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우 칼럼니스트<br>▸철학박사<br>▸상지대학교 조교수<br>
▲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조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6일부터 18일까지 1박 3일 일정으로 캐나다에서 열린 G7 정상회담에 초청국 정상 자격으로 참석했다. 이스라엘의 이란 침공으로 인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급거 귀국하는 바람에 미국과의 정상회담은 무산됐지만, G7 회원국 정상을 비롯해 안토니우 구테흐스(Antonio Guterres) UN 사무총장, 나렌드라 모디(Narendra Modi) 인도 총리,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Luiz Inacio Lula da Silva) 브라질 대통령 등과 환담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이번 순방을 “민주주의 한국의 복귀”라고 소개했고, 국내외의 많은 언론이 한국 외교의 정상화라고 평가했다.

필자 역시 이러한 평가에 동의했지만, 정작 필자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언론의 용어 사용이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추트이나 부족 족장은 전통 인디언 복장으로 환영 인사를 건네 눈길을 끌었습니다. <뉴스데스크>, 문화방송, 2025.06.17.

이 대통령은 마중 나온 캐나다 정부 관계자들과 지역 인디언 복장을 한 추트이나 부족 족장, 최근 국가안보실 2차장으로 임명된 임웅순 주캐나다 대사와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SBS 모닝와이드>, 서울방송, 2025.06.17.

이러한 보도를 보면서 필자는 깜짝 놀랐다. 지상파 방송에서 ‘인디언’이라는 용어가 쓰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필자는 인디언이라는 용어가 인종 차별의 성격을 띤 용어이자, 특정 인종에 대한 선입견을 심을 수 있는 용어라고 배워왔다. 필자가 어릴 때 ‘시리얼’이라는 음식을 처음으로 접했는데, 당시 농심에서 출시한 ‘인디안밥’이라는 과자가 시리얼의 대체품이 됐다. 시리얼의 대체품이 아니더라도 과자 자체도 맛있었다. 그리고 이 과자 덕분에 놀이 중 걸린 사람의 등을 나머지 사람들이 난타하는 ‘인디안밥’이라는 벌칙도 생겼다. 또한 ‘나미와 붐붐’이라는 트리오가 불렀던 ‘인디언 인형처럼’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교실 뒤에서 토끼춤을 추면서 이 노래를 부르는 학생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토요 명화’, ‘주말의 명화’, ‘명화극장’ 등에서 서부극이 방영되면, 정의로운 카우보이가 야만적인 ‘인디언’들을 무찌르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그런 장면을 통해 나에게 카우보이는 정의로운 사람, ‘인디언’은 야만인이라는 고정관념이 생겼다.

이 고정관념이 깨진 것은 대학 진학 이후였다. ‘동양’, ‘서양’이라는 용어가 고대 그리스와 로마를 중심으로 한 용어라는 점, 중국의 역사만을 배우는 과목을 ‘동양사’로, 서유럽과 미국의 역사만 배우는 과목을 ‘서양사’라는 이름으로 운영한다는 점 등을 배우면서 용어에 많은 고정관념이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인디언’이라는 말이, 아메리카 대륙을 무단으로 개척한 유럽 사람들이 그곳을 인도로, 그곳에 살던 원주민들을 ‘인도 사람’으로 인식해서 탄생한 말이라는 점, 그리고 ‘인디언’이라는 용어에 아메리카 원주민의 정체성 무시와 인종 차별의 의미가 있다는 점, 그리고 아메리카 대륙에 들어온 유럽인들이 원주민과 그 문화를 야만적으로 파괴했다는 점도 배웠다.

이러한 분위기는 또다시 바뀌었다. 미국과 캐나다에 거주 중인 아메리카 원주민 중 일부 부족이 ‘인디언’이라는 용어를 더 적극적으로 사용한 것이다. 그 주된 원인은 ‘인디언’이 남아메리카 원주민(인디오)과는 다른,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정체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또한 워낙 오랫동안 사용된 용어라 그 자체가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단어가 됐다고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인식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야구선수 추신수가 활약했던 팀이었고, 영화 <메이저리그>의 배경이 된 미국 야구팀인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라는 이름의 구단이 있었다. 

그러다 2020년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라는 흑인이 위조지폐를 사용했다는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던 중 경찰이 그의 목을 과도하게 눌러서 질식사하는 사건이 생기면서 인종 차별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고, 팬데믹 상황에서 아시아인을 향한 인종차별적 공격이 이어지면서 인종 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이 확대됐다. 그래서 미국의 프로스포츠 구단에서 인종차별적 성격이 내포된 팀명을 바꾸는 작업이 진행됐고,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도 ‘클리블랜드 가디언스’라는 팀명으로 교체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정작 아메리카 원주민 중 일부는 ‘인디언’이라는 명칭 사용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오히려 인디언에 대한 상징적인 이미지가 크기 때문에 구단명을 원래대로 되돌리라는 운동을 펼쳤다. 특히 원래 클리블랜드 인디언스가 사용했던 붉은 얼굴빛과 희화된 표정의 ‘와후 추장’ 로고도 바뀌었는데, 아메리카 원주민 야구팬들이 이 로고 변경에 가장 반대했다.

정부나 기업 차원에서 잘못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용어를 다른 것으로 바꾸는 작업이 진행돼 왔다. 크레파스와 물감에 존재했던 ‘살색’이 ‘살구색’으로 변경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특정 빛깔을 ‘살색’이라고 규정하면 다른 피부색을 가진 인종의 피부를 ‘살’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작업을 권고했던 것은 국가인권위원회였다. 아직 우리가 사용하는 용어 가운데 알게 모르게 고정관념을 내포하고 그것을 강화하는 말들이 존재한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말에는 많은 맥락이 들어있고, 역사를 담고 있으며,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동된다. 또한 그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맥락 역시 변할 수 있고, 말이 역사성과 변동성이 있듯 말을 사용하는 사람 역시 역사성과 변동성이 있다. 이를 고려한 언어 사용과 정리가 필요하며, 정부와 기업, 언론, 시민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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