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자본의 탄생> 저자
-前 현대제철 홍보팀장·기획실장(전무)
2004년 10월 일관제철소 진출을 선언했지만 모든 게 준비된 상태는 아니었다. 선언을 하고 준비를 해나가야 했다. 일관제철 사업은 준비할 것이 많은 사업이다. 대표적인 준비 사항은 부지, 기술, 자금, 원료, 인력이다. 부지는 연·원료의 수입과 제품 수출을 위해 대형 선박의 입출항이 쉬운 수심 깊은 해안이 필요했다. 한보철강 인수로 이 점은 해결이 됐다. 나머지는 하나하나 채워가야 하는데 선발 회사는 후발 회사의 이러한 준비 사항의 약점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출입 기자들에게 현대제철의 약점을 슬그머니 흘리면 기자는 우리를 취재하게 된다. 당시에는 두 회사 간의 긴장이 고조됐던 때라 기자들의 특종 경쟁이 치열했다. 따라서 즉시 제대로 된 답변을 못하면 바로 기사화되고 이러한 기사는 증권시장을 통해 금융권을 긴장시켰다. 금융권이 긴장하면 인허가를 해주는 정부가 신중해진다.
홍보팀으로서는 난감했다. 우선 일관제철 관련 용어부터 공부하기에 바쁜데 선발 회사를 통해 논리 정연하게 무장된 기자를 상대해야 했다. 더구나 홍보팀은 회사 내부 정보를 잘 모른다. 중요한 계획이나 계약 사항은 거의 모두 상대방과의 비밀유지가 필요한 사항들이다. 갓 탄생한 홍보팀의 인적 역량이나 예산도 선발 회사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열악했다. 또 하나의 애로 사항은 ‘지시하지 않은 사항은 홍보하지 말라’는 회사의 홍보 지침이었다. 큰 회사와 대응해서 이길 수도 없으니 논란을 키우지 말라는 의미였다. 회사가 홍보 경륜이 없다 보니 수많은 언론사와 기자들이 회사 뜻대로 움직여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면도 있었다. 그렇지만 선발 회사와 언론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2004년 10월 21일, 한보철강 인수 후 정몽구 회장은 당진제철소 첫 방문에서 일관제철소 추진을 선언했다. 이 선언 후 불과 2주 지난 11월 초 한 주간지 표지에 ‘현대차의 위험한 도전’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게재됐다. 내지에는 ‘현대차그룹 불구덩이 속으로!’라는 제목의 장장 6면에 걸친 기사였다. 기사 요건상 나름대로 균형을 맞추려고 했지만, 정몽구 회장의 ‘철강 사랑’이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실패한 ‘자동차 사랑’의 재판이 될 수 있다는 등 다분히 독자들의 우려를 불러일으키는 기사였다. 이외에도 자금, 기술 문제 등을 거론하면서 자동차산업까지 망칠 우려가 있다고 했다. 특히 자동차-철강회사 수직계열화 실패 사례라며 미국 포드자동차의 루즈스틸(Rouge Steel)을 소개했다. 포드자동차가 운영한 루즈스틸은 포드자동차 성장에 절대적 기여를 했지만, 1970년대 이후 미국 자동차 산업과 철강 산업의 경쟁력 동반 쇠퇴로 매각한 것이지 수직계열화 때문에 실패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기사에는 실패 사례만 부각할 뿐 그런 내용은 없었다. 후발 회사의 시장 진입 저지는 실패했으니 2단계인 주저앉히기 단계로 돌입했다고 판단했다.
주간지 6면 기사 분량이면 미리 자료를 준비해 두었다가 일관제철소 진출 선언과 동시에 언론사에 제공했을 것이다. 당연히 기자는 받은 자료를 익히고 각색했을 것이다. 이미 짜여진 기사에 취재 마감을 앞두고 현대제철 홍보팀에 ‘절차적 취재’가 들어왔지만 제대로 대응할 수가 없었다. 홍보팀 초기라 내용을 잘 몰랐고 회사의 함구 지침도 있었다. 더구나 루즈스틸은 이름도 처음 들었다. 결국 기사에는 이렇게 표현이 됐다. “어쨌든 고로 문제만 나오면 현대제철 관계자는 아직껏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홍보팀장이 되고 이렇게 기습적·집중적·입체적으로 황당하게 당한 것은 처음이었다. 드디어 긴 전쟁이 시작됐다. 열악한 홍보 인프라와 예산에 더해 회사의 홍보에 대한 인식 부족은 오히려 오기를 북돋아 줬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전투 중에 죽자, 그래야 후배들이 기록이라도 남길 수 있을 것이다, 라고 각오를 했다. 당시 선발 회사가 ‘부지, 기술, 자금, 원료, 인력’ 외에 홍보팀을 힘들게 한 몇 가지 중 하나가 이 건이었다. 회사 내에서 홍보팀을 도와줄 조직이나 인력이 없어서 철저히 홍보팀 자체적으로 준비해야 했다. 루즈스틸 사례1)부터 반박 준비를 했다.
포드자동차는 1900년대 초에 철강-자동차에 이르는 수직계열화를 위해 루즈지역에 일관제철소를 건설했다. 1970년대 포드자동차와 철강의 실적이 악화되기 전까지 약 60여 년간 철강 사업은 포드자동차에 큰 기여를 했다. 그러나 1,2차 오일 쇼크와 환경규제 강화, 강성 노조의 등장으로 철강산업 주도권이 1970년대부터 일본으로 이전되면서 미국 철강 산업은 쇠퇴하기 시작했다. 반면 일본은 임해 제철소를 세우고 브라질, 호주 등으로부터 고품질의 연·원료를 싸게 구입했고 최신 대형 제철소로 원가·품질 경쟁력을 키웠다. 미국은 자동차 수요 부진이 이어졌고 일본은 미국의 철강·자동차 시장을 잠식해 갔다. 이러한 현상은 1985년 플라자합의 때 까지 지속됐다.
1973년과 1982년의 미국 자동차와 철강산업을 비교해 보면, 자동차 판매량은 1135만대에서 798만대로 30%가 줄었고, 수입차 점유율은 16%에서 28%로 12%P가 늘었다. 철강 생산량은 136백만톤에서 68백만톤으로 50%나 감소했고, 수입량은 10백만톤에서 14백만톤으로 40%나 증가했다. 또한 루즈스틸은 포드자동차 의존도가 85%나 됐다. 현대제철의 현대차그룹 판매 의존도는 20% 수준에 불과하고 최신 고로 설비와 기존의 전기로 철강이 캐시카우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루즈스틸의 실패는 철강-자동차의 수직계열화 문제라기 보다는 높은 모(母)회사 매출 의존도, 신기술 역량 확보 지연, 높은 원가구조로 인한 경영환경 변화 대응 실패였다. 홍보팀은 이러한 논리를 만들어서 철강 전문지 기자를 통해 선발 회사에 알려지도록 했다. 잘못된 주장을 계속할 경우 역효과를 각오하라는 뜻도 전했다.
선발 회사가 전파한 또 다른 논리는 최신 파이넥스(FINEX) 공법이었다. 구식 공법인 고로 공법으로 할 경우 미래 경쟁력이 없다는 논리였다. 그러면서 앞으로 기존의 모든 고로를 파이넥스로 교체할 것이며 추진 중인 인도, 베트남 등 해외 제철소도 파이넥스 공법으로 하겠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2006년 당시 선발 회사는 연산 150만톤의 제2파이넥스 설비 가동을 준비 중이었다. 파이넥스 설비는 분철광석과 분탄을 사용하므로 코크스 과정이 필요 없는 등 일부 장점은 있으나 품질 불안정과 설비 대형화 한계로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그 회사 퇴직 임직원의 증언이다. 선발 회사는 2014년에 연산 200만톤의 제3파이넥스 공장 완공을 끝으로 더 이상 파이넥스 설비는 늘리지 못했다.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해외 진출도 좌절됐고, 기존 고로의 파이넥스로의 교체도 없었다. 이러한 현상은 2024년 현재도 지속되고 있다.
현대제철(정몽구 회장)이 일관제철소를 추진했던 가장 큰 이유는 그동안 고질적인 애로 사항이었던 고품질의 자동차 강판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필요한 시점에 조달하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100년 이상 검증된 공법인 고로 공법으로 고품질의 철강을 경쟁력 있는 원가로 언제든지 생산해야 했다. 시간은 걸렸지만 자동차 강판도 홍보 논리 전쟁도 진위는 가려졌다.
1) 포드자동차는 자동차 경쟁력이 철강에 있다고 판단하고 경쟁사보다 앞선 투자를 했다. 포드의 대명사인 ‘모델T’는 가볍고 강력한 합금인 바나듐강을 썼다. 1905년 포드는 자동차 경주에서 끔찍한 사고를 목격하고 현장에서 놀랄 만큼 튼튼한 부속을 발견했는데 이 부품이 바나듐(Vanadium)이란 원소가 합금된 프랑스산 철강이란 것을 알았다. 그러나 미국에서 이를 생산해줄 철강회사가 없어서 영국출신 야금학자를 고용해 소재를 직접 생산했다.
1908년 포드는 마침내 유니버셜 카 ‘모델T’를 출시했다. 1908년 10월부터 1909년 9월까지 포드는 1만대 이상의 차량을 생산해 전부 다 판매를 했다. 당시 포드사의 광고는 이랬다. “최고급에 최고가인 바나듐강만을 사용해서 자동차를 만들었습니다. 차축, 샤프트, 연접봉, 스프링, 기어, 브래킷 등 모두가 바나듐강입니다.” 모델T는 다른 차들보다 가볍고 운전도 쉽고 중량 대비 출력도 좋은 편이었다. 다른 차들이 종래의 무거운 강철로 만들어진 탓이다. (에드 콘웨인 지음, 『물질의 세계』 인플루엔셀 2024. 277쪽, 위리엄 매그너슨 지음, 『기업의 세계사』 193쪽 참조)
루즈스틸 회사는 1920년대에 건설된 헨리 포드의 거대한 리버 루즈 자동차 공장의 필수적인 부분으로 시작됐다. 이 철강업체는 1980년대 초까지 포드의 ‘수익성 높은 사업부’로 남아 있었지만, 경기 침체와 미국 자동차 시장의 어려움으로 수익성을 잃었다. 자동차 제조업체가 더 이상 자동차에 철강을 많이 사용하지 않고, 더 이상 자동차를 많이 만들지 않으며, 자체 제철소에서 생산할 수 없는 아연 도금 강철을 더 많이 필요로 하기 때문에 [루즈스틸]의 포드에 대한 철강 판매는 급격히 감소했다. 예를 들어 1977년 포드는 북미 사업부에서 440만 대의 자동차와 트럭을 생산했지만 1980년에는 240만 대, 1981년에는 230만 대로 추정되는 차량만 생산했다. (뉴욕타임즈 1981.12.24.)
(FORD’S ROUGE STEEL GOES ITS OWN WAY, The New York Times, Dec.24, 1981)
The Rouge Steel Company began as an integral part of Henry Ford's sprawling River Rouge automobile plant, built during the 1920s. The steelmaker remained a lucrative division of Ford until the early 1980s, when it lost profitability due to economic recession and a troubled U.S. auto market. [Rouge Steel's] Steel sales to Ford have declined dramatically because the auto maker no longer uses as much steel in its cars, no longer makes as many cars, and requires a greater amount of galvanized steel, which its own steel mill cannot produce. In 1977, for example, Ford produced 4.4 million cars and trucks in its North American divison, while in 1980 it produced only 2.4 million and an estimated 2.3 million in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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