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널에 가려고 단대병원에서 택시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평소엔 몇 대 정도가 줄을 서 있었지만 그날따라 한 대도 서 있는 택시가 없었다. 잠시 후 택시 한 대가 들어와 병원 앞에 섰다. 그때, 한 젊은이가 택시 쪽으로 다가갔다. 기다리는 우리한테는 명백히 새치기를 하려는 걸로 보였다. ‘요즘 같은 때 저렇게까지 개념 없는 이가 있나?’라며 어리둥절해 있는 동안 나보다 먼저 와서 기다리던 아주머니 두 분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우리가 먼저예요!”
“거기서 타면 어떡해요!”
하지만 젊은이는 유유히 택시 바로 앞까지 다가갔고, 아주머니들의 아우성은 더 커졌다.
“우리가 먼저 왔어요!”
반전이 일어난 건 그때였다. 그 젊은이는 아주머니의 고함에 신경쓰지 않고 뒷문을 열었고, 거기 실려 있던 짐들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앞문을 열고 내린 건 나이든 아저씨, 필경 그 젊은 친구의 아버지일 거다. 택시서 꺼낸 짐에 이불이 있던 걸로 보아 그 친구는 병원에 입원하러 온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주머니들은 당연히 머쓱해했고, 난 같이 소리치지 않은 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 사건의 발단은 그 젊은 친구가 제공했지만, 사정도 알아보지 않고 소리만 지른 아주머니들의 잘못이 더 크다. 이건 오해의 첫 번째 유형으로, 노약자석에 왜 젊은이가 앉느냐고 야단을 쳤는데 일어나보니 임산부였다든지 하는 경우도 여기 속한다.

연세대 황상민 교수가 라디오에 나와 ‘김연아 교생실습은 쇼’라고 주장했다. 진선여고에서 성실하게 교생실습을 하던 김연아로서는 황교수의 발언이 황당하게 들릴 수밖에. 그간 김연아가 피겨 훈련을 하느라 학교 수업을 충실하게 받지 못했던 건 사실이겠지만, 교생실습에 대해 알아보지도 않고 ‘쇼’라고 단정한 건 분명 황교수의 잘못이다. 김연아 측에선 황교수에게 사과를 요구했지만, 황교수는 사과 대신 답답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일종의 수사법이다. 물 한 모금을 달라고 하면 정말 물 한 모금을 주고 마는가? 내가 사는 것도 일종의 쇼다. 말을 왜 그렇게 못 알아듣는지 모르겠다...본질이 아닌 부분이 부풀려지는 것을 보면서 대꾸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보듯이 황교수는 모든 잘못을 ‘말귀를 알아먹지 못하는 김연아’에게 돌리고 있다. 결국 김연아는 황교수를 고소하기에 이르지만, 황교수는 여전히 사과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내가 할복자살이라도 해야 하느냐?”이라고 분통을 터뜨리지만, 이런 말은 진심을 다해 사과를 한 뒤에 했어야 했다. 어린 나이에 돈을 많이 번 게 죄라고 세간의 여론은 오히려 김연아에게 더 비판적인 듯한데, 이 사건의 발단을 제공한 건 어디까지나 황교수였고, 사과의 책임도 그에게 있다는 건 분명히 해두자. 오해의 소지가 있는 말을 해놓고 듣는 이한테 오히려 화를 내는 것, 이게 오해의 두 번째 유형이다.

현 대통령은 오해다라는 말을 잘 쓴다. 자신은 전혀 그럴 의도가 없었는데 니들이 잘못 알아들어서 그렇다는 의미다. 이걸 보면 황상민 교수와 비슷한 것 같지만, 황교수는 최소한 자신의 발언을 사실이라고 믿는 반면에 대통령은 그게 사실이 아닌 걸 알면서도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오해라는 말을 남발하니 문제가 된다. 템플스테이 예산을 줄이는 등 실제로 불교를 탄압해 놓고도 불교계가 반발하니까 "오해다"라고 하고, 한반도 대운하에 대한 반대도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아니, 대운하를 제대로 이해하고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는 얘길까? 세종시를 추진하겠다고 약속해 놓고 그걸 파기하면서 니들이 오해한 거라고 하니, 이것도 정말 희한하다. 하이라이트는 광우병 파동. 집권 초기 정부가 미국과 쇠고기 협상을 불리하게 한 결과 들불처럼 촛불시위가 일어난 적이 있다. 그 당시 대통령은 국민들이 오해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해 미국산 쇠고기가 위험하다는 판단이 들면 언제라도 수입을 중단할 수 있는데 왜 난리냐는 것. 하지만 얼마 전 미국에서 광우병에 걸린 소가 발견되자 정부는 그 소가 젖소이며, 30개월이 지난 소라는 점을 부각시키며 수입중단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 뒤 광우병 소가 발견돼도 수입중단을 할 수 없도록 한 게 원래 계약내용이라는 전 농림부장관의 양심선언이 이어졌다. 그러니까 잘못은 당시 쇠고기협상을 반대한 국민들에게 있는 건 아니었고, 그들에게 "오해" 운운하며 불리한 상황을 빠져나가려 했던 대통령의 거짓말이 나빴던 거다. 이게 바로 오해의 세 번째 유형으로, 앞의 두 유형에 비해 악의적이고 죄질이 나쁘다. 궁금하다. 남은 8개월여 동안 우리는 얼마나 더 대통령의 오해 소리를 들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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