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측 “법적 책임 없어…도의적 책임 위해 보상대책 논의 중”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최근 서울 노원구 ‘모네여성병원’ 신생아실에서 근무하던 간호사가 결핵에 감염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이에 질병관리본부(이하 질본)가 해당 신생아실을 거쳐 간 신생아·영아를 대상으로 역학조사를 실시한 결과 잠복결핵(결핵균에 감염됐지만 결핵으로 발병되지 않은 상태. 전염성 없음) 피해자가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전염성을 가지고 있는 결핵의 특성상 피해자들이 한 공간에서 생활했던 해당 간호사로부터 결핵균이 옮겨졌을 가능성 높은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이에 따라 병원 측의 의료인에 대한 관리 허술로 빚어진 사태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
피해자 부모들은 병원 측에 피해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관계당국에도 사태에 대해 책임져야 할 컨트롤타워로서 제대로 된 역할을 수행해 줄 것을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산부인과 신생아실 내 집단 잠복결핵 감염 사태 발발
24일 질병관리본부 등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모네여성병원 신생아실 소속 간호사 A씨가 결핵 확진 판정을 받았다.
‘결핵’이란 폐를 비롯한 장기가 결핵균에 감염돼 발생하는 국가 관리 질병이다. 대화, 기침, 재채기 등에 의해 공기 중으로 노출된 결핵균이 숨을 들이 쉴 때 공기와 함께 폐 속으로 옮겨가는 전염성을 띠는 것이 특징이다.
이에 따라 질본은 노원구보건소에 ‘결핵역학조사반’을 구성하고 A씨의 근무기간인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6월까지 해당 신생아실을 거쳐 간 신생아·영아 800여명을 대상으로 역학조사에 나섰다.
그 결과 조사대상 신생아 800명 중 86.8%(694명)이 잠복 결핵감염검진(피부반응검사)을 마쳤으며 118명이 ‘잠복 결핵에 걸렸다’는 양성 판정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물론 결핵균에 감염됐다고 해서 모두 결핵환자인 것은 아니다. 질본에서 제공한 연구 결과 자료에 따르면 전염성 결핵환자와 접촉한 사람 중 평균 30%만이 결핵균에 감염됐다. 그리고 이들 중 10%만이 결핵으로 발병했으며 90%는 잠복감염 상태를 유지했다.
과거 결핵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생명을 앗아간 감염 질환이지만 최근에는 일부 특수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항결핵제를 6~9개월 동안 꾸준하게 복용하면 완치가 가능하다.
하지만 문제는 피해자 대다수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생아·영아라는 점이다. 영아의 경우 잠복결핵이 실제 결핵으로 발병할 확률이 최대 5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핵은 공기를 통해 쉽게 노출될 수 있는 만큼 발병 초기 빠르게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나 환자를 상대로하는 의료인들에게는 더욱 주의가 요구된다.
그런데 해당 간호사는 지난해 11월 입사해 지난달까지 약 7개월간 결핵뿐 아니라 다른 질병 감염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건강검진을 받은 바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현행법상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근거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유인즉슨, 과거에는 모든 근로자는 채용 전 건강진단을 의무였지만 질병이 확인된 사람은 채용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하자 2005년 10월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해 채용 시 건강진단을 실시하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대신 결핵예방법 시행규칙에 의료종사자 결핵검진 등을 연 1회 이상 실시하도록 규정함으로써 혹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보완하려고 했지만 이번 사태로 허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현재 피해자 부모들은 아이에 대한 미안함과 병원 측에 대한 원망으로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와 관련해 병원 측은 “도의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사과 외에 아직까지 구체적인 피해보상대책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어 피해자 부모들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질본 역시 의료기관 종사자에 대한 관리 미흡과 초기 대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등 국가 방역체계의 컨트롤타워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질책을 면치 못하고 있다.

피해자 부모들 “병원은 여전히 나 몰라라…정부 대처도 미흡”
현재 피해자 부모들은 ‘모네여성병원결핵사태피해자모임’(이하 피해자모임)을 구성해 병원 측에 진정성 있는 대화와 실질적인 피해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관계당국 역시 이번 사태에 대해 진정성 있게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피해자모임 박모씨는 <투데이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사태 초기 병원은 부모들에게 무대응으로 일관했다”면서 “처음에는 법적으로 책임은 없으나 도의적 책임은 다하겠다고 하더니 이제는 피해자들이 해당 간호사로부터 결핵균에 감염된 게 아닐 수 있다며 책임소재를 따져봐야겠다는 식으로 입장을 바꿨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결핵은 100년 가까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질병인데다 특히 피해자가 신생아들이기 때문에 부모들 입장에서는 답답할 노릇”이라며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질병인데 병원에서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방법이 없다고 할지라도 병원 측에서 먼저 설명회나 공청회를 열어 부모들과 직접 대화에 나서서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박씨는 “초기 대응부터 질본이 컨트롤타워로서 제대로 된 역할을 다 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질본의 지휘체계 안에서 일사불란하게 부모들이 사태에 대해 정보를 공유 받을 수 있어야 하는데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향후 질본의 대책 마련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병원 “책임 다할 것…구체적인 보상대책은 아직”
병원 측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책임을 다할 테지만 역학조사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구체적인 피해대책 마련에 대한 언급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모네여성병원 총무팀 관계자는 <본지>에 “무대응을 했던 것이 아니라 결핵이 국가 질병이다 보니 병원도 사태에 대한 정보나 대책방안 등은 질병관리본부로부터 연락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라 구체적인 답을 줄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해당 간호사는 이번달 건강검진 대상자였다”면서 이전에 건강검진을 받지 않은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냐고 묻자 “그렇다”고 답했다.
이어 “결핵균이 해당 간호사로부터 감염됐을 수도 있고 선천적으로 갖고 태어날 수도 있지만 이는 현대의학으로 밝혀낼 수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하지만 이번 사태에 대해 감염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피해자에 대한 보상대책을 논의 중에 있다”고 설명했다.
끝으로 구체적인 보상 시기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답했다.

의료기관 종사자로 인한 결핵 감염의 악순환
의료기관 종사자로 인한 결핵 감염 사례는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지난해 6월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중환아실에서 근무하던 간호사가 결핵 판정을 받아 역학조사를 실시했다. 질본에 따르면 잠복결핵감염 검사를 받은 신생아·영아 166명 중 4명이 잠복결핵 판정을 받았다.
또 같은 해 8월 삼성서울병원에서도 소아혈액 종양병동에서 근무하는 간호사가 결핵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돼 역학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2015년 한 해 동안 전체 의료기관 가운데 153개 기관에서 173명의 의료기관 종사자에게서 결핵이 발생했다. 이들은 2765명과 접촉했으며 총 8명의 추가 결핵환자가 발생하고 242명(17.8%)이 잠복결핵감염 양성으로 확인됐다.
의료기관 종사자에 의한 결핵 감염이 어제오늘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태가 또다시 발생한 것은 관계당국의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또한 사태를 대응하는 과정에서도 컨트롤타워가 존재가 불분명하고 피해자들에게 사태 설명이 부족한 점 등 대처가 안일했다는 문제도 함께 제기됨에 따라 향후 감염병 예방정책과 관련한 제도 개선이 시급할 것으로 전망된다.

질병관리본부는 19일 모네여성병원 결핵감염 사태와 관련해 브리핑을 열고 역학조사 결과와 치료 지원 대책, 재발 방지 방안 등을 발표했다.
정기석 질병관리본부 본부장은 “질병관리본부의 총괄지휘 아래 보건당국, 보호자 모임과 핫라인을 운영해 신속한 소통을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 본부장은 “이번 결핵 발생 건에 대해 향후 5년간 해당 신생아와 영아에 대한 결핵예방관리를 지속적으로 이어갈 예정”이라며 “신생아·영아 이외에 산모에 대한 결핵검사 이외에 잠복결핵감염 검사도 추가적으로 실시하겠다”고 설명했다.
이어 “잠복결핵감염 양성자에게 치료비와 치료 중 부작용 발생 시 관련 검사비, 진찰료, 약제비, 입원비 등은 지원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잠복결핵감염 치료약제에 대한 부작용은 소아에서는 드물게 나타나지만 담당 의사를 통해 부작용에 대한 임상적 관찰을 철저히 해나갈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14일 보건복지부에서도 의료 기관이 간호사 등 의료인 채용 시 결핵·잠복결핵 검진을 받도록 결핵 예방법을 개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에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과연 모네병원 사태를 계기로 의료기관 종사자에 의한 결핵 감염 악순환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현재 모네여성병원 홈페이지에는 질본이 발표한 ‘모네여성병원 결핵역학조사 1차 검사결과 및 관련 대책’이 공지돼 있으며 별도의 병원 측 입장은 전달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