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문명은 전기의 힘으로 눈부신 발전을 이루어 왔지만, 그 이면에는 ‘에너지의 그림자’가 자리한다. 탄소중립과 기후위기가 전 지구적 과제로 떠오른 오늘날, 원자력은 효율적이고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대체에너지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이 찬란한 ‘빛’ 뒤에는 인류가 수십만 년 동안 관리해야 하는 사용후핵연료(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이라는 무거운 숙제가 존재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이 문제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점에 서 있다. 2030년 이후 원전 내 저장시설이 포화되면, 전력 생산이 중단될 수 있는 심각한 상황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어렵사리 고준위특별법이 통과 되었지만 첫발을 띄었을 뿐, 아직 갈길은 너무 멀기만 하다. 이번 특별기고는 원자력의 효율성과 위험, 그리고 고준위폐기물 처분 문제를 과학·사회·정책의 관점에서 통합적으로 조명하고자 한다.
그동안 ‘전문가만의 문제’ ‘정치권의 문제’로 여겨졌던 사용후핵연료 이슈를 국민이 이해하고 함께 공론의 장에서 논의할 수 있기를 바란다.
-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 前 한국전력국제원자력대학원대학교 총장
대한민국 원자력 발전의 역사에는 찬란한 ‘빛’과 깊은 ‘그림자’가 공존한다. 그 그림자는 다름 아닌 사용후핵연료 문제다. 수십 년간 미뤄온 이 과제가 이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이하 고준위특별법)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이 법은 단순한 규제를 만드는 것을 넘어, 원자력의 지속가능성과 미래세대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제도화하려는 시도다.
그동안 정부는 일반 법체계 안에서 임시 저장과 관리에 머물러 왔다. 그러나 수십만 년 동안 인류의 안전과 환경을 지켜야 하는 과제를 정권의 철학에 따른 행정적 판단만이 돼서는 안된다고 생각된다. 고준위특별법은 바로 그 한계를 넘어서는 국가적 약속의 틀이 돼야 한다.
무엇보다 이 법은 세 가지 의미를 갖는다. 첫째, 정책의 일관성과 법적 안정성 확보다. 사용후핵연료 관리사업은 정권 교체나 정치 상황에 흔들릴 수 없는 초장기 과제로 일관되게 추진돼야 한다. 둘째, 사회적 합의의 제도적 기틀 마련이다. 부지 선정과 주민 참여, 지역 지원 절차를 법으로 명시함으로써 투명하고 민주적인 추진이 가능해진다. 셋째, 미래세대에 대한 책임의 명문화다. 오늘의 편익이 내일의 부담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 세대가 감당해야 할 책임을 법으로 명확히 함으로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해야 한다.
고준위특별법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몇 가지 핵심 과제가 함께 담겨야 한다.
우선 명확한 로드맵과 책임 주체를 설정해야 한다. 부지 선정에서 폐쇄까지 전 과정을 총괄할 독립적 전담기구가 필요하다. 또한 과학적 기준에 기반한 안전 확보가 필수다. 국제 기준에 맞는 기술적 요건을 법에 명시하여 국민의 불안을 해소해야 한다. 아울러 투명한 절차와 국민 참여, 그리고 실질적 지역 지원과 보상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처분장이 들어서는 지역이 단순한 희생의 공간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지역 발전의 거점이 돼야 한다.
사용후핵연료 문제는 “언젠가 누군가가 해결하겠지”라며 미뤄온 숙제였다. 그러나 이제는 행동의 시간이다. 고준위특별법은 원자력의 ‘빛’을 지속시키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그림자’의 해법이다.
이 법이 정치적 이해관계를 넘어 국가의 책임과 세대 간 정의 그리고 미래를 위한 시각에서 운영되어야 한다. 그것이 대한민국이 과학적 이성과 윤리적 책임을 함께 지는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