수의 한국인 대 일본을 옹호하는 극소수의 한국인과 일본인 사이에서 발생한다. 이진숙 후보의 ‘논쟁적 사안’이라는 주장은 위안부 문제가 성범죄의 일종임에도 불구하고 가해자인 일본이나 일본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논지를 받아들이겠다는 시대착오적이고 몰상식한 태도였다.

(백번 양보해서) 정작 논쟁적 사안은 이승만과 박정희에 대한 평가에서 나온다. 이 두 사람은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논쟁이 되는 인물이다. 논쟁이 있다는 것 자체가 극단적인 추앙도, 극단적인 비하도 모두 비판의 여지가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을 극단적으로 추앙하는 사람들이 제시하는 추앙의 이유는 보통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수호’다. 이승만은 북한의 침략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에서 대한민국을 수호했고, 박정희는 국가의 혼란을 5.16 ‘혁명’으로 종식시키고 간첩 등 북한의 침략 위협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켜내면서 경제를 발전시켰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이 주장 자체도 많은 쟁점을 내포하고 있다. 이승만이 한국전쟁에서 대한민국을 수호했다는 주장이 일부 맞는 부분도 있다. 유엔군의 파병을 이끌어냈고,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체결도 이뤘다. 그런데 한미상호방위조약은 한국전쟁 이후에 체결된 조약이고,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른 방위비 부담, 무엇보다도 우리나라를 우리 힘으로 지키지 못한다는 명분 부족 등 각종 한계가 있다. 유엔군 파병에 관한 사안 역시도 유엔군 파병 없이 한국군 단독으로 북한을 막을 수 있었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전쟁은 세계 전쟁사에서 수도를 가장 빨리 빼앗긴 전쟁으로 손꼽히고 있다. 짧은 시간 안에 수도 서울을 비롯한 영토의 대부분을 적의 수중에 빼앗기고 외국의 군대에 힘을 빌린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지킨 대통령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것 하나만으로도 “이승만이 자유대한민국을 지켰다”는 주장의 한계가 확연히 드러나는데, 심지어 이승만은 전쟁이 한창인 상황에서 국회의원들의 통근버스에 테러를 가하면서 정권 연장을 시도했고, 보도연맹을 비롯한 전쟁을 핑계로 각종 양민학살을 저질렀다.

박정희가 주도했던 5.16은 자유민주주의와 상반되는 군사쿠데타다. 이후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저질렀던 각종 공안사건, 용공조작, 상대 정치인과 2인자들을 향한 테러, 부정선거, 유신개헌 등은 모두 자유민주주의와 상반되는 행위다. 박정희를 향한 옹호의 상당수는 ‘만약’으로 시작한다. “박정희의 독재가 없었다면 북한의 침략을 막을 수 없었고, 경제가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라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이 주장은 그저 추정일 뿐이다. 저 주장대로라면 박정희의 독재가 없더라도 북한의 침략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추정’도, 다른 정부였다면 경제가 발전했을 것이라는 ‘추정’도 받아들여져야 한다. 무엇보다도 전쟁 중이라도 살인은 향후 많은 검증을 받는데, 자기 정권의 연장을 위한 테러가 용인받을 수 있는가? 부정선거, 유신헌법 자체가 자유민주주의 헌정의 파괴였고 헌정의 파괴는 자유민주주의의 파괴다. 그리고 ‘어쩔 수 없는 독재’가 말이 되는가? 박정희 정권 때 경제가 발전되었다는 주장 역시도 실제 물가상승률과 부의 분배 등을 근거로 많은 반론을 받고 있다. 박정희 정권 때 경제를 발전시킨 사람은 박정희 1인이 아니라 저임금과 인권 유린에도 불구하고 몸이 상하도록 일한 분들이다.

청문회 때 이진숙 후보자의 발언 속에는 한국 사회에서 ‘보수 우파’를 자처하는 사람들의 민낯이 드러난다. 이들은 ‘보수 우파’라기보다는 ‘극우 파시스트’에 가깝다. 세계 상당수의 나라에서 소위 ‘좌파’와 ‘우파’가 집권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한다. 보통 이들이 갈라지는 지점은 ‘현안’ 문제다. 외교, 난민과 이민자 문제, 소수 약자에 대한 이슈, 낙태 같은 정치, 사회적 문제나 복지, 자유무역과 보호무역 여부 등 경제 문제에 관한 것들이 대표적 사례다. 예를 들어서 현재 미국 대선에서 후보직을 사퇴한 조 바이든(Joe Biden) 현 대통령을 대신해서 후보로 나선 민주당 카멀라 해리스(Kamala Harris) 부통령도 인종차별과 낙태 문제를 파고들면서 지지율을 높이고 있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것은 일단 정리되면 더 이상 좌우를 가르는 지점 역할을 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서 미국에서는 공식적으로 유색인종을 향한 차별이 존재하고, 인종 차별 문제가 불거지면 엄청난 사회적 문제가 된다. 이진숙 후보가 언급했던 KKK(Ku Klux Klan. 극단적 백인 우월주의 테러집단)단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극소수 존재하지만, 이들은 미국 사회에서 엄청난 비난을 받는다. 심지어 2016년 도널드 트럼프(Donald John Trump)의 연설회장에 ‘KKK는 트럼프를 지지한다’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은 남성이 등장했는데, 트럼프는 “여기서 나가라(Get out of here)”라고 한 뒤 옛날이었으면 즉각 경찰에 의해 자리에서 쫓겨났을 거라고 했을 정도다. 다른 예로 독일에 소수의 ‘극우’ 세력이 있는데, 이들은 이민자에 대한 극단적 테러와 나치와 히틀러에 대해 찬양한다. 그런데 이러한 행위들은 사회적으로 엄청난 비난을 받고, ‘반나치법안’이 존재하기 때문에 법으로 처벌받는다.

한국 사회에서 소위 ‘보수 우파’, 혹은 ‘자유 우파’를 자처하는 사람들의 최대 보호막은 ‘표현의 자유’와 ‘북한’이다. 이진숙 후보자가 ‘손가락 운동’ 운운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표현의 자유는 그 자유를 누린 만큼 책임을 지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이고, ‘표현의 자유’ 영역 안에 역사 왜곡의 자유는 인정되지 않는다. 역사적 쟁점이 있는 이승만, 박정희에 대한 평가에서도 보수 우파를 자처하는 집단은 반대 진영이 제시하는 반론에 대한 재반박도 못하고 “박정희 대통령이 자유 대한을 지켜냈다”는 식의 선언적 주장만 반복한다. 그들 중 어떤 집단(예를 들면 뉴라이트)은 왜곡으로 점철된 근거를 생산하고, 이것을 받아들인 사람들의 행위는 혐오의 표현과 위협이 난무한다. 모든 것이 과거 독일 나치가 보여줬던 극우 파시스트의 행태다. 무엇보다도 북한에 반대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북한이 없으면 존립하지 않는 모습은 서로 등지고 있지만 반대되는 양면으로 존재하는 동전과 같다. 진짜 종북은 과연 누구일까. 

이진숙 후보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이진숙 후보는 한국현대사에 관한 지식 부족과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낮은 이해도를 드러냈다. 이러한 사람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으로 과연 적절할까. 오죽하면 ‘좌파 우파 같은 소리하네, XX XX파겠지’라며 비아냥거리는 가사까지 나오는 지 곱씹어 봐야 하지 않을까.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