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도세 감면 혜택 눈먼 부재지주, 친환경 인증 포기 강요해
농식품부, 직불금 수령 단속 유예 대신 농지법 개정 ‘만지작’
“단속 유예가 현실적…친환경 인증 ‘과정 중심’ 전환 필요”
농업계 “실무 차원 해결 못 해…송 장관 책임지고 해결해야”

지난 7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임차농부 보호, 친환경 장기 임차활성화 제도 마련 촉구' 기자회견에서 한 참석자가 손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지난 7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임차농부 보호, 친환경 장기 임차활성화 제도 마련 촉구' 기자회견에서 한 참석자가 손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홍기원 기자】 친환경 농사를 짓는 임차농들이 부재지주(농지를 갖고 있지만 실제 경작하지 않는 지주)에 의해 인증 포기를 강요받는 상황이 이어지며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그런데 농림축산식품부는 태평하게 논의만 질질 끌고 있어 빈축을 사는 모습이다. 오히려 농지 규제 완화를 끌어들여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게 아니냐는 지적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에 전 정부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이 정무적 차원에서 책임지고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지적이 높아지는 분위기다.

최근 농업 현장에서 진행되고 있는 공익직불금 부정수급 단속이 애꿎은 친환경 임차농에게 불똥이 튀고 있다. 공익직불금은 농업의 공익적 기능 강화를 위해 농민에게 지원하는 보조금으로 기본형의 경우 농지 규모에 따라 차등 지급되고 있다. 문제는 자신이 소유한 농지를 농민에게 임대한 지주들이 대부분 농업경영체 등록 명의를 본인으로 해놓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직불금 수급뿐 아니라 양도소득세 감면 등의 수혜를 받기 위해서다. 조세특례제한법상 8년 이상 농지를 자경하면 양도소득세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친환경 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자신의 명의로 친환경농산물 인증(무농약, 유기농 등)을 별도로 받고 있다. 같은 농지에 2개의 명의가 걸려있는 셈이다.

결국 정부에서 공익직불금 부정 수령 단속을 위해 농지정보시스템과 농업경영체시스템 연계를 통한 농지대장을 검증하면 정보 불일치로 점검대상이 된다. 그러자 부재지주들이 친환경 농민에게 인증 포기를 강요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추세다.

본보가 한 농해수위 의원실이 농식품부로부터 받은 친환경농업 임차농 문제 대응방향 자료를 단독 입수해 분석한 결과, 농식품부는 공익직불 부정수급 단속을 유예하는 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법적 문제에 걸려 쉽사리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모습이다. 

대신 농식품부는 전반적인 농지 임대차 규제를 완화하도록 농지법을 개정하는 안을 모색하고 있다. 현재 국회에는 3년 이상 자경시 농지 임대차를 허용하는 내용의 농지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양도소득세 감면 혜택과 관련해서는 기획재정부에 친환경농지 등에 대한 양도소득세 감면 특례 적용 가능성을 타진했으나 긍정적인 반응은 얻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기재부는 세수축소 등의 우려로 조세특례확대에 신중한 입장으로 신규 반영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처럼 친환경 임차농 문제는 농지, 공익직불, 조세제도 등이 얽힌 복합적인 문제인 만큼 중장기적 검토가 필요한 상황이다. 당장에 농사짓는 농지를 잃거나 아니면 애써 획득한 친환경 인증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린 친환경 임차농을 위해서는 뾰족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지난 8월부터 관련 부서, 친환경 농민, 전문가들과 함께 TF를 구성해 운영하며 관련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면서 “단속 유예를 계속 논의하고 있는데 법 테두리를 벗어나는 점이 있어 확답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 2022년 감사원 감사와 국회 국정감사에서 직불금 부정 수급 문제를 지적받으면서 엄격한 집행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3년 이상 자경 시 농지 임대차를 허용하는 농지법 개정안에 대해 “법이 개정된다면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라고 덧붙였다.

지난 8월 강형석 농식품부 차관은 국회 소통관 스마트워크센터에서 친환경농업 생산자 및 소비자생협 대표들과 면담을 갖고 임차농 문제의 해결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강 차관은 친환경농가의 어려움을 돌기 위해 농지 임대차 제도 개선 등을 추진하고 있다며 다만 임차농 문제는 복합적인 문제인 만큼 협의체를 구성해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제도적 난맥상으로 인한 친환경 임차농 문제를 단지 실무 차원의 TF에서 풀기는 매우 어려울 것으로 점쳐진다. 농식품부도 복합적인 문제로 새로운 제도 마련까지 시간이 걸리는 점을 인정하는 만큼 우선 단속부터 중단해 친환경 농민들이 인증을 포기하거나 애써 친환경 농지로 전환한 농지에서 쫓겨나는 상황부터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와 관련해 한 농업계 인사는 “농지 임대차 제도 개선은 농지법의 근간을 흔들 수 있어 쉽지 않은 문제”라고 짚었다. 특히 3년 이상 자경시 농지 임대차 허용은 친환경 농업에 국한하지 않고 모든 상황에 적용되는 규제 완화로 부재지주를 양성화할 우려가 높은 대목이다.

임호선(오른쪽부터), 이원택, 임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참석자들이 지난 7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임차농부 보호, 친환경 장기 임차활성화 제도 마련 촉구' 기자회견에서 유령가면과 옷을 입은 농부들과 함께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임호선(오른쪽부터), 이원택, 임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참석자들이 지난 7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임차농부 보호, 친환경 장기 임차활성화 제도 마련 촉구' 기자회견에서 유령가면과 옷을 입은 농부들과 함께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실무 차원에서 못 풀면 장관이 나서 정무적으로 해결해야”

친환경농산물 인증 중 유기농 인증의 경우 다년생 작물은 최소 수확 전 3년, 그 외 작물은 파종 재식 전 2년의 전환기간을 필요로 한다. 이 기간 동안은 화학 비료와 농약 사용을 중단하고 친환경농업으로 토양을 관리해야 한다. 이후, 토양과 작물 상태를 확인하는 심사를 거쳐 유기농 인증 기준에 부합해야 인증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인증을 포기하거나 친환경 농민이 다시 임대를 받지 못하면 애써 유기농으로 전환한 농지가 다시 관행농으로 돌아가게 된다. 친환경 임차농 입장에서는 회복 불가능한 타격을 입게 되는 것이다.

한국친환경농업협회, 한살림소비자생협연합회 등은 지난달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친환경 임차농 보호 및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이들은 앞서 지난 7월에도 같은 내용의 기자회견을 국회 앞에서 한 적이 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가짜 농부’만 비호하는 현행 공익직불금 부정 수령 단속의 즉각 중단과 실경작자 중심의 농업경영체 등록 제도 개선 등을 촉구했다.

홍안나 경기도친환경농업인연합회 사무처장은 “단속에 걸리면 부재지주가 아니라 친환경 임차농이 그 피해를 다 떠안는 구조다. 설령 지주에게 불이익을 준다 해도 그렇다면 지주들이 친환경 농민들에게는 임대를 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부재지주의 압박을 받은 친환경 농민들은 대부분 인증을 포기하는 상황이다. 그렇지 않으면 갑자기 농사를 지을 농지를 구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농지를 지키려면 인증을 취소하고 관행농으로 되돌아 갈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홍 사무처장은 “모든 제도가 농지에 귀속되고 있는 점도 문제다”라면서 “농업경영체 등록도 농지를 기반으로 등록하는데 친환경 인증도 농지에 나온다. 즉 ‘이 땅은 친환경 농사를 할 수 있는 땅이다’라고 인증하는 건데 농지가 아니라 농민에게 인증을 해야 맞는 것 아니냐”라고 꼬집기도 했다. 농사를 짓는 주체는 농민인데 농지를 대상으로 친환경 인증을 발급하는 구조는 현실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나아가 이 사안을 해결하려면 친환경농산물 인증제를 과정 중심으로 전환해 농지가 아닌 친환경 농민에게 인증을 발급하는 방안으로 연결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한 국회 농해수위 소속 의원실 관계자는 “지난 2022년부터 2023년까지 지방자치단체 농지정보시스템과 농업경영체시스템을 연계한 농지대장 자동 검증에 대해 논의 과정을 거쳤음에도 이 문제에 대한 조치는 전무했다”라며 “이 문제가 친환경농업의 위축을 부채질하는 형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친환경농산물 인증제를 과정 중심으로 개편하는 궁극적인 대책이 마련되기 전까지는 공익직불 점검 및 단속을 유예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일 것”이라고 제안했다.

농식품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0년 친환경농산물 인증 농가 수는 5만9249호, 면적은 8만1827㏊였으나 4년 연속 하락하면서 지난해 친환경농산물 인증 농가 수는 4만8668호, 면적 6만8165㏊로 줄어들었다. 올해 역시 8월 현재 농가 수 4만7594호, 면적 6만7431㏊로 감소 추세다.

지난 9월 국무회의를 거쳐 확정한 이재명정부의 국정과제를 보면 경축순환(가축분뇨 퇴비화)과 탄소중립직불제를 신규로 도입해 친환경 유기농업 면적을 2배로 넓히겠다는 비전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친환경 임차농의 문제를 외면하고서는 해당 국정목표는 언감생심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친환경 농가에 대한 정확한 임차농 현황은 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파악하기 어려우나 통계청에 의하면 지난해 기준 전체 농가 중에서 임차 농가의 비율이 45%나 됐다. 친환경 농가 역시 상당수가 임차농일 것으로 추정된다.

당장 제도를 손보기 힘든 상황에서 더 이상 친환경 임차농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농업계에서는 실무 차원이 아닌 장관이 나서 책임지고 정무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헌법 제121조 제1항은 ‘국가는 농지에 관해 경자유전의 원칙(농민이 농지를 소유하는 원칙)이 달성되도록 노력해야 하며 농지의 소작제도는 금지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헌법과 배치되는 농지와 부재지주 문제는 농업계의 오래된 난제이기도 하다. 홍 사무처장은 “실무 차원에서는 해결이 안 된다. 장관이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라며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이 적극적인 의지를 가져야 하는데 정작 송 장관은 이에 대해 아무 말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권혁주 전국농민회총연맹 사무총장은 “3년 이상 자경시 농지 임대차 허용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으로 사실상 부재지주의 존재를 인정하게 된다. 경자유전의 원칙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라며 농식품부가 추진하려는 농지법 개정 내용에 난색을 표했다. 그는 “농지를 어떻게 할 것인지 대원칙이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규제 완화가 정답인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권 사무총장은 “농지 규제를 잘못 완화했다가는 농지마저 부동산 투자의 대상으로 전락해 투기를 조장하게 될 것”이라며 “사회적 합의를 통해 농지에 대한 대원칙부터 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채 규제부터 완화하려 드는 농식품부의 움직임이 매우 우려스럽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농지 규제가 강화된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면 전 국민적 공분을 샀던 지난 2021년 LH(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의 농지 투기 의혹이 나온다. 자칫 농지 규제 완화로 농지를 대상으로 한 부동산 투기가 본격화되면 농업의 근간이 흔들릴 것이라는 경고가 나오는 이유다.

권 사무총장은 “친환경 임차농은 특수한 상황에 놓인만큼 특별한 대책이 필요하다”라면서 “현재로서는 어떤 제도를 대안으로 만들어야 할지 답이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답이 나올때까지는 농식품부가 정무적 차원에서 문제에 접근해야 하며 그러려면 송 장관이 역할을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현장 일선에 부딪히는 문제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자세가 필요한데 송 장관 체제의 농식품부는 손 놓고 부담스러운 과제는 못본 체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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