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복귀로 재편되는 삼성…카드는 시험대 ‘최상단’
효율 앞세운 성과주의…윤리·소비자 신뢰 경영과 간극
책임분담률 업계 최저·상담윤리 논란 등 브랜드 이미지↓
삼성금융네트웍스(삼성생명·화재·카드·증권)가 통합 플랫폼 ‘모니모(Monimo)’의 대규모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명분은 ‘하나의 삼성금융’을 실현하기 위한 고객 데이터 통합과 서비스 효율화다. 그러나 삼성카드가 통합의 중심이자 실질적 운영사로서 모든 부담을 안는 구조는 업황 부진과 맞물려 리스크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카드업은 이미 가맹점 수수료 인하·소비 둔화·디지털 전환 비용 증가 등 복합적 압박에 직면했고, 삼성카드의 3분기 실적은 전년 대비 4.2% 감소했다. 더불어 보험 설계사 채널 폐지, 소비자 반발, 내부 계열 간 이해 충돌이 얽히며 ‘모니모 통합’은 새로운 시험대가 되고 있다. 본지는 이번 기획을 통해 삼성카드 중심 통합전략의 구조적 불안과 최근 불거진 소비자 후생 문제 등을 조명한다.
【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이재용 삼성그룹 회장이 사법 리스크를 벗고 ‘뉴삼성’ 체제 완성을 본격화하고 있다. 책임·윤리·신뢰를 강조하는 그의 경영 기조는 재계 전반의 화두가 됐다. 그룹 내부에서도 ESG 강화와 투명경영 체계가 빠르게 자리 잡으며 ‘이재용의 삼성’은 새로운 무게 중심을 형성하고 있다.
이 변화의 한가운데에는 금융계열, 그중에서도 삼성카드가 있다. 삼성생명·화재·증권과 함께 데이터를 공유하며 ‘모니모(Monimo)’를 매개로 통합 금융 생태계를 구축 중인 삼성카드는 소비자 접점의 최전선에 있다. 그러나 최근 소비자 신뢰와 내부 통제 지표는 이 ‘뉴삼성’의 가치와는 반대의 신호를 보내고 있다.
1등 카드사의 책임분담률 ‘최저’…소비자 신뢰 ‘불균형’
최근 국민의힘 이양수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5년 상반기 기준 8개 전업 카드사 중 삼성카드의 부정사용 사고 책임분담률은 45%로 최저였다. 이는 업계 평균(59.1%)보다 14%포인트 낮은 수치로, 하나카드(80%)와는 35%포인트 차이를 보인다.
책임분담률은 소비자 과실이 없는 부정사용 사고 시 카드사가 부담하는 손실의 비율이다. 이 비율이 낮다는 것은 ‘책임’이 소비자에게 더 전가된다는 뜻이며, 피해 구제의 접근성을 낮춘다.
삼성카드는 2021년 69%에서 2022년 55%, 2023년 57%로 꾸준히 하락해 올해 상반기에는 45%까지 떨어졌다. ‘프리미엄 카드사’로 불리던 브랜드가 소비자 신뢰의 기본 지표에서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21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삼성카드의 상담 윤리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김재섭 의원은 보이스피싱 피해자에게 ‘성폭행당한 것도 아닌데 뭐가 문제냐’는 상담원 발언을 거론하며 “소비자를 두 번 상처 입히는 비윤리적 응대”라고 질타했다.
타 카드사들이 피해액에 무이자를 적용하거나 청구를 면제한 것과 달리, 삼성카드는 연 18%의 이자를 그대로 부과한 점도 논란을 키웠다. 실적 중심 서비스가 ‘소비자 신뢰’라는 무형 자산을 훼손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민원 지표도 악화됐다. 삼성카드의 자체민원은 13건→9건으로 줄었지만, 대외민원은 101건→114건으로 12.9% 증가했다. ‘고객상담’ 관련 민원은 1건에서 3건으로 200% 늘었다.
겉보기에는 민원이 줄었지만, 소비자들이 내부 절차 대신 금융감독원 등 외부 기관을 통한 민원 제기를 택하고 있다는 점에서 내부 신뢰가 약화됐다는 해석도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자체 민원 감소만으로 서비스 품질이 개선됐다고 볼 수 없다”며 “오히려 내부 신뢰 부재로 소비자 피로감이 누적된 결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 불만은 복잡한 부가서비스에서도 드러난다. 삼성카드의 자동차관리 부가서비스 ‘오토케어플러스’는 ‘첫 달 무료 체험’을 내세우지만, 쿠폰 한 장만 사용해도 전체 요금이 청구된다. 환불 기준도 상·하반기로 나뉘어 소비자 혼선을 부른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무료라더니 결제됐다”, “해지 유도 거부”, “앱 내 해지 버튼이 숨겨져 있다”는 불만이 이어진다. 단순한 서비스 문제를 넘어 ‘삼성카드=복잡하고 책임 회피적’이라는 인식을 강화하는 요인이다.
소비자단체 관계자는 “홍보 문구와 결제 구조 간 괴리가 크고, 약관상 명시됐다 하더라도 실질적 혼선이 반복된다면 명백한 신뢰 훼손”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단순 서비스 운영을 넘어 인력 구조 전반에서도 발견된다. 금융감독원 공시에 따르면,삼성카드의 비정규직 비중은 2020년 11.7%에서 2025년 상반기 14.4%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비정규직 비중을 줄여 온 은행권 카드사와는 대조되는 행보다.
금융권 관계자는 “비정규직 확대가 인건비 절감에는 효과적일 수 있으나, 고객 대응 연속성과 전문성 저하는 브랜드 신뢰 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언급했다.
실적 선방했지만…“윤리적 리더십 증명은 과제”
이재용 삼성그룹 회장이 지난 7월 대법원 무죄 확정으로 사법 리스크를 털어내자, 그룹은 즉시 사업지원TF를 ‘사업지원실’로 격상하며 조직 재편에 착수했다. 초대 실장에는 재무·전략 전문가인 박학규 사장이 선임돼, 그룹 전반의 조율과 컨트롤타워 역할이 강화됐다.
재계에서는 “이 회장이 핵심 사업의 전략 조율에 직접 나서고 있다”며 “이달 중순 예정된 사장단 인사는 ‘뉴삼성’ 체제를 공고히 할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분석한다.
그러나 ‘윤리·책임·신뢰’라는 뉴삼성의 경영철학이 실제로 구현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금융계열, 특히 삼성카드에서는 의문이 제기된다. 제조와 기술 중심의 혁신이 성과로 이어지는 산업과 달리, 금융은 ‘소비자 신뢰’라는 무형 자산 위에서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소비자 접점이 가장 넓은 삼성카드는 그룹 변화의 최전선에 있으면서도, 동시에 가장 취약한 고리로 지목된다. AI 상담 시스템 도입과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등 효율화 노력으로 실적은 개선됐지만, 상담 윤리와 응대 품질 등 소비자 경험의 질은 여전히 불안정하다는 평가다. 그룹 전체의 평판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이 문제는 단순한 서비스 이슈를 넘어 ‘신뢰경영’의 핵심 과제로 꼽힌다.
특히 금융계열사 중에서도 삼성카드는 그룹의 ‘책임경영’ 기조를 실질적으로 보여주는 핵심 시험대다. 내부통제 수준과 고객 보호 역량이 곧 ‘삼성 금융의 신뢰도’를 상징하는 지표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실적만 보면 선방했다. 삼성카드는 올해 상반기 3356억 원의 순이익을 기록해 전년 대비 7.47% 감소했으나, 업계 평균(-18.3%) 대비로는 선방한 수치다. 연체율 역시 1.07%로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 김이태 사장은 취임 이후 AI 상담 도입, PLCC(상업제휴카드) 확장, 데이터 경영 체계 구축 등 효율화 전략을 통해 비용 구조를 개선하며 ‘성과형 경영’을 강화했다.
그러나 금융권 안팎에서는 “성과 중심의 경영이 곧 신뢰 회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소비자 접점의 투명성과 신뢰가 담보되지 않는다면, 실적이 아무리 좋아도 그룹 내 입지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소비자금융 전문가는 “삼성카드는 ‘뉴삼성’이 내세운 윤리경영의 기준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며 “지표상 성과보다 중요한 것은 소비자와 시장의 신뢰를 되찾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금융소비자연맹 조연행 회장 역시 “효율을 이유로 소비자 비용을 전가하는 구조는 삼성이 표방하는 윤리·책임 기조와는 정면으로 배치된다”며 “기술 혁신보다 신뢰 혁신이 선행돼야 뉴삼성이 말하는 지속가능한 성장의 기반이 마련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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