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겉보다 중요한 건 작동 방식이다. 정치는 말과 행동으로 움직이지만, 그 이면에는 언제나 고유한 ‘문법’이 존재한다. 법과 제도의 언어, 권력의 계산, 대중의 심리, 미디어 전략과 정치 언어 등이 어떤 타이밍에 움직이며, 무엇을 감추고 드러내는지는 단순한 논쟁 너머의 작동 규칙을 따른다.

〈정치문법〉은 한국 정치의 핵심 이슈와 정국 전개를 단순한 사건 나열이 아닌 정치 구조, 전략, 심리, 제도 작동 방식의 측면에서 분석해본다. 정치를 이해하고 싶다면, 정치의 문법부터 파악하라.

지난 1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의 검찰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br>
지난 1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의 검찰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박애경 발행인】대장동 항소포기 논란의 한복판에 있던 박철우 전 대검 반부패부장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영전’하는 순간, 여야는 동시에 가장 날선 언어를 꺼냈다. 야권은 “대장동 범죄수익 수호 카르텔”, “조폭 정권”을 외치며 현 정권을 정면으로 겨냥했고, 여권은 “정상 인사”, “훌륭한 분”이라며 방어막을 쳤다. 이 상반된 언어의 충돌 속에 숨은 정치의 문법을 들여다본다.

보은·방탄 인사 vs 정상·복원 인사

이번 인사의 표면적인 사실관계는 비교적 단순하다. 대장동 항소포기 논란으로 정진우 서울중앙지검장이 사퇴한 뒤, 공석이 된 자리에 박철우 대검 반부패부장이 임명됐다. 법무부는 “조직 안정과 인적 쇄신”을 위한 인사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치권이 붙인 서사는 전혀 다르다. 야권, 특히 국민의힘은 박 신임 지검장을 “대장동 7400억 추징 포기 키맨”으로 규정하며, 이번 인사를 “단순한 보은 인사를 넘어 대장동 범죄수익을 수호하는 ‘침묵의 카르텔’ 완성”이라고 공격했다. “항소 포기에 이어 공소 취소까지 밀어붙이라는 미션을 준 것”이라는 표현까지 동원하며 ‘이재명 방탄 인사’라는 프레임을 짰다.

이에 맞서 더불어민주당은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다. 김영진 의원은 ‘정상적인 검찰 인사’라고 규정하며, “정성호 법무부 장관·구자현 검찰총장 대행이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서울중앙지검장과 후임 자리를 채웠다”는 점을 강조했다. 항소포기 과정 자체도 “무리였나 싶은 생각이 든다”며, 박 지검장에 대한 인사 비판을 “견강부회”라고 방어했다.

검사 출신 여권 인사들의 옹호는 더 노골적이다. 이건태 의원은 박 지검장을 “이미 실력과 능력이 검증된 특수통”으로 평가했고, 김기표 의원은 “실력도 출중하고 인품도 훌륭한 분”, “원래 중앙지검장 갈 사람”이었다며, 윤석열 정부에서의 좌천을 “정치적 인사”로 규정했다. 이번 인사를 ‘원상복구’, ‘복원 과정’으로 해석한 것도 눈에 띈다.

같은 인사를 두고 한쪽은 ‘보은·방탄 인사’, 다른 쪽은 ‘정상·복원 인사’라고 말한다. 정치문법에서 인사는 곧 ‘메시지’다. 누구를 올리고 누구를 내리는가를 통해 권력은 지지층에게 신호를 보내고, 반대편에는 경고를 보낸다. 박철우 카드가 향하고 있는 화살표가 어디를 가리키는지, 여야는 각자 유리한 방향으로 서사를 선점하려 애쓰는 중이다.

“조폭 정권”, 국힘이 언어 수위를 올리는 이유

이번 공방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국민의힘이 사용한 표현들이다. “조폭 정권”, “범죄수익 수호 카르텔”, “대장동 범죄자들의 수호천사”,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 오만한 정권”, “국민이 조폭 정권을 소탕할 것” 등등. 야당 지도부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 보기엔 수위가 매우 높다.

정치 커뮤니케이션의 문법에서 이런 과격한 비유는 몇 가지 목적을 갖는다.

첫째, 지지층 결집용 프레이밍이다. ‘조폭’이라는 단어는 선악 구조를 명확하게 한다. 현 정권을 ‘범죄조직’, 야당을 ‘소탕하는 국민의 편’에 놓으면 복잡한 법리·인사 절차의 논쟁은 뒷전으로 밀리고, “저 편은 완전히 잘못됐다”는 감정만 남는다. 이는 지지층에게는 강한 분노와 결집을 불러일으키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중도층에게는 ‘과한 표현’으로 비칠 위험을 안고 있다.

둘째, 사건을 ‘정권의 운명’과 연결하는 전략이다. 항소포기 논란과 그에 따른 인사 문제를 “이재명 정권의 권력형 비리 게이트”로 규정하고 “역사에 기록될 것”,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반복하는 건, 대장동 이슈를 차기 정치 일정까지 끌고 가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사건을 하나의 ‘게이트’로 이름 붙이는 순간, 이슈는 단순한 수사 논란을 넘어 정권 심판 프레임으로 이동한다.

셋째, 검찰 내부 갈등을 ‘양심 vs 조폭’ 구도로 재구성하는 장치다. “수사팀 등에 칼 꽂은 인사”, “정당한 의견을 개진한 검사들을 집단 항명으로 매도”, “반기 들면 손가락을 잘라버리는 정권”이라는 표현은, 항소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정의로운 내부자’로, 인사권을 행사한 쪽을 ‘조직 보스’로 그리는 프레임이다.

여당 역시 언어의 수위를 낮추고 있는 건 아니다. 대장동 범죄수익 규모를 두고 “7800억이 아니라 1120억”이라는 수치를 앞세우며 야당을 “과장된 공세”로 역공하고, 검사장들의 집단 의견 개진을 “집단 항명”, “중대 범죄”로 규정했다. 하지만 전체 톤은 야당만큼 과격한 비유가 아니라 ‘법과 원칙’, ‘검찰 기강’ 프레임에 방점을 찍고 있다.

문제는 이런 언어 전쟁이 이어질수록 실제 쟁점인 ‘대장동 항소포기의 법적·절차적 정당성’은 오히려 안개 속으로 들어간다는 점이다. 숫자, 절차, 판단 근거를 놓고 차분히 따져보는 대신, “조폭 vs 수호천사”로 치환된 정치 언어만 공중전을 벌이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박철우 전 법무부 대변인이 2021년 6월 24일 오후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검찰청 사무기구에 관한 규정 개정 추진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nbsp;<br>
박철우 전 법무부 대변인이 2021년 6월 24일 오후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검찰청 사무기구에 관한 규정 개정 추진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18명 검사장 고발, 국정조사 ‘침대축구’

이번 사태의 또 다른 정쟁의 축은 검사장 18명 고발과 대장동 국정조사 줄다리기다. 범여권 법사위원들이 대장동 항소포기에 문제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검찰 내부 반발에 대한 강력한 ‘경고 신호’다. 여권은 이를 “검찰 엄단”의 차원으로 보지만, 야권은 “정당한 문제 제기에 대한 입막음”, “정권에 반기 들면 손가락 잘라버리는 조폭식 방식”이라고 규정하며 다시 ‘조폭 프레임’을 덧씌운다.

흥미로운 지점은 이 과정에서 여권 내부의 문법 충돌도 드러났다는 점이다.

김병기 원내대표가 검사장 고발 건에 대해 “처음 듣는다”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고, 지도부는 “사전 조율이 없었다”고 거리를 두었다. 반면 법사위 의원들은 “검찰 엄단을 위해 의견을 모았다”, “상임위의 모든 일을 지도부에 다 보고하진 않는다”고 응수했다. 대통령 해외 순방 기간마다 여권에서 발생된 논란이 반복됐던 전례를 의식한 지도부와, ‘강경 대응’으로 존재감을 보여야 하는 상임위의 이해가 어긋난 결과다.

여야가 밀고 당기는 또 하나의 무대는 국정조사 방식이다.

국민의힘은 “항소포기 외압뿐 아니라 민주당이 원하는 검사 항명까지 국조 대상에 넣겠다”며 ‘대승적 수용’을 강조하지만, 민주당 지도부는 “법사위에서 진행하면 된다”며 별도 국조특위 구성에는 난색을 보이고 있다. 야당은 이를 두고 “국조를 무산시키기 위한 침대축구”, “김병기 원내대표가 먼저 제안한 국조특위를 스스로 뒤집고 있다”고 압박한다.

여권은 또 다른 딜레마도 안고 있다.

추미애 법사위원장이 주도하는 법사위 국조에 대해 야당은 “퇴장전문가가 진행하는 국조가 정상적이겠느냐”고 공격하며, 여당 법사위원들이 고발인인 동시에 검사장들의 ‘조사자’가 되는 구조가 “법치에 어긋난다”고 문제 삼는다. 여권 입장에선 법사위 집중 국조는 정치적 부담을, 별도 특위는 ‘정권 책임론 부각’을 감수해야 하는 선택지다. 어느 쪽이든 정치적 리스크가 존재한다.

결국 인사, 고발, 국조 논의가 하나의 세트로 묶이면서 ‘검찰정치’의 새로운 전장이 국회 안팎에서 동시에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정치문법으로 읽는 박철우 카드의 진짜 의미

그렇다면 ‘정치문법’의 관점에서 박철우 카드는 무엇을 의미할까.

첫째, 이재명 정부의 ‘정면 돌파’ 시그널로 읽힌다. 대장동 항소포기 논란의 핵심 인물을 오히려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승진시킨 것은, 최소한 ‘논란이 있으니 한 발 빼겠다’는 유연함과는 거리가 멀다. 정부·여권은 “법과 절차에 따른 정당한 결정”이라는 기존 입장을 굽히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인사’라는 강력한 수단으로 재확인한 셈이다.

둘째, 검찰 조직을 향한 이중 메시지다. 하나는 “항소포기 결정 라인에 섰던 사람에게 책임을 묻기는커녕 오히려 영전시킨다”는 신호다. 이는 집단 반발에 나선 검사장들에겐 ‘기강 잡기’, ‘항명 불용’의 메시지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문재인 정부 시절 법무부 대변인, 중앙지검 차장을 지냈으나 윤석열 정부에서 한직으로 밀렸던 인물을 재등용함으로써, 이른바 ‘친문·호남 특수통’ 검사들을 다시 축으로 세우겠다는 인사 체계의 변화도 읽힌다.

셋째, 야당 입장에선 장기전의 명분을 확보한 셈이다. ‘대장동 항소포기–박철우 영전–검사장 고발–국조 공방’이 하나의 서사로 엮이면서, 야당은 이를 “권력형 비리 게이트”로 묶어 향후 국회, 여론, 선거 국면까지 가져갈 수 있는 공격 소재로 삼았다. 다만 문제는, 이 프레임이 ‘정책 대안’의 언어와 결합하지 못하면 피로감만 키울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수년째 이어지는 대장동 공방에 국민의 체감도는 점점 떨어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국민에게 남는 질문은 단순하다. “대장동 항소포기가 정말 적절했는가”, “항소를 포기한 법적·사실적 근거는 충분했는가”, “이번 인사가 그 판단과 무관하게 이뤄졌는가”라는 점이다. 그러나 정작 이 핵심 질문을 둘러싼 차분한 설명과 검증보다, “조폭 정권 vs 범죄수익 수호천사”라는 자극적인 언어가 먼저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정치문법은 언제나 ‘책임’과 ‘설명’의 균형 위에 서야 한다. 박철우 카드가 진짜 어떤 의미였는지는, 시간이 흐른 뒤 대장동 사건의 최종 결론과 서울중앙지검의 향후 행보가 말해 줄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상대를 조폭으로 부르는 비유가 아니라,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투명한 설명과 검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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