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손잡은 컬리, ‘컬리엔마트’로 외연 확장
새 고객 유입은 기회, 플랫폼 충돌은 리스크
【투데이신문 강현민 기자】 창사 10주년을 맞은 컬리가 네이버와 손을 잡았다. ‘컬리엔마트’라는 이름으로 네이버 안에 별도 매장을 열고 더 많은 고객 앞에 서려는 시도다. 신규 고객층 유입이 기대되지만, 외부 플랫폼에 기대는 방식이 체질 개선으로 이어질지는 불확실하다. 자칫 자사 플랫폼 경쟁력 약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객층을 넓히고 한 단계 도약하려는 컬리에게 이번 제휴가 성장의 발판이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네이버 안으로 들어간 컬리
컬리 김슬아 대표는 지난 9일 서울 종로 네이버스퀘어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컬리와 네이버는 서로 다른 강점을 가진 회사다. 각자의 장점을 합쳐 이전에 구현되지 못했던 새로운 장보기를 해보자는 것이 파트너십의 출발점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번 협업의 결과물은 ‘컬리엔마트’다. 네이버플러스 스토어 안에 별도 코너를 만들어 운영하는데, 네이버 앱에서 쇼핑 탭을 열면 첫 화면 상단에 고정 배치돼 쉽게 찾을 수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네이버 안에서 곧바로 컬리에 들어가는 셈이다. 화면 구성도 컬리 앱과 비슷하게 짜여 있어, 익숙한 컬리의 쇼핑 경험을 네이버에서도 이어갈 수 있도록 했다.
배송은 컬리의 ‘샛별배송’이 그대로 적용된다. 밤 11시까지 주문하면 다음날 아침 문 앞에서 상품을 받을 수 있다. 이는 네이버 플랫폼 안에서도 컬리의 물류 시스템이 그대로 작동한다는 뜻이다. 단순한 입점이 아니라 컬리의 풀필먼트까지 이식된 구조다.
상품은 컬리의 프리미엄, PB상품 등 신선식품군을 비롯해 생활·주방용품까지 5000여 종이 진열된다. 소용량 중심이었던 컬리와 달리 상품 단량을 높였다. 이는 고객군 차이가 고려된 것이다. 김 대표는 “이번 협업 과정에서 네이버 안에는 컬리를 경험하지 않은 평균적 소비자가 많다는 걸 알았다”며 “가족 단위가 크고 대용량 상품 수요가 높다”며 기존 컬리 이용자와 충돌하기보다는 보완 관계에 가깝다고 강조했다.
네이버-컬리 맞손 배경은
양사 모두 약점을 보완할 필요가 있었다. 네이버는 검색 트래픽 기반의 국내 최대 쇼핑 플랫폼이지만 신선식품·생필품 부문이 약했고, 품질 관리 역시 비교적 취약했다. 반면 컬리는 프리미엄 큐레이션으로 경쟁력을 확보했지만, 대중성 확장엔 제약이 따랐다.
업계 추정치로 컬리 앱의 월간 활성 이용자(MAU)는 300만 안팎에서 정체돼 있다. 김 대표는 “컬리의 강점이자 약점은 너무 트렌디해 보이고 접근하기 어려운 이미지였다. 굳이 앱을 하나 더 설치해 상품을 사야 한다는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이번 협업을 추진했다”고 말했다. 네이버 입장에서도 신규 투자를 피하면서 신선식품 카테고리를 강화할 수 있어, 상호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제휴였다는 평가다.
단기적으로 컬리는 4000만 네이버 이용자에 노출되면서 신규 고객 기반 확대와 물류센터 가동률 개선을 기대할 수 있다. 김 대표는 “유통 비즈니스의 핵심은 결국 물량을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며 “네이버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빠르게 실현하고 물류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컬리의 배송 자회사 ‘컬리넥스트마일’이 네이버 풀필먼트 얼라이언스(NFA)에 참여하면서 이를 통한 추가 수익 창출 가능성도 열려 있다.
다만 컬리와 컬리엔마트, 두 서비스의 유사성은 컬리에 잠재적 위험 요소로 꼽힌다. 생활용품과 단량을 높인 상품으로 구성된 컬리엔마트와 프리미엄 소용량 중심의 컬리 앱이 일부 차이를 가지더라도, 실제 이용자 입장에서는 두 서비스를 명확히 구분해 사용할 이유가 약하다는 지적이다.
컬리 내부에서도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김 대표는 “이번 협업을 하면서 컬리와의 카니발(컬리제품과 컬리엔마트 제품의 충돌)이 예상됐다”며 “컬리엔마트 잠재고객을 예상하고 이들에게 적합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컬리가 기존에 해왔던 것과 무엇을 다르게 해야할 지 고민이 있었다”고 했다.
두 플랫폼의 멤버십 서비스 격차도 변수다. 네이버플러스 멤버십은 월 4900원으로 컬리 멤버십(1900원)보다 비싸지만, 무료배송과 넷플릭스 이용권을 한꺼번에 묶어 제공한다. 소비자가 양쪽 멤버십을 저울질할 경우, 컬리 안에서도 상대적으로 충성도가 약한 고객은 네이버 쪽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네이버가 우버와의 협업을 준비하며 멤버십 혜택을 확대하고 있어 혜택의 격차는 더 커질 전망이다.
이런 까닭에 자칫 컬리의 협업이 오히려 독이될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인하대 소비자학과 이은희 명예교수는 “플랫폼 경제에서는 규모가 작은 쪽이 큰 쪽에 흡수되는 구조”라며 “컬리가 컬리엔마트와 뚜렷한 차이를 두지 못하면 두 플랫폼 간의 충돌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컬리 입장에선 당장 매출 확대 효과는 거둘 수 있겠지만, 플랫폼의 경쟁력은 플랫폼에서 나온다. 앞으로 두 회사의 관계가 어떻게 흐를지는 지켜봐야 한다. 다만 유사한 기능을 하는 플랫폼과 관계가 깊어질수록 일단 리스크 하나는 안고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컬리는 최근 광고 전략에서 이미지 변신을 꾀하고 있다. 초창기에는 배우 전지현을 내세워 세련된 프리미엄 이미지를 강조했지만, 최근 10주년 광고에선 이효리·이상순 부부와 악동뮤지션 이찬혁 등 친근하고 대중적인 방향으로 틀었다. 광고 메시지 역시 “짧은 인생을 좋은 것으로”로 바꾸며 고객 스펙트럼을 넓히고 있다.
결국 이번 협업은 ‘컬리의 고객 접점 확대’라는 과제 속에서 도출됐다. 단기적으로 막강한 트래픽을 자랑하는 네이버에서 고객층 확대를 엿볼 수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자사 플랫폼 경쟁력을 강화하는 게 컬리의 숙명이다. 결국 컬리가 풀어야 할 숙제는 ‘컬리엔마트’가 아니라, ‘컬리’에 있는 셈이다.
김 대표는 이날 간담회 자리 첫 발언에서 “지난 10년간 여러 발표회를 진행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초록색 옷을 입었다. 저희한테 굉장히 중요한 날이기도 하고 입고 보니 보라색과 초록색이 잘 어울린다”고 했다. 설립 10년차를 맞은 컬리가 이번 협업을 계기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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