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선옥 지음 | 160쪽 | 125×205 | 청어 | 1만4000원
악기가 다 고쳐졌네요. 이제 내게 이 악기는 필요 없어요. 내게 이 선율이 영원히 머물 테니까요. 어긋난 ‘약속’들처럼 이 악기를 여기, 악기들의 집에 맡겨둘게요. (138쪽)
【투데이신문 권신영 기자】 윤동주 시인과 닮은 그의 이름은 선옥이었다. 서른 여덟의 연극 배우 고(故) 주선옥은 무명의 시간 속 피어난 고결함으로 그 삶의 아름다움을 지켰다. 지난해 4월 10일, 선옥이 갑작스레 세상을 뜨고 난 뒤 그가 남긴 유고가 한 자리에 모이기 시작했다. 평소 그의 밝은 웃음에 활력을 찾곤 했던 주변인에 의해서다.
2008년 연극배우로 데뷔한 주선옥은 <하카나>, <늑대는 눈알부터 자란다>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하며 독보적인 존재감을 나타냈다. 배우로서 입지를 다진 그는 2014년 <너를 읽다>를 시작으로 극작 활동도 이어갔다. <다락-굽은 얼굴>은 2022년 제8회 무죽페스티벌에서 작품상을, <소년소녀 모험백서>는 2023년 제8회 청소년을 위한 공연예술축제에서 최고 작품상을 수상한 바 있다.
‘안녕, 선옥.’ 서문을 맡은 김행숙 시인은 책의 첫머리에 나직한 인사말을 전한다. 김행숙 시인의 제자와 벗으로서 오랜 친분을 쌓아 온 저자는 생전 시와 희곡, 가사 등 1000여개의 파일을 남겼다. 김행숙, 남지은, 이설빈 시인이 수많은 원고 중에서 저자의 목소리가 뚜렷하게 들려오는 작품들을 선별해 본뜻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수정한 결과 저자의 1주기에 맞춰 <꼭 안아주기>가 탄생하게 됐다.
<꼭 안아주기>는 그렇게 시 30편과 희곡 1편으로 구성돼 출간됐다. 오은 시인은 추천사에서 “선옥의 시와 희곡은 작디작은 목소리로 전하는 안부 같다”며 “신음, 비명, 저림, 날숨, 속삭임, 화이트 노이즈 등 다양한 형태로 번져나가는 소리는 끝끝내 여음으로, 여운으로 남는다”고 했다.
고친 악기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지만 그 자리에 ‘선율’이 영원히 머물 것이라고, 장기기증으로 일곱 명의 생명을 살리고 세상을 떠난 다정한 배우가 썼다. 그의 다정에 덕을 본 이들이 악기 없이도 존재하는 선율처럼 세상에 영원히 머물 ‘선옥’의 작품을 남겼다.
출판사 관계자는 “무대 밖에서 쓰인 그의 시와 희곡은 무명의 시간 속에서 탄생했다. 연약해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며 “글 쓰는 사람 자신을 붙들어준 단단한 기둥 같은 작품들이다. 그 안에는 삶의 끝자락에서조차 누군가를 감싸안으려는 마음이 배어 있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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