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영화 ‘바람의 세월’ 김환태·문종택 공동 감독
소원은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안전사회 보장’뿐
바람은 ‘Wish’ 의미, 피해자 유가족의 간절함 나타내
언론, 오로지 앞을 보고 움직이는 단순함이 필요해
참사가 동화로 남지 않기 위해 찾아보고 행동해야만
【투데이신문 권신영 기자】 “벌써 10년째, 우리는 같은 바람을 갖고 살아갑니다.”
‘가진 채 살아간다’는 것. 영화 <바람의 세월> 들머리를 여는 담담한 내레이션이 여전히 그 바람은 멈추지 않았음을, 그 아픈 소원을 이루기 위한 여정은 여전히 진행형으로 남겨져 있음을 보여준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로부터 긴 시간이 흘러 다시 4월 16일이 돌아왔다. 미완으로 남은 진상규명, 미궁에 빠진 책임자 처벌, 오로지 ‘왜’라는 한 글자를 바라 온몸을 바친 시간이 벌써 10년의 ‘세월’이 됐다. 여기, 사시사철 혈투 중인 3654일의 기록이 진상규명을 외치는 한 아버지의 절실한 바람으로 모였다.
단원고 문지성 양 아빠 문종택 감독은 세월호 참사 이후인 2014년 8월부터 유가족들의 투쟁기를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아온 고난의 기록이 올해로 10년. 세월호 참사의 산증인 유가족을 주연 삼아 미디어 감독인 김환태 감독과 <바람의 세월>을 공동 연출했다.
이들은 행복을 찾아나서는 길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내 곁에 있는 사람이 나로 인해 작은 촛불을 켤 수 있기를 바라는 따뜻한 마음이 모여 두 개의 화력이 되고 열 개의 불꽃이 되면 그게 곧 난로가 되는 것이라고 얘기한다. ‘우리’가 그 사실을 광장에서 직접 입증한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문 감독은 인터뷰 중에도 몇 번씩이나 봄볕 같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Q. 김환태 감독(이하 김)님은 4.16연대 4기 미디어위원회 위원장이었고, 세월호 참사 프로젝트 <망각과 기억 2:돌아봄>(2017)을 공동 연출한 바 있다. 또한 문종택 감독(이하 문)님은 ‘416TV’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계신데, 이번 작품은 어떤 계기로 작업을 시작하게 됐는지.
문: 세월이 흐르니 언론사나 각종 매체에서는 많이들 세월호에 대한 관심을 거두기 시작했는데, 주변에 미디어 감독님들이 남았다. 기록 자체가 중요하다는 마음으로 영상을 남기는 이분들이 하나의 계기가 된 것 같다.
김: 저는 2016년 말 세월호 유가족분들을 처음 뵀다. 우연히 지인 감독님을 따라 광화문 촛불시위 현장에 방문했는데, 그 감독님이 유가족분들을 찍고 있었던 것이 계기가 됐다. 오랫동안 작업했던 작품이 마무리되는 타이밍에 문 감독님께서 연락을 주셔서 작업을 하게 됐다.
Q. 그동안 세월호를 주제로 한 영화가 많았다. 이번 영화는 외부인이 아닌 유가족의 시선을 담아 주목을 받고 있다. 유가족의 시선으로 작품을 만들게 된 계기가 있는가.
문: 사실 영화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처음에는 영상에 대한 지식이나 개념도 없었다. 2014년 8월 8일 유가족들이 국회와 광장 앞에서 단식 투쟁을 하는데 일베가 폭식 투쟁을 하는 등 혐오가 심해서 이때부터 저희를 지키기 위해 촬영이 시작했다.
그때부터 기록해 나가기 시작했고, 그렇게 쌓인 것들을 정리 작업하다가 미디어 감독님들이 다큐멘터리를 제안했다. 원래 기록이라고 하면 제목과 일시를 적어둬야 하는데 당시 유튜브 송출용으로만 생각해 제목을 ‘국회 전투’ 이런 식으로만 지어뒀다. 그래서 나중에는 나는 아는데 다른 사람들은 전혀 모르는 장면들이 많았다.
김: 문 감독님께서 제가 모를 수밖에 없는 당사자로서의 감정과 같은 디테일한 부분을 집어넣어야 하는 지점을 잘 짚어주셨다. 예를 들어 생존 학생들이 등교하는 장면이 지나고 이들이 발언하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에서 ‘생존 학생: 우리 민지’ 이렇게 자막을 써 주신 지점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 아이들’과 같은 자막도 쓰였다. 당사자가 아니면 떠올릴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생존 학생들은 살아온 것을 미안해하고, 유가족분들은 그러한 아이들이 이렇게 안아주는 모습이 너무 비극이지 않나. 그런 마음 아픈 부분을 문 감독님께서 절실하게 느끼니 그런 표현이 가능했다고 본다.
Q. 2022년부터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가 올 3월 7일에 영화가 완성됐다고. 당시의 감상은 어떠했는지.
김: 원래 술을 잘 먹지 않는데, 작업을 마친 후에 혼자 맥주 한 캔을 사서 두고 고(故) 박종필 감독님(<망각과 기억 2: 돌아봄> 공동 감독)을 떠올리며 ‘형 대신 문 감독님이랑 영화 만들겠다고 한 약속 지켰어, 잘했지’라는 말을 했다. 그러고 자정을 넘어서 잤는데 그날 밤에는 정말 잘 잤던 기억이 난다.
문: 완성된 영화를 USB에 들고 가장 먼저 진도로, 우리 아이에게 갔다. 우리 지성이가 하는 말이, 하라는 진상규명을 안 하고 무슨 영화를 만들어 왔다고 뭐라고 하더라.
Q. 관찰자가 아닌 세월호 참사 유가족, 즉 당사자의 입장에서 작업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당시 아픔을 처음부터 복기해야 하니 감정 소모도 많았을 것 같다. 작업 과정은 어땠나.
문: 힘이 부치는 지점이 많았다. 영화 작업을 시작한 시점이 2년 반 정도 전인데, 1년 반 정도 지났을 때 체력이 많이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원래도 유튜브를 운영하며 새벽까지 늘 편집했지만 영화라고 하면 기록물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뤄야 하기 때문에 더 쉽지 않았다. 피해자 엄마, 아빠들의 모습이고 시민 촛불의 모습이기 때문에 건성으로 볼 수도 없었다. 직접 찍은 기록물이고 워낙 양이 방대하다 보니 오로지 저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다행인 점이라고 하면, 첫 꼭지를 눌러서 틀어보면 당시 상황이 다 생각이 났다. 몰랐는데 이후에 김 감독님이 전체 기록물이 7테라 정도가 된다고 알려주셨다.
김: 아버님이 굉장히 힘드셨을 거라고 생각한다. 저도 이전부터 세월호 기록물을 작업해 왔지만 과거의 장면으로 돌아가서 뭘 한다는 게 만만치가 않았다. 개인적으로 2016년 말부터 2017년까지의 영상을 받아보았을 때 정말 힘들었다. 몰랐던 그림들이 많았는데, 그것들을 가지고 처음부터 작업해야 하니 심리적으로 고된 느낌이었다. 지금 영화에 들어가 있는 장면들은 무수히 솎아내는 작업을 거친 작은 일부분이다.
Q. 세월호를 향해 진상규명을 외치다가, 이제는 아픔을 잊지 말자는 구호로 바뀐 지 오래다. 영화에서도 대통령이 두 번이나 바뀌었지만, 번번이 진상규명의 기회를 놓침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간의 세월 중 언제로 다시 돌아간다면 이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까.
문: 시곗바늘을 돌리면 세월이 돌아가나. 이제 우리에겐 보장되는 수사권도, 기소권도, 조사권도 없다. 피해자가 진상규명을 할 수밖에 없는 시기가 왔다. 지금에 와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냐’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물 건너갔다고 생각한다.
Q. 이 영화는 보수나 진보 구분 없이 모두 정권에 대한 비판이 들어감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부분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나.
김: 부담이 될 이유가 없다. 전혀 없다. 세월호 가족분들이 걸어온 걸음은 정치적일 수가 없다. 영화에는 그 걸음만 담겼다. 누가 정권을 잡았는지에 따라 일어났던 사건만 객관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얼마나 잘못된 사회 시스템이 구축돼 있는지를 반증할 순 있겠다. 가족분들은 늘 같은 위치, 동일한 위치에서 움직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안전사회 보장’ 이것뿐이다. 이런 제도를 만드는 게 우리 사회가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외쳐온 거고, 이게 정치적이라고 얘기하는 건 웃음밖에 안 나온다. 문 감독님도 그런 말씀을 하신다. 세월호가 정치적인 게 아니라 ‘정치가 세월호에 올라탔다’고.
Q. 영화 속에서는 주되게 등장하진 않지만, 세월호 참사 책임은 언론도 떼어놓고 볼 수 없을 거 같다. 세월호를 다루는 방식도 그렇고, 그동안 미디어의 행태는 어땠다고 보는가.
김: 어떤 참사가 일어났을 때 국가는 꼬리 자르기를 한다. 기본적으로 어느 선에서 책임을 지게 할 것인지 따져봤을 때 잘려 나가는 위치는 계속 아래로 내려간다. 결국 힘없는 사람들이 덮어쓰게 되고, 힘이 없으니까 그걸 또 따라야 하고 이런 관습이 반복된다.
국가는 그런 행위들을 계속해 왔기 때문에 우리는 기억하기 위해 기록 투쟁을 하는 것이다. 끝까지 잊지 않기 위해서 기록해야 한다. 대한민국 언론은 긴 호흡으로 집요함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문제점을 끊임없이 탐색하기 위해 끝까지 함께 움직여 줬으면 좋겠다.
문: 노숙 현장에서만 카메라를 10년을 들었던 지성이 아빠로서 대한민국의 언론을 지적하고 싶다. 아무도 안 하고 정부도 안 하는 진상규명, 모두가 그만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피해자 가족들은 끝까지 진상규명을 할 것이다. 정부도 아니고 기업도 아니고 기자도 아닌 사람들이 진상규명을 한다. 방송국 사장, 데스크 이런 사람들이 진상규명을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정부 조직에 있으면서 진상규명을 하기란 불가능하듯이, 기자들은 오히려 초년병일 때 가장 잘 해낼 수 있다. 오로지 앞을 보고 움직이는 단순함이 필요하다.
Q. <바람의 세월>은 이제 우리가 세월호 유가족들과 함께 무엇을 외쳐야 할지 고민하게 만드는 영화다. 이 다음 이야기는 어떻게 써 내려가야 할까.
김: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월호 이전과 이후가 달라졌다고 얘기한다. ‘잊지 않겠다’, ‘기억하겠다’ 이런 말들도 정말 많이 들었다. 카메라를 들고 연대하는 사람이자 세월호 참사를 목격했던 사람으로서, 우리가 다짐했으나 잊히고 지워져 가는 것들을 어느 순간에는 끄집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영역들이 분명히 존재할 것이고, 그런 것들을 가지고 함께 연대할 방법들을 계속 모색하고 고민해 주시길 기대한다.
개봉 첫날, 서울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진행된 관객과의 만남 때도 고양시에서 오신 관객분이 해주신 말씀이 인상적이었다. 고양시에서는 <바람의 세월>을 볼 수 있는 극장이 한 군데도 없어 본인이 영화를 보기 위해 이 자리에 오는 것이 세월호를 기억하기 위한 실천이었다고 얘기하셨다. 영화를 관람하는 것 또한 하나의 행동이 될 수도 있는 거고, 저도 그 말에 굉장히 공감했다. 이와 별개로 가족분들이 따로 바라시는 건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문: 영화에서 우리 순범이 어머니가 이야기하신다. ‘나쁜 놈’이라고. 전 정권이든, 전전 정권이든, 지금 정권이든 ‘진상규명’으로 우리의 힘을 보여주고 싶다.
Q. <바람의 세월>이라는 제목에서 ‘바람’은 Wind(공기와 같은 어떠한 기류나 흐름)의 뜻인지, Wish(어떤 일이 이뤄지길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의 뜻인지 궁금하다.
문: 두 가지의 뜻이 동시에 있지만 피해자 가족들의 간절한 바람, 촛불 시민들의 간절한 바람의 의미에 더 가깝다. 대통령을 탄핵시켰던 그 촛불의 바람, 팽목항에 아이들의 이야기가 몰아치는 그 바람, 바람 소리를 영화를 통해서 들어주셨으면 하는 간절함이 있다.
김: 제목에 대해 더 말씀드리자면, ‘세월’이라는 것은 세월호의 세월이기도 하지만 시간의 의미도 당연히 포함한다. 가족분들이 걸어온 그 긴 세월과 시간들, 그리고 우리를 감싸고 있는 숱한 바람들… 이런 것들을 복합적으로 표현하려고 했다. ‘세월’은 먼저 합의가 됐고 그 앞에 어떤 것을 넣을지 이야기하다가 ‘바람’을 고르게 됐다.
Q. 문 감독님께서 세월호의 목적지였던 제주도에서는 꼭 <바람의 세월>이 상영되길 원하셨는데. 바람이 이뤄졌는지.
김: 잘 되지 않았다. 극장이 없다고 열어주지 않는데, 열어주지 않는 어떠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문: 열어주지 않는다고 해서 머물러만 있으면 진상규명은 물 건너간다.
Q. 세월호 참사와 같은 비극적인 사건은 지금도 계속 반복되고 있다. 국가는 무책임하고 아픔은 대물림된다. 영화 속에서도 5.18,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을 등장시킨 이유도 그러하다고 본다. 이 시대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
문: ‘내 위치에서 최선을 다한다’. 이 말은 굉장히 좋지만 내 위치에서 최선을 다한 결과가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누구나 각자의 삶을 열심히 산다. 그러니 각자가 아니라 함께 가야만 한다. 주변을 보살피면서 나의 모습은 현재 어떠한가를 스스로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그걸 우리는 ‘연대한다’, 그리고 ‘이웃과 함께한다’고 한다.
우리가 행복을 찾아나서는 길은 멀리 있는 게 아니고 내 곁에 있는 사람이 나로 인해 웃을 수 있다면 그게 최고의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그 따뜻한 촛불 하나가 전달되면 두 개의 화력이 돼 우리 사회가 더 따뜻해지는 것이다. 이게 열 개가 모이면 난로가 된다. 우리는 그것을 광장에서 입증시킨 사람들이다. 이 시대의 청춘들이 이 영화를 통해 촛불이 되려는 마음을 가지길 바란다. 모든 참사가 옛날의 동화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기억만 해서는 안 되고 계속해서 찾아보고 행동해야 한다. 우리의 후세대들이 세월호 참사의 기록을 들여다보고 ‘우리가 이런 역사를 살아왔구나’ 하면서 그 과정들을 고민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이 영화의 최종 목적지고 앞으로 진상규명을 해나가는 데 그 동력이 전해질 것으로 생각한다.
김: 다음 세대를 위해 기록했기 때문에, 이 영화는 후세대에 ‘말 걸기’ 같은 것이다. 나 역시 동시대의 어떤 죽음을 마주한 뒤로 학생운동을 하던 때가 있었다. 항상 내 삶 속에 다짐으로, 행동으로 현재와 연결하고 싶은 마음을 품고 살았다. 그래서 세월호 가족들의 마음이 더 와닿았다. 이런 참사가 계속 반복되고 있지 않나. 비극이 반복되는 과정에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일은 끊임없는 숙제 같다. 우리는 다 연결돼 있고, 그 연결된 삶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정의로운 사회를 꿈꾸고 있지 않나. 이에 대해 각자의 삶 속에서 깊이 생각하면 좋겠다.
Q. 영화를 관람한, 혹은 관람할 관객분들께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문: 자극적인 장면들은 일부러 걷어냈다. 세월호가 침몰하고 헬리콥터가 뜨고 그런 과정들. 영화를 보고 나서 남는 것이 무엇일까를 많이 고민했다. 영화를 보신 후 돌아가는 길에 아버지의 마음, 촛불 시민들의 마음, 이웃들의 마음을 품고 가주셨으면 좋겠다.
김: 어려운 영화가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많은 분들이 영화를 봐주셨으면 한다. 가족분들의 웃음과 울음, 결국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누가 겪어도 이상하지 않을 사건을 통해 삶이 완전히 달라지신 분들이다. 위로하는 마음으로 많이 찾아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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