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탄소 산업 중심 지역일수록 금융 전환 속도가 산업 경쟁력 좌우”
“탈탄소 압력 낮은 지방 중소기업 탈탄소 투자 인센티브 필요”
녹색채권부터 전환금융 지원·석탄지원 배제 등 친환경 금융 확대
【투데이신문 문영서 기자】기후 리스크로 인한 금융기관의 피해가 최대 45조원을 넘어설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며 민간 금융권에서의 전환금융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3일 한국은행(이하 한은)이 기후정책 도입 강도 및 시기에 따라 달리 설정한 4가지 시나리오에서 기후 리스크에 대응하는 정도에 따른 금융기관의 손실규모는 무대응할 경우 45조7000억원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2030년까지 무대응하다 2050년 ‘넷제로’ 정책을 추진하는 지연대응은 39조9000억원, 2050년까지 탄소 배출을 현재 대비 80% 감축을 전제한 2℃ 대응은 27조3000억원, 그리고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가정한 1.5℃ 대응은 26조9000억원 순으로 감소한다.
기후 리스크가 국내 금융기관의 건전성과 금융안정을 훼손시키는 핵심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은행 자기자본비율(BIS)은 5.3%포인트에서 7.6%포인트까지 하락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무대응 시나리오의 경우 7개 은행이 최소 자본규제비율을 하회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됐다.
70% 이상의 신용손실이 철강 등 고탄소 배출 제조업 및 도소매업 등 자연재해 손실 민감 업종에서 발생하는데, 이같은 고탄소 배출 산업이 밀집한 지방 소재 금융사의 손실율(2.0%) 역시 시중은행(1.3%)을 상회한다.
지난 2024년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은 총 6억9158만 톤으로 전년 대비 2% 감소했지만 부문별로는 산업 부문의 배출량이 2억8590만 톤으로 오히려 0.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석유화학·정유 업종 등 생산 확대와 온실가스 감축 노력의 정도를 의미하는 온실가스 원단위 개선 부진 등이 주요 원인으로 산업계의 감축 노력이 여전히 부족함을 시사한다.
발전 부문이 재생에너지와 원자력 비중 확대로 5.4% 배출 감축을 이뤘음에도 산업 부문의 탄소배출 증가가 전체 국가 감축 목표 달성을 어렵게 만드는 현실이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산업 부문에 대한 금융 지원과 기술 전환 투자가 불가피하다고 지적한다.
녹색전환연구소 경제전환팀 최기원 팀장은 “지방 금융기관은 지방 중소기업에 많이 연결돼 있는데 지방 중소기업은 탈탄소압력이 낮은 상황이기 때문에 지방 금융기관의 탄소 배출량이 낮아지지 않는 여건으로 이어지는 것”이라며 “지방 중소기업들이 탈탄소에 투자할 때 인센티브를 주는 등의 제도적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후 리스크 확산, 산업 전환과 금융 지원이 관건
이에 국내 금융권도 ‘녹색금융’을 중심으로 투자와 대출, 채권 발행 등 전방위적 친환경 금융 확대에 나서고 있다.
KB금융지주는 ‘KB Green Wave 2030’ 전략 아래 2030년까지 50조원 규모의 ESG 금융을 추진하되, 이 중 25조원을 녹색 분야에 집중 투자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태양광·수소·전기차 인프라 등 신재생에너지 프로젝트를 위한 금융 지원 역시 확대했다. 지난해 기준 녹색금융 누적 실적은 19조2000억원으로, 2030년까지 그룹 내부 탄소배출량을 42% 감축하겠다는 계획이다.
KB금융 관계자는 “중장기 탄소중립 추진전략 ‘KB Net Zero S.T.A.R’를 기반으로 효과적인 기후변화 대응 활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며 “내부배출량(Scope1&2)은 2040년까지, 금융배출량(Scope3)은 2050년까지 넷제로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한금융지주는 올해 2023년까지 누적 30조원의 친환경 금융 목표를 수립하고, 대출 및 투자 포트폴리오 관리에 기후 리스크 평가를 반영한다. 태양광·풍력 등 친환경 PF 외에도 탄소 다배출 산업의 친환경 전환 프로젝트에 전환금융 지원을 확대하며, 지난해에만 친환경 투자 1조7000억원, 전환금융 9605억원(대출 5805억원·투자 3800억원)을 집행했다.
하나금융지주는 2030년까지 ESG 금융 누적 60조원을 목표로, 2050년 그룹 차원의 탄소중립 달성을 공식화했다. 특히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을 위해 ‘기업 ESG 라운지’를 개설, 탄소배출량 산정 및 친환경 경영컨설팅을 병행하고 있다.
우리금융지주는 2050 탄소중립 로드맵에 따라 친환경 금융 공급을 가속화하고 있다. 지난해 우리은행은 2700억원 규모의 녹색채권을 발행해 재생에너지·친환경 인프라 금융을 지원했고, 우리금융지주는 ‘ESRM(환경·사회 리스크 관리) 모범규준’ 2025년 개정판에서 신규 석탄광 개발 및 석탄화력 건설·증설에 대한 금융 지원을 배제했다.
지방은행, 탄소집약 산업 밀집…전환금융 절실
하지만 금융권 전반에 탄소배출량이 높은 산업에 대한 대출이 여전히 많다는 점이 녹색금융 확대의 걸림돌이다.
특히 고탄소배출 산업이 집중된 지방 소재 금융사의 기후리스크에 따른 신용손실 발생률은 2.0%로, 시중은행의 손실률(1.3%)을 상회해 지방은행의 전환금융 필요성이 더욱 높은 상황이다.
이에 광주은행, 부산은행, 전북은행 등 주요 지방은행들은 친환경 프로젝트와 지역 탄소중립 추진 자금 마련을 위해 녹색채권 발행에 참여 중이며, 이를 통해 재생에너지, 친환경 인프라, 녹색산업 지원에 나서고 있다.
BNK금융 관계자는 “고탄소 산업 중심의 지역일수록 금융의 전환 속도가 산업의 경쟁력을 좌우한다”며 “부산·울산·경남 지역 금융권은 조선·자동차·석유화학·철강 등 탄소배출이 많은 산업이 지역경제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녹색금융’과 ‘전환금융’의 필요성을 그 어느 지역보다 절실히 느끼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부울경 지역에서는 해상풍력, 산업단지 RE100(재생에너지 100%) 전환, 항만 AMP(육상전력공급) 등 실물 중심의 전환 프로젝트가 활발히 추진되고 있으며, BNK금융은 이에 맞춰 전용 금융상품 개발, 투자 참여, 정책금융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녹색·전환금융 지원을 확대 중”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자본 여력이 여유롭지 않은 지방은행의 경우 정부 지원 없이는 탄소 감축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지방은행 관계자는 “부울경 지역은 조선·자동차·철강 등 전통 제조업 중심지로, 탄소 감축을 위한 투자비용이 크고 변화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다”며 “지방 산업의 탄소 감축과 전환은 단순한 금융 지원만으로는 이뤄지기 어려워 정부와 국책금융이 지역의 산업 현실을 충분히 이해하고, 지방은행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협력 체계를 주도적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