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박사
▸상지대학교 조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제22대 총선이 야권의 압승으로 끝났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단독으로 과반을 훨씬 넘기는 의석수를 획득했고, 여당인 국민의힘은 100석을 겨우 넘기는 의석수를 확보하는 데 그쳤다. 개혁 진보세력의 쇄빙선을 자처한 조국혁신당은 12석을 확보했는데, 이것은 지지율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위성정당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은 결과였다. 그리고 국민의힘에서 탄압받던 정치인들이 국민의힘 외의 정당에서 탈당한 정치인과 함께 만든 개혁신당도 3석의 의석을 확보했고, 진보당 후보가 울산에서 당선되면서 원내에 진출했다.
이미 많은 언론에서 이번 총선이 가진 역사적 의미를 제시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임기 내내 국회가 여소야대 상황인 최초의 대통령’이라는 것이다. 87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한 이후 국민투표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은 기간의 길고 짧음은 있지만, 모두 여소야대의 상황을 겪었다. 노태우, 김대중 전 대통령은 야당과의 통합이나 연대로 이 상황을 극복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소위 ‘탄핵역풍’으로 여대야소의 상황을 맞이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임기 초 짧게나마 여소야대의 상황을 겪었고, 박근혜씨는 대통령 재임 기간 당시 있었던 총선에서 여당이 패배한 것이 탄핵의 상황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이후 인수 기간 없이 대통령이 된 문재인 전 대통령 역시 임기 초에는 여소야대 상황이었지만, 총선에서 여당이 180석이 넘는 의석을 차지하는 압도적 승리를 거뒀다.
소위 ‘진보개혁’ 진영이 총선에서 두 번 연속 압도적 과반수를 차지했다는 점도 역사적 의미로 꼽을 수 있다. 2개의 거대 정당 중 현 여당인 국민의힘의 지역적 지지 기반은 영남이고, 또 하나의 거대정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호남을 지역적 기반으로 두고 있다. 그런데 영남과 호남은 인구수 차이로 인해 의석수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이것은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진보개혁진영이 수적 열세를 안고 총선에 임함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불어민주당은 21대와 22대 총선에서 연속으로 과반수 이상의 의석을 차지했고, 이것은 지역구도가 고착된 한국 정치사에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일어났다고 평가할 수 있다.
다른 한 편으로 녹색정의당의 의석 확보 실패도 역사적 의미가 있다. 이승만에 의해 사법살인을 당했다는 평가를 받은 조봉암 이후 한동안 진보정당은 국회에 입성하지 못했고, 많은 진보정당이 생겼다가 사라지곤 했다. 민주노동당이 처음으로 국회에서 의석을 차지한 이후 어느 정도 부침은 있었지만, 진보정당은 꾸준히 국회에서 열 석 전후의 의석을 차지해 왔다. 심지어 지역구에서 어쩔 수 없이 더불어민주당의 전신 정당에 표를 주고, 비례대표는 녹색정의당을 비롯한 진보정당에 표를 주는 유권자들도 상당수 있었다. 그러나 22대 총선에서 녹색정의당은 비례대표에서 한 석의 의석도 차지하지 못했다. 또한 대선주자이자 4선 국회의원인 심상정 의원도 이번 총선에서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그리고 녹색정의당이 차지했던 진보정당의 의석은 결과적으로는 조국혁신당과 개혁신당, 그리고 진보당이 나눠 가졌다.
민주개혁진영이 총선에서 연속으로 압도적 과반을 차지했다는 것은 여러 가지 역사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한국 시민들의 연령대별 정치 지향은 흔히 ‘노년층은 보수, 청장년층은 진보’라는 식으로 도식화돼 왔다. 그런데 이제 소위 ‘86세대’가 60대에 진입했다. 이것은 86세대가 나이 들면서 보수화될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향후 ‘노년층은 보수’라는 규정에 균열이 갈 수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지난 대선과 지자체 선거 때보다 덜해졌지만, 2-30대 남성들이 수구 진영에 표를 주는 모습이 확인됐고, 이것 역시 ‘청장년층은 진보’라는 도식을 흔드는 사례가 됐다. 청장년층이 수구화되진 않았더라도 적어도 ‘스윙보터’의 모습은 보이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연령대별 정치 성향은 수구세력이 과거와 달리 향후 각종 선거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쉽지 않음도 의미한다.
지역구도는 오히려 더 공고해진 모습이 나타났다. 국민의힘과 수구세력은 영남을 중심으로 강원도 지역에서 압승했고, 진보개혁세력은 수도권, 경기도, 호남, 대전·충남, 세종, 제주에서 압승했다. 20대 총선 당시 진보개혁 세력의 김부겸 후보가 대구에서, 수구진영의 정운천 후보가 전북에서 당선되면서, 한국 사회의 발목을 잡던 지역 구도가 바뀌기 시작한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러나 10여 년 만에 거의 예전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러한 지역구도의 공고화는 국민의힘을 비롯한 수구세력에 이전과 다른 모습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과거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수구정당의 몰락을 보면 알 수 있다. 강원과 충청을 기반으로 했던 통일국민당, 충청을 기반으로 했던 자유민주연합 등은 잠시 원내에 진입했다가 몰락의 길을 걸었다. 서울과 경기에서 의석을 차지하지 못한 수구정당들이었다. 또한 민주당에서 분리돼 나왔던 국민의당도 호남을 기반으로 원내에 진출했지만, 끝내 당이 쪼개지고 말았다. 한국현대사의 이러한 모습은 지역을 기반으로 정치생명을 유지하려는 소위 ‘정치꾼’들만으로는 정당이 유지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진보정당인 녹색정의당이 의석을 확보하지 못한 것은 진보정당 소속 정치인들의 각성을 의미한다. 진보정당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다. 진보정당의 최대 문제는 민주개혁 세력으로 분류되지만, 실질적으로는 보수에 가까운 민주당 계열 정당과의 차별화였다. 수구정당인 국민의힘 계열의 정당이 거대 양당 중 한 축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민주당 계열 정당과 보조를 맞추면 ‘민주당 2중대’라는 비아냥을 듣고, 민주당과 차별화된 전략을 보여주면 시민들에게 지지를 얻을 수 없었다. 심지어 민주당 계열 정당의 정치인이 간발의 표차로 선거에서 낙선하면, 비난의 화살은 입후보한 진보정당 후보에게 향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고통받는 다수 서민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진보정당이 추구하는 정치의 전개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국민의힘 계열 정당이 과반수 의석 확보에 실패하거나, 정권을 빼앗기게 되면 민주당 계열 정당과 과도하게 대립각을 세우고, 심지어 수구정당과 연대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이러한 모습은 지난 21대 총선의 비례대표 후보 선출 과정에서의 잡음으로 표출됐고, 심지어 이때 정의당 당적의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후보가 수구정당에 입당했다가 불출마하는 모습까지 드러냈다.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정치 지향이 옳은 방향임을 과도하게 드러내는 진보정당 정치인들의 행태는 수구세력 일부 정치인과 유사한 우월의식, 시민은 무식한 계몽대상이라는 선민의식, 자신들을 향한 의혹 제기와 비판에 귀를 닫는 ‘내로남불’의 표현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진보정당에서 가장 유력한 정치인인 심상정 의원을 향해 붙은 ‘심틀러’, ‘심푸틴’, ‘심메갈’이라는 모멸적 별명은 이러한 진보정당의 문제를 압축적으로 담고 있다.
무엇보다도 제22대 총선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정권심판이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시민들은 제22대 총선의 표심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기조 변화를 요구했다. 그러나 지난 4월 16일 국무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보인 입장 표명은 표심과 반대인 것으로 보인다.
제22대 총선의 결과를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국민이 든 ‘회초리’, ‘몽둥이’로 표현하는 기사가 많이 보였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이 보인 모습을 보고, 국민들이 ‘고무호스’를 들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흔히 대통령의 탄핵, 하야는 국민에게 불행한 일이라고 평가된다. 그러나 그것은 정치적인 맥락에서의 평가고, 민주주의와 역사의 시점에서 탄핵과 하야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자랑스러운 일임을 윤석열 대통령은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