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김이슬 기자】 도입 9년째, 스튜어드십 코드는 여전히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가입 기관은 300곳에 달하지만 90% 이상이 의결권 행사 사유를 공개하지 않는다. 절반 이상은 내부 지침 공시조차 부실하다. 제도가 껍데기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제도의 취지는 분명했다. 대형 기관투자자가 기업 경영을 적극적으로 감시해 기업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하고, 그 과정에서 소액주주의 이익을 보호하자는 것이었다. 한국은 2016년 제도를 도입했고, 2018년에는 국민연금이 참여했다. 그러나 현실에서 기관들은 기업 의사결정에 무비판적으로 동의하는 ‘거수기’에 머물렀다. 기대했던 시장 감시 기능은 작동하지 않았다.
문제는 단순히 ‘참여 부실’에 그치지 않는다. 기업 경영에 대한 외부 감시가 약해지면서 불투명한 의사결정이 반복됐고, 이는 결국 기업가치와 주주 신뢰 하락으로 이어졌다. 해외 투자자들이 한국 시장을 ‘코리아 디스카운트’라 부르는 데에도 이런 배경이 깔려 있다. 제도의 공허함이 자본시장의 성장 동력을 갉아먹는 셈이다.
해외의 접근은 다르다. 영국은 가입 기관의 활동을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일본은 기관별 성과를 외부에 공개한다. 이를 통해 시장은 누가 어떤 사안에 어떤 목소리를 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일본의 밸류업 정책이 힘을 받은 배경에도 스튜어드십 코드가 있었다. 코드의 실효성은 결국 정기적 평가와 투명한 공개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한국도 기준을 바꿔야 한다. 의결권 사유를 표준화된 방식으로 상시 공개하고, 무작위 외부 점검과 시정명령을 제도화해야 한다. 미이행 기관에는 위탁운용 배제나 수수료 불이익을 주는 장치도 필요하다. 또 기관별 참여 성과를 공개해 비교 가능성을 높여야 책임투자가 실제 행동으로 이어진다.
코스피5000을 실현하려면 제도의 신뢰 회복이 먼저다. 스튜어드십 코드의 실질적 작동이 지배구조 프리미엄을 키우고, 그것이 시장 밸류에이션을 끌어올린다. 지금처럼 허울뿐인 제도에 머문다면 남는 건 ‘무늬만 선진국’이라는 오명일 뿐이다. 신뢰를 되찾고 규율을 바로 세울 때 한국 자본시장은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