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혐의 피소사실이 여성단체를 통해 유출된 것으로 드러난 가운데 박 전 시장이 자신의 가해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북부지검은 지난 30일 이 같은 내용의 박 전 시장의 피소사실 유출 관련 고발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검찰은 그간 고소장 접수 이후 박 전 시장이 실종된 시점까지 박 전 시장이 피소사실을 알게 된 경위를 수사해왔다.
검찰에 따르면 박 전 시장의 성추행 피해자를 대리하는 김재련 변호사는 지난 7월 7일 한 여성단체 관계자 A씨에게 박 전 시장을 미투(#Metoo)로 고소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에 A씨는 같은 날 또 다른 여성단체 공동대표 B씨에게 이 같은 내용을 전달했고 B씨는 이튿날인 7월 8일 같은 단체 공동대표 C씨에게 이를 알렸다.
C씨는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에게 전화해 관련 내용을 전했으며, 남 의원은 임순영 당시 서울시 젠더특보에게 연락해 박 시장과 관련된 불미스러운 일이 있는지 물었다.
임 특보는 이후 A씨에게 연락했으나 관련 내용에 대해 확인받지 못하고 C씨와의 통화에서 김 변호사가 여성단체와 접촉하고 있다는 취지의 내용을 알게 됐다.
이에 임 특보는 7월 8일 오후 3시경 박 전 시장과 독대하며 “시장님 관련 불미스러운 얘기가 나온다는데 아시는 것 있느냐”며 관련 내용을 물었고 박 전 시장은 “그런 것 없다”고 답했다.
하지만 박 전 시장은 같은 날 오후 11시경 공관에서 임 특보를 만나 “피해자와 4월 이전 문자를 주고받은 것이 있는데 문제를 삼으면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이튿날인 7월 9일 박 전 시장은 공관을 나선 뒤 연락이 두절됐다가 같은 달 10일 오전 0시 1분 서울 북악산 숙정문 부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검찰은 박 전 시장과 임 특보 모두 피해자 측이 실제로 서울경찰청에 7월 8일 고소장을 제출하고 제출 당일 피해자 조사를 받은 사실까지는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검찰 발표 이후 한국여성단체연합은 “검찰 수사결과에 언급된 여성단체 대표 C씨는 한국여성단체연합의 상임대표”라면서 “책임을 통감하며 진실규명을 위해 분투하신 피해자와 공동행동단체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여성단체연합은 “피해자와 지원단체에 대한 2차가해, 사건 본질의 왜곡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해당 내용이 일으킬 수 있는 사회적 파장, 사건에 대항 영향 등을 고려해 바로 사실을 밝히지 못했다”면서 “여성단체연합은 이 일을 확인하고 상임대표를 직무 배제했다”고 설명했다.
피해자를 지원하고 있는 서울시장위력성폭력사건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은 30일 보도자료를 통해 “여성단체연합 C 대표가 친분이 있는 국회의원에게 ‘김 변호사가 한국성폭력상담소 이미경 소장에게 도움을 요청한 사실’을 전달했을 가능성을 확인한 즉시 여성단체연합을 배제한 후 어떤 관련 연락도 주고받지 않았다”면서 “공동행동은 결성 시기부터 C 대표가 소속된 여성단체연합을 배제했으며, 해당 단체에 소명, 평가, 징계 등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공동행동은 “박 전 시장은 피해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문제되는 행동을 스스로 떠올렸다. 해당 행위의 시점도 인지했다. 해당 행위가 성폭력일 수 있음을 알았다”면서 “비서실장, 기획비서관, 젠더특보가 똑똑히 들었음에도 인정, 책임, 피해자에 대한 사죄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검찰의 발표로 박 전 시장의 사망 동기와 경위가 드러났다”며 “피해자가 밝히고자 했던 피해가 현실에 존재했음이 확인됐다”고 강조했다.
이어 “피해자의 고소 이후 176일이 흐르는 사이 더욱 침묵, 은폐됐던 거대한 부정의는 끔찍한 2차 피해를 낳고 있다”면서 “이제 처음부터 성폭력 사건에 대한 매뉴얼대로, 지침대로, 제대로 시작하라”고 촉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