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론만 확인하는 수준 회동에 그쳤다?
19일 만의 만남, 171분 동안 대화 나눠
각종 현안에 대해 공감대 형성하는 대화
“실무진이 알아서” 합의 도출도 안 된 회동
신구 권력 갈등, 여전히 존재한 것으로 보여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문재인 대통령. [사진제공=뉴시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문재인 대통령. [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홍상현 기자】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28일 회동을 가졌다. 171분간의 장시간 회동이다. 역대 최장 시간 회동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두 사람은 허심탄회한 대화가 오갔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실속은 없었다는 평가도 나왔다. 두 사람은 인사·추경 등등에 대해 원칙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했지만 모든 것은 실무진으로 미뤘다. 역대 대통령과 당선인이 회동 직후 합의문을 발표한 것과 대조적이다. 또한 다음 회동이 언제 있을지 기약도 할 수 없다.

우여곡절 끝에 만났지만…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선 19일 만에 만남을 가졌다. 두 사람의 회동은 역대 가장 늦은 회동이면서 역대 최장 시간 회동으로 기록되고 있다.

171분이라는 엄청나게 긴 시간 동안의 회동이다. 28일 오후 5시 59분 청와대 상춘재에서 만나 오후 8시 50분까지 만찬회동을 가졌다.

우여곡절 끝에 대통령과 당선인이 직접 만나 대화의 물꼬를 튼 셈이다. 그간 얼어붙었던 정국을 풀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동안 두 사람의 시각차이가 있었는데 그 시각 차이를 좁히는 계기가 됐다.

두 사람의 회동은 결국 필요에 의해 이뤄졌다는 평가다. 문 대통령으로서는 아무런 사고 없이 퇴임해야 하는 상황이고, 윤 당선인은 용산 국방부 시대를 열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두 사람의 회동 전에는 청와대와 인수위가 상당한 갈등이 있었지만 두 사람 만남 자체에서는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이게 될 수밖에 없었다.

역대 최장의 회동이라는 것은 두 사람 간의 할 말이 많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배석자가 있었지만 주로 대화는 두 사람 사이에서 이뤄졌다. 따라서 두 사람은 식사를 하면서 충분한 의견을 교환했다.

그것은 문재인 정부의 정책과 윤석열 정부의 정책에 대한 의견 교환과 함께 정책에 대한 의견을 좁히는 것이었다.

만찬을 위해 상춘재로 향하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문재인 대통령. [사진제공=뉴시스]
만찬을 위해 상춘재로 향하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문재인 대통령. [사진제공=뉴시스]

두 사람의 만남

인수위는 AB Moon 즉 Anything But Moon(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모두 제외하는) 정책을 구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 중 계승할 것은 계승하겠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두 사람의 만남은 문재인 정부의 정책과 윤석열 정부의 정책에 대한 의견 교환과 함께 앞으로의 일에 대해 이견을 좁힌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두 사람은 회동이 있기 전에 날선 말로 상대에 대한 비판을 가했다. 문 대통령은 윤 당선인에게 주변의 사람들 말을 듣지 말고 일단 만나자면서 윤핵관을 저격했다. 윤 당선인은 자신의 의견을 무시하고 인사권을 행사하지 말라고 문 대통령에게 경고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뤄진 두 사람의 만남이었기 때문에 앞으로 어떤 식으로 정책을 구사하고 인수위는 어떤 활동을 해야 할 것인지 의견을 교환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두 사람의 회동 없이 취임식을 맞이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올 정도로 두 사람의 관계가 냉랭했다. 그런데 두 사람이 전격적으로 회동을 하면서 훈풍이 불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그야말로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눴다고 자평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의견 접근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코로나19 추가경정예산안 편성에 대한 필요성을 공감하고 실무 협의를 해나가기로 했다.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과 감사원 감사위원 등 인사문제에 대해서도 진전을 이뤘다.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이전을 위한 예산에 대해서 문 대통령은 윤 당선인의 의지를 존중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청와대는 안보 공백을 이유로 임기 종료 전 집무실 이전은 무리라고 하면서 제동을 걸었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위해서는 예비비에 대해 대통령의 재가가 필요하다. 그런데 안보 이유로 이를 거부해왔다.

어떤 대화 오갔나

문 대통령이 윤 당선인과 만난 자리에서 윤 당선인의 의지를 존중한다고 했기 때문에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파란 불이 켜진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은 “문 대통령은 대통령 집무실 이전 지역에 대한 판단은 차기 정부 몫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정부는 정확한 이전 계획에 따른 예산을 면밀히 살펴 협조하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인사권 문제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접점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인사 문제에 대해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과 장제원 대통령 당선인 비서실장이 국민들 걱정을 덜어드릴 수 있도록 잘 의논해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윤 당선인 역시 장 실장과 이 수석이 잘 협의해주기를 바란다고 이야기했다.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은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 등으로 안보위기가 고조된 상황에 대해서도 의견을 같이 했다.

추경 편성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규모를 언급하지 않았지만 실무적으로 계속 논의하자고 서로 말을 나눴다.

하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면 문제나 여성가족부 폐지 등 정부조직 개편 문제를 논의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날 회동 직후 합의문 발표가 없다. 이런 이유로 이날 회동에 대해 ‘속빈 강정’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속빈 강정?

두 사람이 장시간 회동을 가졌지만 합의를 도출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저 원론적으로 ‘잘해보자’는 이야기 뿐이다.

물론 다른 사람도 아닌 대통령과 당선인의 대화이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말의 무게가 상당히 크다고 할 수 있지만 아무런 합의 도출도 없이 그냥 원론적으로 잘해보자는 차원의 대화만 오갔다는 것은 앞으로 의견 충돌이 있을 것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결국 모든 것을 실무진이 알아서하라는 것으로 앞으로도 계속 충돌 가능성은 열려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이유로 일각에서는 신구 권력의 갈등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단지 171분 동안 밥을 먹고 헤어졌다는 것이다.

역대 수많은 회동이 있었지만 회동 직후 말을 바꾼 정치인들이 많이 있었다. 그러고는 “그때는 말의 진의가 왜곡됐었다”고 한다.

두 사람이 공감대를 형성했지만 언제든지 실무 협상 과정에서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 이런 이유로 두 사람이 청와대 상춘재에서 밥을 먹었지만 실속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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