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봄 감기를 심하게 앓았다. 처음엔 약간의 오한과 옅은 몸살기운 정도였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데다가, 하던 일을 멈출 수 없어 며칠 방치했더니 사달이 났다. 급기야 심한 기침과 발열 그리고 두통으로 밤마다 땀을 흘리며 기절했다.감기에 걸리기 전까지 내 몸은 아주 좋은 상태였다. 한동안 안 하던 운동을 다시 시작한 덕분에 최근 몇 년 중 가장 건강한 시기였다. 대체 내가 왜 감기에 걸렸을까 궁금해 했다. 그러다 감기가 나을 무렵에야 나의 질문이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감기 바이러스는 어디에나 있고,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일반적으로 금융서비스업이나 IT서비스업 등은 제조업에 비해 투자비용이 적게 든다고 말한다. 제조업은 때때로 수천억원 이상의 생산설비를 갖추고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비스업은 적당한 사무공간과 컴퓨터 그리고 직원들만 있으면 된다고들 말한다.사람의 가치가 돈으로 환산되는 시대다. 그리고 대부분 그 가격은 낮게 책정된다. 여기엔 물질과 인간을 자본이라는 하나의 기준으로 평가하는 자본주의 특유의 셈법이 존재한다. 다분히 씁쓸한 이야기다. 그런데 사람을 비용으로 바라보더라도 한 사람에게 매겨지는 비용이 낮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사람들의 분노는 경기장면으로부터 시작됐다. 평창 동계 올림픽 여자 팀추월 경기. 이 경기의 핵심 요소라 할 수 있는 세 선수들 사이의 협력이 마지막 두 바퀴에서 실종됐다.마치 뒤로 처진 노선영 선수를 버리기로 작정이라도 한 듯 김보름 박지우 두 선수가 결승선을 먼저 통과했다. 분노에 기름을 부은 것은 먼저 통과한 두 선수들만의 인터뷰였는데, 그들의 인터뷰에선 올림픽을 함께 준비 해 온 이들에게서 볼 수 있는 동료의식이 도무지 엿보이지 않았다. 이어 여기저기서 봇물 터지듯 빙상연맹 내부의 파벌대결과 내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머리를 기른 적이 있었다. 적당히 조금 기른 게 아니라 아주 많이, 등을 반절 이상 덮을 만큼 길러서 묶고 다녔다. 20대 청년 시절이다. 내 머리는 곱슬이라서 서부영화 속의 황야를 굴러다니는 마른 덤불 같았다. 친구들로부터 자주 놀림감이 됐다. 친구들은 자신들이 무슨 짓을 저지르는지 몰랐지만, 여러 종류의 조롱과 비하가 곱슬머리에 쏟아졌다. 외모에 관심 많던 청소년기엔 말 안 듣는 머리카락을 적잖이 원망했다. 성인이 되고 나서 한을 풀 듯 머리를 왕창 기르고, 스트레이트 파마를 했다. 가끔은 묶은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옛날에 맥가이버라는 분이 계셨어. 아주 훌륭한 분이셨지. 전세계를 무대로 악당들을 물리치셨다. 싸움의 고수도 아니요, 총칼을 다루는 것도 아닌데, 참 신묘한 재주가 있으셨어.아무리 곤란한 상황에 처해도 다 헤쳐 나가셨거든. 주변에 보이는 물건들만 가지고 뚝딱뚝딱 사건을 해결하셨어. 뭐 이분 하시는 게 이래. 두꺼비 집 퓨즈가 끊어지면 껌 종이 은박지로 퓨즈 대신 꽂아. 그럼 전기가 통하고 죽었던 기계가 살아나지. 자명종 시계의 전선을 피부에 대서 땀이 나면 울리는 거짓말 탐지기를 만드셔. 한번은 말이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취미까지는 아닌데 자주 하는 게 있다. 유튜브에서 K-POP 리액션 영상을 종종 본다. 아이돌 그룹에 대해 잘 모르지만, 그 덕분에 방탄소년단이 해외에서 인기 있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리액션 영상이란 특정 영상을 보는 자신의 반응을 촬영한 것이다. 2000년대 중반부터 유튜브에서 시작됐다. 처음엔 여러 분야의 리액션 영상이 있었는데, 요 몇 년 사이 K-POP 뮤직비디오 리액션 영상이 붐을 일으키고 있다. 유튜브에서 K-POP reaction을 검색해 보면 대략 2000만개 정도가 나온다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북한 병사가 귀순했다. CCTV가 공개됐다. 전속력으로 달리는 차, 집중사격 하는 북한 군인들. 공동경비구역에선 수십발의 총알이 쏟아졌고 병사는 응급 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군사분계선을 넘는 일에 하나뿐인 목숨을 걸었다. 단지 남쪽으로 한 발짝 넘어오는 일이었다.영상 속에 김일성 친필비가 나온다. 그 친필비는 탈출의 마지막 관문인 북한 판문각 옆 길목에 있다. 김일성이라 쓰인 커다란 글자는 탈출 병사가 온 힘을 다해 내달리던 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 20여년 전에 죽은 존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영화 ‘몽상가들’(2003)은 프랑스에 온 미국인 매튜가 자유롭기 짝이 없는 테오-이자벨 남매를 만나 벌어지는 이야기다.과감한 성 묘사 때문에 화제가 됐지만, ‘몽상가들’은 영화를 사랑하는 세 젊은이들의 시선으로 68혁명을 그린다. 68혁명은 구시대의 질서에 저항한 프랑스 젊은 세대의 움직임이었다. 테오와 이자벨의 아버지는 감성적인 시인이지만, 기존의 세계관을 지탱하는 권위를 낭만적으로 받아들이는 전형적인 구세대다. 반면 남매는 그 세계의 권위에 저항하는 젊은세대의 전형이다. 테오는 아버지에게 불만이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17세기 화가 렘브란트의 명화 '야경'을 직접 눈으로 본 적이 있다. 오래전 유럽으로 배낭여행 갔을 때다. 늘 렘브란트를 최고의 화가로 생각했다. 야경은 그의 대표작 중 하나였고 언젠가는 실제로 보고 싶던 그림이었다.미술관의 긴 공간을 따라 양 옆에 많은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저 멀리 막다른 벽에 그 그림이 있는 것 같았다. 한 번에 받을 큰 감동이 조금씩 새 나갈까봐 가까워지는 동안 일부러 눈길을 피했다. 드디어 그림 앞에 섰고, 정면으로 쳐다봤다.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속이 울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잘 알려진 이야기다. 일본제국의 마지막 군인은 1974년에야 항복했다. 오노다 히로. 일본의 패망 후 무려 29년 동안 필리핀의 한 섬에서 자신만의 전쟁을 했다.정보장교였던 오노다 소위는 필리핀 루방섬이 1945년 미군에 의해 점령 될 때 그 곳에 있었다. 미군의 공격을 지연시키라는 명령을 받은 상태였다. 사단장은 명령과 함께 항복과 자살을 금지했다. 끝까지 살아남아 버티고 버텨서 임무를 수행하라는 뜻이었다.오노다의 부대는 미군의 화력 앞에 거의 궤멸되다시피 했다. 일부 패잔병들은 산 속으로 뿔뿔이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길에서 낯선 사람이 시비를 걸어오면 간단히 무시하고 지나치면 된다. 하지만 불특정한 대중과 한꺼번에 만나는 온라인에선 이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대부분의 SNS 서비스에는 차단 기능이 있다.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누군가 자신을 사랑해 주기를바란다. 오랫동안 그것은 물리적 거리의 한계 안에서 요구되고 받아들여졌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애정은 그들이 생활하는 공간의 크기에 영향을 받는다. 한 집에 사는 가족 사이에선 애정의 나눔이 그 즉시 이루어지지만, 마을의 이쪽 끝과 저쪽 끝에 사는 사람들은 그 보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지하철에 처음으로 노약자석이 생겼을 때 말들이 많았다. 노약자석을 따로 만들어야 할 정도로 남을 배려하지 않는 문화가 문제라는 지적부터, 오히려 지정석이 사람사이를 갈라놓아 무정한 사회분위기가 고착화 된다는 이야기까지 다양했다.그런데 정작 노약자석이 만들어지고 나서 생긴 소란은 다른 것이었다. 노약자석은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이라는 긴 이름이 붙은 법에 부칙으로 들어간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에 근거해 시행된다. 법률 이름만으로 충분히 짐작하듯이 노약자석은 노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동네에 있는 한 초등학교 앞에는 도로가 있다. 가끔 차를 몰고 지나간다. 그 학교 정문 근처에는 속도표시기가 있다. LED 전광판에 '당신의 현재 속도'라고 써 있는데 다가오는 자동차의 속도가 자동으로 뜬다. 차가 시속 30km를 넘으면 전광판 맨 위에 붉은색의 찡그린 얼굴이 빛났다가, 그 이하면 초록색의 웃는 얼굴로 바뀐다. 생각없이 운전하다가도 그걸 보고서 속도를 조절하곤 한다. 운전자와 어린이 그리고 학부모 중 누구도 교통사고를 원하지 않는다. 이 장치는 도로를 건너는 학생들의 안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위조나 조작에 관한 이야기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어떤 소년의 이야기다. 17살의 ‘윌리엄 헨리 아일랜드(William Henry Ireland)’. 간도 크게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위작했다.아일랜드가 태어난 건 18세기 말이었다. 책 만드는 장인이자 셰익스피어 수집가였던 아버지에게 셰익스피어의 서명을 위조해 만든 임대계약서를 보여준 게 모든 사건의 시초였다. 기뻐하는 아버지를 본 뒤 위조는 계속 됐다. 아일랜드의 나이에선 어느 백작의 후원에 감사하는 셰익스피어의 편지 정도가 적당했다. 그러나 옛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2008년에 존 파브로(Jon Favreau)라는 청년이 백악관에 들어갔다. 그는 대선기간 동안 버락 오바마의 연설문 초안들을 썼다. 오바마는 대통령에 당선 되자 27살의 파브로를 연설문 총 책임자로 불렀다.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대선으로부터 4년 전. 그 때 오바마는 “연설문 작성에 대한 당신의 이론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파브로의 답변을 요약하자면 “정치에 실망하고 상처 입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연설은 우리가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공감대를 확산시켜준다”였다. 그는 바로 채용됐다.존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한국 사람들이 식당에서 많이 찾는 음식은 늘 변해왔다. 오랫동안 주된 메뉴는 탕이나 국 또는 찌개였다. 먹을 게 풍족하지 않았던 시절, 서민들이 육류의 높은 열량을 값싸고 풍부하게 얻을 수 있는 것으로 국물음식만한 게 없었다.경제가 발전하면서 기름진 서구음식이 휩쓸던 때도 있었다. 주로 미국식 정크푸드의 느끼한 양념을 흉내 낸 유행이 더 갈 곳이 없을 때 등장한 게 매운 맛이다. 물론 한식에서 매운맛의 비중이 나날이 커져왔지만, 2000년대 전후 거의 모든 식당에 등장한 매운 음식들은 이전과 비교할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인류 최초로 화분을 만든 사람이 누굴까 가끔 생각한다. 아니, 만든 사람은 아무래도 좋다. 어쩌다가 화분 만들 생각을 한 건지 궁금해서 막연히 상상한다.화분다운 화분은 인류에게 토기가 발명된 다음에야 등장했겠다. 깨져서 강가에 버려진 토기 안에 어느 날 꽃이 핀 걸 본 게 시초였을 수 있겠다. 아니 어쩌면 그 전부터 원시화분이 존재했을 것 같기도 하다. 움막 옆 움푹 패인 돌에 담긴 흙에 씨앗이 날아와 앉았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원시인들은 원래 꽃을 보면 흙 째 뽑아와 사는 곳 옆에 심었을지도 모르겠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앞에서 걸어오는 남자가 침을 뱉는다. 크르럭 콧물 들이키는 소리를 내는가 싶더니, 퉤엣하고 뱉은 한 덩이 침이 바닥에 탁! 달라붙는다. 사람들은 침을 비켜 간다. 침을 뱉은 남자도 휘적휘적 제 갈 길을 간다.내가 사는 서울의 공기가 지난 수십 년간 제대로 맑아 본 적이 없으니 거리에서 침 뱉는 사람이 낯익다. 봄 철 황사나 요즘 한창 말 많은 미세먼지 탓도 있겠다. 원인이 무엇이든, 사람들은 이 질 나쁜 공기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잘 살고 있다. 누군가 침을 뱉는다면 그저 피해서 돌아가면 되는 삶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돼지 발정제. 이 걸 사람에게 쓴다는 건 입에 올리기도 거북한 말이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선 후보가 과거 펴낸 자서전에 약물에 의한 강간 모의에 가담 내지 방조한 내용을 담아 논란이 됐다. 이 문제와 관련 해 홍 후보는 세 가지 잘못을 저질렀다.첫째, 홍 후보는 누군가에게 위해가 가해질 상황을 내버려 두었다. 45년 전에도 약물을 사용한 데이트 강간은 범법 행위였다. 사회적으로 그런 일이 당연시 되지 않았기에 모의 또한 암암리에 이뤄진 것인데 이를 묵인했다.둘째, 자서전을 펴내면서도 깊이 있는 자성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파면된 대통령이 구속돼 구치소에 수감된 날, 바다 속 깊숙이 가둬졌던 시대의 민낯은 뭍으로 올라왔다.선과 악은 각각 창궐할 시기에 맞춰 자리를 맞바꾼다. 서로에 대한 반동으로 역사 속에서 등장과 퇴장을 반복한다. 한 시대를 뒤덮는 특정한 현상은 당대의 각자가 수 많은 관계 속에 그때마다 내리는 판단들이 직조된 결과다. 어느 한 시대가 악행으로 점철돼 있다면, 그건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악을 점진적으로 수용했기 때문이다.물론 사람의 일 모두를 선과 악으로 깔끔하게 나눌 수는 없다. 인간은 다양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