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절반, 조치의무위반·불리한 처우 경험해
직장갑질119 “취지 살리는 제도 보완·강화 필요”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지난 2019년 7월 16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됐지만, 그간 괴롭힘 심각성이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심지어 비정규직 괴롭힘 심각성은 보다 악화됐으며 신고의 문턱은 여전히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직장갑질119는 24일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직장 내 괴롭힘 현황’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설문조사는 직장갑질119가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경제활동인구조사 취업자 인구 비율 기준에 따라 지난 5월 31일부터 이달 10일까지 전국 만 19세 이상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그 결과, 직장인 10명 중 3명(32%)은 지난 1년 동안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이는 지난 2019년 3분기 조사 결과(44.5%)에 비해 12.5%p 감소한 수치다. 직장 내 괴롭힘 경험률은 괴롭힘 금지법 시행과 국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팬데믹 시기를 거치며 20%대로 떨어졌으나, 지난해 초부터 다시 30%대를 유지하고 있다.
괴롭힘을 유형별로 살펴보면 올해 6월 기준 모욕·명예훼손 범주의 괴롭힘 경험이 20.6%로 가장 많았으며, 뒤이어 부당지시(17.8%), 폭행·폭언(15.7%) 순이었다.
괴롭힘을 하나라도 경험한 응답자들에게 괴롭힘 심각 수준을 물어본 결과, 40.6%가 심각한 괴롭힘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이 같은 응답은 20대(47.8%), 비정규직(48%), 비사무직(45.8%), 150만원 미만(56.1%)에서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실제 피해자들은 피해 이후 신고부터 사건 조사 및 조치 과정에서 다양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첫 번째 문턱은 신고 그 자체였다. 올해 2분기 기준 괴롭힘 이후 회사나 노동조합에 신고했다는 응답은 8.1%, 고용노동부 등 관련 기관에 신고했다는 응답은 2.2%에 불과했다. 피해자의 10.3%만이 괴롭힘을 당한 뒤 신고 절차를 밟은 셈이다. 중복응답이 가능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신고를 한 피해자 비율은 더 낮을 수도 있다.
이와 반면 괴롭힘 피해를 입었음에도 ‘참거나 모르는 척했다’는 응답은 60.6%, 회사를 그만뒀다는 응답은 23.1%에 달했다. 신고를 포기한 응답자의 절반 이상은 이 같은 선택을 한 이유로 ‘대응을 해도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아서’(53.9%)를 지목했다. 3명 중 1명은 ‘인사 불이익에 대한 우려’(32.9%)로 신고를 포기했다고 호소했다.
피해자 앞에 놓인 두 번째 문턱은 신고 이후 발생하는 조사·조치의무 위반과 불이익인 것으로 파악됐다.
같은 조사에서 괴롭힘 신고자들에게 회사가 근로기준법상 조사·조치 의무를 준수했는지 여부에 대해 물어본 결과, 사용자가 ‘조사기간 동안 피해근로자 보호를 위해 피해근로자 의사에 반하지 않는 근무장소 변경, 유급휴가 등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제76조의3 제3항)는 응답은 62.8%였다. ‘괴롭힘 사실 확인 후 피해근로자의 의견에 따라 근무 장소 변경, 배치 전환, 유급휴가 명령 등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제76조의3 제4항)는 응답은 48.8%로 집계됐다.
더욱이 응답자 절반은 보호를 받기는커녕 ‘신고를 했다는 이유로 해고 등 불리한 처우’를 경험(제76조의3 제6항)하거나 ‘조사 과정에서 비밀이 누설되지 않도록 회사가 조치’하지 않았다(제76조의3 제7항)고 답하기도 했다.
괴롭힘 금지법의 인지도가 올라가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로 꼽혔다. 지난 2019년 법 제정 직후 진행된 지난 2019년 10월 설문조사에서 괴롭힘 금지법 시행 사실을 알고 있다는 응답은 72.2%였으나, 해당 수치는 올해 6월까지(71%) 거의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실정이다.
법 인지율이 상승하지 않는 주된 이유 중 하나로 직장갑질119는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올해 6월 기준 법 시행 이후 괴롭힘 관련 교육을 한 번이라도 들어봤다는 응답은 45.6%에 머물렀다. 특히 법 적용 대상이 아닌 5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교육 이수율이 16.1%로, 이는 300인 이상(66.8%)의 4분의 1 수준이었다.
직장갑질119 대표 윤지영 변호사는 “괴롭힘 비율이 줄어드는데도 그 심각성이 악화되는 것은 이처럼 사용자와 정부가 직장 내 괴롭힘 제도를 적대적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이러한 적대적 인식이 괴롭힘의 요건을 엄격히 해 신고 자체를 어렵게 하려는 시도로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금 필요한 것은 제도의 후퇴가 아니라 취지를 살리는 제도의 보완과 강화, 사각지대 해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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