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보험 개혁, ‘비급여 진료 남용 막고 관리하겠다’ 골자
소수의 ‘도덕적 해이’를 전체가 나눠 부담하는 구조 지적
‘개혁 미룰 수 없다’ 칼 뽑은 정부…소비자·의료계는 반발
실손보험 적자가 이어지며 전체 가입자들의 보험료 인상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그 배경으로 비급여 진료의 과잉과 관리 부재가 꼽히고 있다. 정부가 과잉 진료와 비급여 항목을 통제하는 내용의 개혁안을 내놨지만, 소비자는 보험료 증가 및 혜택 축소에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자기 부담률이 낮은 기존 가입자의 5세대 실손보험 전환율 또한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 의료계는 자율성 침해와 환자 선택권 제한을 이유로 반발하고 있다. 실손보험의 보험금 누수는 보험사 뿐 아니라 국민건강보험 재정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가운데, 새로운 정책의 실효성과 이해관계자 간 합의가 개혁의 주요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건강보험을 보조하며 국민 의료비 부담을 줄이는 안전망 역할을 해 온 실손의료보험(이하 실손보험)이 망가지고 있다. 본래 취지와 다르게 재정 누수와 과잉 진료의 온상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비급여 진료의 급증과 이를 둘러싼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보험개혁을 결정했지만 소비자와 의료계 반발 등 남은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17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기준 전체 실손 보험 가입자 3578만명 중 65%는 보험금을 수령하지 않았으며 상위 9%가 지급 보험금의 80%를 수령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수 가입자에게 보험금이 집중된 만큼 ‘모럴헤저드(도덕적 해이)’와 의료 남용의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왜 유독 실손보험만 이렇게 문제가 되는 것일까. 간단하게 말하면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아 병원마다 가격이 천차만별인 비급여 진료비를 보험사에 청구하기 때문이다.
도수치료나 백내장 수술, 주사제 치료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도수치료는 병원마다 진료비가 최대 10배 이상 차이가 나며, 일부 병·의원에서는 과도하게 높은 비용을 청구하는 사례가 발견되고 있다. 백내장 수술 역시 필요 이상의 시술로 보험금 청구하는 사례가 있다.
보험 가입자가 보험금을 청구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지만, 필수적인 치료가 아님에도 비싼 의료비 부담이 덜하니 마음껏 쓰겠다는 사례가 늘며 문제가 된 셈이다. 일부 병원에서 “실손보험 있으세요?”라고 물으며 급여치료와 비급여치료를 결합한 패키지를 상품화하는 경우도 생겼다.
특히 초기 상품인 1·2세대 실손보험은 비급여 과잉 진료를 유발하는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목된다. 2017년 이후 나온 3·4세대 실손보험은 비급여 보장 범위와 횟수(통원 50회)가 제한되지만 이전 상품은 본인 부담금 없이 사실상 무제한 비급여 진료비 보장을 받기 때문이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비급여 진료비 규모는 10년 새 2배 이상 늘어난 연간 20조원 수준이며 실손보험은 적자 상태를 꾸준히 유지했다. 실손보험 손해율은 2022년 117.2%, 2023년 118.3%, 지난해 상반기 118.5%로 계속 늘고 있는 상태다.
보험금은 소수가 타더라도 부작용은 전체 가입자가 부담하는 구조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보험사들이 매년 손해를 막기 위해 보험료를 거듭해 올리고 있다.
올해 실손의료보험 전체 인상률 평균(보험료 기준 가중평균)도 7.5%로 산출됐다. 인상률이 10% 미만인 1·2세대 실손보험과 달리 3세대와 4세대 보험의 인상률은 각각 20%대, 13%대 수준으로 인상될 예정이다.
보험사 관계자는 “실손보험 과잉진료로 피해를 보는 것은 보험사와 전체 가입자 뿐이 아니다. 전체적인 의료비 증가는 공보험 재정에도 영향을 미쳐 공익에도 피해를 끼치는 구조”라고 말했다.
의료계의 필수의료 약화 문제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피부과나 안과처럼 비급여 진료를 주로 제공하는 과에 몰리고, 상대적으로 진료 수가가 낮은 소아과나 산부인과에서는 의사 부족현상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서남규 건강보험공단 비급여관리실장은 “비급여 진료가 많이 이뤄지는 경우 수익과도 직결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필수의료 분야가 약화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며 “장기적으로 국민 의료비 완화와 필수의료 강화를 위해서라도 비급여 진료에 대한 관리가 시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속 가능성 위해 개혁은 필수…소비자·의료계 반발은 숙제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는 지난 9일 ‘의료체계 정상화를 위한 비급여 관리 및 실손보험 개혁방안’ 토론회를 통해 강한 보험개혁을 예고했다.
본인 부담률 최고 95% 적용 등을 필두로 비급여 진료의 표준화 및 관리 강화, 과잉 진료 모니터링, 실손보험 갱신제도 개편 추진 등이 포함됐다.
이를 통해 병·의원별 비급여 진료비 차이를 줄이고, 국민들이 합리적인 의료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방안이다. 비급여 진료의 사후 심사 강화와 과잉 진료에 대한 페널티 부과 방안 등도 검토 중이다.
정부와 전문가는 의료체계를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보험개혁이 필수라고 강조하고 있다.
정형선 연세대학교 보건행정학부 교수는 “실손보험은 비급여 항목이나 본인 부담금의 일부를 보상하고 있는데 당초 목적은 건강보험의 보충적 역할”이라며 “이 과정에서 보험료를 납부했다는 이유로 필요하지 않은 의료 서비스도 이용하는 인구가 늘며 의료 남용으로 이어진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장기적으로 실손보험료 인상을 초래해 전체 가입자의 부담을 증가시킨다. 특히 도수치료 등 선택성이 큰 항목들은 남용 우려가 큰 만큼 정부가 이를 관리하기 위해 건강보험 급여 항목으로 편입하고, 가격을 정형화해 소비자 불확실성을 해소하려 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양질의 의료망 지속을 위해서라도 보험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고 이뤄져야 하는 조치”라며 “장기적으로 불필요한 의료 이용을 억제하고 실손보험료 인상을 방지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개혁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을 전망이다. 의료계는 정부의 개혁 방안이 의료진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환자의 선택권을 제한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소비자들도 보험료 부담 증가와 보장 축소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현재 반대의견이 많은데 정부는 개혁이 단순히 비용 절감이 아닌 국민 건강과 복지 증진을 위한 것임을 인지하고 정책으로 보여줘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의료계와 국민과의 소통 강화 및 신뢰 회복 또한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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