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최두진 객원기자】 우리는 언젠가 모두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가까운 가족, 친지, 지인들의 죽음을 마주한다. 죽음 앞에서 애도를 표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조용히 숨을 고르며 떠나는 이를 정성스럽게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윤재호 감독의 다큐멘터리 <숨(Breath)>은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이 아닌, 타인의 죽음을 함께하고 그 흔적을 정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준다. 지난 12일 개봉한 이 작품은 장례지도사, 유품정리사, 폐지를 줍는 노인의 일상을 통해 삶과 죽음의 경계를 조용히 들여다본다.
영화는 세 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30년간 4000명이 넘는 고인의 마지막을 배웅한 장례지도사 유재철씨, 홀로 생을 마감한 이들의 흔적을 정리하는 유품정리사 김새별씨, 폐지를 주우며 생계를 이어가는 문인산 할머니. 이들의 일상은 특별한 사건 없이 담담하게 흐르며, 죽음을 마주하는 방식에 대한 깊은 사유를 관객에게 맡긴다.
영화의 첫 장면은 개인적으로 익숙한 풍경이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떠나셨을 때 경험했던 장례 과정이 떠올랐다. 염을 하고, 입관을 한 후 상여가 나가고, 탈관해 시신을 땅에 묻는다. 관은 묘 옆에서 쪼개 태우고, 생전에 입었던 옷가지도 함께 불태운다. 장례지도사 유씨의 모습은 이러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고인의 존엄을 지키려는 그의 태도가 깊은 인상을 남긴다.
그러나 그는 긴 시간 이 일을 하면서 육체적 한계를 겪고 있다. 오랜 기간 고인을 모시는 작업을 해온 그는 손과 어깨를 다쳐 수술을 받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자신의 일을 계속한다. 그는 영화의 마지막에서 “권세가 있는 사람이나 돈이 많은 부자나, 결국 한 평도 안 되는 관으로 들어간다”고 말한다. 그의 말은 삶의 끝자락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유품정리사 김씨는 죽음을 직접 보내드리지는 않지만, 죽은 자가 남긴 흔적을 정리하는 일을 한다. 고독사한 이들의 집을 찾아 유품을 분류하고, 정리하고, 때로는 버리는 과정에서 그는 남겨진 것들이 지닌 의미를 되새긴다.
그는 시사회에서 “이 일을 하면서 가족의 의미를 다시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유품을 정리하며 가족의 소중함을 절감했고, 그 과정에서 술과 담배를 끊고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됐다고 전했다.
김새별 씨가 강조한 것은 ‘죽음’이 아니라 ‘가족’이었다. 그는 “가족이야말로 인간이 남길 수 있는 가장 큰 재산”이라고 말하며, 관객들에게 지금 곁에 있는 이들과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기를 조용히 권유한다.
폐지를 줍는 문인산 할머니의 일상도 영화 속에서 조용히 흐른다. 그의 하루는 고된 노동의 연속이다. 폐지를 팔아 하루 1100원에서 1500원을 벌며, 홀로 밥을 먹고 하루를 버틴다. 영화는 그의 삶을 조용히 바라보며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 삶은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일까, 아니면 그저 하루하루를 견디는 일일까.
윤 감독은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후 돌아오는 길에 폐지를 줍는 노인을 보았다고 한다. 그는 “누군가에게는 쓸모없는 파지가, 누군가에게는 생계를 이어가는 수단이 된다”는 생각이 떠올랐고, 이를 영화 속에 담았다고 말했다.
이러한 시도는 흥미롭지만, 그가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점은 아쉽다. 죽음을 바라보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겼다면 어땠을까.
영화는 감정을 강요하지 않는다. 절제된 화면과 담담한 내러티브로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이 아닌, 죽음을 보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그 과정에서 관객들은 스스로 죽음에 대해 사유할 기회를 얻는다.
이렇듯 <숨>은 죽음을 배웅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통해 삶과 죽음의 의미를 되새기게 만든다. 이 영화는 단순히 직업을 소개하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죽음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개인의 경험과 시선으로 풀어내며, 관객들에게 스스로 질문을 던질 기회를 제공한다.
“나는 가족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
“내가 남길 마지막 흔적은 무엇일까?”
<숨>은 이러한 질문을 던지며, 죽음을 바라보는 태도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