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방위비·관세 압박 속 전작권 논의 패키지화 우려
지휘통제·정찰 등 한국군 역량 미흡 지적 이어져
“정치 논리 아닌 장기적 안보 전략으로 접근해야”
【투데이신문 양우혁 기자】 고율 관세에 이어 방위비 분담금 인상 요구까지 겹치며 미국의 압박이 거세지는 가운데,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문제가 한미 협의의 주요 변수로 다시 부상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전작권 환수는 장기적 현안으로, 이번 협상과는 별개의 사안”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한미동맹의 균열과 전략적 공백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13일 정치권에 따르면 한미 양국은 전작권 전환과 관련해 실무 차원의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대통령실은 전작권 환수는 이미 20여 년 전부터 논의돼 온 과제일 뿐, 이번 협상 국면에서 새롭게 꺼내든 의제가 아니라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다만 미국의 요구와 맞물리면서 전작권 문제가 방위비 협상이나 관세 등 경제 현안과 연계된 ‘안보 패키지’로 부상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전작권은 한반도 유사시 미군이 한국군을 지휘할 수 있는 권한을 의미한다. 1950년 6·25전쟁 발발 직후 유엔군사령부에 이양됐다가, 1978년 한미연합군사령부(연합사) 창설 이후 연합사령관에게 넘어갔다. 평시 작전권은 1994년 한국 합참의장이 환수했지만, 전시 작전권은 여전히 주한미군 사령관이자 연합사령관인 미군 대장이 행사한다. 한반도에 전면전이 발발하면 미 육군 대장 제이비어 브런슨이 한미 연합군의 모든 작전을 총괄하는 구조다.
전작권 환수 논의는 1990년대 중반부터 물밑에서 시작됐지만, 본격적으로 추진된 것은 노무현 정부 시절이다. 당시 정부는 전략적 자율성과 자주국방, 민족적 자존심을 이유로 전작권 환수를 강하게 밀어붙였다. 양국은 2007년 합의를 통해 2012년까지 한국군에 전작권을 이양하기로 했다.
이후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이 급속히 고도화하고, 중국이 패권 추구로 국제 질서를 흔드는 등 안보 환경이 악화되자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기존 합의를 ‘조건부 환수’로 수정했다. 전작권 전환의 시점을 없애고, 한국군이 충분한 역량을 확보했을 때에만 이양하는 방식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도 이러한 기조를 유지했다. 2018년 한미 양국은 ▲한국군의 핵심 군사 역량 확보 ▲북한 핵·미사일 대응 능력 ▲안정적인 한반도 및 역내 안보 환경 등 세 가지 대목을 충족해야 전작권을 전환한다는 원칙에 합의했다. 이 세 가지 조건을 세부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수십 개의 평가 항목이 마련됐고 문재인 정부는 국방비를 크게 늘리며 이를 달성하기 위해 속도를 냈다.
이 가운데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공약 중 하나인 임기 내 전작권 환수 추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10일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도 전작권 전환의 실익과 잠재적 리스크를 점검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당 내부에서는 자주국방과 전략적 자율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전작권 전환이 단순한 군사 지휘권의 문제가 아니라 한미동맹의 구조적 변화를 촉발할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라고 강조한다. 따라서 전작권 환수의 시점과 방식에 대해 더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특히 미국의 압박 기조가 강화된 현 상황에서 전작권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경우, 한국의 안보 전략 전반에 심각한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5% 수준의 국방비 증액을 요구했고, 한국에도 연간 100억달러를 내야한다며 압박하고 있다. 현재 우리 국방비는 GDP의 2.3% 수준에 머물러 있어, 한미 간 방위비 협상에 따른 추가 부담이 현실화될 경우 방위 재정 구조에도 적잖은 부담이 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아직 한국군이 전작권 전환 이후 전시에 독자적인 방위 작전을 수행할 준비가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군 관계자들에 따르면 지휘통제(C4I) 체계와 감시정찰(ISR) 능력 등 핵심 역량이 완전한 수준에 이르지 못했고, 미군의 즉각적 증원 없이 북한의 도발에 대응하기에는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일부 미국 보수진영에서는 주한미군 병력을 현재 2만8500명에서 절반 이하로 감축하자는 주장까지 제기하고 있어, 전작권 전환이 이슈화될 경우 이런 논의가 더욱 가속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기일 상지대 군사학과 교수는 “전작권 환수는 우리 군이 결국 가야 할 방향임은 분명하다”면서도 “현 시점에서 지휘통제와 감시정찰 역량이 충분히 검증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무리하게 속도를 내면 방위 공백은 물론 주한미군의 역할 축소라는 의도치 않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공약을 지키려는 노력은 이해하지만 전작권 전환은 정치와 연관지어 밀어붙일 사안이 아니다”라며 “한미동맹의 균열을 방지하고 안보 공백을 막기 위해서라도 장기적이고 치밀한 전략을 세워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전작권 전환을 위해서는 현재 육·해·공으로 분리된 군 체제를 통합군 체제로 전환하고, 국방비 증액이나 복무기간 조정 등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과제들이 많다”며 “무엇보다 전작권 전환은 대통령이 직접 나서 강력한 의지를 갖고 추진해야 할 사안인데 지금 논의가 그런 긴장감 속에서 이뤄지고 있는지는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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